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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정신과 의사 - 뇌부자들 김지용의 은밀하고 솔직한 진짜 정신과 이야기
김지용 지음 / 심심 / 2020년 7월
평점 :
"정신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의학이란 학문 안에 이렇게 다른 세계가 있다니, 객관식 세계에서 유일한 주관식 나라를 만난 느낌이었다." (p.33)
흔히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 일컬으면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하곤 하지만, 주변의 누군가가 우울증으로 병원이라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관심은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어쩌다 정신과에 다니는 처지가 되었냐는 상처되는 말과 물론이거니와 이 책에서도 반복하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라면 환자에 대한 위로 보다는 가슴을 후벼파는 훈계의 말을 쏟아내곤 한다.
아주 오래전은 아니지만,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조울증을 치료하다가 괜찮아졌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약을 먹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말은 좀 많았지만 항상 유쾌하고 구김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던 동료였던 탓에 그의 극단적 선택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린아이와 남겨진 가족을 보면서 조금만 버텨보지,,, 하는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문턱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정신과'라는 진료과목은 어쩐지 감춰야 할 내밀하고 은밀한 비밀 같다. 고된 직장 생활 속에서 지쳐갈 때면 직장 동료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우울증 진단이나 받아서 휴직이나 해볼까' 하는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우울증이란 질병을 이렇게 희화화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말이다. 당사자에게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병일 텐데 상담 몇 변만으로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질병으로 치부해 버리는 철없는 행동이었다.
지금은 괜찮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한동안 주변 동료들때문에 우울감이 극에 달했던 적이있다. 그들이 특별히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않았음에도 그들의 사소한 행동에도 위축되고, 그들과 나를 둘러싼 한마디 한마디가 상처가 나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극심한 우울감에 병원문을 두드려 볼까도 생각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나의 경우야 견딜 정도의 우울감이었고, 우울감을 주는 주변환경을 억지로라도 바꿀 수 있었던 탓에 무사히 지나갔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벼랑끝에 내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무튼 나에게 마음의 감기, 우울증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준 '어쩌다 정신과 의사'는 약 6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정신과 의사들의 진짜 정신과 이야기 팟케스트 '뇌부자들'을 운영하는 정신과 전문의 김지용쌤의 은밀하고 솔직한 정신과 이야기다. 유급 두번에 한량같은 의대시절을 지나, 환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100점짜리 완벽한 부모가 되기 위해 무던히 애쓰다 순식간에 0점짜리가 되지 말고, 적당히 노력하는 충분히 좋은 70점짜리 부모가 되기를 택하고, 가족보다 친구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함께 밥한끼도 먹을 수 없는 사이인 환자와 의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내담자가 스스로 단단한 알을 부수고 나와 세상에 맞서기를 응원하는 그의 철학과이 녹아 있다. 자칫 부담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는 정신과에 대한 이론과 사례를 부담없이 접할 수 있게 돕는다.
"친구의 조언을 들은 뒤로 나는 스스로의 기준을 낮추려 노력하기로 했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닌 충분히 좋은 부모임을 잊지 않고 70점짜리 아빠를 목표로 삼게 되었다." (p.217)
"그럼에도 결국에는 사람이 답." (p.183)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정신과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병원이다. 하지만, 뇌부자들이나 김지용쌤처럼 정신건강을 위한 그곳이 사랑방과 같은 곳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그곳도 어렵지 않고 편안한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