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셰익스피어 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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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듣지 못하고 자라기란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초호화 캐스팅이라고 TV에서 내내 광고하는 영화, 뮤지컬 등등 곳곳에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시로, 디즈니의 명화 중 하나인 '라이언 킹'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을 모티프로 삼았다. 아버지를 여의고 그의 망령이 복수를 부추긴다는 점, 햄릿의 어머니를 숙부가 취한다는 점, 햄릿이 점점 우울증으로 빠져든다는 점, 그를 오매불망 사랑하던 약혼녀 오필리아가 정신병에 걸려 자살을 하는 등의 자극적인 요소를 잘라내 아이들도 쉽게 서사를 파악할 수 있다.

우연히 '맥베스'를 북카페에서 발견하고 원작으로 한 번쯤 읽어보자는 마음에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만에 독파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영화로 개봉된 '맥베스'를 예매해 주었고 사실상 그 영화로 인해 나는 뒤늦게 셰익스피어라는 옛 인물에게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이었지만 원래 타과 수업을 청강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영어영문학과 전공인 '셰익스피어'라는 강의를 들었다. 어릴 때에는 마냥 장황하고 무슨 말인지도 헷갈리던 희곡이 비로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라쉬아노, 나는 단지 세상을 세상으로 여길 뿐이네.
세상은 각자 자기 역할을 하는 무대이고,
내 역할은 우울한 것이지.
p 42 안토니오의 대사

 

 

어릴 때 교과서에서, 혹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나온 책으로 접했을때는 그저 재판 씬과 주인공들의 사랑을 속삭이는 씬만이 기억에 남았지만 이제 와 차근차근 읽어보니 초반부터 퍽 우울한 말을 늘어놓는 안토니오에게도 관심이 갔다.

가뜩이나 요즘 세대들은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구분할 것 없이 우울증을 감기처럼 달고 산다는데. 당장 앞날을 걱정하는 나이의 나에게는 당연히 와닿을 수밖에 없는 대사였다. 다만 나의 역할이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생각이 다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극의 초반부인데도 이렇게 철학적인 대사가 오간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단순히 주인공들이 어려웁게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속내를 들추어 보면 그렇지도 않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존재감을 과시하던 문제들이 사이사이 녹아들어 있다. 그것이 셰익스피어의 매력이다.

우습게도 초반부에 나오는 인용구의 단 세 줄짜리 대사는, 희한하게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부분이 우울에서 빠져나와 그 반대의 상태로 앞서가기를 바라는 요즘 세상에서, 조금쯤 우울한 것도 썩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릴 때는 마냥 어둑어둑하고 축축한 느낌이라 그의 비극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나이를 조금 먹었는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참 좋다. 맥베스는 이미 읽었으니 나머지 '리어 왕', '오셀로', '햄릿'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정독하는 계획을 세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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