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이명애 지음 / 모래알(키다리)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사실 그림책이나 동화책에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아파트 독서모임을 갔다가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허투루 흘려 보내는 지면 하나 없이, 면지에까지 그림을 그려 울림을 준다. 텍스트도 별로 없다. 이 책의 경우에도 그렇다. 만약 그림책을 두어 권 읽거나 소개받기 전이었다면 대충 휙휙 넘겨본 뒤 뭐야, 글이 하나도 없네?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는 한 장 한 장 공들여 넘겨 봤다.





<휴가>는 앞의 면지와 뒤의 면지에 달력을 적어두었는데, 각각 휴가가 포함된 달, 휴가를 다녀온 달인 것 같았다. 특히, 주인공의 모습이 다소 파랗게 질려 있어서 눈에 확 튀었는데, 휴가를 떠나 만나게 된 고양이와 함께하며 점점 제 혈색을 되찾는 모습에 깊은 공감을 했다. 나도 지난 6월 이른 휴가를 다녀왔기 때문..^^ 취준생 생활을 오래 하다가 2020년 10월부터 3개월 간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계약 만료가 되는 연말에 바로 이직에 성공해 현 직장으로 쉴 틈 없이 넘어왔다. 사실 공백이 생기면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었는데, 일단 이직할 기회가 생겼다고 하니 무작정 미루고 회사를 다녔다. 취준생 생활을 할 때 하던 외주 작업과 재택근무 알바도 유지하는 상태에서 평일 근무를 이어가니 점점 지쳤다. 지쳤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 더 열심히, 치열하게 버텨 냈다.

그러다 급하게 마감해야 하는 외주 작업이 생겨 5월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다행히 담당자님과 의논해 정한 기간 내에 마감을 한 뒤 급격한 번아웃이 왔다. 그 전부터 징조는 있었는데 광기 어린 긴장 상태가 지나가고 나니 삽시간에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일을 그렇게까지 해본 적이 없긴 했다. 그래서 마침 미리 내두었던 휴가를 6월 중순에 떠났다. 여수로 일주일간.




<휴가> 중 가장 좋았던 장면. 홀로 롱패딩을 챙겨 입고 파랗게 질린 안색을 한 주인공이 형형색색의 바깥을 보며 어딘가로 데려다 줄 터널을 가만히 본다. 저 터널을 지나면 뭐가 있을지, 내가 정한 목적지건만 매번 설레는 게 여행이다. 제주도에서 보름살기를 한 이후 두 번째로 한 혼자여행이었는데 나 또한 파랗게 질린 주인공처럼 파리한 얼굴색을 하고 여행을 떠났다. 사실 큰 기대를 일부러도 하지 않았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하기 쉬우니까. 일 주일 중 처음 2,3일은 정신이 없다가 비로소 4,5일차쯤 되어서야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안색을 되찾은 <휴가>의 주인공처럼 내가 나라서 좋은, 이 순간 이 곳에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느낀 뿌듯함과 평온함은 일생 동안 찾아 헤매던 것이었다. 처음 떠난 혼자여행에서는 외로움을 더 강하게 느꼈다면 이번 휴가만큼은 제대로 만끽한 기분이었다.

<휴가>를 찬찬히 읽으며 지난 휴가를 떠올리는 일련의 과정이, 다시금 지치고 진이 빠져버린 일상에 잠시나마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무엇보다도 색감이 상큼하고 다채로워서 눈이 즐거웠다. 이따금 휴가가 필요한데 갈 수 없을 때 펼쳐 보고자 한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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