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보다 재미있는 민화 이야기
정병모.전희정 지음, 조에스더 그림 / 스푼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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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실 권장 연령대가 초등학생 정도인 것 같은데...

그걸 모르고 읽게 돼서 ㅋㅋㅋ 처음에 조금 당황했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존댓말을 사용하는 공손한 책을 읽었다.

친절한 말투로 민화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내용이었는데, 제목처럼 만화보다 더 재밌다고 봐도 무방했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간 지 엄청 오래됐지만) 아직 민화 전시회?는 가보지 못한 것 같다. 의무 교육을 받은 시절에 들은 지식이 전부다. 그나마도 기억나는 건 맹하게 나오는 호랑이 정도. 그 때도 호랑이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해학의 민족이다, 라고 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어린이 대상으로 나온 책이라 그런지 글씨가 커서 자기 전에 침대에서 스탠드 하나 켜 놓고 읽었는데도 읽기에 수월했고 내용도 생각보다 알찼다.



민화도 실려 있고, 위와 같은 일러스트도 있었는데 무척 귀여워서 아이들이 읽으면서도 흥미로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민화는 당시 궁에 소속되어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이 아니라 서민들을 대상으로 더 값싼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들의 손에 탄생한 예술이다. 그래서 민화는 형식 파괴적인, 되려 추상화적인 그림이 많고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경우에는 서민들의 입장에서 통렬하게 지배 계층을 비판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화법을 보면 색감이 강렬하면서도 투명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값비싼 물감 값을 아끼기 위해서 포인트 컬러를 칠하고 선과 여백으로 나머지를 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에서 그린 그림은 온갖 색으로 꽉꽉 차 있는 것과 대비된다. 어떤 면에서는 서민들이 지배 계층에게만 속한 것 같은 문화를 선망하는 느낌을 주는데, 후대의 시선에서 보기에는 민화의 자유분방함과 다양한 쓰임새가 더 큰 가치를 느끼게 할 수도 있겠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맑고 잔잔한 물에 씻겨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깨끗해요. 덩굴을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줄기가 곧아요.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져 얕잡아 보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꽃이라 했어요.

p 66-67

연꽃의 성질을 설명하는 단락에서 문득 이장근 시인의 <왜 몰라>라는 시가 떠올랐다.

연꽃을 피울 만큼 내가 더럽지 않다는 걸 왜 몰라

고인이 된 설리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모두에게 큰 죄책감과 울림을 준 시이기도 한데,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기도 하며 '군자의 꽃'이라고 불렸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설명이기도 했다.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인데, 인간은 결국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순간을 포착하고 잡아두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원시 시대부터 동굴에 벽화를 새겼고 점점 진화해서 현실에 가장 가까운 기록 수단을 발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앞서 설명한 연꽃처럼. 그리고 그런 상징물을 보며 위로를 받거나 감정이 북받치기도 한다.

민화도 결국 문화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언뜻 조선 시대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가 있었는데,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지배층을 통렬히 비판하고, (일부) 지배층은 그것을 묵인하는 나름대로 자유로운 분위기? 하지만 철저한 신분제도 사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차피 반전될 수 없는 신분 차이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 주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왜 불꽃같은 성정을 지녔는지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아니, 하루 농사지어 하루 먹기도 바쁜 와중에도 문화 생활을 향유하고 서로에게 행운과 행복을 빌며 선물하는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관적인 해석이기는 한데, 인문학적 감성이 있는 사람 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해서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유쾌하게 현 사회의 불합리를 비꼬는 그림이라던지 돈 많은 양반들이 향유하는 그림과 병풍을 모방하여 중요한 날에 사용했다는 것이 '이게 뭐라고 너네만 하냐?'는 여유로운 비꼬기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역시 해학의 민족, 웃음으로 눈물 닦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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