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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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곧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p60)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사실 이 책은 뜻하지 않게 들어온 책이었다. 아마 그 경로가 아니었다면 난 이 책을 만나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절대 구입하지 않았을 여행 에세이였으니까. 나에겐 아직은 너무나도 생소한 분야이다. 그래서 항상 이 분야의 책을 만나게 되면 읽을 때마다 부담감이 증폭되고, 불평·불만도 잦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불평·불만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써내려갈 때 그 때 생기는 것이지싶다. 게다가 나는 여행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라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제 앞으로는 여행에세이를 좀 증폭시켜야겠다는 아니, 강압적인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내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한 곳을 아니, 어쩌면 가보지 못할 확률이 더 높은 그 곳들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게 아직도 꺼려지는건 마찬가지겠지만, 뭐랄까 왠지 매력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일까. 여행 에세이가 자꾸 눈에 보이는 것도 같다.

 

 

윤미나는 동유럽의 체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의 명소들을 거치고 그 때 그 때 느낀 것들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그녀는 전혀 친절하거나 부드럽지 않다. 통통 튀는 그녀는 여행객으로서 보기 힘든 특유의 당당함과 솔직함으로 꽁꽁 무장되있었고, 그녀의 그런 지나친 솔직함들이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번역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문체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여행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도 그것보다는 사람 윤미나를 알아가는 듯한 느낌을 풍기게 했다. 그래서 읽기가 한결 수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좋게 돌려말하지 않고 특유의 젊은 이들의 입버릇처럼 '엿같다'라는 말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말투조차 거슬리지가 않았다면, 내가 너무 관대한걸까? 결코 그렇진 않을 것이다. 여행에 대해 좋게만 포장하려는 것과는 달리 윤미나는 그 곳에서 미국관광객들을 과감하게(매우!) 품평하기도 하고, 투숙객으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집주인의 형을 매우 미워하는 등의 이제까지 봐온 여행객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그래봤자 여행서는 얼마 읽지도 못했지만.) 얼떨결에 눈싸움 대국이 벌어진 트램 안에서, 사뭇 오기가 발동한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일까. 앗, 내가 먼저 깜박이고 말았다! 독한 사람들. 인간의 안구가 아니다.(p48)

 

 

굴라쉬란 체코의 얼큰한 쇠고기 스프인데, 얼큰하고 걸쭉한 국물이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해서 한 끼 식사로도 좋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이라고 한다. 낯설 수 밖에 없는 타지를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육개장과 비슷한 굴라쉬로 우리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하면 우연의 결실이자 순간의 마법인 경험을 가장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이지 하나도 모르겠다. 조심스레 지퍼락에 밀봉했던 경험들이, 꺼내놓고보니 하나같이 꾀죄죄하다.(p256) 각기 마음 속에 그간 쌓아온 경험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순간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이 들만큼 아끼고 아껴서 조심스레 꼭꼭 담아두었는데, 나중에 꺼내놓고 보니 꾀죄죄하다는 말.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크고 작은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먼 훗날의 나를 만드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프레임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일까. 항상 누군가와 비교를 하게 되고, 그러면 소중하다 생각했던 내 경험들은 하나같이 보잘 것 없는 것들뿐이니.

 

 

실비아 플라스의 말에 한 마디 토를 달자면, 뜨거운 목욕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긴 하겠지만, 그 나머지 것들은 목욕 후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어느 정도 재활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해도 때때로 아주 작은 것에서 삶을 지속시킬 핑계를 찾는 동물인 듯 하다. 어쨌든 죽는 것보다는 변명을 하는 게 더 쉬우니까.(p43) 오늘 어떠한 외부요소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을만큼 힘들었다 할지라도 내일은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한 것일까. 전에는 더 힘든 일들도 있었잖아. 혹은 앞으로도 이것보다 힘든 일은 얼마든지 있을거야. 앞으로는 좋은 일들이 생기겠지. 라는 변명들이 나를 살게 만들고 그럴수록 내 깊은 마음 속의 응어리들도 점차 가라 앉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행에서는 치사한 합리화도 허용된다. 그래서 가장 초라한 여행조차 눈부시게 찬란할 수 있다.(p86) 사실 나는 해외에는 나가본 적조차 없고, 국내에서도 여행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녹초가 된다 할지라도 여행을 가기 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설레임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여기서 어떤 것을 느꼈다는데, 왜 나는 느끼지 못하는거야? 라는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고, 혹은 전혀 필요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저 그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을 느끼고 후회없는 여행을 하고 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여행서는 그 곳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참고인 또는 참고서가 될 뿐이지, 그 순간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자기만의 색깔로 여행하는 것이라는 게 윤미나가 나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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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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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감히 눈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블록버스터를 가지고 있는 거야.(p167)

 

 

 

 

 

 

 

나에게 남인숙의 책은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실천편)' 이후로 두번째이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를 읽었을 땐, 정말 많은 혼란이 와서 책 속에서 답을 얻고 싶어서 펼쳐 들었었는데,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사실 어떤 책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자기계발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실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도 조금 망설였지만, 나를 흥미롭게 자극하는 명화 에세이라는 분야를 들고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다시 찾아왔기에 기대를 하며 읽게 되었다.

 

 

나는 그림이 소수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소수의 엘리트가 자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로 소통하는 수상쩍은 도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명화들을 보다 보니 그림은 이해하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삼스럽지만 명화는 '의외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동안 기묘한 그림만이 명화로 대접받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이유는 평생 걸려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명화는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였다.(p9) 나 역시도 그림감상은 왠지 까탈스러운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보는 것 자체도 모르거니와 항상 그림감상이 취미라고 하면 뭔가 대단해보이는 나와 별개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이 그림들을 보고 그것을 느끼는(어떻게 느끼느냐가 문제겠지만.) 그 순간 아마 이것이 나와 별개라는 생각은 접어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된다는 건 비단 나뿐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불만인건, 화는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라는 말이다.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나같이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조금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명화는 정해져 있는 것만이 명화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에 '그'자도 모르던 내가 (아,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계기는 '이주은- 당신도 그림처럼'이라는 책을 펼쳐들었을 때였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책에서 보는 그림들이 어찌나 멋지게 보이던지, 그 그림들에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 그게 아마 내가 그림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림에 대해 쓴 글들이 전부 사실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않는다. 그래서 읽고 싶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명화 에세이를 꺼려하기도 한다. 명화 에세이를 읽으며 항상 곱씹게 되는 생각은 그림은 그것을 보고 우리가 직접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상 그 속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명백히 알기 전까지는 어떠한 그림을 보고 그것이 맞든 틀리든 간에 상상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본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가 그림에 대해 쓴 글들은 사실인 것도 있고, 자신이 보고 이럴 것같다. 라는 것들을 적어내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화 에세이를 볼 때면 그림을 먼저 보고 내 생각을 정리 한 다음에 작가의 글을 보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나중에 내가 그림을 봤을 때 작가의 생각으로 그림을 보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 많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지만, '장 베로- 기다림'(p22)이라는 것을 예로 든다면, 저자는 먼 곳에 있는 점으로 보이는 신사가 기다림의 대상인 듯 걸어가려는 자세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녀가 기다림의 대상이 정해져 있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갑갑함이 지겨워서 간만에 외출을 했는데, 황량한 길거리에 실망을 하고 집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그러면 저 신사는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 제목을 보지않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목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저 신사가 기다림의 대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살다 보면 무언가를 기다리고 싶을 때가 있잖아. 좋은 사람, 좋은 순간, 좋은 기분……. 막상 만날 때보다 기다릴 때가 좋은 경우도 많아. 그래서 종종 그 기다림이 길어지기를 바랄 때도 있어.(p24)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면 '해밀턴 해밀턴- 사과꽃 흩날리며'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그림인데, 정말 화가 이름이 해밀턴 해밀턴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화가를 찾아봐도 나와있는 건 없기에 그냥 그렇다고 믿을 뿐. 혹여라도 아니라면 다시 제대로 된 이름을 알고 싶은데.. 아무튼 이게 문제가 아니라, 난 이 그림을 하루종일 울고 있던 아이에게 유모가 저 이름모를 나무를 흔들어서 꽃을 흩날림으로써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는 시도라고 봤다. 남인숙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엄마라고 칭해서 '아 정말?' 이라는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렇듯 그림 한 장을 두고서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철없던 시절에는 몰랐어.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나한테도 행복한 일이라는 걸. 그저 내 한 몸 좋아야만 행복한 건 줄 알았지. 하지만 이젠 알아. 나로 인해 누군가가 기뻐하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말이야. 더구나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일 때에는 말할 것도 없지.(p100)

 

 

 

 

차분한 글을 읽어나가다보면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장면에 어떤 제목을 붙여왔을까?(p38) 라는 문장을 보게 되는데, 과연 나는 내 삶에 어떤 제목을 붙여놓았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아마 기쁜 상황 속에서도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마음 속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제목을 짓진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은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p180) 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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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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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에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에 대해 쓴 책이었는데, 그래서 사실 츠지 히토나리의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도 왠지 그런 소재의 작품일 것만 같았다. 그 혹은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그 기억이 희미해지고 옅어지면서도 둘의 사랑을 놓지 않는.. 아마 그런 줄거리를 예상했는지도 모를일이다.

 

 

츠지 히토나리는 항상 말랑말랑한 사랑을 작품의 주제로 가지고 놀았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이 책을 덮고 느낀 점은 성장소설이라는 것인데, 성장소설치고는 너무 무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는 (매우) 어두침침하다.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는 그래서 그런지 처음 3장을 채 읽기도 전에 덮으라면 덮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그 속에 빨려들어가고, 도오루가 생각하는 그 회색의 정체가 무엇인지, 함께 찾아내고 싶었다. 모두가 회색이 되어가고 있어. 자꾸자꾸 회색이 되어가. 그러는 게 편하거든. 무기력하고 무감동하고 무사상에 무능력에 무자비하게 되는 것으로 직접적인 아픔이나 공포, 슬픔이나 미래로부터 도망칠 수 있지. 인간이 이 세계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남겨진 길이라고는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회색이 되는 것뿐이야. 그저 멍해진 채 현실에서 도피하여 망상이나 허구 속에서 사는 거야.(p201) 이 회색의 해답은 읽는 독자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다.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와닿는 건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나는 사람들의 거짓,  위선, 가식, 이기적, 메마른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체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왠지 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며칠 전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말하는 회색의 의미와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서 말하는 회색의 의미가 충돌해서 내 머릿 속은 회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한가지 사물 혹은 추상적인 어떤 것에 대해 하나의 의미만 있다고 가정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loose해질 것인가. 시선을 피하지 말고 세계를 똑똑히 응시해. 회색에 지지 말고.(p251)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서 우리가 회색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랑. 믿음.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도오루는 성정체성을 앓고 있는 시라토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마 그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랑을 하며 도오루의 변화하는 행동을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기까지 하다. 문득 어느 순간, 히카루가 예전에 말했던 대로 시라토가 타인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지 두려웠다. 도오루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수반된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깨달았다.(p312)

 

 

요즘엔 세계가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는 것에 비례해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산다. 아이들은 GPS가 장착된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오직 그것만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있었다.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감동을 찾아 자신만의 세계로 잠겨들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책상 밑에서 더듬 더듬 휴대전화를 조작하며 가상의 외계를 향해 자신을 발산하는 것 밖에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얻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p36) 정보화 시대로 발전해감으로써 세계는 더욱 성장하고 탄탄해짐을 느끼긴 하지만, 그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정보화 시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인터넷이라는 가상에서 내 존재가 하나 더 생겨나고, 그것에 대한 책임감은 당연히 하락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나는 실존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그런 상황을 감지하고 츠지 히토나리는 그래서 도오루에게 히카루라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또 다른 자신이라는 친구를 선물해줌으로써 그 시기를 이겨나가기가 조금 수월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이중인격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의 갈림길이고 어떤 선택을 할 때, 적어도 두 가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마음에서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도오루는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분신인 히카루와 충돌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이중인격인 것일까? 뭐 사람마다 생각하는 차이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인생이란 모두가 말하듯이 멋진 것일까, 아니면 나쁜 꿈일까.(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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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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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점이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작은 관심 하나로 책 한 권을 읽게 되고,
그 책 안에서 발견한 작은 흥미 때문에 그 다음 책을 읽게 되고, 거기서 찾아낸 것 때문에 또 다시
다음 책을 읽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독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됩니다.
거기에는 가시적인 한계도 없으며,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친애하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 모두에게

 

 

 

내가 건지 섬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았네요. 우선 줄리엣과 그녀의 남편에게 무한한 축하를 전할게요!

제가 그 곳에서 직접 축하해줄 수 없어 매우 안타까울 뿐인걸요! 줄리엣은 항상 당차고 유쾌한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관찰력이 뛰어난 이솔라 덕분에 줄리엣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네요! 사실 줄리엣은 그 전에 왔었던 남자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제 예감이 맞았군요.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서 전 정말 기뻐요.

혹시 줄리엣은 글을 쓰고 있나요? 어떤 소재로 글을 쓰고 있나요? 혹시 그녀의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나요?

그렇다면 정말 좋겠어요! 아니면, 사랑이야기를 넘어 지금의 생활들을 이야기 해주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그 곳에 없는 저도 책을 통해 소식을 들을 수 있을테니까요. 저는 건지 섬을 떠난 후유증때문인지,

아니면 이 곳의 바람이 차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이솔라의 관찰력을 능가하려는 저의 다분한[?] 노력때문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와요. 지금 나에게는 이솔라가 만들어주는 약이 필요해요.

아니면 제가 건지 섬에 발을 내려 놓았을 때 저를 맞아주었던 이솔라의 그 다소 격한 포옹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도시는 행복한가요? 당연히 행복하겠죠! 으흐흐, 제가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을 했나요? 정말정말 부럽다고 전해주세요!

하지만 도시 조금은 실망이예요. 여자가 먼저 다가서기가 얼마나 힘든지 도시는 몰랐나요?

하지만 전 두 사람의 인연이 닿아서 정말 기쁜걸요! 다음에 보게 되면 소년처럼 수줍어하던 도시는 이제 그만

안녕 - 해버리고, 듬직한 도시가 되어있길 바랄게요! 아, 은 아직도 낯선 사람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나요?

처음 줄리엣을 대할 때 경계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의아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잘 따르는데 말이예요!

제가 있을 때는 그렇게 도도하게 굴더니 마지막에 떠날 때 즈음 되서야 친해져서 많이 아쉬웠다구요.

다음에 가면 킷은 몰라볼 정도로 많이 커서 숙녀 티를 내고 있겠죠? 아! 정말 기대되는걸요!

아멜리아는 아픈 곳은 없나요? 꼭 그래야만 해요. 저는 힘들 때 북클럽 회원분들 몰래 아멜리아에게 상담하고

차분한 말투에 위로를 많이 받곤 했는데, 항상 저도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아, 엘리자베스의 소식은.. 그로 인해 저도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탄에 빠졌어요.

그 곳에 갔을 때 저도 꼭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그녀의 재치로 인해 만들어졌는데,

창시자인 그녀를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북클럽 회원분들께 들은 엘리자베스는 참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을 것만 같아요! 아니, 분명 그럴거예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의 모든 것을 들려주어야만 해요. 특히 그녀의 러브스토리는 너무나도 낭만적이예요.

하품하거나 하는 하는 그런 무례함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을테니, 부디 다시 또 들려주길 바랄게요.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제인 오스틴과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어본 적 없다고 한 저를 다들 의아하게 쳐다보셨던 것을요.

'어쩜 그럴 수가 있나'라는 눈빛이었는데, 너무 부끄러워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네요. 언젠가 꼭 읽어보겠어요.

그리고 당신들과 함께 공유할거예요. 그때는 저도 그 대화에 꼭 끼고 싶어요. 몰라서 멀뚱멀뚱거리는건 이젠 싫다구요.

 

아! 이 곳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요. 그 중에서도 나와 인연인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좋은 사람들뿐이예요!

언젠가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을 소개할게요. 아마 만나면 당신들도 분명히 좋아할 수 있을거라 의심치않아요.

 

나는 당신들을 통해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엿보았어요. 항상 매사에 투덜대는 나를 돌아보게 됐구요.

나에게 그런 깨달음을 안겨준 당신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이 커요.

나도 고마운 마음들을 고스란히 담아 당신들에게 전해야 할텐데, 그 고마움을 어떻게 다 전하죠?

 

 

ps. 그 때 먹었던 감자껍질파이가 생각나네요. 꼭 한번 다시 만들어주세요! 열개를 만들어 주신대도 전 모두 먹을 수 있어요.



 

 

당신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요. 다시 볼 날을 기대하며,

reerah.

 




 

난 사실 요근래 모든 책들을 부정적으로 읽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 책을 들고 그들이 사는 세계 속에 들어가 편지로 하여금 그들의 생활을 엿볼 때는 너무도 즐거웠다. 하지만 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올 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직 살아있군. 하지만 따지고보면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니었죠.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잠자리에 누웠을 때의 단 몇 분 뿐이었습니다. 특히 이 부분이었는데, 그들이 밝은 모습만을 보인다고 해서 그들이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작가인 메리 앤 셰퍼는 그리고 애니 배로스는 끔찍하고 견디기 힘든 전쟁과 나치 점령기의 상황을 그들의 긍정적으로 순화시키고 싶었을테지만, 그것만으로 치유되기엔 너무나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최대한 우리에게 전쟁의 적나라함을 그리고 그들을 통해 긍정적인 면들을 보여주려고 애썼고, 그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니, 아마 다 못느꼈을 것이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의 몇 배보다 더 적은 양을 난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감이 될 수 있는 건 난 그 상황에 있지 않았지만, 우리도 일제강점기라고 불릴 때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건지 섬에 가면 정말 그들이 있을 것만 같고, 그들이 날 반갑게 와락 껴안아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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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
정관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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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싸움이 아니다. 전쟁도 아니다. 서로가 얻고 배워 가는 과정이다.

배우는 토론을 해야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성립한다.(p232) 

 

 

 

 

 

'토론'하면 100분 토론을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토론문화에 대해 올바르게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처음 100분 토론을 시청했을 때, 마냥 신기해하며 '아 저런게 토론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주장을 말하기 앞서 원인들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대책론을 펼쳤는데, 그 의견들이 나와 반대될 지라도 멋져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 대립되는 주장이 들어오면 그 주장들을 경청하기보다는 무조건 반박하거나 회피하거나 심지어 그 속에서 말꼬리를 붙잡는 식의 대화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보이는 그들을 보며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에는 매우 배타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토론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말발(듣는 이로 하여금 그 말을 따르게 할 수 있는 말의 힘)이 세어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상 우리가 토론이라는 점을 배우고 습득할 수 있는 곳은 대중매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국민이 보고, 그것이 토론이라는 문화로 우리에게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토론에 대한 정립을 내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저자는 친절하게도 우리는 알 수 없는 방송토론의 숨겨진 진상을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고발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카메라를 보고 다수의 국민을 자기의 편에 세우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show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는 토론에 대한 프로그램을 봐도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개인은 사상, 이념, 가치관, 정치의식이 각기 다르기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 갈등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쪽으로 유리하게 당기기 위해 상대방의 주장은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않고 심지어 상대방이 하고 있는 말을 끊어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바쁘다. 저자는 그런 우리에게 내가 남을 설득하고 싶다면 내가 먼저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설득될 수도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비로소 남을 설득할 수 있다.(p234) 라고 충고하고 있다. 토론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자신의 문제점을 고찰하고 일리가 있는 말은 수긍하며 서로 합치점을 찾아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다는 것이 주 목적인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 내기에 바쁘기 때문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는 커녕 그것이 싸움으로 변질된다.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싶고 그렇게 목소리가 크다면 웅변에라도 나가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할말이 없다. 나 또한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 이견을 좁히기보다는 감정을 우선시해 결국엔 본질을 흐리고 상대를 헐뜯고 비난하는 인신공격이 되기 십상인 발언들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한 대책으로 저자는 몇가지의 대책 방법을 내세웠고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I-Message(나-전달법)였다. 책에서 나온 예를 들면 "당신 때문에 통화를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잖아요. 당신 왜 그러셨어요?" 와 "제가 고객과 통화하는 중에 당신이 방해해서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객기 요구하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의 차이인 것이다. 둘 다 같은 말이지만, I-Message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상대방의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표현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때문에 불쾌함을 받았다면 I-Message보다는 You-Message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를 악화시킨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한 문학동아리를 들었었는데, 그 동아리는 책을 읽고 그 책을 읽고 난 후 자신들이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그 후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놓고 찬반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 당시 토론의 주제가 되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사형, 낙태, 안락사, 원정출산 등등이 있었는데, 토론이라는 그 자체보다는 우리끼리 하는 간담회식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며 '맞아맞아.'하며 맞장구 친 적도 있는데, 지금은 내 입장만 내세우기 바빠서 귀 막고 입만 살아있는 귀머거리가 된 기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불통을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소통이라는 것을 감정으로만 치부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저자가 불통에 대해 예를 든 것이 방송토론과 정치적 갈등이었다. 하지만 그 예들이 정치적으로만 국한되어있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저자의 말대로 단 하나의 진실만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토론보다 무의미한 것은 없을 것인데, 내 생각엔 정치는 그 뒤에 숨겨진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을거란 생각에 앞뒤가 안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너무 자극적인 발언들, 지나치게 극단론을 펼치는 인사들은 이제 무시해야 한다. 비판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p198)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올바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이 책이 만들어진 목적일텐데 저자는 무시하고 비판조차도 하지말아야한다고 하고있다. 대한민국의 불통을 문제로 삼긴 했지만, 불통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그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 전쟁 등을 범본으로 예를 들어주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도 남겨본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몇번씩이나 강조하며 불통을 심각성을 얘기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불통 속에서 소통이라는 한줄기 빛을 찾아낸 지금이고, 그 빛을 우리 모두 노력하여 잡아 끄는 일밖에 남지 않음을 나는 느꼈다.

 

 

 

이제 연극은 끝났으니 출연진 모두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터주길 바래본다. 관객은 구지 초대해야 오는 관객도 있겠지만, 자신의 능력을 보고 찾아가는 관객도 있다는 걸 더불어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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