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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평점 :

여경 무용론이라는 다섯 글자가 얼마나 내 신경을 긁어대는지. 잊어버릴 쯤 등장해서 성질나게 하고 또 잠잠해진다. 경찰만이 아니라 여성은 사회 전반적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경찰처럼 '험한 일'을 하게 되면 기사도적인 정당성까지 부여돼 더 그러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 그 편견을 돌파한 형사가 있다. 그는 엉겁결에 형사가 되었으나 있는 힘껏 본분을 다 했다. 신창원, 정남규 수사를 이끌어갔다는 띠지를 보고 놀랐던 건 내가 수사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도 그의 이름 석 자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랑 장난 쳐?
읽다 보니 알았다. 그가 일부러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신이 수사한 사건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했는데, 그 마음이 조금 이해될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아마도 평생을) 자신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크다고 했다. 이것이 진짜 직업 윤리겠구나. 누군가는 이렇게 진실로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구나. 경외감이 들었다.

여성 형사가 쓴 에세이라기에 읽어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나이 상 결혼을 해서 일반적인 삶(?)을 산다면 별로 궁금하지 않을 것 같아 망설이던 차에, 그가 제주에 책방 겸 서재를 운영하면서 후배 형사와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꿈꾸는 삶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당장 이 책을 읽어야 했다.
단언하자면 이 책은 재미가 있다. 술술 읽히는 맛이 있기에 재미라고 명명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그는 여자 형사라서 느꼈던 한계나 여자 형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을 담담히 적는다. 모 다큐멘터리에서 본, 강력 범죄를 해결해 큰 건을 올렸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있던 형사들의 얼굴이 스쳤다. 그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편견을 한 꺼풀 덧씌웠는데 그들의 얼굴 구석구석을 아무리 보아도 구해내지 못한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범죄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누가 봐도 나쁜 인간에게 정의롭게 처벌하기 위한 경찰이 괜찮은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 생각에 변화가 없고, 직업마다 마땅히 지키고 따라야 할 직업윤리의 측면에서 경찰은 단지 처벌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누구보다도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해 주어야지, 쉽게 판단해버리는 자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들이 내 안전을 틀어쥐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불안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은 경찰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누군가는 직업 윤리를 단단히 지키며 피해자들을 보듬고, 가해자 또한 인간임을 잊지 않으면서도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무엇보다도, 깊은 우울로 피곤한 일상을 보내던 나에게 그는 "이 순간만은 살아 있자"고 말을 걸어 주었다. 사선을 넘나들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 인생 선배가 주는 조언이라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내 글에 온전히 집중하는 진짜 꿈을 이루면 제주 여행을 길게 떠나야겠다. 반드시 이 서점에 들러 그를 만나고, 덕분에 조금 더 꿋꿋해졌노라고 말해야겠다.
이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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