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 1~5 세트 - 전5권 - RETRO PAN
김혜린 지음 / 거북이북스(북소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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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려고 보니 내가 만화책 서평을 쓰는 건 거의 손에 꼽는 횟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화가 함께 있는 에세이라든가, 일러스트가 있는 에세이를 읽고 서평을 쓴 적은 왕왕 있는 것 같은데(혹은 인문학적인 내용을 다룬 만화책이라든지) 만화 서평은 오랜만이라 괜히 멋쩍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만화를 자주 못 읽고 자랐다. 부모님은 만화책(단순 오락을 위한)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며 금했고, 그 와중에 말을 잘 듣던 딸이라(지금은 아님) 만화책은 다 좋지 않다는 편협한 시선을 가진 채 자랐다. 그래서 큰이모 댁에 놀러갔다가 김혜린, 신일숙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만화책을 보고는 금단의 열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 재밌을 것 같은데...? 읽어도 되나? 엄마는 책장을 훑어보더니 나도 아는 책이라며 반가운 표정을 했고, 곧장 그 자리에 주질러 앉아 이모 책장의 절반이 넘는 책을 읽어댔다.

그때 읽은 만화가 <아르미안의 네 딸들>, <비천무>였는데 순정만화 특유의 섬세한 그림과 감정선, 실로 문학적이고 통찰력이 느껴지는 대사까지(운명은 예측불허, 그로 인해 생은 의미를 가진다 였나? 그 말이 오래토록 기억에 남았다), 나는 그만 배신감을 느끼고 말았다. 뭐야! 만화는 엄청 재미있고 엄청 느낄 게 많잖아요!

성인이 되어서야 부모님이 금하던 만화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또 감사하지만 비디오방이 있던 시절에 양질의 만화를 읽지 못하고 자란 것은 조금 아쉽다. 그러던 차에, 재간되어 나온 <테르미도르>를 보고 겪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한 향수가 무럭무럭 피어났다.




성인이 되어서는 웹툰을 아주 즐겨 보지만 어느정도 흐물텅하고 쉬운 그림체에 익숙해져 있다가 <테르미도르>를 보니 왜 만화가들이 손목과 허리를 바쳐가며 그림을 그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웹툰 작가들도 고생이 많겠지만... 이 시절 만화는 교정지에 한땀한땀 그리고, 펜으로 긋고, 심지어 만화 칸도 직접 나누었다는 것을 듣고 기함을 했다.

게다가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혁명을 주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세계사에 문외한이라서 이해하기는 힘들었으나 어릴 때라면 이해할 수 없었을 알뤼느가 그리 밉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어른이 되어 읽기에도 참 좋은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유제니와 다투는 알뤼느인데, 어째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지 평민들의 편은 왜 드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유제니를 몰아세우는 알뤼느를 보면서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야기 전개 상(?) 알뤼느에게 어려움이 닥칠 것 같은데, 그 시절 귀족 딸 답게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알뤼느가 얼마나 고생을 하게 될 지... 또 동시에 과거의 내가 떠오르면서 역시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쉽게 넘겨짚지 않고,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김혜린 작가가 한땀 한땀 벼려 낸 수려한 미모의 인물들을 구경하는 것도 아주 재밌지만 프랑스 역사라는 크나큰 역사의 사건을 피땀 어린 조사와 입체적인 인물들로(물론, 전통적인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러낸 것을 보며 나 또한 한 명의 콘텐츠 제작자로서 건강한 자극이 됐다.

>> 프랑스 역사라는 크나큰 역사적 사건을 입체적 인물들로 그려낸 수작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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