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밭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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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환영 뒤에 남은 그리움을 품고 이렇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앉아 있는 것. ( 그는 언제 오는가, p284 )

 

 

메마른 햇살에 물기를 머금은 자신의 눈을 비추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이 책에 대한 서평의 서문을 열게 된 까닭은 이 책을 읽을 당시에 감정이 극도로 상승곡선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야겠다. 답답한 마음을 움켜잡았을 때 내 손 안에 아무 것도 없음이 확인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눈을 시리게 만들어버린다. 그 때에 올해 칠월에 만났다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시 안녕,했었던 신경숙을 다시금 만났다. 내가 시월에 한일 중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신경숙의 「딸기밭」이라는 이 책을 만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책은 선물받고 겨우 일년, 이 책은 내가 중등교 때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오빠에게서 받아온 책이었으니 10년까지는 되진 않았다하더라도 거진 8,9년은 되었을 것인데, (출판일은 2007.01.15로 되어있으나 초판발행일은 2000.02.28이다.) 어쨌든 그 둘이 나란히 함께 고스란히 뒤집혀있던 책 중 한 권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자질구레한 변명은 책의 표지를 포장지로 감싸고 싶었을 정도로 볼품없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래서 읽고 싶은 욕심조차 생기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실은 첫 단편 혹은 중편을 4,5번은 읽었다고, 그 느낌이 괜찮았지만 그 후의 것은 읽을 용기가 차마 생기지 않았다고. 그런데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올해에 읽고서 깊은 감명에 딸기밭을 읽어야겠다,라고 다짐한 이레에 처음 들었다.

 

 

 

일전에 난 김영하 작가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라는 책을 많은 지인들의 추천으로 읽고 나서, 후에 오는 이유 모를 허무함을 감출 수 없어서 괴리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단편 중 별 다섯개를 주고도 아깝지 않았던 김경욱 작가의 「위험한 독서」라는 책도 신경숙, 그와 감히 대적조차 할 수 없겠노라고, 그만큼 내가 읽어본 단편 중 감히 최고라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딸기밭」,「그가 모르는 장소」,「작별 인사」,「어떤 여자」,「그는 언제 오는가」라는 총 6개의 중,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 유의 죽음, 아내와의 이혼, M의 죽음, 순돌이의 실종, 동생의 죽음'이라는 것을 연상케하기에 충분한 것은 상실,이라는 단어 외에 어떤 단어를 결부시킬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매우 주관적인 나의 시선에서)「딸기밭」은 「외딴 방」의, 「작별 인사」는 「엄마를 부탁해」의 표본인 것처럼 무척이나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저자는 슬픔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체를 아름다움이라는 또 다른 형상으로 승화하여 우리에게 내놓고 있다.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 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 작별인사, p148 ) 사랑이라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내면에 숨어있는 한창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국은 무슨 일이냐 묻는 엄마의 품에 파묻혀 울기, 내 이런 나약한 존재임을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어쩌자고, 그렇게까지 될 때까지 방치해두었느냐,며 타박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친구의 손길에 기대어 흐느끼기. 그러면서 저자의 저 문장에는 나도 좀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안된다며, 당신은 그게 되느냐며 따져묻고 싶기도 수차례. 결국 공감할 수 없다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만, 귓가에 딱지처럼 내려앉아 바둥거리고 있는 모양새로 나동그라져 있다.

 

 

 

처음 「외딴방」을 접했을 땐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꺽꺽,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단편 중 「딸기밭」을 읽을 땐 그러지 않았던 것이 「그가 모르는 장소」, 「작별인사」,「그는 언제 오는가」를 읽으며 뭉클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음에 울음을 토해냈었더랬다. 참 오랜만이지 싶지,했다. 신경숙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닌 중단편이기에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는 없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분명 읽어내리기 힘들 정도로 난해한 점도 없잖아 있고, 바로 그 점때문에 중간에 포기할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오롯이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기에 가타부타 설명할 수 있는 입장 또한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신경숙, 그의 책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임엔 분명하다. 오랜만에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기고(奇觚)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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