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퍼트리샤 포즈너 지음, 김지연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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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언급해서 나는 처음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벌어난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릴 때 필독서였던 <안네의 일기>를 읽던 나이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니 일기장에 키티에게, 를 모방하는 데 그쳤지만 선과 악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을 때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 책은 비교적 덜 알려진 카페시우스라는 인물에 대해 고발하는 보고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생활을 하다가 아우슈비츠에서 '약사'가 되었는지, '약사'로서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그의 대처는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특히 아우슈비츠의 참상에 대한 구체적 묘사들은 소름이 끼쳤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안네 프랑크 생각이 났다. 어릴 때 읽은 그 애의 일기가. 성인이 되었으니 그 애의 일기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치적 거짓말이 승리하고, 시간과 역사는 비틀리고 왜곡됐다. 말끝마다 '인도주의와 기독교 정신' 그리고 '우리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타령이다. 이 모든 배후에 있는 건 딱 하나다. 바로 영웅적이고 진정으로 우월한 독일인의 의식 세계를 향한 구약의 증오심이다.

p 237


요제프 멩겔레가 전쟁이 끝난 뒤 도피 생활을 하며 쓴 일기를 발췌한 내용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들은 인간이 얼마나 저열하고 역겨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경쟁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히만은 물론, 카페시우스와 멩겔레 모두 입을 모아 '우리 또한 피해자다, 명령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그랬을 뿐이다'라고 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카페시우스는 아우슈비츠에 처음으로 발령받았을 때만 해도 실체를 알게 되자 놀라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놀라운 속도로 적응했지만. '약사 삼촌'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사람 좋은 이웃이었던 카페시우스는 자신의 옛 이웃들을 만나도 별 반응 없이 가스실로 보내 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는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다는 판단이 서자 닥치는 대로 귀중품을 훔치기 시작한다. 그 중에는 차마 이 글에 적기 힘든 물품도 있었다. 그는 잘 돌아가는 머리를 활용해 아우슈비츠에서 복무했던 과거를 덮고, '그 물품'으로 약국까지 차린다. 꽤나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세 딸을 데려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결국 집요한 검찰들의 손에 잡혀 들어가지만 값비싼 변호인단을 선임해 자신을 철저히 변호한다. 완벽에 가깝게 변호를 해내던 카페시우스는 기나긴 수감생활에 결국 이성이 점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솔직히, 무척 기뻤다. 그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내 솔직한 감정 때문에도 성악설을 믿는다)

좁디 좁은 독서 세계를 넓히고자 한 달에 한, 두 권 정도는 교양 서적을 읽기로 했다. 이번 달은 <자유론>을 반 정도 읽었고 그러다 우연히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를 읽을 기회가 생겨 완독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이다 보니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았어도 모르고 있던 역사를 새삼 알게 되어 부끄럽고 슬펐다. 우리나라에도 바우어같은 검찰이 없었을까, 묻는다면 당연히 있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우리도 친일파를 완벽히 청산하고 가해자들을 뿌리 뽑았어야 했는데.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악행과 상반되는 나치 군인들의 일상을 보면서 분노를 거듭하다 결국은 슬퍼졌다.

우리는 모두 악을 품고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법과 제도로 족쇄를 걸어 두었다. 개인적으로도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심하여 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결국은 인생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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