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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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느닷없이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이 책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내가 이 책으로부터 엄청난 감동도, 그렇다고 갑작스러운 자극도, 마음에 묵직한 무언가도 남지 못했는데도, 억압되거나 여전히 유예된 것만 같은 나의 ​성장기를 다시 들여다보고자 함은 더욱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 뭔가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일까. 혹시, 어쩌면, 연우를 위로하고 싶었을까. 아니라면, 태수를? 채영을? 마리를? 아니면 성장하고 있는 '누구'들? 글쎄. 쓰다 보면 알겠지.



지금 나의 서재(라고 말하기에는 비루한 책장)에는 은희경 님의 책이 두어 권 꽂혀있다. 한 권은 단연 <새의 선물>이고, 한 권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은 <태연한 인생>이다. 내가 은희경 님을 알게 된 건,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책 때문이었다. 당시에 내가 읽기에는 힘들었던 기억이라, 몇 장 읽다 말고 덮어두고 말았다. 하지만 그 책을 읽지 않고도, 정말 책 제목처럼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휩싸여 나는 한동안 시계를 멀리했었다. ‘몇 시’인지를 잊고 지냈다. 알고 싶어도 모르는 척, 꾹 참았다.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책을 알게 된 것은 어린 나였는데도, 나는 퍽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니. 마음마저 유약했던 벨라야-


어쨌든,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는 은희경 님의 책을 세 권이나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어본 책은 <새의 선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책은 너무나도 소중하여 두고두고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그런 책의 한 권이기도 하다. 내가 그 책을 언제 읽었나 찾아보니, 2012년이었다. 손가락 다섯 개가 부족할 만큼의 햇수가 지났다. 그런데도, 나는 그 문장들을 하나하나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기대감으로 이 책을 펼쳤을 때에, 차선에 뛰어든 고라니처럼 우왕좌왕했다. 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은, 문장은, 이전 작품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_가 가장 큰 오류였다. 그러는 나도 일관적이지 못하면서, 너무 웃긴다.




연우다.

연우였다.

이야기는 강연우의 시선을 좇지만, 연우의 시선에 걸리는 건 독고태수와 독고마리, 채영이었다. 그리고 신민아 씨와 재욱 형까지. (아, 그리고 나는 이 서평을 쓰며 kebee의 '소년을 위로해줘'를 지나 '백설공주'를 듣고 있는 참이다. 예전에는 이런 랩도 즐겨 들었었는데, 랩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이 풍부하기 때문이었지 싶다.) 약 500페이지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난잡하지만 적당한 속도로 통과하고 있었다. G-그리핀, 카프카, 달리기, 세상 끝에 있는 우주정거장, 공항버스, 첫눈, 마라톤, 당근 아홉 개, 그림자도 아닌 마리오네트, 정체성 혼란, 싸움, 그래피티. 이를테면 그것들은, 소년들의 삶이기도 했다. 밀도와 속도에서는 균일하지 않은, (특히나) 모든 소년들의 시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없지만, 신민아 씨의 육아법에 대해 참 많은 공감을 했다. 한때는 나도 엄마가 될 준비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의 전제하에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주고 싶은 것, 아이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나 하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했었다. 그것은 결혼 1년이 되는 해의 일이었다. 신민아 씨가 연우를 키우는 방법은 내가 실천하고 싶었던 것들 나열의 연속이었다. 일상 포스팅에 잠시 언급한 적 있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물론 그런 걸 내가 결정할 수는 없겠지만) 성별은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내 방식대로 키운 아들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방식대로 키운'이라니, 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가. (풉)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버스 창밖으로 중고등학생 남자아이들을 볼 때마다 연우와 태수 같아서, 나도 모르게 양순한 마음이 되었다. 뭐, 더 할 말이 있나. 그저,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소년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고독은 학교 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슬픔은 함께 견디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슬플 때에는 반드시 네 곁에 있을게. (P.19)


비밀이 있다는 거 좋은 일이야. 비밀 그거, 사유재산이나 마찬가지지. 남몰래 인생의 부자가 되는 거니까. 근데 일단 있다는 걸 들켰으면 신고하고 세금은 내야 할걸. (P.243)


주변의 위험한 물건 다 치워놓고 마음껏 놀게 해주는 것. 그게 방목이야. 대부분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지만 결정적일 때는 개입을 해야 해. 그러니까, 멀리 있더라도 연결은 끊어지면 안 된다 이거야. 그런 걸 방목의 기술이라고 하지. (P.251)








# 밑줄_




세계라는 공간은 시간의 파이프가 물샐틈없이 친친 감긴 기계장치로 둘러싸여 있고,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그 파이프로 시간이 공급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어느 찰나에 그 시간의 파이프가 아주 잠깐 이탈했었고, 그 짧은 순간 히말라야의 크레바스 같은 끝없이 길고 좁은 틈 같은 게 생겨났으며, 거기로 소중한 무언가가 빨려 들어가서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면, 선로를 이탈한 시간은 문득 휘어졌다가 다음 순간 곧바로 다시 궤도로 들어섰지만, 분명 그 전과 같은 시간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P.12)



가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다. 시간이 부분적으로 정지하는 느낌 같은 것. 하나의 장면이 일시에 정지하는 게 아니라, 한 장소에 있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시간 속에 정지되어 있는듯한 기분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았던 동물의 박제처럼 아무 관련 없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들이 돼버린다. (P.300)



하나의 공간에 함께 있는 순간에도 어쩌면 우리에게는 각자의 시간이 따로 있어 서로 다른 파이프를 따라 엇갈려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서로를 향해 달려왔지만, 우리가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란 이제부터 멀어져야 하는 시간이 시작된다는 뜻 아닐까. 불현듯 몸이 노곤해진다. 나에게는 이따금 이런 순간이 있지. 기쁨,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 다음의 슬픔, 그 끝의 무기력함. (P.301)



-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이든 미워하지 않은 것 같아.

- 그래?

- 결석했을 때, 너 한 번도 연락 안 했잖아. 나 혼자 아주 많은 생각을 해봤거든. 근데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어. 이유 같은 건 모르겠어. 그냥 나는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건 믿는 거잖아.

- 강연우, 너는.

  뭐랄까,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 게 없는 것 같아. 그렇지?

- 글쎄.

  대신 난 어른이 돼야 해.

-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

- 그건……

-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네 말대로 시간이 멈춘 장소 같은 게 있다면 좋겠어. 그런 데라면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아.

- 날짜변경선을 지키는 건 어떨까. 국경을 지키는 수비대같이. 거기에서 시간을 지키는 거야.

- 허공에 뜬 사무실에서 말이지? 우주 정거장 같은 거네?

  가보고 싶어. 세상 끝에 있는 우주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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