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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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존심이란 타인이나를 무시했을 때가 아니라스스로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감정이다.
- P123

사람이 도를 추구하는 것도, 욕망을 따르는 것도 모두 즐거움 때문이다. 도도 마찬가지지만 욕망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도가 주는 즐거움은 깊고 은은하고 오래 가지만 욕망이 주는 즐거움은 얕고 천박하다. 도는 그 존재로서 즐거움을 주지만 욕망은 행위로써 즐거움을 주기때문이다. 따라서 욕망의 즐거움은 행위가 끝나면 바로 사라진다. 그리고반드시 허무함이 남기 마련이다. 이러한 허망한 욕망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도라고 성현들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공자가 말했던 것처럼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없기에 어쩔 수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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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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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글들은 모두 고난이 사람의 삶에서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고난을 겪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좋은 결과를얻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고난을 통해 놀라운 일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어떤 사람들은 고난에 치여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 차이는 바로 고난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을 다산이 말해주고 있다.
먼저, 고난을 이겨내고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다산은 중년에 닥친 고난을 세속의길에서 벗이나 진정한 학문을 할 수 있는 여가‘로 생각했다. 그랬기에 험난한 귀양지에서 여유당전서라는 찬란한 학문적 결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 한 가지는 고난이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잠잠히 생각해볼 수있어야 한다. 공자가 "곤궁에는 운명이 있음을 알고, 형통에는 때가 있음을 알고, 큰 어려움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성인의 용기다"라고말했듯이, 자신이 겪는 고난에도 반드시 그 의미가 있음을 알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전제는 평온하고 안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산은 마음을다스릴 수 있었기에 혹독한 시기를 잠잠히 버티면서 때를 기다릴 수 있었다. 자신뿐 아니라 아들들에게도 "폐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독서밖에 없다"라고 이르며 미래를 대비하도록 했다. 그 힘이 된 것이 바로 마음의 경전‘, 《심경》이었다. 다산은 《심경》을 읽고 연구하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렸다.
- P21

《도덕경》에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 갈 수 있다(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 知止不胎, 可以長久)" 라고실려 있다.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스스로의 환경과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을 기반으로 한다. 멈출 줄 아는 것은 감정이나 욕망이과잉이라고 판단되면 더 이상 휩쓸리지 말고 잠깐 멈추고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용기다. 화가 솟아오를 때는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슬픔에 무너질 때는 무심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쾌락에 이끌릴 때는 잠깐 멈춰 선다.
이렇게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라는 작은 신호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매몰되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섰을 때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바로 볼 수 있다면 자신의 행동이 바른 도리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따질 수 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면 그 일에서 떠나야 한다. 부끄럽지 않다면 과감하게 계속하면 된다. 성인이나 현자가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휘둘리지 않는 연습을 차근차근 실천한다면 적어도 어제보다 나은 사람은 될 수 있을 것이다.
- P40

신독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단정함을 유지하는 태도가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만들어 가려는 간절함이다.
- P43

생각을 하는 것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잠깐 멈추는 것이다. 《대학》〈경1장)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멈출 것을 안 다음에야 정해지는 것이 있고, 정해진 후에야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진 후에야 편안해질 수 있고, 편안해진 후에야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한 후에야 얻을 수 있다(지지이후 유정 정이후 능정 정이후 능안 안이후 능려려이후 능득知止而后 有定 定而后 能靜 靜而后 能安 安而后 能這, 而后 能得)."
무엇을 원하는 생각할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다. 그 시작은 멈추는 것이다. 분노와 욕심을 가라앉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으면, ‘화‘라는 감정과 ‘탐욕‘ 이라는 유혹에 휩쓸려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 P76

버린다는 것은자신을 정리하는 처세의 기술이 아니다.
스스로를 솔직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마음이다.
- P96

오늘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받는 사람에게 청렴과 의에대해 논하라고 한다면 탁월한 글쓰기 능력과 논리력, 표현력으로 멋지게모범답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써내려간 글을 스스로의 삶에서 얼마나 실천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이 늦게나마 밝혀지는 경우가많다. 주로 그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서 고발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의 가해자들은 먼저 자신의 행위를 부인하며 상대방에게 증거를 댈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자신이 그 일을 저질렀는지, 아닌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 양심을 버린 사람들의 행태다.맹자는 사람에게 사단, 즉 선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간이 공부하는 이유는잃어버린 마음을 찾기 위해서다.
- P188

어른 대접을 받고 싶다면 공부와 생각을 통해 먼저 덕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바르게 이끄는 사람,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어른은 많이 아는 이가 아니다. 배운 것을 깊이 고민함으로써 작은 욕망과 세상의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 P211

마음을 잃어버릴까수시로 돌아보는 사람을 두려워하라

그 다음 필요한 것이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라(절문근사切問近思)‘다.
‘절문근사‘는 공자의 제자 자하가 공부하는 자세를 가르친 말로 《논어》에실려 있다. 절실하게 묻는다는 것은 간절한 자세로 배움을 구하고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가까이 생각하라는 것은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실천하는 자세를 말한다. 일상의 삶에서 구현되지 않는 배움은 현실에서 괴리되어 실천하기 어렵다. 《중용》 (12장)에서는 "군자의 도는 넓고도 은미하다.
평범한 어리석음으로도 알 수 있으나, 지극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성인이라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라고 실려 있다. 지극한 이치를 이루기 위해 체음부터 심오한 철학과 학문만을 추구해서는 이룰 수 없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묻고 해답을 찾으머 학문을 추구할 때 점차 더 깊고심오한 학문으로 다가갈 수 있다.
맹자는 잘 길리주면 어떤 사물이라도 자라지 않는 것이 없다(구득기양무물부장得其義 無物不長)‘고 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날마다 선한 기운을 받고 마음을 자라게 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평온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회복할 수 있다. 선한 기운을 받는 것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증자가 하루에 세 번 반성함으로써(일일삼성 日三省) 자신을 돌이켜 보았듯이 날마다 혹 잃어버린 마음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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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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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현자가 있어, 이 생각이 그저 가난에 눈이 먼 자의 틀에 박힌시선에 불과하다고 깨우쳐주면 좋으련만,
생사를 놓고 고민할 만큼 인간을 궁지로 몰아붙인 지대하고 심각한 문제들, 죽은 이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머문곳까지 찾아와 암울하고 축축한 얼룩으로 물들인 가난이나외로움 따위는 죽음의 문을 넘는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없어지고, 그 아무리 중차대한 것조차 하찮게 웃어넘길 수있는 것이 돼버린다면 참 기쁠 것 같다.
- P47

그 누구라도 자기만의 절실함 속에서 이 세계를 맞닥뜨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치의 이면에는 어릴 때부터뼈에 사무친 경제적 결핍감이, 사랑의 소품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하려는 마음 밑동에는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을지모른다는 두려움이 뿌리를 내린 채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는지도 모른다.
- P109

당신은 사랑받던 사람입니다. 당신이 버리지 못한 신발상자 안에 남거진 수많은 편지와 사연을 그 증거로 제출합니다. 또 당신이 머물던 집에 찾아와 굳이 당신의 흔적을 보고 싶어한 아버지와 어머니, 홀로 방에 서서 눈물을 흘리던당신의 동생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그들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직 당신이 살아 있을 때, 병에 걸려 고동 받으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은 질대 잊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지워질 테지만, 당신이 남긴 사랑의 유산만은 누구도 독점하지 못하고,또 다른 당신에게, 또 다른 당신의 당신에게 끝없이 전해질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디 이 사실 하나만은 당신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모자라고 부끄러운 글월을부칩니다.
당신이 머문 곳을 지운, 이름 없는 청소부 올림,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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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의 거짓말 - 김원장 기자가 팩트체크한 땅, 집 그리고 가격
김원장 지음 / 해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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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현대아파트 가격은 10년 전 32평형이 10억 원 정도였습니다. 다들 팔려고 했습니다. 한 동에서 대여섯 가구가 매물로 나온 적도 많습니다. 지금은 30억 원이 넘습니다.
지금 온갖 과학적 근거를 대면서 서울의 아파트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왜 그때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사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시장에 합리적으로 접근하지 않던 우리가, 10년이 지나 갑자기 합리적으로 변한 것일까? 그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과연 시장에 합리적으로 대응할까?
마트에서 트리트먼트를 하나 더 끼워 준다고 해서 샴푸를 하나 더구입한다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왜 1,000만 원을 내고 에르메스 핸드백을 살까? ‘스타벅스 서머레디백‘에 ‘농협‘ 로고가 붙어 있어도 사람들이 그 가방을 사려고 줄을 설까?

우리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 P6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질녘에야 날아오른다. 헤겔은 모든 일들은 지나봐야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값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사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10억짜리인지 30억짜리인지 잘 모릅니다. 어쩌면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그 아파트를 사겠다고 줄을 서자, 나도 따라 줄을 서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합리적 이유를 열 가지 과학적 근거를 대며 설명합니다. 어느 날 집값이 내리면 그 전문가들은 다시 열 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집값이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제야 우리는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시장을 이해한 듯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 P8

자산시장은 수많은 변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알고리즘을 이해한다고 해도 투자는 참 어렵습니다. 어렵게 분석하고 공부해서 시장을 이해할 무렵, 자산을 둘러싼 투자환경이 변해 있습니다. 투자환경에 익숙해질 만하면, 경기 사이클이 바뀝니다. 사이클을 이해했더니, 이번에는 제도가 바뀝니다. 이런데도 우리가 과학적으로 투자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증시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정작 자신의 승률을 밝히면 어떻게 될까? 그 유명한 증권사 투자분석본부장이 세운 투자자문회사의 수익률은 왜 그 모양일까?
가격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 P21

"한국에서 주택은 소유자의 지위를 과시하는 지위재다." 
한반도에서 이제 집은 주거의 문제가 아니고 욕망의 문제입니다.
라캉은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원합니다.집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타자의 그 욕망이 시들어지면 우리도그것을 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망을 집을 몇 채 더 공급한다고 잡을 수 있을까. 정부가 또 추가대책을 준비하나 봅니다.
- P56

⑦ 집값을 합쳐 30~40억 원 넘게 갖고 있는 분들의 보유세가 너무가파르게 오르는 건 사실입니다. 바람직한 건 아닙니다. 좋은 과세는예측 가능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 등장하는 분의 아파트 두 채는 불과 6년 전 20억정도에서 지금은 43억 원이 됐습니다. 기자가 보유세가 극단적으로급등한 아파트 단지를 찾다 보니, 한반도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두 아파트를 고른 겁니다. 결국 노동하지 않고 23억 원의 평가차익을남긴 집주인을 정부는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지난 2017년 국세청에 신고된 부동산 매매차익은 84조8,000억원이다. 그중 상위 1퍼센트가 19조 원을 가져갔다. - P74

해법은 보유세 강화밖에 없어 보입니다. 부동산 투기는 매우 상식적인 경제 행위입니다. 내가 투자한 돈(투입) 대비 기대되는 수익 (산출)이 확연하게 높을 때 투기심리가 작동합니다. 이 기대 수익을 낮추는 것은 정부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집으로 큰 이익이 남는 경우에 대한 부담을 높여야 합니다.
땅은 내가 주인이라고 해서 내 맘대로 하면 안 되는 유일한 재화입니다. 복제가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 121조 1항은 "국가는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라고 규정합니다. 땅을 갖고 있으면서 (농사 짓지 않고) 그냥 이익을얻는 것 자체가 반칙이라는 뜻입니다.
- P80

인구 감소는 오히려 도심 집중 현상을 가속화합니다. 맞벌이가 일상화되면서 신규 가구일수록 직장과 가까운 집(직주근접)을 선호합니다. 게다가 선진국은 제조업이 첨단 지식산업으로 산업이 재편될수록 오히려 직장의 도심 집중이 강화됩니다. 인구가 줄어도 도심 한복판의 주택수요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심 안에서도 역세권 등 밀집지역으로 더 사람이 몰립니다. 도쿄에는 7분 법칙‘이 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7분 거리의 주택수요가갈수록 높아집니다.
- P105

시장경제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이 참 쉬운 이윤‘에 주목해 왔습니다. 바로 지대rent의 문제입니다.
땅을 소유하면서 얻는 이윤을 흔히 ‘지대‘라고 합니다. 이 지구에서땅은 공기와 물과 함께 재생산이 안 되는 재화입니다. 운동화나 피아노나 캐러멜 프라프치노는 모두 재생산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시장경제에서 땅만 소유가 인정됩니다. 주인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소유하면 유리해집니다. 그래서 늘 가치가 올라갑니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땅을 가진 시민들은 노력하지도 않고 절약하지도 않으며 위험을 감수하지도않는데 잠을 자고 일어나면 더 부유해진다." 

존 스튜어트 밀땅만 주인이 있습니다. 한정된 재화인 땅을 소유하면 모든 것이 유리해집니다. 유고한 전쟁의 역사도 따져 보면 다 ‘땅따먹기‘ 입니다.
그러니 다들 자신의 업종에서 성공하면 다음엔 건물주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직업의 소명의식이 약하고 지대 추구가 쉬운 사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최순실 씨의 미승빌딩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영포빌딩도 사실은 그 흔한 지대 추구의 산실입니다. 그만큼 땅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세상입니다.
- P115

지대 상승이 노동생산성을 초과하면 임금이 절대 오를 수 없다‘ (헨리 조지)거나 ‘자본을 통한 이익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서면 노동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토마스 피케티)는 복잡한 이론들을 굳이 꺼낼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땅과 집을 가진 사람이 유리합니다. 선진국보다 더 유리합니다. 땅에서 나오는 막대한 지대는 공정한 경쟁을 훼손합니다.
2017년 12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개인 토지 소유자는 전체 인구 중 32.6퍼센트이며, 상위 50만 명의 소유 비율은 53.9퍼센트입니다.
그 불균형을 고쳐나가야 할 시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꿈조차 건물주인 나라를 벗어나야 합니다.
- P121

그런데도 집을 팔려는 가구는 거의 없습니다. 시세 10억 원이 안 되는 주택은 공시가격이 대부분 6억 원 미만입니다. 6억 원 미만 주택은 한 해 재산세 인상률이 10퍼센트를 넘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집값은 수억 원씩 올랐어도 재산세는 고작 10~20만원 오른 집도 상당수입니다.
우리나라의 보유세(재산세와 종부세)는 선진국보다 분명하게 낮습니다. 그런데 보유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선진국만큼높습니다. 집값이 비싸다 보니 세율이 낮아도 부동산 세수는 선진국비중만큼 걷힙니다. 우리가 생산해 내는 부가가치 GDP에서 부동산 자산 비율이 턱없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국민의 돈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많이 묶여 있는 겁니다.
반면 거래세(취등록세) 세율은 높습니다. 거의 미국 수준입니다.
- P126

어느 나라든 부자 동네가 있습니다. 맨해튼이나 캐너리워프의 수천만 달러 주택에는 그만큼의 소득을 가진 부자가 삽니다. 1년에 수천만 원, 수억 원의 보유세를 감당합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유세 부담이 여전히 낮습니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수십억 주택시장에 뛰어듭니다. 그러니 40억 집에 살아도 1,000만 원 정도의 보유세가 부담이 됩니다. 정부를 향해 "우리가 무슨 죄인이냐?"
라고 항변합니다.
- P129

정책을 이해시키는 것은 정부의 몫입니다. 잘못 이해한 국민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새 대책을 발표할 때 국민 눈높이에서 좀 쉽게 하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대책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래야 기자들도더 쉽게 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책 효과를 높이는 지름길입니다.
어려운 정책이라도 기자들이 먼저 이해해야지, 왜 정부가 그것을쉽게 설명해야 하냐고 말한다면, 대기업들이 내는 보도자료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라도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한 ‘노오력의 자세‘를배워야 할 시간입니다.
- P146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우클릭도 좌클릭도 환영입니다. 백가쟁명. 정답을 누가 알까. 그래도 가야 할 길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진보라는 게 무엇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는…" 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GDP 성장률이나, 수출 몇 백억불 달성 같은 건 분명 아닐 겁니다. 경기가 하방 곡선을 보이자 정부가 빠르게 우클릭 합니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또 재벌 총수를 만납니다. 이걸 두고 누구는 유연하다고 할 것이고, 누구는 갈팡질팡한다고할 것입니다.
최소한 "상인과 자본가의 탐욕은 언제든 정부 감시하에 둬야 한다"
라는 말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50년 전에 보수의 태두 애덤스미스가 한 말입니다.
- P151

가난에는 이자가 붙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가난한 계층에는 혜택이 주어집니다. 대학이나 병원은 가난한 사람에게 비용을 깎아 줍니다. 버스 요금도 전기 요금도 깎아 주고, 휴대전화 요금도 할인해 줍니다. 정부는 저소득 농어민에게 매달 국민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대신 내줍니다. 그런데 금융은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더 받습니다. 대출을 못 갚으면 거기서 또 이자를 올려 받습니다. 그래서 불리하고 또 불리해집니다. 한번 가난해지면 좀처럼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시장경제는 수백 년 전부터 이 문제점을 계속 고쳐 왔습니다. 그런도 격차가 자꾸 커집니다.
- P159

복지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은, 무조건 복지를 확대하자는 주장만큼 위험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점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복지지출은 가만 둬도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진국은 복지지출을 얼마나 할까? 2018년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프랑스로 31.2퍼센트입니다. 벨기에와 덴마크, 이탈리아 등 선진국 대부분이 20퍼센트를 훌쩍 넘습니다.
OECD 평균은 21퍼센트입니다. 한국은 끝에서 두 번째로 11.1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잘 하지 않습니다.
- P185

정책 중에 가장 안 좋은 정책이 활성화정책입니다. 죽어가는 업종을 살리기보다는 새로 태어난 업종을 지원해야 합니다. (정부가 어르신에게 비아그라를 제공하는 것보다 20대의 출산을 장려하는 게 훨씬 좋듯이 말입니다.) 규제를 풀어야 하고 여기서 밀린 기업과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합니다.
치킨집 지원한다고 치킨업종이 살아날까? 그보다 아빠는 언제든직업교육을 다시 받고, 엄마가 아파도 부담 없이 병원에 가고, 큰딸은무료로 국공립대를 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식어가는 윗목보다 불타오르는 아랫목을 봐야 합니다. 지원도 미래산업에 하고, 규제도 미래산업에 풀어줘야 합니다. 돈이 넘치고 또넘쳐나는 업종이 있다면 과세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수십조 영업이익이 나는 기업이나 수백억 버는 부자들이 힘들다고 걱정합니다. 왜 그들에게만 자꾸 부담을 지우느냐고 걱정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내며 사는 후배 기자가 50억 원이 넘는 한남 더힐 주민들의 종부세를 걱정합니다. 지난2017년 국세청에 신고된 부동산 매매차익은 84조8,000억 원이었습니다(국세청, 2017). 그중 상위 1퍼센트가 19조 원을 가져갔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걱정하고 또 걱정합니다.
- P189

기업이 직원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대가밖에 지급하지 못하면서보란 듯이 문을 닫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장사꾼이나 하는 짓입니다. 100년 기업이 최저임금 때문에 무너지다니…. 유럽의어느 100년 기업이 자신들의 숙련공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할까.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저임금을 받는다면 그것은 기업에 악재입니다." 윈스턴 처칠

기업가를 뜻하는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라는 말은 200여 년 전 프랑스에서 생겨났습니다. 조직하고 경영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지금은 혁신하고 창조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수십 년 동안 혁신하지 못하고 저임금으로 기업을 경영해 온 사장님이 최저임금을 탓하고 기업 문을 닫는다면, 최소한 그는 기업가가 아닙니다. 장사꾼입니다.
- P195

미국에선 이미 20만 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면우리는 매일 아침 서로를 물어뜯습니다. 곧 나라 망할 분위기입니다.
2020년 9월, 월스트리저널》은 다시 한국의 방역 성공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의 암호를 풀었다‘라면서 그것은 간단하고, 유연하며, 다른 나라가 따라 하기 쉽다‘ 라고 추켜세웠습니다.
올해 한국의 성장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라고 또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만 보면 곧 나라가 망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떤 정책이, 어떤 정책 당국자의 결정이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효용이 있는지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도, 노무현의 한미FTA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코로나19로 숨진 한 명의 목숨에 대한 가치나, 코로나19로 숨질 수 있었던 한 명의 목숨을 살려낸가치를 어떻게 GDP 값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 가치는 엄연히 우리 시장에 파고들어 오늘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다만체감하지 못할 뿐입니다.
위기가 계속되니 공치사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하기로 합시다. 그래도 전 세계가 인정하는데 우리는 평가가 너무 박합니다. 박하다 못해흔들기까지 합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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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 - 현대 세속주의를 의심하다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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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왜 계속 살아남아 성장하는지의 문제에는 두 가지 확실한 답변이 있다. 하나의 설명은 많은 사람이 보기에 세속 이성에는 삶을 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뭔가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명은 허다한 사람이 자연 세계 너머의 초월 세계를 직관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 두 개념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 P23

그렇다고 과학과 이성에서 인간 사회의 막대하고 독특한 선이 비롯되었음을 부인하는 건 결코 아니다. 요지는 과학만으로는 인간 사회의 길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18 "원숭이 재판" 으로 불린 스콥스의 재판 때작성됐으나 끝내 시행되지 못했던 변론에 그것이 잘 요약되어 있다. "과학은 위대한 물리력이지만 도덕의 스승은 아니다. 기계를 완성할 수 있지만 기계를 오용하는 것에서 사회를 보호하고자 도덕적 제약을 가하지는 못한다.과학은 형제애를 가르치지 않는다(가르칠 수도 없다.과학적세속 이성은 요긴한 선(善)이지만 그것만을 인생의 기초로 삼으면 다음 사실이 곧 드러난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데도 과학에 결여되어 있는 것들이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 P26

이 충만한 삶의 상태를 저마다의 신념 체계로 어떻게 해석할것인가? 신자는 신자가 아니든 풀어야 할 과제는 바로 그것이다. 이생이전부라면, 존재하지 않고 존재한 적도 없는 무엇을 우리가 이토록 깊이동경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세속주의의 세계상너머를 가리켜 보이는 체험이 왜 이렇게 많은가? 그런 지각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이생이 전부라면, 폐쇄적인 세속적 관점으로는 채울 수 없는이런 갈망을 어찌할 것인가?
- P39

세속적 인본주의의 가치는 유물론적 우주에서 추론되거나 연역될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가치는 어디서 왔을까?
그런 가치에 "계보"와 역사가 있다는 게 답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국제법의 초석은 인간의 신성함에있다.즉 우리 이웃은 하나님에 의해 또는 그분이 지으신 사람을통해 신성하게 지음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가 쓰는 범죄의 개념은 기독교적 개념에서 왔다. 내가 보기에 기독교 유산, 아브라함의 유산, 성경의 유산이 없이는 법이라는 것도 없다.  - P66

만인의 가치와 평등에 대한 신념, 약자를 사랑하는 일을 중시하는신념은 인격신의 우주를 믿는 사회에서야 비로소 출현했다. 그 신은 모든 사람을 자신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도록 지으셨다. 현대 세속주의는성경적 신앙의 도덕적 이상을 대부분 고수하면서도 인격적 우주관은 배격한다. 그런 이상이 인격적 우주에서만 말이 되고, 그 우주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인데도 말이다. - P71

니체의 요지는 이것이다. 당신이 만일 신을 믿지 않는다면서 만인의 권리를 믿고 모든 약자와 빈민을 돌봐야 한다고 믿는다면, 스스로 인정하든 그렇지 않는 당신은 여전히 기독교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다.
예컨대 삶의 한 부분이고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고 있는 사랑과 폭력 중하나는 선하다고 취하고, 하나는 악하다고 버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 P72

왜 그랬을까? 변화를 주도한 의사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내가 보기에 사망률 변화는 인간의 근본 욕구인 삶의 이유 때문이다. 결국 가완디는 "왜 의식주를 해결하며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공허하고 삶이무의미해 보이는지"를 묻는다. "삶이 가치 있게 느껴지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답은 우리 모두가 자아 너머의 어떤 대의를 찾는다는 것이다."
- P87

그러나 나는 아니거나‘라고 부정으로도 답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이른바 "내재하는 의미와 "부여하는 의미의 중대한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신을 믿는 전통적 믿음은 그중 전자인 발견하는 의미의 기초였다. 이는 당신의 내적 감정이나 해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의미다. 하나님이 우리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지으셨다면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할 내재적 의미가 존재한다.
세속적인 사람에게 있는 의미란 발견하는 의미가 아니라 지어내는의미다. 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관적이며 전적으로 우리 느낌에 의존한다. 정치를 변화시키거나 행복한 가정을 일구기 위해 살겠다는 결심은 당연히 활력적인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지어내는 의미가 발견하는 의미보다 훨씬 깨지기 쉽고 내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발견하는 의미는 지어내는 의미보다 더 이성적이고 더 공동체적이며 더 영속적이다.
- P96

다른 무엇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신을 해친다. 어떻게 그럴까?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자녀에게서 의미와 안전을얻어야 한다. 당신의 과도한 요구대로 자녀는 행복하게 성공해서 당신을사랑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자녀일수록 뛰쳐나가 버리거나 당신 기대에 짓눌려 망가진다. 부모의 행복의 궁극적인 출처가 자신인데, 이 역할에 부합할 수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배우자나 연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일과 직장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일을 건강과 가정과 공동체보다도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몸과 관계가 파탄 나고, 앞서 봤듯이 종종 사회적 불의마저 초래한다.
다른 무엇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사랑의 대상을 해치고 자신을해치고 주변 세상을 해친다. 결국 깊은 불평불만에 빠진다.  - P131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

개인의 절대적 자율이라 할 수 있는 현대 개념의 자유는, 통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불공정하다. 타인에게 진 부채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보면 이런 주장이 넘쳐난다. "나만 책임질 수 있으면 된다. 아무도 내게 어떻게 살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마치 명백히 당연한 진리인 양이런 선언에는 늘 권위가 실려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진리가 되려면 당신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하고, 지금도 완전히 자기 힘으로만 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타인이 필요하다면타인을 연대 책임지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 어느 한 개인의 주인은 결코자신만이 아니다.
- P149

정체성은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고립된 상태에서 모종의 내적 독백으로만 정체를 발견하거나 지어낼 수는 없다. 오히려 정체성은 어느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 및 신념과의 대화를 통해 도출된다. 우리는 타인 안에서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스스로는 자아의 참모습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일과 사랑과 학습을 통해 타인과 대면하고 협력할 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 P183

그러나 현대식 접근처럼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면, 개인의 이일이 모든 사회관계보다 중요하다. 만족스러운 관계도 내 마음에 드는 동안만 유지된다. "여기서 주장하는 관점에 따르면, 관계는 개인의 만족을위해 일해야만 한다. 서로의 자아실현이 먼저고 관계는 부수적이다. 그렇게 본다면 평생 지속되어야 할 무조건적 관계는 별 의미가 없다. 인간 공동체는 "끼리끼리의 생활방식" 이나 "사회관계망"으로 성기어져, 비슷한 사람끼리만 일시적으로 유연하게 소통한다. 음악, 음식, 부의수준(고급 주택단지 같은) 등 비슷한 취향을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될 뿐, 그들의 사생활과 공생활은 다른 누구도 관여할 바가 아니다. 이미 충분히 입증됐듯이, 현대의 개인주의적 자아라는 조건하에서는 사회관계와 제도는 힘을 점점 잃어 가고, 결혼과 가정은 약화되고, 사회는 파벌로 분열되어 싸우고,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된다. - P189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분의 설계와 소명을 붙잡고 그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선량한 시민이 공동체를 향한 의무를 수행할때 행복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녀가 썼듯이 많은 사람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발상을 전혀 모르며, 때로 그런 발상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잃어버려서 아무도 되찾을 수 없다는 의심을 조장한다. 그들은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성공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행복과심지어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그때그때의 사회에 맞춰 취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다가오는 운명 앞에서 그들이 떠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P191

다른 많은 유수한 세계관보다 기독교에 문화 제국주의가 덜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정적 이유는 기독교인이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데 있다. 이 구원은 도덕법을 지켜야 시작되거나 유지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많은 종교와 달리 신약성경에는 레위기 같은 책이 없다. 행동에 대한 일련의 세세한 율법이 없다. 그런 규정은 추종자를 현지 문화로부터 떼어놓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을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는 기독교인은 정체성의 다른 요소도 완전히 버릴 필요가 없음을알게 된다.
인종과 민족 정체성, 일과 직업, 가정과 정치와 공동체 관계가 다 그대로 남아 있어도 된다. 그게 더는 우리 중요성과 안전의 궁극적 기초는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해지거나 버려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그것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자유로이 누린다. 다만 그게 구주인 양더는 거기에 속박되지 않을 뿐이다.
- P214

세속 개념이 진보하려면 한결같은 무제한 경제 성장으로 갈망이 무한히 팽창하고 안락의 전반적 수준이 꾸준히 높아져야 한다." 세속 사회의 이상이 실현되려면 그런 물질적 번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마다 자기 기준의 선(善)에 따라 날로 더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경제 성장은 계속 이어질 수 없다.
- P223

인권 개념의 가장 탄탄한 기초는 성경에 있다. 당신 앞에 선 이웃은고유의 가치와 불가침의 존엄성을 지닌 존재다(창 9:6 참조), 마틴 루터 킹주니어가 미국 백인에게 흑인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촉구한 것은 백인의합리적 사익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그들 각자가 정의한 대로 삶의만족을 얻으라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성경의 아모스서 5장 24절을 인용해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 때까지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롤스의 세속적 접근은 킹 박사가 제시한 정의의 기독교적 기초 앞에서 무색해진다.
- P284

경이로운 우주를 보라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존재 자체로부터 그분의존재를 추론하는 것이다. 무에서 유가 나올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는 무엇으로부터 와야 한다. 그렇다면 원인 없이 존재하는 어떤 독특한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 존재는 무에서 나오지 않았고, 자기 자신의 원인이자 다른 모든 것의 근원이다. 존체 자체이신 이 존재가바로 하나님이다. 요컨대 모든 자연에는 원인이 있으므로 원인 없이 존재하는 초자연적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 만유는 그 존재에서 비롯됐다.
- P308

창조 설계를 직관으로 느끼다.

하나님을 증명하는 또 다른 논증은 세상의 명백한 미세조정 및 설계와 관계된다. 최근에 많은 기독교 사상가가 물리학의 여러 상수를 지적했다. 빛의 속도, 일정한 중력, 강하고 약한 핵력의 세기 등 이 모든 수치가거의 정확히 현재와 같아야만 유기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 여러 개의눈금판을 전부 일정하게 맞춰야만 하는 셈인데, 그 모두가 지금처럼 일제히 생명을 허용하도록 조정될 확률은 약 100이다. 가능한 조정 상태는 무한대인데 그중 지구상에 생명이 출현할 수 있는 상태는 하나뿐이다.
예화로 거기에 담긴 의미를 도출해 볼 수 있다. 총살대 앞에 선 사형수가 있다고 하자. 열 명의 정예 사격수가 불과 3미터 거리에서 사형수에게 총을 쏜다. 그런데 전부 빗나간다. 우연일 수 있을까? 그렇다. 그날 아침 열 명 다 술 취한 상태이거나 하필 재채기나 기침이 나와 총알마다 과녁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뭔가 음모가 있어 누군가가 고의로 그렇게설계했다는 게 더 합리적인 결론이다.
- P310

세상에는 ‘객관적인 도덕적 의무가 존재한다.

하나님을 증명하는 셋째 전통적 논리는 이른바 도덕 논증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가장 강력한 논증으로 본다." 9장에서 이런 추론 방식을충분히 논의했으므로 여기서는 요약만 하고 넘어가려 한다.대부분의 사람은 도덕적 감정만아니라 도덕적 의무도 존재한다고믿는다. 도덕적 감정이라는 실재를 설명하는 데는 굳이 신이 필요 없다.그러나 인간에게는 어떤 행동은 감정과 무관하게 나쁘다는 믿음도 있다.남에게 "설령 개인적으로 옳게 느껴지더라도 당신은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의무의 기초는 도대체 무엇일까?신이 없다면 도덕적 의무는 진화생물학이나 문화에서 기인한 환영처럼 보인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은 모든 도덕 가치를 환영으로 치부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행동은 절대적으로 악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도덕적 의무는 신 없는 비인격적 우주보다 인격신이 창조한 우주에서 더 말이 된다.
우리는 그 신에게 책임을 받았음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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