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문 닫고 떠난 한 달 살기 - 열여섯 명과 여덟 도시 그리고 여덟 가지 버킷리스트
여행에미치다 지음 / 그루벌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뉴질랜드에서 지내다 보면, 가끔 믿기지 않는 풍경 때문에 헛웃음이 나오는 때가 종종 있다. 그 중 하나가 무심코 올려다본 밤하늘에 눈이 시릴 정도로 별 꽃이 한가득 피어 있을 때다.

p 29



요즘 '한 달 살기'가 트렌드란다.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트렌드세터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한 모양이다. 여행을 가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돈 핑계, 시간 핑계로 떠나지 않았는데 사실은 마음이 팍팍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어디로 떠나든 괴로울 것이 분명하므로. 다시 무기력증이 나를 덮쳤기 때문이다. 별 꽃이라는 표현을 보는데 왠지 코끝이 시큰했다. 상상만으로도 현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늦는 것도 즐거운 여행.

p 34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친구와 떠난 제주도 여행이었다. 9박 10일의 일정이라 여유가 많았고, 천천히 떠돌아다녔다. 길을 잃어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천천히 걷고 내키는 곳에서 멈추고 사진과 눈으로 풍경을 담는 여행. 이 책을 읽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3개월 후에 백수가 된다는 것이고, 그 때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들을 잠깐 잊어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아직 여행을 오롯이 즐기지는 못하는 아마추어 여행가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 이끌려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고, 자연스레 여행과는 거리가 생겼다. 그러다 여행이라고 해서 꼭 과제를 해치우듯 긴박하게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어 전보다는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만 씁쓸한 것은, 그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당연한 전제 때문이다.


 

 

 

 

 

 

 

같은 파트너와 같은 노래로 탱고를 춰도, 어제의 탱고와 오늘의 탱고는 또 다르다. 어제보다 하루 더 성장한 두 파트너가 추는 것이니까. 그래서 탱고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여행과 삶이 그렇듯이.

p 63



탱고를 배운 두 직원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나도 춤을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탱고 라는 장르, 제법 매력적일 것 같다. 나는 타고난 몸치지만.

고흐의 흔적을 좇아 아를에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고흐가 미친듯이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편지를 쓰던 도시, 아를. 그는 마치 직장에 다니는 사람처럼 정해진 시간을 지켜 그림을 그리고 남는 시간을 쪼개 두꺼운 책을 읽거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비록 정신이 건강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그는 오롯이 예술에 인생을 바쳤다. 요즘 글이 통 써지지 않아서 고흐를 생각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뭐 하는거지? 대체 뭘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아무래도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한 달 살기정도면 아주 적당할 것 같다. 나는 아주 느린 사람이라서, 고작 일주일로는 몇 걸음 떼보지도 못하고 다급하게 현실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길도 기웃거려 보고, 동네 주민들만 앉아 있는 식당에서 작은 용기를 내 혼밥도 하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멍을 때리기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무엇보다도 웃지 않고 지내고 싶다. 강박적인 웃음 근육을 쉬게 하고싶다.

사실 여행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드물게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여행 에세이를 이토록 공들여 끝까지 촘촘하게 읽어본 일도 손에 꼽는다. 책을 읽는 드문드문 형광펜으로 밑줄도 그어가면서 열심히도 읽었다. 책이 두껍고 무겁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일상에 지칠대로 지친 친구들에게 한 번씩 읽어보라고 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여행이라는 음모도 꾸며볼 겸 해서.

본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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