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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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과 꼭 닮았다. 평소 햇볕이 아까울 때가 있다. 대부분 식물을 내놓으면 쑥쑥 클 텐데, 이불 빨래가 잘 마를 텐데, 류의 것들이다. 요즘에 식물등도 있고 건조기도 있지만 햇볕을 따라올 수는 없다. 자연광에 노출된 것일수록 더 생기있고 파릇파릇하며 보송보송하다.

나는 26년간 단독 주택에서만 살았다. 단독주택 중에서도 빛이 잘 들지 않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쉽지는 않았다. 바로 마당이 있었고 옥상이 있었으니까. 엄마는 그곳에서 빨래를 널고 식물을 내놓고 고추를 말렸다. 그래서 나는 남들도 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고 (어린 나는 아파트에 사는 것을 동경했고 한편으로는 로망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지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부분이 얼마나 아쉬울까 생각하곤 했다. 결혼 후 아파트에 살면서 이제까지 누리지 못한 혹은 주택의 불편함들을 대체할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마당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내가 이제까지 살던 집들은 주택과는 달리 햇빛이 잘 들어온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면서 식물을 하나둘 들이기 시작했다. 식물을 들일 때에 촌스러운 다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나는 잘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운 좋게도 몇몇의 식물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어쩌면 식물들이 나한테 맞춰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50. 재배하는 식물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이 전문 농업인과 같을 순 없다. 농부가 내 베란다를 본다면 소꿉장난처럼 보일 것이다. 재미로 키우고, 실험하는 셈 치고 먹는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접시에 담았을 때 그럴듯한지 아닌지에 더 많이 신경 쓴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문득, 재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 역시 잘 키워서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애초에 하질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사실이 맞겠다. 나는 상추가, 적겨자가, 쑥갓이, 깻잎이 그렇게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으니까. 자른 생수병에, 스티로폼에, 씨를 뿌리고 물을 흠뻑 주고 거기에서 싹이 올라왔을 때의 희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내가 싹을 틔웠어. 하지만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싹이 트는 순간부터는 책임이 뒤따랐으니까. 그것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잘 키워보고 싶다는, 기분 좋은 책임감.

135. 한번 시작된 삶은 되돌릴 수 없다.

136. 일단 싹이 트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지켜볼 뿐. 건드리면 죽어버리고, 필요 이상 물을 주면 썩는다. 손전등 빛을 비추며 어울리지도 않는 다정한 목소리로, ‘잘 자라야 해’하고 속삭이거나 ‘후우’하고 숨을 불어줄 뿐이다.

싹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방방 떠있다가 어느 순간 작물이 머뭇거린다 싶으면 왜 그러지? 물이 부족한가? 하고 되묻게 된다. 당시에는 그것을 보며 내가 크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막연한 책임감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그때 기다림을 배웠다. 평소 같으면 거침없이 버렸을 텐데, 싹이 올라오지 않는 빈 스티로폼을 부여잡으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외쳤으니까. 이제 나의 집에는 재배를 하지 않는다. 벌레가 많아지는 여름이니까. 늦가을에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며 올해의 재배는 안녕이다.



120. 가드닝은 잔혹함이 없으면 하기 힘든 작업이다. 식물을 키우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이 솎음질이다. 같은 종류의 식물 중에서 하나만 골라 돌보고, 나머지는 버린다. 나로 인해 생명이 시작되게 만들고서는, 삶을 시작하면 뽑아낸다. 매우 불합리하고 잔인한 일이다. 나는 아직도 이를 정당화할 논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걱정시키던 해피트리가 이사를 와서는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은 매우 풍성해졌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아서 내내 솎음질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닦아주어도 깍지벌레는 계속 생겨나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서 바닥이 끈적거리는 현상까지 생겼다. 하지만 솎음질 하기를 미루었는데, 내가 가지를 쳐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직 더 있어도 될 것 같은 친구들을 내 손으로 꺾어버리는 일은 그야말로 잔인함을 겸비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에 자주 가던 꽃집의 사장님은 솎아주어야만 더 건강한 잎이 날 수 있는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매번 심호흡을 크게 하고 솎음질을 해왔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미루고 미루던 솎음질을 했다. 미안해...라며. 풍성하던 잎은 이발한 것처럼 정리가 되었지만 잘려나간 가지와 잎들에 대한 미안함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178. 꽃은 살고 죽는 문제와 관계가 없다. 생필품도 아니다. 사실 꽃에 큰돈을 쓰는 사람을 보면 ‘사치스럽게 산다’는 생각도 든다. 잠이의 품종 개량도 유럽 귀족들이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쏟아부은 결과이니 어떻게 보면 참으로 지독한 얘기다. 하지만 인간은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니다.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 존재야말로 인간이다.

최근에 업무 스트레스가 격해져 꽃을 연달아 두 번을 샀다. 어떤 꽃이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아무 꽃이나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단일 품종의 꽃을 골랐다. 첫 번째는 보라색 아네모네였고, 두 번째는 주황색 오니소갈럼이었다. 꽃들은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한 아름의 위로를 건네주었고 나는 그 위로에 탄복했다. 한때 꽃을 왜 돈 주고 사냐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던 나는 177. 금세 종잇장처럼 시들어버리는 덧없는 아름다움도 꽃의 매력이다.라는 문장에 꼼짝없이 당하고야 만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다시 식물들을 볼 여력이 생겼다. 조금 더 보살펴줘야지,라고 생각하며 식물들과의 교감을 시작한다. 다시, 또,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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