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과 일각수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권민정.허진 옮김 / 강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 중 <여인과 일각수>는 나에게 그녀의 두번째 책이었다. 같은 작가의 책을 몇달이라는 시간을 두지 않고 바로 읽어버린 이유는 아마 <진주 귀고리 소녀>의 감동을 잊지 못해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손에 집어들고 싶은 마음이 컸기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여인과 일각수>라는 이 작품의 매력도 <진주 귀고리 소녀>와 같이 미술작품 자체가 그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만큼의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전작인 <진주 귀고리 소녀>는 관찰자 시점과 그리트로 시작되는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이어가는 반면에 <여인과 일각수>는 시점이 등장인물에 따라 변화하는 속성을 지녔다. 그래서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시점에 따라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다.  관찰자의 시점 혹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주인공을 제외하고 그 주위에 둘러싸여있는 등장인물들은 소위 들러리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게 사실인데, 시점이 시각각 달라지니 주인공의 분위기나 성향 등을 더 집중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그 또한 매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가지의 시각으로 본다는 것. 그것만큼 매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전작인 <진주 귀고리 소녀>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중세 유럽이라는 비슷한 시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감동의 차이가 확연히 달랐다. 비록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작은 책을 덮고도 공허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동안 그 공허함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느꼈는데, 이번 작품은 감동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덮어버렸던 것 같다. 아마 결말이 너무 딱딱 부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일까? 혹은 저자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니콜라를 천하의 바람둥이로 만들어놓고도 너무 감싸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작품에 들어가서 보자면 니콜라가 그린 태피스트리 6점 속에는 모두 일각수(일명 유니콘)가 그려져있고, 그 일각수는 니콜라를 대변하는 매개체로 나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일각수는 순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뿔이 더럽혀진 것을 깨끗하게 해주는 일명 정화기능으로 나오는데, 왜 그 이미지가 니콜라의 이미지로 굳혀지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아마 이 태피스트리를 보게 된다면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머릿 속에서 창조된 이들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특히 <시각>부분에선 그게 더 도드라져서 자연스레 알리에노르를 떠올리기가 힘들진 않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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