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안전가옥 앤솔로지 9
최구실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언제부터 빌런 또한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그러니까, 어느 정도로 어른이라는 트로피에 가까워져야 빌런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하게 될까?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고길동 아저씨가 사실 엄청 아량이 넓은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유독 죽음을 먹는 자가 많이 나오는 '해리포터'의 슬리데린 기숙사가 깊은 호수가 보이는 지하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끊임 없이 계략을 꾸미는 다양한 빌런들을 보며 "쟤가 오히려 갓생 사는 것 아닌가? 엄청 성실한데?"라고 농담처럼 말했을 때?

시대가 변하기도 했고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 적어도, 디즈니나 지브리 시리즈를 보며 정의로운 주인공에게 홀딱 빠져 권선징악의 이야기에 열광하던 어린 시절보다는 자랐다. 이따금 내 안의 '빌런'스러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품고, 진심으로 상대를 원망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가끔 빌런들에게 동정심이 생긴다.(물론 모두를 옹호하는 건 아니고... 아무튼 특이 케이스 있잖아.)






처음에는 표지가 조금 무서웠는데 다섯 편의 단편을 내리 읽고 나니 표지가 더없이 적절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런들도 저마다의 사연과 얼굴을 가졌다. 가장 무서운 빌런은 '웃는 빌런'이다. 너무나 친근하게 다가와 삽시간에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잠식해 버리는. 내 인생에서 만난 빌런들은 대개 웃거나 미워할 수 없이 연약했다. 이해관계로 인해 생성되는 빌런들도 있다는 것을 쓰게 배웠다.

앤솔로지 <빌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단편은 '우세계는 희망'과 '송곳니'였다. '송곳니'는 읽는 내내 질퍽질퍽한 늪에 발 한 쪽을 담근 채로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딘가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덮을 수는 없이. 특히나 빌런을 잡기 위해서 어쩌면 빌런같은 방식을 택하게 된 수기를 보며 마음이 얼얼했다. 동시에 수기에게 이런 능력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분명히 막을 수 있었을텐데 치사한 어른들이 얼마나 많았나, 싶었다. 이름도 없이 숫자로 불리워지며 추악한 인간의 손에 휘둘렸던 투견들을 보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수기와 개들의 모습은, 투명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빌런이나 악당이라고 하면 막연히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인간같지 않은 어떤 존재이면서 정의로운 주인공의 손에 반드시 처단당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커서 보니 그렇지많도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영웅이거나 악당이다. 그 이면을 전부 가진 역설적인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니 영웅일 때의 면이 과반을 차지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소설 #장르소설 #앤솔로지 #안전가옥 #안전가옥앤솔로지 #빌런 #최구실 #김상원 #김달리 #엄성용 #김구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