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린 지혜에 대한 정의다. 나는 지혜란 자신이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이 정의에 따르면 나는분명 젊은 날에 비하여 훨씬 더 지혜로워졌다. 왜냐하면 현재의 나는 젊은 날의 나보다는 분명히 더 자신의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한계에 대한 이런 깨달음은 살아온 세월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공부해온 심리학의 연구 성과들 덕분이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향한 마인드셋(mindset), 세상에 대한 은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프레임의 범주에 포함되는 말이다. 마음을 비춰보는 창으로서의 프레임은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우리는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어떤 경우에라도 다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소수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존재다. 프레임의 변화, 즉 맥락의 변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다양한 얼굴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선거에 당선된 뒤 생각이 달라진 정치인에게 변절자란 말을 쉽게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가 후보로서 접하던 맥락과 실무자로서 접하는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회사를 ‘가족‘에 비유한다. 어떤 기업은 회사를 실험실‘로 비유한다. 가족으로 비유되는 회사에서는 관계가 중시되고, 실험실로 비유되는 회사에서는 모험과 창의성이 중시된다. 가족으로 비유되는 회사에서는 위계질서와 조화가 핵심 가치가 되지만, 실험실로 비유되는 회사에서는 위계질서보다는 평등과 독립적사고가 우선적인 가치가 된다. 개인, 가정, 조직, 국가에는 나름의 은유가 작동한다. 우리 삶을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은유는 우리가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 은유속에 살고 있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프레임을 바꾸고 싶다면 바로 그런 은유를 찾아내서 바꾸어야 한다.
프레임은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우리의 가정, 전제, 기준, 고정관념, 은유, 단어, 질문, 경험의 순서, 맥락 등이 프레임의 대표적인 형태다. 사람들은 흔히 프레임을 ‘마음가짐‘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프레임을 갖추기 위해서는 좋은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프레임은 결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설계‘의 대상이다. 프레임 개선 작업은 나의 언어와 은유, 가정과 전제, 단어와 질문, 경험과 맥락 등을 점검한 후에 더 나은 것으로 설계하고 시공하는 작업을 요한다.
일상에서 소유의 프레임과 경험 (존재)의 프레임이 가장 빈번하게 대비를 이루는 분야는 소비의 영역이다. 같은 물건을 사면서도경험 프레임을 갖고 구매하는 사람은 그 물건을 통해 맛보게 될 새로운 경험에 주목한다. 그러나 소유 프레임을 갖고 구매하는 사람은 소유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가령 책상과 의자를 구입하는 경우, 소유의 프레임을 가진 사람은 단순히 ‘가구를 장만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남들보다 더 좋은 가구를 소유하려 한다. 그러나 경험의 프레임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책상과 의자를 통해 경험하게 될 지적인 세계를 기대한다. 그곳에 앉아서 읽을 책과 써 내려갈 일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고 하지만, 실상지구 표면을 보면 산도 있고 계곡도 있기 때문에 매끈한 형태의 구(球)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구‘라고 부르는 이유는평균 때문이다.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더라도 평균적으로 보면 지구는 둥글다. 사람을 보는 우리의 눈도 그래야 한다.
마찬가지로, 구걸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을 보고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지나치는 나를 보고 누군가 ‘저렇게살지 말아야지‘라는 교훈을 얻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누군가를 보고 ‘세상은 아직도 따뜻해‘ 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그런 행동을 한 나 때문에 누군가 그런희망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는 철저하게자신의 영향력에는 눈을 감고 있다.
좋은 프레임은 나를 바꾸는 역할을 하지만, 그렇게 바뀐 나는 빛나는 C가 되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이 될 수 있다. ‘저런 못된사람에 비하면 나 정도는 괜찮다‘는 소극적 위안과 안일함을 유발하는 프레임이 아니라, ‘저 사람처럼 사는 게 정말 잘 사는 기야‘라고 기준을 바꿔주는 C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상황이다‘를 굳이강조하고 싶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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