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전에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에 대해 쓴 책이었는데, 그래서 사실 츠지 히토나리의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도 왠지 그런 소재의 작품일 것만 같았다. 그 혹은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그 기억이 희미해지고 옅어지면서도 둘의 사랑을 놓지 않는.. 아마 그런 줄거리를 예상했는지도 모를일이다.

 

 

츠지 히토나리는 항상 말랑말랑한 사랑을 작품의 주제로 가지고 놀았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이 책을 덮고 느낀 점은 성장소설이라는 것인데, 성장소설치고는 너무 무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는 (매우) 어두침침하다.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는 그래서 그런지 처음 3장을 채 읽기도 전에 덮으라면 덮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그 속에 빨려들어가고, 도오루가 생각하는 그 회색의 정체가 무엇인지, 함께 찾아내고 싶었다. 모두가 회색이 되어가고 있어. 자꾸자꾸 회색이 되어가. 그러는 게 편하거든. 무기력하고 무감동하고 무사상에 무능력에 무자비하게 되는 것으로 직접적인 아픔이나 공포, 슬픔이나 미래로부터 도망칠 수 있지. 인간이 이 세계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남겨진 길이라고는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회색이 되는 것뿐이야. 그저 멍해진 채 현실에서 도피하여 망상이나 허구 속에서 사는 거야.(p201) 이 회색의 해답은 읽는 독자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다.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와닿는 건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나는 사람들의 거짓,  위선, 가식, 이기적, 메마른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체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왠지 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며칠 전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말하는 회색의 의미와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서 말하는 회색의 의미가 충돌해서 내 머릿 속은 회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한가지 사물 혹은 추상적인 어떤 것에 대해 하나의 의미만 있다고 가정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loose해질 것인가. 시선을 피하지 말고 세계를 똑똑히 응시해. 회색에 지지 말고.(p251)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서 우리가 회색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랑. 믿음.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도오루는 성정체성을 앓고 있는 시라토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마 그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랑을 하며 도오루의 변화하는 행동을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기까지 하다. 문득 어느 순간, 히카루가 예전에 말했던 대로 시라토가 타인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지 두려웠다. 도오루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수반된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깨달았다.(p312)

 

 

요즘엔 세계가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는 것에 비례해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산다. 아이들은 GPS가 장착된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오직 그것만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있었다.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감동을 찾아 자신만의 세계로 잠겨들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책상 밑에서 더듬 더듬 휴대전화를 조작하며 가상의 외계를 향해 자신을 발산하는 것 밖에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얻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p36) 정보화 시대로 발전해감으로써 세계는 더욱 성장하고 탄탄해짐을 느끼긴 하지만, 그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정보화 시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인터넷이라는 가상에서 내 존재가 하나 더 생겨나고, 그것에 대한 책임감은 당연히 하락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나는 실존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그런 상황을 감지하고 츠지 히토나리는 그래서 도오루에게 히카루라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또 다른 자신이라는 친구를 선물해줌으로써 그 시기를 이겨나가기가 조금 수월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이중인격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의 갈림길이고 어떤 선택을 할 때, 적어도 두 가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마음에서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도오루는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분신인 히카루와 충돌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이중인격인 것일까? 뭐 사람마다 생각하는 차이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인생이란 모두가 말하듯이 멋진 것일까, 아니면 나쁜 꿈일까.(p2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