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
정관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토론은 싸움이 아니다. 전쟁도 아니다. 서로가 얻고 배워 가는 과정이다.

배우는 토론을 해야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성립한다.(p232) 

 

 

 

 

 

'토론'하면 100분 토론을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토론문화에 대해 올바르게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처음 100분 토론을 시청했을 때, 마냥 신기해하며 '아 저런게 토론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주장을 말하기 앞서 원인들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대책론을 펼쳤는데, 그 의견들이 나와 반대될 지라도 멋져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 대립되는 주장이 들어오면 그 주장들을 경청하기보다는 무조건 반박하거나 회피하거나 심지어 그 속에서 말꼬리를 붙잡는 식의 대화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보이는 그들을 보며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에는 매우 배타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토론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말발(듣는 이로 하여금 그 말을 따르게 할 수 있는 말의 힘)이 세어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상 우리가 토론이라는 점을 배우고 습득할 수 있는 곳은 대중매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국민이 보고, 그것이 토론이라는 문화로 우리에게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토론에 대한 정립을 내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저자는 친절하게도 우리는 알 수 없는 방송토론의 숨겨진 진상을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고발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카메라를 보고 다수의 국민을 자기의 편에 세우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show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는 토론에 대한 프로그램을 봐도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개인은 사상, 이념, 가치관, 정치의식이 각기 다르기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 갈등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쪽으로 유리하게 당기기 위해 상대방의 주장은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않고 심지어 상대방이 하고 있는 말을 끊어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바쁘다. 저자는 그런 우리에게 내가 남을 설득하고 싶다면 내가 먼저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설득될 수도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비로소 남을 설득할 수 있다.(p234) 라고 충고하고 있다. 토론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자신의 문제점을 고찰하고 일리가 있는 말은 수긍하며 서로 합치점을 찾아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다는 것이 주 목적인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 내기에 바쁘기 때문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는 커녕 그것이 싸움으로 변질된다.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싶고 그렇게 목소리가 크다면 웅변에라도 나가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할말이 없다. 나 또한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 이견을 좁히기보다는 감정을 우선시해 결국엔 본질을 흐리고 상대를 헐뜯고 비난하는 인신공격이 되기 십상인 발언들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한 대책으로 저자는 몇가지의 대책 방법을 내세웠고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I-Message(나-전달법)였다. 책에서 나온 예를 들면 "당신 때문에 통화를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잖아요. 당신 왜 그러셨어요?" 와 "제가 고객과 통화하는 중에 당신이 방해해서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객기 요구하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의 차이인 것이다. 둘 다 같은 말이지만, I-Message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상대방의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표현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때문에 불쾌함을 받았다면 I-Message보다는 You-Message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를 악화시킨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한 문학동아리를 들었었는데, 그 동아리는 책을 읽고 그 책을 읽고 난 후 자신들이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그 후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놓고 찬반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 당시 토론의 주제가 되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사형, 낙태, 안락사, 원정출산 등등이 있었는데, 토론이라는 그 자체보다는 우리끼리 하는 간담회식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며 '맞아맞아.'하며 맞장구 친 적도 있는데, 지금은 내 입장만 내세우기 바빠서 귀 막고 입만 살아있는 귀머거리가 된 기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불통을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소통이라는 것을 감정으로만 치부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저자가 불통에 대해 예를 든 것이 방송토론과 정치적 갈등이었다. 하지만 그 예들이 정치적으로만 국한되어있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저자의 말대로 단 하나의 진실만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토론보다 무의미한 것은 없을 것인데, 내 생각엔 정치는 그 뒤에 숨겨진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을거란 생각에 앞뒤가 안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너무 자극적인 발언들, 지나치게 극단론을 펼치는 인사들은 이제 무시해야 한다. 비판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p198)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올바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이 책이 만들어진 목적일텐데 저자는 무시하고 비판조차도 하지말아야한다고 하고있다. 대한민국의 불통을 문제로 삼긴 했지만, 불통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그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 전쟁 등을 범본으로 예를 들어주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도 남겨본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몇번씩이나 강조하며 불통을 심각성을 얘기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불통 속에서 소통이라는 한줄기 빛을 찾아낸 지금이고, 그 빛을 우리 모두 노력하여 잡아 끄는 일밖에 남지 않음을 나는 느꼈다.

 

 

 

이제 연극은 끝났으니 출연진 모두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터주길 바래본다. 관객은 구지 초대해야 오는 관객도 있겠지만, 자신의 능력을 보고 찾아가는 관객도 있다는 걸 더불어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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