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석 기차 여행 당신을 위한 그림책, You
다니 토랑 지음, 엄지영 옮김 / 요요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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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난히 그림책을 많이 읽었다. 아무래도 어지러운 마음의 반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회사로, 인간 관계로, 유달리 피곤하고 심란한 날이 많았다. 원래 마음이 가라앉을 때는 좋은 면보다 나쁜 면을 보게 마련이니까.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보는 표지의 클레멘티나 델피가 여행을 떠나기 전 그랬듯이, 나는 꽤 오래 무기력에 잠겨 있었다. 클레멘티나가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마음 좋은 이웃이 내어 준 다락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며 내 국적이 휴전국에 있으므로 더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다.




큰 기대 없이 책을 펼쳤고, 거친 듯 아름다운 색감의 일러스트에 마음을 빼앗겼다. 사실 줄글을 읽는 것에 익숙해서 그림에 짧은 문장이 적힌 그림책을 읽을 때는 호흡이 빨라 휙 끝나는데, 이 책은 내용이 약간 길어서? 더 좋았다. 클레멘티나의 표정이 처음과 끝에 완전히 다르다는 점은 소름이 끼치게 좋았다.

이른바 '신부수업'을 받고 자란 요조숙녀 클레멘티나는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 직후,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린다. 요즘 말로 하면 취집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재산의 반을 털어 좋은 옷과 모자를 구입하고 나머지 반으로 일등석 기차를 타고 일 년 간 여행할 수 있는 기차표를 산다. 무모해, 라고 생각했지만 무모하다고 혀를 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대도 그렇고 자라온 환경도 그렇고 클레멘티나는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시도하기 힘든 사람이었으니까.

처음 클레멘티나가 기차에 탔을 때는 창 밖보다 사람들을 보는 것이 눈에 띈다. 점잖은 신사들을 힐끔 힐끔 보는 그. 창 밖의 풍경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클레멘티나는 창 밖의 풍경에 시선을 준다. 그리고 계절이 시작된다. 여름, 가을, 겨울의 세 계절 동안 클레멘티나는 세 명의 남성을 만난다. 그들은 전부 부유하다. 아름답고 넓고 편리한 집에 살고 있다. 클레멘티나에게 '꽃', '수집품' 등이 되라고 한다. 고개만 끄덕이면 모든 것이 클레멘티나의 것이 될 수 있고, 신수가 훤해질 수 있다. 클레멘티나는 첫 차를 타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다행히도.




클레멘티나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책을 덮고 난 뒤 생각보다 큰 울렁임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고 말하고 싶다. 클레멘티나라는 캐릭터, 뻔한 듯 뻔하지 않은 은유적인 스토리, 힘 있는 일러스트까지 삼 박자가 고루 갖춰져 너무 좋았다.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알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는데, 기회가 될 때 읽어보면서 매력을 새삼 알아나가고 있다.

김보라 감독의 추천사가 너무 좋아서 그의 말을 인용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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