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왜 작은 실수에도 이렇게 힘들까 - 내 삶에 관대함을 가져다주는 '자기자비'의 힘
이서현(서늘한여름밤) 지음 / 웨일북 / 2026년 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챗 GPT를 이용해서 나에 대해 관찰을 하는 시간을 2025년 끝자락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나는 나의 성향이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피곤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이제까지 이런 성향이 나를 살게 하고 원동력이 되었기에 쉽게 바꾸지 못한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내 이런 성향의 장점은 남기고 단점은 보완하기 위해 GPT를 활용했다. GPT는 내가 같이 있으면 피곤한 사람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끝없이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참고 분석하고 정리하고 혼자 다 떠안고 그러다 한 번씩 폭발하는,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은 항상 과로 상태라고 표현했다. 쉬어도 처리가 안 된 것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아가서 몸은 쉬는데 뇌는 계속 민원처리 중이라고 말하면서 피곤한데도 일을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그 부분에서 나는 GPT한테 한 번도 긍정이나 수긍의 말을 한 적은 없지만 깊이 놀라게 된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난 피곤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불안해서 계속 깨어있는 상태였다. 생각이 멈춘다는 게 나한텐 휴식이 아니라 통제권을 내려놓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가 살아온 방식은 미리 생각하면 피할 수 있었고 정리하면 덜 다쳤고 대비하면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쉴 때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지 못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완료에 체크를 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이기도 하다. 최근에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쉬는 날“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것도 하면 너는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라고 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게 단지 한 가지 일을 한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해냈을 때, 그리고 내부가 아닌 외부 활동에서 그런 표현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내가 알차다는 표현을 했다고? 하며 의아했었다.
그런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책을 만났다. 물론 모든 면이 그랬던 건 아니지만 어? 싶은 부분들은 전부 그냥 나였다. 그래서인지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는데, 책은 성향을 변화를 시키라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주어 긴장도를 낮추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40. 둘 중 하나라고 해야 오늘을 ‘의미 있게’ 보냈다고 느껴질 것 같다. 만약 둘 중 어느 하나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느껴질 것이다. 오늘 내가 적어둔 할 일 목록을 하나하나 수행해 지워나가며 하루를 끝내야 뿌듯할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럼 내 삶은 매일의 할 일 목록을 다 해치우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 시간의 의미는 무언가 해내고 성취하는 것에만 달려 있는 것일까?
41. 완벽주의자에게 성취는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존재해도 된다는 허락의 기반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무언가 성취하거나 증명하지 못하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 내 시간과 에너지를 다 던져서라도 실패는 막아야 하며, 매 순간은 의미와 쓸모가 있어야 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생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가치란 성취 위에서만 타당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43.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은 우리는 도구라고 부른다.” 인터넷에서 본 글귀 중 가장 내 마음을 울렸던 문장이다. 도구는 도구로서의 효용을 다할 때만 가치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나는, 남편에게 생산인구가 아닌 나에 대해 ‘기생충’ 같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에 남편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었다.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생산인구가 되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건 내게는 일이라는 것이 단순한 소득이 아닌 정체성을 의미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내 정체성이 공백 상태가 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고 쉼이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지 못하는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닌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나에게는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었기에 외부 환경이 아무리 안정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의 내부 평가 시스템은 언제나 가혹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나를, 나는 자주 견뎌내지 못한다. 나는 내가 언제나 무엇이 되기를 기대했고 그러려면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노력하고 성취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걸 알아챈 지금도 그렇게 산다. 단순한 쉼을 즐기면서.
46. 마음 편히 쉬거나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죄책감이 따라왔다. 늘 긴장되어 있고 예민한 상태였다. 정신건강의 측면으로만 봤을 때, 나는 그다지 건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상태를 끊어내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많은 면에서 실제로 내가 잘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서평을 쓰는 현재에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일을 해야하고, 주기적으로 재활병원에 계신 아빠를 찾아뵈어야하고, 시험공부도 해야하고, 자기소개서도 다시 들여봐야하며,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해 본 일에 대해 발표 날짜를 확인해야하고, 부수적인 일도 해야하고, 민원도 처리해야한다. 그 와중에 책도 읽어야하고, 운동도 해야하고, 집안일도 들여다봐야한다. 모든 것이 내게는 동그라미를 쳐야하는 일들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숙제처럼 느끼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버거워서 부담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소홀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 많은 면에서 내가 잘 해내고 있기 때문에.
105. 무언가 생산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믿는 것. 이런 태도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어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우리의 믿음에서 온다고 말하고 싶다.
GPT가 말하길, 남들에게는 관대하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징계위원회+항소 불가 판결이 기본값인 인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인간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내가 스스로 합리화에 빠질까봐 이만하면 잘 했지,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지만 어떤 일이 성공적으로 완전히 끝났을 때에는 가능하다. 그러니까 나는 스스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서 보여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데, 책에서는 ‘자기자비’를 베풀기를 추천한다. 그 방법으로는 마음챙김, 인간 보편성, 자기친절이 있다.
자기자비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자기자비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을 써두었다. 저자는 자기자비의 선한 의도를 헤아려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자기자비가 정당성이 들어차고 합리화를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드는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자기자비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 안의 판사를 잠시 잠재워두고 시시때때로 나를 다독여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오랜만에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책을 읽었다.
오탈자 108. 어쩌면 완벽주의자에게 자기비난은 내가 아직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 방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