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문과/이과 계열을 결정하던 시기, 나는 고민 한 번 없이 문과를 선택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수학이 해볼만 했다면 어느 순간 버거워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어릴 때부터 내가 언어 계열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번역가의 꿈도 꾸었었다. 한국말만 익히기도 바빠서 금방 접은 꿈이지만.
이 책은 다섯 명의 도서번역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다. 직장을 다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이 단절되어 번역가의 길로 들어선 분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흔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치우며 번역일을 하는 것이, 오롯이 일만 할 수 있는 시간을 쟁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간접 경험으로 느꼈다. 첫 번째 글을 쓴 노경아 번역가의 말이 무척 와 닿았다. 번역일을 하기로 일찍 마음먹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가끔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요즘 나도 부쩍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단 한 줄이지만 마음에 들어왔다.
작가 지망생이라고 매일 글을 써야지 책을 읽어야지 바쁘지만 미리 도전했다면 등단도 더 빠르고 인터넷 글 연재도 더 빨라서 지금쯤이면 제법 이름난 작가가 되어 있었을까? 기약 없는 공모전에 초라한 글을 욱여 넣으면서 매일같이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노경아 번역가처럼 나도 금세 그 생각을 치워버리곤 한다. 쉼없이 이런 저런 일을 해온 경험이 지금 한 글자라도 더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었는데, 너무 본새나서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만화 번역을 주로 한다는 박소현 번역가의 글 마무리였는데, 열정으로 일을 시작했다는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마음가짐이었다. 장르는 달라도 나 또한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이 책을 덮을 때쯤엔 다섯 명의 번역가가 마치 선배들처럼 느껴졌다. 마감을 정해두고 시간 안배를 잘 해야한다는 것,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세부 계획을 체크해가며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 글을 쓰는 건 창작 활동이라 계획이 사실 필요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를 몰이세울 채찍이 한 두개쯤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동시에 바쁜 삶을 쪼개어 이 글을 적은 번역가들과, 한 번에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는 지칠 뻔 했던 의지가 다시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비록 나는 막을 아직 올려보지도 못했지만, 결코 막을 내릴 예정은 없다.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지. 유독 관운이 좋은 내 사주를 믿으며 ㅋㅋㅋ 다짐을 해 본다.
본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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