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 Art & Classic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설찌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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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빨간 머리 앤, 귀여운 소녀. 빨간 머리 앤, 우리의 친구~

노래는 참 많이 불렀는데, 정작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책으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 없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읽었던 <빨간 머리 앤 : 자작나무 숲을 지나 - 글 이민숙 x 그림 정림>은 한 에피소드만 그렸던 책이었고 어느 부분인지 알지도 못한 채 읽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아 이 부분이었구나!라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두 권의 책에 나와있는 각기 다른 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었다.

<빨간 머리 앤>을 읽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앤에 대해 호평을 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내 기대도 점점 커져갔다. 앤을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 하며 기다렸다는 것은, 책을 두 손에 고이 쥐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 그것에 대한 방증이다.

 

 

 

남매인 매슈와 마릴라는 매슈의 일을 도와줄 남자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스펜서 부인의 실수로 브라이트리버역에서 매슈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아이, 앤이다. 매슈는 아이를 역에 두고 갈 수는 없어 우선 집에 데려가기로 했고, 집에 가는 길에 앤이 하는 말을 재미있게 듣고 있는 자신을 알아채고는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매슈는 ‘어린 여자애’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매슈는 마릴라에게 아이를 키울 것을 슬쩍 제안하지만 마릴라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음날이 되어 앤을 데리고 스펜서 부인을 찾아간 마릴라는, 성질이 괴팍하고 인색하기로 유명한 피터 블루웨트의 집으로 앤이 가야 할 운명에 처한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어 앤을 입양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셋은 ‘가족’이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앤의 상상력과 쏟아내는 말들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져서 마릴라의 “입 좀 다물어라.”라는 말이 하고 싶을 때면 책장을 덮어야만 했다.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에 자연스레 상상이 되어 아늑한 기분이 들다가도, 앤을 말을 하기 시작하면 방방 뜨는 특유의 말투와 열한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과장스러운 표현들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매슈의 초록지붕의 집을 가는 길에 앤이 묘사했던 그 부분, “스펜서 부인은 제 혀가 중간에 대롱대롱 달린 게 틀림없다고 하셨어요.”라는 말을 읽으면 읽을수록 실감하게 되는 것이었다.

 

 

앤에게 가장 놀랐던 것이 마릴라의 자수정 브로치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소풍을 가고 싶어 ‘거짓 자백’을 하는 부분이었다. 소풍을 가고 싶은 마음이 도둑으로 오인을 받은 것보다 더 크다니?...하며, 많이 의아하기도 했고, ‘거짓 자백’을 술술 ‘읊는’ 앤이, 무섭기도 했다.

“아니, 애가 어리잖아. 마릴라, 애를 좀 봐줘야지. 가정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잖아.”라며 앤을 두둔하는 매슈의 말에 “지금 받고 있잖아요.”라고 반박하는 마릴라의 말이 통쾌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가정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초록지붕에 온 이상 받고 있는 것이니까.

자수정 브로치는 마릴라의 숄에 걸려 있었고 앤이 가져간 것이 아니었다. 앤이 말했던 것처럼 베리의 연못 바닥에 빠진 것도 아니고. 모든 오해는 풀렸고 마릴라는 앤에게 사과를 했지만, 어쩐지 나는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오히려 앤의 성격을 맞춰주는 다이애나의 차분함이 좋았다. 또 차분했던 다이애나가 앤의 영향을 받아 약간의 덜렁이가 되는 것이 더 좋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둘의 우정도 참 부러웠다. 나는 초등학교 때 교환일기를 쓰던 친구가 생각이 나서 잠시 추억 속으로 빠지긴 했지만, 당시 내게 교환일기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할 말이 없어도 늘 무언가를 적어야만 했던 그 교환일기는 아주 뜻깊었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하고,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게 했던 방법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그 친구와는 중학생이 되자마자 너는 너, 나는 나 -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내게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느낌은 확연히 달라서, 초등학생 때의 유치함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가 지금도 곁에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서 둘의 관계가 더욱 부러운가 보다.

 

 

하지만 앤의 고집 중 하나인, 이름을 코델리아라고 불러달라거나 Ann이 아닌 Anne으로 불러달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나는 초등학생 때 이름으로 놀림을 너무 많이 당해서 내 이름을 사랑하지 못하던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생각해두었지만 이름이 나에게는 좋지 않아 짓지 못했다던 ‘소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자주 생각하곤 했다. 점점 자라면서는 이름에 애정도 생기고, 책임도 생겨서 오히려 나한테는 지금 이 이름이 찰떡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역시나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이건 조금 우습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내 이름의 스펠링은 중학생 때 만들어졌다. 이름의 스펠링을 rira, lila, 혹은 r과 l을 혼합하여 쓰는 경우 그 무엇도 아닌 것은 나만의 독립성을 갖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앤이 Ann은 단순해 보이지만 Anne은 세련되어 보인다고 말하는 부분, 그것은 아주 다르고,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앤의 그런 마음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고 싶었다.

 

 

책의 분위기는 앤이 나오면 달뜨고 덤벙거리기 일쑤여서 나의 정서와는 좀 상반되는 부분도 많았고, 가끔 허언증인가 싶을 때도 종종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재미는 설찌 작가의 Anne을 보는 재미가 가미되어 즐겁게 읽었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주근깨 빼빼 마른’이 아닌, 통통한 앤을 그려놓았으니. 게다가 색감은 화사해서 마치 앤의 분위기가 그림의 색감과 꼭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예뻤던 그림은, 단연 다이애나와 함께 있던 그림들과 가을에 앤이 신나서 학교 가는 그림, 그리고 마릴라 아주머니와 앤이 있던 그림들.

 

 

커다란 붉은 작약 옆에 있는 6월의 하얀 백합, 앤이 수선화라고 부르는 그 꽃이 성탄절 이브인 오늘도 만개해있기를.

Anne, merry christmas!

 

 

 

 

 

 

오탈자 282. 이미 무서워 죽겠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 어떻게 해 혹은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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