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p 266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는 말일 것이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마치 나를 위해 태어난 문장처럼 공감되는 말이었다. 예전에 리딩 나잇에서 추천을 받고 구매를 하게 되어, 회사에서 틈이 날 때 야금야금 읽다 오늘에서야 겨우 완독을 했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이 등장해 각자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고 때로는 얽히기도 하는 책. 근데 정세랑 작가님은 인생이 몇 회차이시길래 이토록 다양하고 세밀하게 삶을 서술하시는 걸까? 아무리 사람이 싫어도 우리는 하는 수없이 사람을 만나며 살아야 하므로, <피프티 피플>은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표정이 변했다. 어떤 표정을 짓든 언제나 거기엔 불신이 섞여 있었다. 기쁠 때도 화를 낼 때도 심지어 잠들어 있을 때조차도.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 눈 너머로 매일 추락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얼굴.

p 270

 

 

 

어릴 때는 어른이 되기를 동경했다. 지금의 내 나이(스물일곱)가 되면 당연히 차도 있고, 집도 있고, 어엿한 직장도 있고,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꿈쩍 않는 무적의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 생각을 할 때는 아마 일곱 살 즈음이었을 테니까, 그 조그만 머리로 이십 년이라는 건 가늠이 잘되지 않는 수치였다. 나이를 먹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인간을 알다 보니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생경해졌다. 어느 순간부턴가 잠시 정신을 놓고 있다 보면 시간이 훅 가 있고 안달복달을 해도 시간이 멈춘 듯 느리기도 하다. 내게 맞춰진 시계만 큰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전에는 막연한 낙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믿게 되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환경이 변하고, 취향이 변할 수는 있지만 가장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그 무엇은 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설핏 잠이 들려 하는 혜린을 깨워 묻고 싶었다. 우리도 그렇게 변하면 어쩌지? 엉뚱한 대상에게 화내는 사람으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지쳐서 변하면 어쩌지?

p 30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변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지금 내가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나쁜 어른이 되면 어떡하지?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은 나름의 속도로 앞서 걷는다는 것인데 어느 순간 그 걸음을 멈추게 될까 봐, 그것이 제일 두렵다. 성장하지 않고 배우려 하지 않는 내가 될까 봐 두렵다.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지요. 당사자니까, 끄트머리에 서 있으니까. 그래도 오만해지지 맙시다. 아무리 젊어도 그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

p 381

 

 

 

어느 흰머리가 성성한 할아버지 의사의 말씀인데, 이 대목을 읽다 눈물이 울컥 날 뻔했다. 나는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만 멀거니 내려다보았는데, 여기가 알고 보니 징검다리라고 한다. 조금 더 힘을 내면 차례차례 다른 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그토록 미운 (일부의) 어른들조차 먼저 무언가를 닦아두었고 나는 그 끝에 서서 나름대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그래서 그들이 돌을 던져 닿지 못했던 곳에 내가 돌을 던지고 있는 거다. 내가 못하면, 내 다음의 누군가가 해 줄 것이다.

나는 늘 자아가 여럿이서 웅성대는 편인데, 무언가 특별하게 살고 싶어 하는 하나와 남들 따라 평범히 살고 싶어 하는 하나가 매일같이 뒤엉켜 진흙탕 싸움을 한다.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매일같이 Tv에 나오는 화려한 삶을 어릴 때부터 막연히 동경하기는 했지만 상상을 하다 보면 또 겁나 피곤한 일일 것이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싶고.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늘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기 때문에 게으르게 적당히 사는 법을 오롯이 즐기며 살지 못했다. '슈크림 의사'선생님 말씀을 듣고 울컥했던 것도 그 느낌이었던 것 같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퍼져 있겠다는 뜻은 아니고, 나는 나를 잘 토닥이면서 쉬엄쉬엄 걸어갈 것이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힘들게 하면 고치라고 하면 되고, 안 되면 곁에 두지 않으면 된다. 좋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아도 시간이 한참 모자라다. 좀, 단순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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