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는 봄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산책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지금은 봄. 2012년의 봄. 그래, 봄이다. 봄인데, 아직 겨울이다. 문장의 간극 사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봄인데 아직 겨울이라니. 이게 무슨 지랄같은 문장인가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 2012년의 날씨가 그렇다. 겨울은 분명 지나갔어야 하는 날씨임에도 봄이 오지를 못하고 자꾸만 주춤거리고 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봄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어이가 없지만, 착각 한 번만 해야겠다. 날씨,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봄을 주지 않은 거니? 라고. 그리고 착각 하나 더. 미안하게도 난 「다시 오는 봄」을 「오지 않는 봄」으로 착각하고 읽었다. 그래서 그에게 이 책을 이야기 할 때에도 오지 않는 봄을 읽으면서 - 오지 않는 봄에서 - ... 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책을 덮는 순간, 미쳤다, 생각했다. 오지 않는 봄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봄이 오지 않았으면, 내가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 하아, 참 질긴 책 읽기,였다. 책을 읽으며 이만큼의 분노에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조차도 놀라웠다. 어쩌면 그동안 읽어왔던 그 어떤 책보다, 나를 혼란의 회오리 속으로 집어넣은 게 이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난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도중 그만 두지 않고 끝까지 써내려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위안부. 〔comfort women〕내가 이 단어를 정확하게 인지했던 때는 언제일까.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때는 10대,였을거다. 그때의 수많은 나,는 어디서 무얼 했을까. 작품은 그 수 많은 나, 중 열일곱 살의 순화를 이야기한다. ㅡ “돈 모을 수 있는 일이 있는데 해보지 않을래? 집에 송금도 할 수 있고, 예쁜 옷도 살 수 있고, 밥도 실컷 먹으며 저금도 할 수 있지. 이렇게 좋은 일은 없을 거야.” 라는 교묘한 꼬득임에 꼬여 일본인을 따라나서지만, 도착한 곳은 난징. 이곳은 어디고, 왜 내 이름이 ‘김순화’가 아니라 ‘우타마루’이며, 나를 덮치려고 소변줄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고 있는 이 군인들은 도대체 다 뭔가. 계속해서 몰려드는 병사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순화를 덮쳤다. 병사들은 마치 서서 소변이라도 보는 듯했다. 쉰여섯 명의 병사가 나가자 드디어 끝이 났다. (…) “나는 인간이 걸까……? 아니면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자살을 하려고 하지만, 옆 방 원청심의 자살소식이 들려왔다. 순화는 그 죽음을 진심으로 부러워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잘 들어!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다. 너희는 천황폐하께 바쳐진 몸이다! 너희 마음대로 죽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마음대로 죽은 사람은 그 시체를 개나 돼지의 먹이로 줄 것이다!” 그들은 살 수도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들어오는 병사들을 거절했지만, 이를 안 장정생이 ‘징벌방’이라고 불리는 아궁이처럼 뜨거운 다락방에 넣고 나흘 동안을 감금했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본말을 배웠고, 통조림 하나를 얻기 위해 교태를 부렸으며, 때때로 병사에게 농을 먼저 건네기도 했다. 또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삶.

 

 

 

 

 

모든 것은 끝나지 않는 시작이다. 끝난 순간부터 다시 시작한다. 허무한 날들이 지나간다. 두 달쯤 지나자, 몸상태가 안 좋아지고 하루에 몇 번이나 토할 것 같았으며, 몸이 나른해서 뭐든 귀찮고, 빈혈로 어지러워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꼬박꼬박하던 달거리가 멈췄다. 임신. 그것을 순화는 자각하지 못한 채 넉 달이 지냈다. 그런 그녀에게 장정생은 “임신했다더군. 임신하면 다른 병사의 아이는 임신하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열심히 일해.”라고 말하며 냉담한 시선을 던진다. 병사들은 임산부와 성교를 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며 순화의 방을 자주 드나들었고, 그녀는 그때마다 아기가 질식하는 건 아닌가 걱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교 도중 갑작스러운 진통이 시작되었다. 난산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죽었든, 살았든) 세상에 나왔고, 순화는 “제 아기예요. 제가 낳은 아기예요. 제 아기를 안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며 애원하지만 그마저도 박탈당한다. 그리고 장정생은 말했다. “나흘 뒤 실밥을 풀 거야. 너는 젊으니까 나흘만 지나면, 실밥 풀어도 괜찮아.” 나흘 뒤 실밥을 푼다는 것은 그 다음 날부터 손님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물로 순화는 거부할 수 없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식사당번이 주먹밥과 단무지를 담은 쟁반을 복미 머리맡에 뒀다. 복미는 병사에게 몸을 대주며 주먹밥을 먹었다. 비참하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웠다. (…) 꼬리뼈 주위와 허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거기서 피와 고름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게다가 썩고 짓무른 구멍에선 구더기들이 들끓었다. 몰려 있던 구더기는 복미의 내장까지 잠식하고 있었다. (…) “다른 위안부들도 같은 증상이다. 할 수 없지. 바로 처분해라.” (…) “도와주세요. 난 아직 살아있어요.” - 정말, 가장 많이 울었던 대목이다. 이 대목을 출근하기 전에 1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서 읽었었는데, 버스에서 눈물이 계속 나서 혼났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를 몰랐고, 그것은 내 마음을 검은 그림자가 삼킨 것처럼 종일을 따라다녔다. 작품은,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를 따라가면 글은 영상이 되어 머릿 속을 지배했다. 중간중간, 작품을 더이상 읽고 싶지 않았음을 느낄 때에는 책을 들고 방 안을 서성거리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힘겹게 읽어내렸다. 답은 하나였다. 결국은, 모든 고통이 수반된 지옥같은 시간들을 인내하고 (이걸 인내라고 표현해도 괜찮을지 잘 모르겠다.) 고향에 돌아가는 순화들의 웃음을 보고 싶어서,라는 것. 그 뿐이었는데.

 

 

 

 

 

“작가 양석일이 상정한 이 책의 독자는 일본인이다. 즉 이 소설은 ‘위안부를 소재로 해서 일본어로 쓰인 최초의 소설’이다.” 꼬박 팔년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순화들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순화들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작품을 접하고나서야 스물다섯이나 먹고 그때의 역사를 헤집는 있는 내가 있었다. 멍청하게, 이제서야. 매주 수요일,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았다.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나, 싶다. 사실 나, 부끄럽게도 세상의 순화들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송두리째 들어내고 싶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 일본인들 못지 않게 잔혹한 일을 한거다. 지금은 사월이고, 봄이 활개를 쳐도 좋은 달이다. 하지만 아직 추운 바람이 완전히 가시질 못했다. 이 책이 일본인들에게도 많이 접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순화들에게도 따뜻한 봄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것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봄,이 찾아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까닭이다. 책을 다 덮는 그 순간까지도 눈물로 얼룩진 눈 끝에 또 다른 눈물이 아롱지는 것을 닦아내며 생각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올해에 가장 잘한 일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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