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Art & Classic 시리즈
진 웹스터 지음, 수빈 그림, 성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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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가장 좋아했던 동화는 <폴리애나>와 <키다리 아저씨>였다. 폴리애나와 주디(제루샤 애벗)는 꽤 닮아있어서 둘 중 누군가를 더 편애하는 일은 없었다. 폴리애나는 폴리애나 대로, 주디는 주디 대로 사랑스러웠다. 타고난 성격이 그러지 못한 나는 언제나 폴리애나와 주디를 닮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세상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불만족스러운 환경에서도 기쁨을 찾는 일이라는 사실을 품고 자라난 어른이 되었다.




<폴리애나>는 유년기에 몇 번이나 읽고 이후에는 읽지 않던 책이라면, <키다리 아저씨>는 청소년기에 읽고 그 이후에도 두어 번 더 읽기도 했었는데 예쁜 일러스트가 입힌 예쁜 책으로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 상상도 못했다. 이제껏 그런 적이 없으니까.

주디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난데없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그렁그렁 해질 것이라고는.

나의 주디가 행복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서, 줄거리를 적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짤막하게 적어보기로 한다.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는 존 그리어 고아원에 후원 재단 임원들이 방문한다.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제루샤 애벗의 글을 읽고 그녀를 대학에 보내 작가로 키울 생각으로 후원을 하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그렇게 후원을 받게 되고 그에 대한 보답은 후원자인 존 스미스 씨에게 편지를 쓰는 것.

제루샤가 본 존 스미스 씨의 특이점은 키가 크고, 부유하고, 여자아이를 싫어하는 것인데 그중 누구도 모욕하지 않을 수 있는 키가 큰 것을 내세워 ‘키다리 아저씨’라고 애칭을 붙인다. 이후로는 계속해서 제루샤의 아니,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쓰는 편지로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다.







61. 아저씨도 저만큼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초반에 자신이 고아원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얼마나 신이 나 있는지에 대해 쓰여있는데, 주디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내가 후원자라도 되는 양 매우 뿌듯해진다. 그러면서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뚝뚝 묻어 나오는지.



물론 자신은 후원을 받는 입장이기에 어떤 것도 바라서는 안 되지만, 가끔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에는 통통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바로 뒤에는 후회가 담긴 편지를 쓰기도 한다. 당연하다. 후원을 해준다고도 하지만, 어떠한 물음에도 답이 없다면 실체가 있는 사람인지 의심을 하게 될 테니까.






94. 살면서 훌륭한 인격이 필요한 때는 커다란 곤경에 부딪혔을 때가 아니에요. 심각한 위기가 닥치면 누구든 용감하게 일어나서 참담한 비극에 맞설 수 있어요. 하지만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사소한 불행을 웃어넘기려는 그때야말로 진짜로 정신력이 필요하죠.

저도 그런 정신력을 기르려고요. 인생이란 최대한 능수능란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야 하는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만약 제가 지더라도 어깨 한 번 으쓱하고 그냥 웃어넘길 거예요. 이기더라도 마찬가지고요.

주디는 어떻게 이런 부분들을 알게 되었나, 경험이 그리 많지도 않을 텐데... 싶으면서도 내가 가진 경험과 그가 가진 경험은 분명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경험이 많거나 적거나 크거나 작거나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경험이 많지도 않은데’라는 말은 내가 오만을 떠는 것과도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주디보다는, 작가인 진 웹스터가 부유함을 넘어 풍요로운 생활을 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싶은 것이었다.






203.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하고, 모든 사람이 골고루 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하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기꺼이 맞을 자세만 갖추면 돼요. 그 비결은 유연한 마음가짐에 있답니다.

내가 청소년기에 주디에게 배웠던 것인데, 참 오래 잊고 있었다.

다가오는 것들을 기꺼이 맞을 자세, 유연한 마음가짐.





233. 정말로 중요한 건 대단한 기쁨이 아니에요. 소소한 기쁨을 한껏 즐기는 것, 그게 중요하죠. 아저씨, 제가 참된 행복의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지나간 일을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누려야 해요. 농사를 짓듯이요. 농사 방식에는 넓은 땅에서 대규모로 경작하는 조방적 농업과 좁은 땅을 일궈 최대한으로 생산하는 집약적 농업이 있어요. 앞으로 저는 집약적 삶을 살 거랍니다. 매 순간을 즐길 거고, 또 나 자신이 그렇게 즐긴다는 걸 의식하면서 살아갈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삶을 살지 않아요. 그저 경주할 뿐이죠. 저 멀리 지평선에 놓인 결승점에 도달하려고 온 힘을 짜내서 달려가기만 해요. 냅다 달리는 데만 열중하니까 숨이 가쁘고 헐떡거려서 주변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모두 놓치고 말아요.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 거죠. 자기가 다 늙고 지쳤다는 사실을요. 또 결승점에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하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도요. 저는 길가에 앉아서 작은 행복을 많이 쌓기로 마음먹었어요.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요.

나는 일상에서 나의 기쁨들을 둘러보는 것들을 좋아했다. 여유롭고 내 삶이 만족할 때에도 나는 내 삶의 기쁨들을 찾아내는 것을 더 열심히 즐겼고, 힘이 들거나 지루해질 때에도 기쁨 찾기 놀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것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누군가는 합리화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던 삶에 대한 감사함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내가 여전히 기뻐하는 일이 있구나 하며 안도하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 되기도 했었다.


올해 여름에 같은 출판사의 책이었던 <오즈의 마법사>를 읽으며 오즈를 만나면 나는 무엇을 달라고 할까, 고민했었다. 결론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라도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Jamais Je Ne t'Oublierai.” (당신을 절대 잊지 않을게요.)

실천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정말 힘이 들 때는 나도 모르게 잊고 있기도 했었는데 비로소 삶이 안정이 되는 시기가 되니 자연스레 일상의 기쁨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게 되겠지만, 나의 본질은 찾을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다.

그런 점에서 어린 시절에 폴리애나와 주디를 만났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나의 네잎크로버. (책의 첫 번째 표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샛연두색이다.)

 

 


 

덧. -)

책에 그려져있는 일러스트도 예뻐서 몇 번이고 보게 된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그림들만 몇 추려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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