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종된 딸을 찾는 절절한 부정과 사회의 비난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틀어진 부정이 평행선을 달린다. 춥고 어두운 긴 겨울 끝에 찾아오는 백야의 시작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 딸 리나를 찾기 위한 렐레의 끝나지 않은 수색은 다시 시작된다. 모두가 리나가 죽었다고 믿고 있지만, 렐레는 리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3년 전 어느 날 렐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리나를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리나가 버스에 오르는 것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난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그날 아침이 렐레가 사랑하는 딸 리나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리라고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렐레는 그의 낡은 볼보와 함께 목격자도 단서도 없이 사라져버린 리나를 찾아, 일명 실버 로드라 불리는 스웨덴 동부 해안에서 노르웨이 국경으로 이어지는 95번 국도를 샅샅이 헤매고 다닌다. 음침하고 비밀스럽기 이를 데 없는 실버 로드의 구석구석을 밤이 돼도 지지 않는 시간을 따라서 말이다. 백야의 끝에서는 그는 리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렐레의 시선을 따라 리나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듯한 긴장감이 탄탄하게 이어진다. 창백하게 지친 모습의 리나가 실버 로드의 어디에선가 나타날 것만 같다.

"렐레는 무엇이 두려운지 알 수 없었다. 남의 사유지를 무단 침입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발견할까봐 혹은 발견하지 못할까 봐서인지. 합법이든 불법이든 가능한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딸을 찾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게 두려운지도 몰랐다." (p.99)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시선과 얽히는 또 하나의 시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 그리고 남자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미혼모 실리에의 딸 메야의 시선이다. 열일곱 메야는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사는 엄마와 함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결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늙은 남자 토른비요른의 집에서 어쩔 수 없는 더부살이를 시작하지만, 메야는 지금의 이 생활에서 벚어나고 싶다. 서로를 걱정하는 가족과 따뜻한 음식이 있으며, 지친 일상을 달래줄 수 있는 평범한 가정의 삶을 갈망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갈망하는 메야 앞에 등장한 서로 다른 모습의 아버지가 있다. 실종된 딸을 찾아 다니며 어쩌면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안타까운 아버지와 실버 로드의 깊숙한 이곳 스바르트리덴의 베일에 쌓여 있는 부정을 가장한 독재자 비르게르가 있다. 그는 아버지라는 이유로 기술문명과 교육을 거부한채 자급자족한 삶을 살아가도록 강요한다. 그의 아이들이 어울려사는 삶속에서 얻어야 하는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도록 말이다.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아버지는 지치고 어린 영혼 메야를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삶속에 있도록 설득하고 있지만, 메야는 혼란스럽기만 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은 생존법이다. 우리 방식을 배우거라, 메야. 그럼 아무도 널 짓밟지 못해" (p.309)

백야의 끝자락에서 실버 로드의 수색을 이어가던 어느날, 또 다른 열일곱 살 소녀가 사라진다. 리나처럼 아무런 흔적도 단서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열일곱살 소녀를 찾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실버 로드를 배회하던 렐레는 엄마를 떠나 스바르트리덴에서 살고 있는 메야 또한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이상하게 여기게 되는데...

실버 로드 곳곳을 누비며 끈적끈적한 느낌과 함께 렐레와 함께 리나를 찾아야 한다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열일곱 살 소녀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모습의 부정과 모정, 그리고 섬세한 범죄심리를 만끽할 수 있는 책읽기 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