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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케이크 오늘부터 시리즈
카토 리나 지음, 노지원 옮김 / ㈜샬레트래블앤라이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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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선물이 뭐가 있을까?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한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직접 만든 케이크 만한 선물이 있을까 싶다. 특별한 날을 좀 더 특별하게, 색다르게 만들 수 있는 거기다 예쁘기까지한 넘버케이크의 세계로 입문해 보기로 한다. 요리고자인 나조차도 쉽게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내볼 수 있을 만큼 아기자기하고 예쁜 케이크들을 만들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더 없이 만족스럽다.

이 책을 만나기전에는 '넘버케이크'라는 단어 조차도 생소했었는데,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아이템이라고 하니 넘버케이크의 아기자기한 모습이 좀 더 색다르게 다가온다. 케익이라고 하면, 동그란 모양의 생크림 케이크 이거나 색다르다고 해봐야 동물모양의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전부였었는데 나만의 의미를 품은 넘버케이크야 말로 특별한 날을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핫한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숫자와 그 위를 장식하고 있는 나만의 독특한 데코레이션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와 특별한 날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넘버케이크의 시트를 굽는 법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지만, 나 같은 초보들은 시트는 시판되고 있는 카스테라만 사용해도 충분히 멋진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흥미롭다.

넘버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은 시트만들기, 크림올리기, 토핑 데코레이션의 3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친절하게 부록으로 함께있는 숫자 패턴은 초보자들이 어렵지 않게 넘버케이크의 기초가 되는 시트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축소 확대 복사를 이용해 나만의 사이즈로 응용할 수도 있다.

23가지의 넘버케이크 만들기와 마스카르포네, 커스터드, 버터치즈 크림 3가지의 기본 크림 만드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펀지, 사브레, 머랭시트를 만드는 방법을 포함하고 있어 이 책 한권이면 완벽한 넘버케이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요리초보는 눈으로 만족해야 할 수도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것 처럼 시트를 굽기위해 애쓰기보다는 시판 카스테라와 쿠키를 활용한 넘버케이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시트 만드는 방법에서 부터 크림, 데코까지 가볍고 쉽게 설명하고 있는 요리책이라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다. 화려한 데코를 하느라 제대로 만들어보지 못하는 케이크가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숫자패턴을 활용해서 시트를 만들고, 달짝지근한 크림과 알록달록한 과일로 장식한 케이크는 만들기도 쉽고, 특별한 느낌을 내는 데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요리를 하는 것보다는 알록달록 예쁜 요리책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책이다. 분홍분홍하고 사랑스러운 케이크들로 꽉 채워진 책은 꼭 케이크를 만들지 않더라도 책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곧 돌아올 아이의 생일에 엄마손으로 만든 투박하지만 색감좋은 넘버케이크를 생일선물로 만들어 줘야겠다. 코로나 때문에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따뜻한 봄날 나의 눈을 원없이 호강시켜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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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피곤한 과학 지식 2 - 그래도 아는게 백배 낫다! 알아두면 피곤한 과학 지식 2
마리옹 몽테뉴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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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는 게 백배 나은 알아두면 피곤한 과학지식! 1권에 이어 2권 역시 즐겁고 흥미와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면서 살짝 지루한 주말 오후를 책임져준다. 다양한 영화와 접목한 질문들은 영화장면을 상상하면서 그안에 숨겨진 과학지식으로 흥미를 배가 시켜준다. 물론, 1권에 이어 19금스러운 삽화와 문장은 어른이의 음흉함에 즐거움을 더해준다고나 할까, 가볍게 즐거운 책읽기 시간을 선사해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사생아로 콧수염은 있지만 엄연히 여자인 의학, 생물학, 물리학, 동물학, 마학까지 5개 부문에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콧수염박사가 유쾌하게 풀어주는 엽기적인 과학상식은 눈이 번쩍 뜨이거나 신박한 과학상식이라기 하기엔 조금 엽기스러운 사실들이지만 충분히 흥미롭다.

특히나 이번책은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를 시작으로 주라기공원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한자락과 이어진 과학상식들이 전편보다 흥미롭게 독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고래 배 속에서 절대 살아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거나, 여성들이 자기집의 변기보다 훨씬 더 깨끗한 공중화장실에 앉기를 두려워 하는 것을 꼬집은 전편에 이어, 남자들은 위생과는 무관하게 수줍은 방광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엽기스럽게 던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실험에 자신의 몸을 던져 이론을 완성시킨다거나 개 사료의 1/3은 실제 사람들이 먹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진실(?)들을 폭로하면서 알아두면 피곤하지만 엽기스럽게 웃기고, 그래도 아는게 백배 나은 유식한척 하기 좋은 다양한 과학상식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주고 있다.

꼭 필요한 과학상식은 아니지만, 왠지 알고 있으면 잘난척할 수 있을 것 같은 23가지의 과학상식들이 담겨 있는 유쾌한 책이다. 아이와 함께 보면 좋겠지만, 1권에 이어 역시나 19금스러운 그림들이 함께하고 있어 같이 보기는 쪼~끔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쿨하게 함께 보면서 과학이 만만해지는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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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꼰대 - 꼰대가 쓴 '괜찮은 꼰대'에 관한 꼰대적 고찰
원호남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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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비꼬는 듯한 꼰대라는 말이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꼰대라는 말이 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염려, 아니 확신을 갖게 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등장했던 X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진 90년 대생들 밀레니얼들을 이해할 수가 없는 자칭 타칭 꼰대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즈음에 읽게 된 '꼰대 가 쓴 괜찮은 꼰대에 관한 꼰대적 고찰, 나꼰대'는 많은 공감과 함께 위로를 전해주는 책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고, 직장에서는 승진이라는 기분 좋은 변화와 함께 찾아온 위치의 변화가 꼰대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정글 속에 던져진 나를 다독여 주는 듯하다.

부모님께 크게 반항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무던하게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직장에서 주어진 중간관리자라는 위치는 나에게 소외감을 주기 시작했다. 꼰대가 될 때가 되긴 했지만, 꼰대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글은, 꼰대라는 자각을 느끼게 하는 뼈 때리는 글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나도 괜찮은 꼰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그리고 괜찮은 꼰대가 아니면 어떤가 그저 그들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위로로 마무리된다. 첫 장의 엄마, 아내로서의 꼰대의 모습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남편이, 아들이 나에게 이런 중압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을 줄이야...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당신의 자식과 남편들은 학교/회사에서 수많은 꼰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정에서조차 그보다 더한 '상 꼰대를 만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의 꼰대가 싫으면 회사를 그만두거나, 그들의 퇴장을 참고 기다리면 되는데, 당신들은 정년이 없습니다. 당신들은 영원한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p.54)

참 잘했어요 스탬프 찍어주기, 수고했다고 말해주기,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고 이야기해주기... 나와 생각이 다른 그들과 잘 지내기 위한 아주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방법이기도 하다. 참 잘했어요라고 말하기 전에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기 전에 나 때는 어땠었는지 생각이 먼저 든다. 역시 내가 꼰대가 맞나 보다. 쿨한 꼰대가 되고 싶은데 지질한 꼰대가 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팀원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하고 견뎌야 하는 건지 앞이 깜깜해진다. 언제쯤이면 나는 꼰대 상사 증후군에서 벗어나 그들의 예비고사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당신의 팀원들은 당신에게 쉽게 다가오는가? 다가와서 그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말하는 것보다 천 배는 어려운 것이 들어주는 것이다. 아니 들어준 다는 것은 가장 큰 것을 베풀어 준다는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대사 증후군보다 독하다는 '꼰대 상사 증후군'에서 아주 조금 벗어날 수 있다. 편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예비고사에 합격하신 거다." (p.154)

꼰대와 밀레니얼들에게 시원시원하게 던지는 조언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 마음과 같이 통쾌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쿨한 상사가 되지 못하는 꽁한 마음에 생각이 많아지게도 한다. 나도 X세대라는 명찰을 달고 등장했을 때는 선배들에게 지금의 밀레니얼들과 비슷한 골치 덩어리였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 한다는 속담처럼 어느새 올챙이 시절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밀레니얼들 탓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많은 반성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직급만 높은 상사가 아니라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Leader가 되고 싶다.

"리더 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어쩜 원래 어려운 자리가 리더이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조직이나 집단의 영원한 숙제이다. 이러한 Leader가 되지 않으면, 당신은 꼰대라고 불리는 단순히 직급만 높은 상사일 뿐이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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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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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딸을 찾는 절절한 부정과 사회의 비난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틀어진 부정이 평행선을 달린다. 춥고 어두운 긴 겨울 끝에 찾아오는 백야의 시작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 딸 리나를 찾기 위한 렐레의 끝나지 않은 수색은 다시 시작된다. 모두가 리나가 죽었다고 믿고 있지만, 렐레는 리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3년 전 어느 날 렐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리나를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리나가 버스에 오르는 것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난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그날 아침이 렐레가 사랑하는 딸 리나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리라고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렐레는 그의 낡은 볼보와 함께 목격자도 단서도 없이 사라져버린 리나를 찾아, 일명 실버 로드라 불리는 스웨덴 동부 해안에서 노르웨이 국경으로 이어지는 95번 국도를 샅샅이 헤매고 다닌다. 음침하고 비밀스럽기 이를 데 없는 실버 로드의 구석구석을 밤이 돼도 지지 않는 시간을 따라서 말이다. 백야의 끝에서는 그는 리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렐레의 시선을 따라 리나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듯한 긴장감이 탄탄하게 이어진다. 창백하게 지친 모습의 리나가 실버 로드의 어디에선가 나타날 것만 같다.

"렐레는 무엇이 두려운지 알 수 없었다. 남의 사유지를 무단 침입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발견할까봐 혹은 발견하지 못할까 봐서인지. 합법이든 불법이든 가능한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딸을 찾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게 두려운지도 몰랐다." (p.99)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시선과 얽히는 또 하나의 시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 그리고 남자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미혼모 실리에의 딸 메야의 시선이다. 열일곱 메야는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사는 엄마와 함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결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늙은 남자 토른비요른의 집에서 어쩔 수 없는 더부살이를 시작하지만, 메야는 지금의 이 생활에서 벚어나고 싶다. 서로를 걱정하는 가족과 따뜻한 음식이 있으며, 지친 일상을 달래줄 수 있는 평범한 가정의 삶을 갈망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갈망하는 메야 앞에 등장한 서로 다른 모습의 아버지가 있다. 실종된 딸을 찾아 다니며 어쩌면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안타까운 아버지와 실버 로드의 깊숙한 이곳 스바르트리덴의 베일에 쌓여 있는 부정을 가장한 독재자 비르게르가 있다. 그는 아버지라는 이유로 기술문명과 교육을 거부한채 자급자족한 삶을 살아가도록 강요한다. 그의 아이들이 어울려사는 삶속에서 얻어야 하는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도록 말이다.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아버지는 지치고 어린 영혼 메야를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삶속에 있도록 설득하고 있지만, 메야는 혼란스럽기만 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은 생존법이다. 우리 방식을 배우거라, 메야. 그럼 아무도 널 짓밟지 못해" (p.309)

백야의 끝자락에서 실버 로드의 수색을 이어가던 어느날, 또 다른 열일곱 살 소녀가 사라진다. 리나처럼 아무런 흔적도 단서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열일곱살 소녀를 찾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실버 로드를 배회하던 렐레는 엄마를 떠나 스바르트리덴에서 살고 있는 메야 또한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이상하게 여기게 되는데...

실버 로드 곳곳을 누비며 끈적끈적한 느낌과 함께 렐레와 함께 리나를 찾아야 한다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열일곱 살 소녀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모습의 부정과 모정, 그리고 섬세한 범죄심리를 만끽할 수 있는 책읽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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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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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에서 기억이라는 존재의 무게가 얼마나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까. 만약 나에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이 아닌 바로 직전의 단 10분간의 기억만 주어진다면, 10분간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나를 진정한 의미의 나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억이 분리된 세상에서 펼쳐지는 기묘한 이야기들이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세계로 나를 이끈다.

현재의 인류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겪고 있는 디지털치매의 증상과 흡사하다. 아니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기묘한 현실에 대한 오싹한 경고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집 전화번호에서부터 식당 전화번호까지 줄줄이 외고, 간단한 사칙연산은 암산으로 해결하고, 두꺼운 사전에서 단어를 찾던 어린 시절을 지나 지금의 나는 손안의 작은 컴퓨터, 핸드폰과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유키 리노의 엄마 마사키가 기억을 잃고 난후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기억을 잃기 시작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짧은 기억을 저장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후 인류는 장기 기억을 저장시킨 외부 메모리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아마도 인류에게 기억 장애가 생긴 듯합니다. 모든 기억이 10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당신의 기억도 사라집니다. (중략) 당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고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십시오." (p58)

외부 메모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펼쳐진다. 복사의 실수로 같은 기억을 가진 쌍둥이가 등장하기도 하고, 대리시험을 위해 메모리를 빌려주거나 기억을 잃은 아이에게 자신의 기억을 나눠주기도 한다. 무겁지 않은 글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세상을 풍자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음과 추억을 뒤로한 채 메모리를 통해 기억을 쌓기도, 잊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을 "나"로 인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문득 발전해 가는 디지털의 바닷속을 뛰쳐나와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보다는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상상으로 두려워지는 책읽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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