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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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정 자매 12주기 추도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열일곱 살이었던 언니, 여섯 살이었던 나.

둘이 있던 집에 불이 났다. 언니는 나를 물에 적신 이불로 둘둘 감싸서 11층에서 던졌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나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살았다. 하지만 나를 받으면서 아저씨는 오른쪽 다리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일 년 넘게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회복되지 못했고 그렇게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14. 언니는 그래도 생일을 축하받고 떠났다. 그게 엄마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언니가 죽은 지 12년이 지났다. 언니의 생일과 기일은 사흘 간격이었기 때문에 생일만 챙긴다. 꾸준히 언니를 추모하러 오는 교회 사람들과 신아언니와 아저씨로 인해 한층 더 소란스러워진다. 스물아홉 살이 되었어야 하지만 여전히 열일곱 살로 남아있는 언니와 열여덟 살이 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져야 할지, 고마움을 가져야 할지 의문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오늘은 그 생각이 더더욱 진해진다.




103. 내일 만나면 수현에게 조카가 생겼다고 얘기해야지. 아기 사진을 보여 줘야지. 나도 모르게 내일 얘기할 것들의 리스트를 정하고 있었다. 이런 게 처음이라 쑥스러웠다. 그 애의 반응이 기대됐다. 생생한 표정, 기분 나쁘지 않게 핀잔을 주는 그 애의 말투가.


옥상에 올라갔다가 수현을 만났다. 신수현.

그 애는 98. “다 아는 내용이고 뻔한 내용이니까 보는 거야. 치킨이랑 짜장면도 아는 맛이니까 먹는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삶도 다 알고 뻔하니까 살아가는 걸까? 삶을 어떤 자세로,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며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단지, 엄마의 하나 남은 딸이자, 119. 언니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품이다. 이미 끝난 언니의 삶을 연장시키며 보조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러면서도 106. 나는 조금도 내 삶을 양보하지 못했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 순발력이 있는 수현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그 애는 어떻게든 답을 내려줄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수현에게 아저씨를 변호했다. 그게 내 마음이 그렇게 생각해서는 정말 아니었는데 그와는 별개로 내 혀는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수현에게 이런 것들을 말할 수는 없다. 24. 터무니없어. 나는 터무니없다는 말을 혼자서 계속 되뇌다가 터무니없다는 말의 뜻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차라리 아저씨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더라면, 내게 상처가 있었더라면, 내가 살지 않았더라면, 언니가 날 던지지 않았더라면, 아파트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133. 언니가 불길 속에서 견뎠을 공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나는 나를 알 수 없다. 나를 살린 언니와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나는 나를 살린 우리 언니가 싫고, 나는 나를 구해 준 아저씨를 증오한다.




191. “언니, 나는 율이가 좋아. 왜냐하면 내 지인 중에 우리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율이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안심하고 윤이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이건, 내가 지금까지 마음 놓고 언니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뜻도 되는 거야. 나는 맨날 불안했어. 언니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당분간 우리 보지 말자. 내가 자신감을 찾으면 언니 만나러 올게.”


197-198. “그때, 재가 너무 무거웠죠.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리가 으스러진 거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무거워서, 아저씨를 다치게 해서, 불행하게 해서.”

“너.....”

“그런데 아저씨가 지금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신아언니에게, 그리고 아저씨에게 고백했다. 그 고백이 닿을 거라는 생각도,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그것을 계기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고 그저 내 안에 있던 말들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198.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보는 내가 아니라, 단지 나로 살고 싶어졌다. 223.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도는, 225. 어딘가의 바깥에서 드디어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수현의 덕분이었다. 나는 수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았지만, 수현이 무심한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내게는 위안이 되었고,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218. 우리는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내가 될 것이었다.





- 오랜만에 성장소설을 읽었다. 이런 방식의 서평을 쓰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소설을 요약하다 보니, 내가 유원이 되었다. 유원을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정말 나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내 얘기를 하기가 싫어졌다. 타자는 이야기를 하면 그 힘듦과 고통, 상처가 조금은 나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명백하게 그들은 그들이었고, 나는 나였다. 가끔 나에 대해 말을 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는 공간에 내가 갇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이렇게 먹어도 되나, 이렇게 웃어도 되나,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수많은 이렇게...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그래서, 굳이 나에 대해 말해도 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입을 다문다. 그 프레임에서 당당해진 유원이 멋있다.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멋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에서 나를 본다는 것은, 내 마음을 투명하게 비춰본다는 것은, 나를 다독이는 것은, 그게 얼마간의 기간이라 하더라도 희망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또 하나의 용기가 마음에 생긴다는 것은, 순간순간, 시시때때로 매우 근사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덧_ 몇 해 전, 읽다가 시간이 다 되어 반납할 수밖에 없었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아마 내용은 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김숨 작가의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기도 했다. 읽어봐야지라고 말하기에는,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책이 너무 많으니 우선 생각만 해본다,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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