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건너뛰기 트리플 2
은모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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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하기를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생애 첫 번째로 하는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라 하더라고 전했다.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는 데 성공하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고, 첫사랑에 빠지는 강렬한 순간들이 기억 사이사이에 기둥처럼 솟아올라 구획을 만드는데, 처음 접하는 경험과 자극이 드물어지고 빤한 일상만 반복하다 보면 긴 시간이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되어서 점점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p 51, <오프닝 건너뛰기>

<애주가의 결심>,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해>라는 책을 쓴 작가의 신작이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우선 작가의 이름이 무척 특이하고, 그래선지 책 제목도 눈이 확 가는 신선함을 지녔으니까. 이번 책 또한 (요즘 여고추리반 때문에 애청하고 있는) 티빙 구석자리에 떡하니 위치한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을 제목으로 했다는 점에 끌렸다. 본디 책을 쟁여놓기만 하고 새로운 책을 또 찾아 나서는, 북시멀리스트(Book+Maximalist 당연히 내가 방금 만든 단어)로서 좋은 기회를 지나치지 못하고 서평단 신청을 하게 된 흔한 경위였다.

나는 곧 서른에 접어드는 아슬아슬한 나이인데(?) 그래선지 세 단편 중 <오프닝 건너뛰기>에 특히 감정 이입을 했다. 스스로는 아직 철딱서니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이제야 뭐 좀 해보려나 싶어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간당간당하다고 하니 또 그런가 싶은 시기다. 친구들을 돌아볼 때에 누구는 한 직장에서 몇 년을 존버한 지구력 대장이 되었고, 누구는 차근히 경력을 쌓으며 하고픈 일을 향해 반 이상 진도를 뺐고, 누구는 알콩달콩 얌전히 연애를 하다 결혼이라는 새 장을 펼쳐 아득히 머나먼 어른이 되었다. 가끔은 내가 많이 느린건지, 조금은 유별난건지 고민도 해봤다. 연애한지도 5년이 훌쩍 넘었고, 이제야 안정된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궁극의 목표를 향한 조그만 발걸음도 작년에야 겨우 떼 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금세 불안을 잠재우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때쯤 들이닥쳤던 인생의 노잼시기가 여지없이 찾아들었다. 전에는 이걸 하면 내 기분이 좋아져, 확신했던 것들에 시들해져 버렸다. 인용구를 읽고 나서 알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성이 생긴다는 것임을. 조금 슬프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이랑 푸념처럼 하던 말도 떠올랐다. 우리는 다시 전처럼 풋풋하고 서툴고 뜨겁게 사랑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다 세 번째 단편인 <앙코르>를 읽고 마음이 무척 따스해졌다. 세영과 가람이 함께 낯선 곳을 헤집고 다니며 지난 상처를 꺼내어 보듬어주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서럽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없다는 모난 질투심이었다. 동시에 내가 세영이라면 용기낼 수 있었을까 고민도 해 봤다. 망설이기만 하다가 용기내지 못하고 내내 마음에 걸려하지는 않았을지. 매일 뉴스며 사람에 치이다보니 인류애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가깝고도 쉬운 방법으로 다시 사랑을 충전한다. 다시금 되새겨본다. 선함을 강함으로 삼을 것. 셀 수 없이 흔들리고 매번 넘어지더라도 버텨서 선한 사람이 바보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불어 나만의 사랑을 찾아도 좋겠다.

별 생각 없이 늘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을 애용하던 사람으로서 철딱서니 없고 눈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경호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난다. 왜 오프닝을 안 보냐는, 오프닝에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집약돼 있다는 말. 괜히 그 버튼을 모른 체 하며 오프닝을 멍하니 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본 포스팅은 자음과 모음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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