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산호 그림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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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방호복에 갇힌 한 남자가 붉은 손아귀에 둘러싸여 있다. 붉은 손들은 의미 없는 손짓을 계속하며 남자를 향하고 있다. 숨통을 조이려는 듯, 피에 젖게 하려는 듯이....

좀비가 문화콘텐츠의 대세라는 듯 근간에 좀비를 주제로 하는 영화가 두 편이나 개봉을 했고, 이어서 출판된 한국형 좀비물이다. 책장을 펴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건 기묘한 모습을 히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좀비들이다. 무서운 영화를 샛눈을 뜨고 보듯이 어휴~를 외쳐가며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그들을 감상한다. 얼마 전 관람했던 반도처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잠식당한 좀비들을 피해 정착지를 버렸던 인간들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아칸소 독감으로 인한 구인류의 멸망과 그로 인해 지구를 떠났던 새로운 인류 N-형식을 비롯한 신인류는 Z.A.(Zombie Apocalypse) 102년 좀비들에게 빼앗겨 푸른빛을 잃고 회색빛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인류가 살 수 있는 물과 산소를 지고고 있는 이곳 지구로 귀환한다. 아칸소 독감이 창궐했던 지구를 탈출한 인류가 살기 위해 만든 스페이스 콜로니나 달의 정착지의 사람들은 오늘도 한 모금의 깨끗한 공기를 찾아 헤맨다. 당연한 듯 인류를 감싸고 있던 물과 공기는 아칸소 독감의 좀비와 함께 인류를 저버렸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좀비들과 살아남기 위해 그들을 죽여야 하는 스페이스 콜로니나의 신인류들. 인간과 좀비는 서로가 살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만 한다. 좀비에게 물어뜯긴 순간 인간성을 잃어버린 채 좀비가 되어 살육의 현장으로 내몰린다. 살기 위해 물어뜯어야 한다.

"어디로? 나도 모르겠다. 여길 나가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좀비들과 미쳐버린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p.193)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 위해 지구로 귀환한 스페이스 콜로니나의 신인류 N-형식은 우연히 구인류가 아칸소 독감에 대항하며 써 내려간 일기를 발견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잠식당해 서서히 사라져 가는 인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살기 위해 함께 있지만, 종국엔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좀비들이 창궐한 사지로 서로를 몰아 간다. 결국엔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민낯을 들어낸다. 하지만, 신인류라 칭하는 그들 역시 살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암울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현실은 구인류가 살았던 세상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를 되찾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해. 하지만 적어도 그 피는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지 않고 대지에 뿌려지겠지. 지구에서 인간으로 죽는거야." (p.297)

구인류의 일기는 유아인, 박신혜 주연 영화 #살아있다를 떠오르게 한다. 좀비에 맞서 인간성을 잃지 않고자 버티지만, 살기위해 아이 엄마의 처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함께 말이다. 과연 우리는 좀비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외면하고 있는 본성은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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