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야근에 지친 당신에게(어쩌면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는 길에 이 책을읽고 있는 당신에게) 이 말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당신은 회개해야 하는 죄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살인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입니다. 세상은 "근면하게 일하라!"는 듣기 좋은 말로 당신의 생명을앗아 가고 있으며, 위로와 생명이 필요한 당신은 세상과 가정, 심지어교회에서도 외면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당신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모두가 무시하는 불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련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죽이는 것이 가득한세상에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십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구주는 고통당하는 당신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살인에서 건지시는 분입니다.
매일 야근하는 남편은 가정에 가서라도 피곤한 육체와 마음을 쉬지 못하면 견딜 수 없기에 가장의 의무를 제쳐 둡니다. 아내는 그러한 남편이 안쓰럽지만 남편에게서 정신적 안정과 영적 만족을 누리지 못해 괴롭기도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지만, 사회 구조에서 오는 불평등과 고통 때문에 순탄하게 사랑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따듯한 목회자요 열정적인 침례교 목사인 존 파이퍼는 에베소서 5장의 본문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남편이 가정에서 맡은 영적 의무를네 가지로 정의합니다. 첫째, 물질적 공급음식과 주거 등), 둘째, 영적공급(하나님 말씀과 영적인 지도, 교훈, 격려 등), 셋째, 물리적 보호적이나 자연재해나 질병 등으로부터 지킴), 넷째, 영적 보호(기도와 훈계 그리고 특정 영향력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 등)입니다.
물론 국법은 이와 같은 이유로 최저임금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있지만,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이와 같은 이유로 최저임금법을 지키는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일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우리가 인간의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소중하듯 인간도 소중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일하는 것에 합당한 대우를해야 합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게으르든 부지런하든 간에 인간이일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지켜야 합니다(물론 모든 노동자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하겠지만요).
물론 본문은 노예제도가 있는 1세기가 배경이기 때문에 이를 오늘날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문제를 직장생활과 사회관계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종과 주인 관계라 하더라도 시로를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대하듯‘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잔혹한 1세기의 주인이라 하더라도 종들을 주님 대하듯 해야한다면 나머지 인간관계는 얼마나 더 그리해야 하겠습니까? 노예라도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하듯 해야 한다면,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는 얼마나 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위의 본문에서 강조한 땅을 갈게"라는 말과 "지키게"라는 말 역시히브리어 ‘아바‘와 ‘샤마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낙원인 에덴 동산을 위해 일하던 아담은 낙원에서 쫓겨나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을 지키고 가꾸며 돌보던 아담은 이제 에덴 동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격리해야 할 가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원래는 없던 일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산적이고 영광스러운 일을 하다가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내사랑하는 자녀들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너희가 겪던 저주와고통은 사라졌다. 너희는 더 이상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일하는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위해 자발적이고 창조적으로 일하는 영광스러운 존재이다. 너희 삶에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친히 공급하겠다. 나는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 물론 너희가 일을 해서 받는 월급으로 공급하겠지만, 나는 모든 것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주권자이므로 너희가 어떤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때로 너희가 죄악 된 세상에서 고통당하며 부르짖겠으나 그때라도 내가 너희를 버린 게 아니란다. 너희가 무슨 일을 당하든 내 이름을 걸고 너희를 보호하겠다. 그러니 너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쁨으로 부지런히 하루 일을 견뎌 내려무나."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자신뿐 아니라세상이 안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도무지 쉴 줄 모르고 누군가를 쉬게 할 줄도 모르는 이 타락한 세상에서 안식이 되십시오. 인간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이 세상에서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십시오(갈 6:10), 하나님이 소중한 분이시므로 그분이만드신 인간도 소중한 존재임을 세상이 깨닫게 해주십시오. 이웃을 위해 살아가면 바보가 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되어 주십시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바보 같은 당신을 통해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고난받을 것입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사자밥이 되거나 십자가에 달리지는 않겠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과 세상을 사랑하다가 세상에게 버림받을 것입니다. 나아가 세상이 당신을 죽이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을살아가는 당신의 순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이 정도의 거짓말은 하고 삽니다.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사는 건 지나친 광신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너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목양에는 관심 없고 세를 불리고 명예를 높이려고 삽니다. 왜 저만 다르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나 너는 근신하며 전도인의 일을 하고 고난받으며 네 직무를다해야 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 학생들이 커닝을 합니다. 그러니 저도 이 정도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너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학문과 학업 생활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한다!" "다른 직장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정도는 세상과 타협하며삽니다" "그러나 너는 망할지라도 이웃을 사랑하고 정직과 공평을 추구해야한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를 외치는 시대에 ‘그러나‘를 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들도 그러니까" 또는 "세상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만큼은 세상과 동일하게 살지 않았으며 디모데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늙은 사도는 젊은 디모데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그러나 너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로 살지 ‘그러나로 살지 결단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 세상을 구한단 말입니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3). 기꺼이 고난을 감당하는 것만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우리의 소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을 고난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생명을 죽이는 세상의 문화를 개선하십시오. 기꺼이 모든 사람들이쉼을 누릴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 가십시오. 그렇게 자신의 것을 가정과 이웃을 위해 주다가 그렇게 손해 보며 살아가다가 죽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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