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싸움

 

  또 하나의 약속

  이상민 글   김태균 각본

  가연  2014년 02월 03일

 

 

 

 

 

 

 

 

 

 

 

 

봄이 슬픈 건지

이 이야기가 슬픈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슬픈 건지

 

이거 봄 타는 거?

 

 

 

요즘은 영화와 함께 책도 나오는 듯하다. 이런 책을 처음 보아서 이렇게 말했다. 원작이 있어서 그것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도 함께 준비하는가보다. 예전에는 시나리오만 모아둔 책이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영화에는 영화만의 것이 있고 소설에는 소설만의 것이 있다. 어쩐지 지금은 영상과 글이 서로 보조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을 나쁘게 볼 수 없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둘 다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나한테는 이런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와 책을 모두 보는 게 아니니까. 예전에는 영화를 가끔 보았지만(그것도 텔레비전 방송으로 해주는) 지금은 거의 안 본다. 그러니 영화와 책이 함께 나오는 것은 나같은 사람한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으로나마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있으니까(드라마도 책으로 나오기도 하는구나).

 

한때는 텔레비전을 보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안 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일뿐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텔레비전을 본다고 해서 그런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텔레비전 방송이 다 나쁜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것을 안 보기 시작하면 괜찮은 것도 챙겨서 보기 어렵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다시보기로 볼 수 있지만. 내가 텔레비전을 보던 때 사회고발 방송도 가끔 보았다. 생각나는 것은 <PD 수첩>뿐이다. 그런 방송이라도 보았다면 이 책에 나온 일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도 몰랐다.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는 석면을 쓰던 때가 있었다(지금도 쓰고 있을지도). 그게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였던가. 이럴 때 역사를 잘 알면 멋지게 말할 텐데. 아무튼 이 석면 때문에 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많았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이 왜 아픈지 잘 몰랐을 것이다. 언제 석면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병(암)에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잘 모르고 병에 걸린 사람이 보상을 받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석면은 아니지만 예전에 한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어떤 회사(공장)에서 일해서 백혈병에 걸렸다는 이야기. 그게 어떤 회사였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일하는 사람을 위해서 싸운 사람이 있다.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공부를 좋아했지만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재대로 다니지 못했다. 먹고 살려고 서울에 올라가서 일을 했는데 일하는 곳 환경이 아주 나빴다.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를 알게 되고 노동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서 노동법을 공부한다. 노동법을 공부한 전태일은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찾으려고 했다.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많이 걸린 병은 결핵이다. 이것 말고도 더 있을 거다. 그것 또한 산업재해다.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 환경이 70년대보다는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돈을 벌러 온 사람은 나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 나온 곳은 우리나라 경제를 좋게 해준다고 여기는 반도체 공장이다.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거다. 조금 넓게 말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뒤에 있는 말을 보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사회고발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윤미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다. 하지만 윤미가 그곳에서 일하고 한해 넉달 만에 건강이 나빠져서 속초 집으로 돌아온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백혈병이었다. 한해가 지나고 회사 사람이 윤미네 집에 와서는 윤미한테 사표를 쓰라고 하고 돈을 건네주면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마라 한다. 속초에서 오랫동안 택시운전을 해온 윤미 아빠 한상구는 사람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지 알았다. 한상구는 회사 사람이 무엇인가 속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윤미 병원비 때문에 돈을 받는다. 한상구는 나중에야 윤미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해서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윤미가 죽고 한상구는 윤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이런 싸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치기니까. 그래도 한상구는 윤미 아빠로서 해낸다. 한상구 혼자였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무사, 변호사, 제보자 그리고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함께 싸워서 이루어냈다. 윤미가 산업재해를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소설에서는 윤미가 일한 곳을 진성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삼성반도체다. 이상한 일은 윤미가 그곳에서 일하기 전에도 병에 걸린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일이 알려지지 않았을까다. 윤미 아빠 한상구처럼 용기를 내서 싸운 사람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한상구는 윤미 같은 아이가 더는 없기를 바라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 전태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 거였다. 한사람은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한사람이 한사람이라도 구한다면 그것은 널리 퍼지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의사(형사)를 보았다. 자기 아이도 구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다른 아이를 구할까 하는. 그렇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사람한테 그것을 써야 하니까.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것까지 생각난다. 나는 왜 이럴까.

 

이런 이야기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좋다고 본다. 아직도 힘들게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보고 힘을 내고 끝까지 가기를 바란다.

 

 

 

 

☆―

 

“법이란 게 본래 그래요. 힘 없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었겠어요?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보호하려고 만든 거지.”  (228쪽)

 

 

 

 

 

 

 

그리움

 

박노해

 

 

 

공장 뜨락에

다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오는

가난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조금 다른 추리소설

 

  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メルカトルかく語りき (2011)

  마야 유타카   김은모 옮김

  문학동네  2014년 02월 17일

 

 

 

 

 

 

 

 

 

 

 

 

이 세상에 나온 추리소설 가운데서 내가 만나본 것은 아주 조금이다. 몇 해 전에는 이런 게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시간이 조금 흘렀으니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해야 할 텐데).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이런저런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여러가지를 본 것은 아니다. 거의 소설만 만나보았다.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랬는데, 내가 본 책을 모두 다 알고 본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른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것은 조금이라도 쓰려고 한다는 거다(잘 쓰면 좋겠지만 여전히 못 써서, 그게 조금 아쉽다). 그저 읽기만 했을 때와는 마음이 달라졌다고 본다. 그리고 책을 본다고 해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조금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 내 경우는 마음이 조금 바뀐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떤 것은 그대로고 안 좋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책을 보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면 더 좋겠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책을 보았을 때 잠깐이고 시간이 흐르면 잊고 만다. 사람은 쉽게 잊는다. 잊어야 살아갈 수 있지만, 덜 잊는다면 좋겠다(잊지 않기 위해 쓴다고 하지만 반대로 잊기 위해 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떤 말은 한번이 아니고 몇 번이고 보기도 한다. 그럴 때 예전에 그런 생각했지 한다. 어쩌면 그래서 비슷해 보이는 책일지라도 보고 또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주제가 담긴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그것을 모두 기억한다면 좋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같은 성경 말씀도 있다. 비슷한 주제라 해도 작가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잠시 다른 길로 샜다. 그렇다고 해서 책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보면서 지금까지 쓴 것과는 다르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책을 본 다음에 나는 언제나 어떻게 쓸 것인가 얼개를 짜지는 않는다. 거의 그냥 쓴다(가끔 이상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그리고 읽으면서 어떤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도 쓸 때는 잊어버리고 못 쓰기도 한다. 쓸거리를 먼저 생각하고 잘 짜맞추면 좋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버릇은 없어서.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도 했다. 이제부터는 짧아도 내용보다는 생각이나 느낌을 더 쓰면 어떨까 하는. 다른 것(구성이나 글이 어떻다 인물이 어떻다 하는 것은 잘 모르니 내버려두고)은 어렵더라도 느낌이나 생각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아니어서 말이지. 내가 자주 쓰는 말은 생각이다. 그래서 생각만 하는 건가, 생각을 한다고 해도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면 괜찮지만 안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해야지 생각하고 바로 한다. 생각만 하고 안 하는 게 더 많지만. 그런 것은 생각하기보다 몸을 움직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대체 책 이야기는 언제 할거야’ 하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보다는 앞은 그냥 넘어갔을지도.

 

마야 유타카 책은 두번째다. 그리고 메르카토르 아유를 만나는 것도. 첫번째는 아주 잠깐밖에 못 보아서 잘 안다고 하기 어렵다(많이 보아도 모르지만). 그때는 메르카토르라고만 하고 아유라는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다른 책 《날개달린 어둠》을 먼저 만난 사람은 메르카토르를 알고 메르카토르 친구면서 조수인 미나기 산조도 알겠지. 나는 이 책을 보고 처음으로 알았다. 미나기 산조는 미스터리 작가다. 미스터리를 쓰면서 탐정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미나기는 조수라니. 처음 보았을 때 메르카토르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겉모습(턱시도에 실크해트를 쓴)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말하는 것은 아주 남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만 그렇게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메르카토르는 제멋대로다. 자신은 천재 탐정으로 못 푸는 수수께끼(사건)가 없다고 여기고 자신을 굳게 믿는다(나는 나도 믿지 못한다, 이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적도 있다). 메르카토르는 다른 탐정하고는 조금 다르다. 내가 탐정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고 그 탐정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단 한사람만 말한다면 코난이다. 코난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되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탐정이다. 만화에 나오는 인물이어서 이런 식으로 설정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코난을 좋게 생각한다. 메르카토르는 어떤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보기 위해 바로 해결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사람을 죽일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거의 모든 탐정은 사람이 죽는 것을 막지 못한다. 탐정은 그 점을 아주 안타깝게 여긴다. 하지만 메르카토르는 그런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말하니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피도 눈물도) 없는 탐정 같다. 실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메르카토르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휘둘릴 것 같아서 친구로 사귀고 싶지 않지만.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메르카토르가 해결한 사건도 많다고 한다.

 

이 책은 다른 추리소설과 조금 다르다. 다른 형식을 가진 책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을 찾아낸다. 그 뒤 범인이 어떻게 되는지 나오지 않지만. 수수께끼를 풀고 범인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같지만 확실하게 누가 범인이다 하지 않는다. 한해전 죽은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을 알 수 있다고 하고, 어떤 때는 범인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조금 웃겼던 것은 미나기한테 추리소설가로 범인과 맞닥뜨리는 일을 해보라고 한 거다. 미나기는 메르카토르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마지막에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까지 듣는다).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지 미나기는 언제나 메르카토르와 함께 다닌다. 어쩌면 소설 재료를 얻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메르카토르한테 괴롭힘 당해도 그냥 참을 수밖에 없으려나. 그것보다는 그것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이런 말을 하다니. 그러고 보니 메르카토르를 사디스트라고 했구나. 그러니 두 사람은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홈즈와 왓슨을 잘 모르지만 이 두 사람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사건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아 뒤끝이 조금 안 좋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친구들이 서로 의심했으니까. 메르카토르가 친구들의 의심을 거두어주었다.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무엇인가 밝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열린 결말이라고 하던가. 어떤 이야기가 끝났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니까.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나오지만 그속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바라기도 한다.

 

 

 

희선

 

 

 

 

☆―

 

“네 추리, 그거 정말이야?”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큰맘 먹고 물어보았다.

 

메르카토르는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는 듯이 웃었다.

 

“내 논리는 틀림없어. 난 정답률 백 퍼센트의 탐정이거든.”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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