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14
다자이 오사무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한 줄도 적을 용기가 없어서 우선 독서노트를 작성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그의 생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수고를 들여가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고 한동안 방황했다. 다른 책을 곧바로 읽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눈동자의 초점도 희미해졌다. 그저 ‘한 남자의 우울한 수기’라고만 생각하게 되기를 바랐는데, 서평을 써야 하는 지금까지도 그러질 못하고 있다. 도대체 내가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무방비 상태에서 소꼬리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맛있게 무언가를 목으로 넘기고 있는데 누가 왈칵 목을 잡아 비트는 느낌이기도 하다.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요...



1. 보기 싫은 주름을 얼굴에 만들고 있는, 이상한 표정의 소년

2. 상당히 교묘한 미소를 띤, 이상하게 잘생긴 남학생 (왠지 모를 악몽과 같은 섬뜩함)

3.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이상한 얼굴의 남자



서평을 쓰기 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을 부러 찾아보았다.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이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11. 너무 부끄럼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로서는 인간의 삶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6.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제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 해도 인간을 제 마음에서 끊어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느다란 끈으로 겨우 간신히 인간과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필사적인, 그야말로 1,000번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육교를 오르내리고 지하철을 타는 행위들에 대해 고상한 놀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병치레를 자주 했던 그는, 공복감과 배고픔이 뭔지 모르고 지냈던 그는,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지만 배가 고픈 체한 적이 있는 그는, 실질적인 괴로움, 그러니까 단지 먹고사는 일만 해결되면 그걸로 끝나는 괴로움이 뭔지 몰랐던 그는, 그는 주변 사람들과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를 몰랐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로 익살을 선택했다.


그는 인간에게 호소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그였으니까.

호소를 하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결국 처세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그럭저럭 세상에 통할 논리를 들이대면 져 버리는 게 고작이니까.




이 부분을 읽으며 참 외로웠겠구나. 왈칵, 방치해두었던 마음이 무방비하게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내려앉은 마음이 좀처럼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묵직하게 내려앉아 명치가 아렸다. 단 몇 시간 만에 읽을 수도 있는 책이었지만 쉬이 읽을 수 없었다.

18.어찌 되었든 사람들을 웃기면 된다. 그러면 이른바 인간들이 말하는 ‘삶이라는 것의 바깥쪽에 있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람이고 텅 빈 채로 실존한다.

학교에서 그는 장난꾸러기, 익살꾼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들에게 익살을 서비스하는 편이 더 편하니까.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철봉 연습을 하며 일부러 엉덩방아를 찧은 그에게 (백치라고 생각했던) 다케이치가 슬며시 다가와 말한다. 일부러 그랬지?” 그때 그가 느꼈을 공포감은 허를 찔린 기분보다 더한 경악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그만의 ‘인간과의 소통’이 단절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지 않았고, 그것을 계기로 다케이치와의 관계를 맺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상처 입기 쉬운 내면을 쉽게 내비쳤다는 부분에서 나는 그가 다케이치와의 우정을 오래 간직하길 바랐다. 하지만 도쿄로 이사를 가면서 그와의 우정이 끝나버린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도쿄로 옮기게 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다케이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 여자가 아닌 우정으로 부를 수 있는 친구는 다케이치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다케이치가 그에게 두 가지 예언을 한다.


아마 너한테는 여자들이 홀딱 반할 거야.

너는 위대한 화가가 될 거야.


요조는, 그 예언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 예언은 짧은 이야기 속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니까.

여기까지 쓰다가, 한 가지 새롭게 생각해본다. 이제까지 요조를 향한 다케이치의 예언이 맞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요조가 그 예언에 따라 맞추어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 예언에 꼭 맞게.




도쿄로 간 요조는 자신보다 여섯 살이 많은 미술학도를 만나게 된다. 호리키 마사오. 요조는 그로부터 술과 담배, 여자와 전당포, 좌익 사상을 배우게 된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분명 아니지만, 요조는 그를 퍽 믿고 따른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신뢰나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던 그가 그를 따른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라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히로시마가 고향인 쓰네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호리키는 쓰네코를 ‘궁상맞은 여자’라고 칭한다. 이런 궁상맞은 여자와는 키스도 할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 덩달아 요조 역시 쓰네코를 궁상맞은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자신의 처지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미약하게나마 쓰네코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전 세 개를 향한 쓰네코의 “어머, 겨우 그것뿐인가요?”라는 말은,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굴욕감을 안기게 되고 마는 것이다. 요조와 쓰네코는 동반자살을 꾀했고, 함께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쓰네코는 죽었고, 요조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는, 기소유예(起訴猶豫).


 



그러면서도 그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넙치네 집에 얹혀있다가 (정확히는 넙치가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가라고 했으면 인생이 또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넙치는 마치 자신의 돈으로 요조의 학비를 대주는 것처럼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쓰여있다.) 다른 여자들에게 빌붙어 살아가게 된다. (처음에 나오기는 하지만, 다케이치가 말한 여자들이 홀딱 반한다는 말은, ‘돌봐준다’라는 말과 상통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이번에는 이혼녀인 시즈코였다.




그런 그에게 호리키는 말한다.

“너도 이쯤에서 여자 등치는 짓은 그만둬.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요조는 ‘세상이라는 건 어느 한 개인이다.’라고 역설했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호리키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판단했다. 누군가에게 빌붙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생이라니, 게다가 그것에 대한 어떤 부끄러운 감정도 느끼지 못하다니. 이건 기생충과 다를 바 없어. 이쯤부터 내가 요조에게 느낀 동정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즈코와 시게코의 대화를 듣고 그는 그들의 행복을 망칠 수 없어 발길을 돌리고 만다. 하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결국 그가 향하는 곳은 교바시 근처에 있는 스탠드바 2층에서 또다시 여자에게 기대어 사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 즈음 술을 끊으라고 말하는, 작은 담배가게의 하얀 얼굴에 덧니가 있는 열일고여덟 살의 아가씨 요시코와 결혼하게 된다.


117. 그로 말미암아 얻은 기쁨은 결코 크지 않았지만, 그다음 찾아온 슬픔은 처참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말이지 상상을 뛰어넘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역시 저에게 ‘세상’은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결코 그런 단판 승부로 결정되는 손쉬운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요시코가 왜소한 장사꾼에게 더럽혀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계속해서 물을뿐이다.

132.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될까요?

132. 과연 천진무구한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요?

134. 무구한 신뢰심은 죄가 될 수 있는가.



그에게 있어 요시코는 신뢰였다. 나는 생각한다. 신뢰, 신뢰는 긍정적인 단어인가, 부정적인 단어인가. 다시 바꿔 생각한다. 신뢰는 희극 명사인가, 비극 명사인가. 책을 읽으면 신뢰는 오로지 비극 명사일 뿐이다. 오로지 그것으로밖에 명명하지 못한다. 그 이후로 요조는 모르핀에 중독이 되고 만다. 그런 그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넙치와 호리키, 그리고 요시코는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게 그는 제 발로 폐결핵 요양원을 간다.




148.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인가요?




...... 그는 이를 무저항이 죄냐고 물었지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신뢰는 죄가 될까요?



호리키의 다정한 미소에 신뢰를 쏟아부었다. 그는 제 발로 갔다. 이는 호리키의 다정한 미소 때문이었다.

그 다정한 미소 하나에 요시코는 완전하게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매장되고 만 것이다. 그의 삶은 신뢰로 가득 찼다가 완전하게 패배했다.


그가 간 곳은 폐결핵 요양원이 아니라 정신 병원이었으니까.




무구한 신뢰심은 죄가 될까요?


149. 이제 저는 더 이상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폐인’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인 모양입니다.



아아, 요조.




151.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라고 생각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엄청나게 늘어서 사람들은 대개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그의 불안했던 생은 그렇게 끝이 난다.

하느님같이 착했던 사람의 생.

불안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생을 위로하기 위해 술을 한 잔 마셔야겠다.

 

 

 

PS.


107. 세상. 어쩌면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게다가 그 자리에서의 투쟁을 그 자리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때 그 자리에서의 단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대의명분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모든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이었고, 개인을 뛰어넘어 다시 개인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문장은 여러 번 나눠서 읽었다. ‘세상’에 대한 저마다의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이토록 모순적인 정의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이 만들어가는 세상,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개인. 개인의, 저마다의 세상. 그들의 세상. 그들의 세계. 그들이 믿는 것들이 현란하게 가득 찬 우주.







PS2.


147. “아냐, 이건 이제 필요 없어.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무엇을 권하는데 그걸 거절한 일이 내 생애에 그때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무엇을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이나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어색한 금이 생길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저는 반미치광이처럼 원하던 모르핀을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거절했습니다.




어쩌면 요조는 현대인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

그로 인해 불행을 느끼는 현대인

거절을 해도 괜찮아.

너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어.

그것이 진정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너를 위해서

네가 생각하는 부당한 것에 대해 거절해도 괜찮아.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ps3.

요조, 혹은 다자이 오사무.

당신의 실격은 무효처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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