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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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은 잊지 않고 알아야 한다는 거다. 지나간 시간이지만 지금을 사는 사람한테 거울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나라처럼 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생각해도 그렇다.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서 내일이 있다. 어제 잘못을 고치는 오늘이 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다 잊어버리는 건 아니지만 잘못한 것을 잊어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개인이 이런데 나라라고 다를까. 나라도 잘못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그 일이 다시 일어난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일이 있다. 전쟁 때문에 여자가 겪은 일, 왕이 백성을 버리고 달아난 일. 고려에서는 중국에 여자를 공녀로 보내고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로 여자들이 많이 끌려갔다. 청은 돈을 받고 여자들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還鄕女)라고 했다. 이 말은 시간이 흘러서 서방질한 여자란 뜻인 ‘화냥년’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여자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다시 돌아와도 제대로 살기 어려웠다.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다. 일본은 그 일을 인정하지 않았구나. 언제쯤 자신들 나라가 잘못한 일을 깨달을까. 일본에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나라가 늘 해만 입은 건 아니다. 고려는 불교사회여서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소와 돼지를 잡는 사람은 북방 유목민이었다. 백정이라는 말은 본래 농사짓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거 처음 알았다. 이 말도 시간이 흘러서 소와 돼지 잡는 사람만 가리키고 그 사람들을 차별했다. 그때도 인종차별이 있었다. 그러면서 양반은 고기를 즐겨먹다니. 그때 차별이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한테 옮겨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차별이라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참. 나라고 아무 거리낌없이 다른 나라 사람을 대할 자신은 없지만, 다 같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일본은 사진으로 조선사람이 야만스럽고 미개하다는 인상을 만들었다. 그런 사진을 서양과 일본에 퍼뜨렸다. 사진이 있는 그대로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거 알아야겠다. 그것을 찍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인상일 때도 있다는 거. 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는 달랐는데, 그건 더 예전 일이구나. 그런 관계를 죽 이어왔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왜나라 무사로 조선에 쳐들어온 사야가는 그 싸움이 잘못됐다 여기고 조선에 귀화했다. 전쟁이 끝나고 사야가는 김충선이 되었다. 이 이름 한번쯤 들어본 것도 같은데 정말 들어본 건지 잘 모르겠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뿐 아니라 조선을 위해 싸운 사람 많았을 거다. 광해군은 그때 왕세자가 되어서 싸움터를 다니면서 백성을 살펴보았다. 나중에 왕이 되고는 중립 외교를 펼쳐서 조선이 전쟁터가 되는 걸 막았다. 북쪽에서는 정문부가 의병을 이끌고 가토 기요마사 부대와 싸워 이겼다. 그 일을 북관대첩비에 새겼는데 일본이 러시아와 싸울 때 일본으로 가져가서 야스쿠니 신사 한구석에 두었다. 그 뒤 일백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 정확하게는 북한 함경도에 돌아왔다. 사야가 김충선 이야기는 어쩌면 처음 안 건지도. 이번에 제대로 안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보니 그때 조선에 귀화한 일본 사람 많았을 것 같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사람도 많았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나고 일본에서는 조선과 잘 지내려고 했다. 처음에는 조선에서 끌려간 포로를 데리고 오다가 시간이 갈수록 문화교류로 바뀌었다. 통신사는 200년 동안 열두번 일본에 다녀왔다. 그 길 그렇게 쉽지 않았을 텐데. 통신사로 가게 된 사람 가운데는 가기 싫어한 사람도 있었을지도. 그래도 누군가한테는 좋은 기회가 됐다. 김명국 그림은 조선사람보다 일본사람이 더 좋아했다.

 

조선이 왕이 있고 신하가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예전에 국사 시간에 조선에 무엇무엇이 있다는 말 들었는데. 대간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대간 말을 잘 듣는 왕도 있지만, 말을 못하게 한 왕도 있었다. 연산군은 역사가 두렵다고 했으면서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나는 조선에 제대로 말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는가보다. 그럴 수가. 사관은 왕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다 적었다고 한다. 사관 생각도. 사관이 쓴 사초는 왕이 죽은 다음에 실록을 쓰고 물로 씻었다. 조선왕조실록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몰랐다. 그저 왕조 기록이겠거니 했다. 그게 있어서 우리가 지금 조선을 알기도 하는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치, 경제, 법률, 교통, 천문, 음악, 과학에 걸쳐 그때 사람을 담았다. 왕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죽은 왕 실록은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도 못 보다니. 도움이 되는 것은 《국조 보감》으로 정리했다. 왕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왕이 잘못하지 않게 하는 장치가 있어야 했다. 그런 게 있어도 폭군이 된 연산군도 있지만. 광해군은 동생과 인목왕후를 잘 대했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우리가 일본 때문에 근대로 들어서지 않고, 흥선대원군이 잘 생각해서 미국과 수교를 맺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지구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만 생각하지 않고 둘레 나라와 세계를 다 생각해야 한다. 어디든 자기 나라만 잘살려고 하지 않아야 할 텐데. 기록은 있는 그대로 잘 해야 한다. 좋은 기록을 남겨야 할 텐데, 그리 좋은 것만 남지 않을 듯하다. 역사 더 자주 알려고 해야 하는데 가끔만 보는구나. 가끔이라도 보면 기억에 남기도 한다. 얼마전에 달력 생각했는데 세종은 중국에서 받은 달력, 그러니까 시간이 중국과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우리 시간을 알려고 애썼다. 일본과 우리나라 시차 없다고 알았는데 실제는 도쿄와 30분 차이 난다고 한다. 세계화 나쁘지 않지만 우리 것도 마음 썼으면 좋겠다.

 

 

 

*더하는 말

 

첫번째 것을 보고 썼는데 이것보다 먼저 세번째 책을 보았다. 두권을 건너뛰어 세번째 것을 가장 먼저 보다니. 세번째 것에는 다른 책에서 본 것이 좀 나왔다. 조선후기 과거제도나 사람들한테 책을 읽어주고 다니는 전기수 이야기. 조선시대에 아주 많았던 호랑이가 일제강점기 때 다 사라져버린 일. 세번째와 첫번째를 보고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 이야기가 많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세번째에는 고려청자 이야기와 신라 유리병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시대 이야기도 조금 있구나. 교육방송(EBS)에서 하는 <역사채널 ⓔ>는 한번도 본 적 없다. 긴 글이 나오기 전에 조금 큰 글자로 짧은 글이 나오는데 그건 방송에서 하는 것처럼 쓴 거 아닐까 싶다. 거기에는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실었다. 두번째는 아직 못 봤는데 언제 볼 수 있을지. 재미있어서 보고 싶기는 하다.

 

 

 

희선

 

 

 

 

☆―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눈앞에 있는 이미지가 현혹시키는 힘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우리는 사진에서 피사체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눈길, 카메라 뒤에 선 이들 눈길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참된 것을 볼 수 있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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