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 2018 제12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1
조우리 지음 / 비룡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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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내가 예전에 알던 세상보다 더 춥고 낯설다. 그리고 영원히 겨울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돌아가고 싶다. 엄마가 있는 곳으로, 하운이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돌아가 하운이의 작은 손을 잡고 웅크리고 누워 긴 겨울잠을 자고 싶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면 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의 모든 창문을 열고 따스한 햇볕을 온 몸으로 맞으며 내 아이와 눈을 마주 볼 것이다.

p 69 <김하연>

오랜만에 비룡소 청소년 컬렉션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표지도 눈에 띄었고, 어릴 때 읽었던 비룡소 특유의 감성이 좋았다. 아직 덜 자랐기 때문인지 유독 성장 소설에 눈이 가고 어릴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이 좋다. 10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새삼스럽게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한없이 해맑던 나의 청소년기, 그 때 그 친구들은 서로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었는지. 이제는 새삼 떠오르지도 않는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줄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던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하지 않았나,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한다.

특히나 하연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미혼모가 된. 그나마도 주변의 시선과 하연의 미래를 걱정해 하운은 외조부모님의 호적에 아들로 들어가게 된다. 새끼를 물어 죽이고 남편도 죽여 버리는 어미 햄스터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하연은 사실 그토록 자기 자신을 좀먹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임신과 출산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혼절할 듯 고열을 앓고 하연은 문득 생각을 했다.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비로소 하운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연은, 씩씩하게 잘 해낼 것이다.

 

 

수영아, 엄마는 말이지, 네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중요하지 않아.

p 94 <이수영>

수영의 어머니는 특별하다. 여타 부모님들과는 다르다. 술을 먹고 이성교제를 해서 교무실 앞에 무릎을 꿇고 벌을 받는 딸을 일으켜 세우고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되묻는 사람. 아이들은 성장하게 마련이라고, 잠깐 지나가는 일탈일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 수영은 처음으로 어머니를 따라 결혼식장 아르바이트를 간다. 주방에서 내내 설거지를 하다가 사장 사모의 싸움을 관전하고 빠질 것 같은 팔로 일당을 받아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수영에게 수영의 어머니는 한참을 고민하다 저렇게 말한다.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중요하지 않다고. 왜 저 문장이 마음에 콱 박혔느냐 하면,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 자고 있는지 버스 안은 작게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 외에 진공상태처럼 조용하다. 버스는 마치 거대한 침묵을 운반하는 것 같다.

p 126 <천현준>

 

현준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실종되어 버린 소년이다. 아버지를 찾으려고 이곳 저곳을 뒤지다 제보를 받고 어떤 아버지뻘의 남자와 매일같이 피씨방에서 잠복을 하게 된다. 결국, 경찰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엔 무관심 속에 부패가 다소 진행된 시체가 하나 있었을 뿐. 현준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탄다. 그 부분을 읽자 내가 태어나 처음 가 본 장례식이 생각났다.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화장터로 향하는 버스도 거대한 침묵을 운반하는 것처럼 고요했다.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노래가 흘러서 계속 훌쩍댔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듣는 일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역시나 내가 성장이 퍽 느리다는 것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학창 시절에 겪고 느끼는 감정들을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넘어지고 구르면서 배우고 있다. 느리다는 것은 차분히 배워가는 것이 많다는 것은 아닐까, 애써 생각해 본다. 아플수록 흉터는 진하지만 대신 새살이 돋은 자리를 어루만지면서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다. 최대한 아픔을 피하되, 고통을 맞닥뜨리면 모른 체 피하지는 말자.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본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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