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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지음 / 바다출판사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읽은 때는 20대 한창 나이였다.
무릎을 치며 공감을 하였다. 모든 것이 유교 사상 때문이라 했다. 권위주의, 남녀차별, 서열 등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 '남성'을 위한 도덕, '어른'을 위한 도덕,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라는 것이다. '힘 있는 자'와 돈 가진 자'를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곡된 권위와 도덕적 가치, 허풍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 유교적 허세문화와 정치적 허세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그 때의 나는 이 책을 상당히 매우 좋은 책으로 평점 만점을 주었었다.
나는 자라면서 딸부자에 아들 하나있는 우리 집에서 차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동생이 누나들 등살에 괴롭다고 했다.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남녀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착각 이었다. 예의범절로 포장된 횡포를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무지였다. 초등학교 때 반장은 당연히 남자, 부반장은 여자였다. 출석부 이름도 남자가 늘 앞 번호였다.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아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는 복장 자유화였는데도 당연히 치마를 입어야 했다. 직장생활을 했을때 여자는 늘 먼저 출근해 책상을 닦았고, 커피를 탔다. 아무리 몸이 불덩어리여도 어른이 앞에 서계시면 얼른 자리를 양보해 드려야 했다. 선생님과, 선배, 상사의 말에 절대로 토를 달어서는 안 되었다. 이의 제기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딸 끝에 아들을 낳은 것도 유교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장손 타령에 굴복하신 것이다. 세월이 훌쩍 지나,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몇 번 탐독하고, 김진명의 고구려를 읽으면서 문득 이 책이 생각이 났다. 구부(소수림왕)가 그토록 뛰어넘고 싶어 했던,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싶어 했던 공자. 그런데 다시 읽으니 그 때의 그 느낌과 똑같지는 않았다. 머리말을 제외하고 첫 장 부터 어?... 이런 내용이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의 기억의 오류.. 좋았던 부분만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건가? 그 당시 내가 어떤 부분에 끌리고 매료 되었었는지 궁금해 끝까지 붙잡고 찬찬히 읽었다. 내가 꼰대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부 한국인으로 사는 열 가지 괴로움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인생의 최고의 책이라 생각했던 내게 뒤통수를 쳤다.
" 정치인, 기자, 학자들처럼 민족과 민주주의를 열심히 외치는 집단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찾아낸 우리들의 대안이 찬호와 세리, 그리고 릭 윤이지만 이것이 해답이 될까? 찬호의 스트라이크와 세리의 버디 퍼팅, 릭 윤의 미소에 일희일비하면서 손에 땀을 쥐어야 비로소 한국인인가? 그것이 나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그들의 개인적 선택에 대해 왜 우리가 '애국적' 박수를 쳐주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이 사실은 돈 때문에 나간 것이 아니고 국위선양을 위해서라고 자위를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등한 대리만족 때문일까?"
살짝 반감이 생긴다. 의도하지 않은 국위선양 맞다. 개인의 이익에서 온 어부지리 국위선양 맞다. 그러나 선한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 또한 사실이다. 과대한 찬양만 아니라면, 조금의 애국적 박수 정도야 쳐 줄 수 있는 일 아닌가. 대한민국이라는 인지도를 높였다. 그 덕분에 다른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 박세리 키즈들이 LPGA를 휩쓸고 있으며, k-pop열풍으로 문화 수출에 의한 이익 또한 어마어마하다. 작가는 지금 이런 열풍을 보면서 아직도 박세리와, 박찬호에게 '애국적' 박수 보내기를 떨떠름하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백두산 천지를 보며 수많은 미사여구로 민족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이들에게도 고깝게 말한는 것이다.
"산을 가다 보면 산이 있고, 산이 있다보니 폭포도 있고, 호수도 있음이 무에 그리 넋을 놓고 노래하며 민족 장래 모두를 부탁할 만큼 대단한 것이던가? 그것은 백두산 아랫마을 이도백하의 시작 언저리에서 더덕 몇 뿌리를 천년 묵은 약초라고 팔고 있는 허술한 장사꾼의 보따리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몸짓들이다. 신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흐름 속에 어느 한 지역 문화의 성스러움 이나 순수 가 그들만의 원시적 가치로 남아 있도록 놔두지 않는 그 흐름 앞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를 외치게 될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감정과 생각이 왔다 갔다, 이랬다저랬다 혼란스러웠다. 1부를 읽을 때와 2, 3부를 읽을 때,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의 마음과 생각이 달랐다. 왜 그런 것일까? 답은 맨 뒷장을 덮은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2부는 유교의 해악, 출발과 기원, 왜곡의 역사, 조상 숭배 의식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며, 3부는 한중일 삼국의 식칼과, 음식을 통해 문화 비교를하며 일본 찬양을 해댄다. 그래서 1부와 같이 3부도 반감이 생겼다. 중국은 좋게 말해서 다국적이고 나쁘게 말해서 다소 오만하다고 평한다. 그들의 주된 음식인 돼지볶음 '차오'를 빗대어 둔탁하고 불투명하며, 실체를 잡을 수 없다고 중국 문화의 정서를 비꼰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극찬을 한다. 뒤가 없는 일본인들의 진솔한 면을 '쓰시'에 빗대어 투명하고 정갈한 국민성이라 칭찬하며,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해 주고 발휘할 수 있는 문화성이라 극찬 한다. 그에 비해 한국의 '찌개'는 이름부터 몰개성, 억지가 가득한 음식이라고 한다. (잡탕찌개, 부대찌개, 섞어찌개) 김치와 된장 고추장에 대한 평도 영~.
마음에 안 든다. 맛에 변화를 전혀 줄 수 없는, 유연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음식, 외부 변화에 대해 유달리 둔감하고 고집이 센 한국인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평한다. 같은 것을 두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것 아닌가? 한국의 찌개를 두고 좋게 평한 글도 많이 읽었다. 작가는 그것도 민족주의를 앞세운 문화적 해석 이라고 말할 것이다. 가장 반감이 가는 것은 "일본을 용서 한다"는 단락이다. 뺨을 때린 놈은 때린 적이 없다고 우기는데 맞은 사람이 나서서 난 널 용서해 사랑해~~ 네가 가진것이 많기 때문이야 너에게 배우고 싶어 어떻게 하면 미개하지 않게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또한 일본이 6가야에 자신들이 지역 통치를 위해 '임나일본부'를 두었다는 주장을 완전 부정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한다. 그 지역에 정말 '임나일본부'가 전혀 없었다는 기록도 없고, 완전히 백제나 신라의 통제를 받았다는 기록도 없기 때문이란다. 없다는 기록이 없기에 인정을 할 수 없다니, 기록이란 있는 것을 기록하는 게 아닌가? 작가는 애국적 역사풀이를 그만 두자고 한다. 그러면서 식민사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주고받으며 때로 싸우고 화해하는것, 이것이 바로 문화다. 만일 우리가 일본에 건네준 문화의 일단면만을 가지고 일본을 문화적 속국으로 치부하려고 하는 한, 그건 우리가 일본의 강제 통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부려보는 억지고, 또 다른 컴플렉스일지 모른다는 혐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게 된다."
4부는 대한민국의 커다란 숙제 교육, 입시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학벌주의, 일류 지상주의를 유교의 뿌리에서 찾는다. 이 부분은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5부는 결론 부분으로 유교의 오만을 벗어버리고 국가를 넘어 하나의 인류, 문화를 만들자고 말한다.
"한국인을 넘어서. 한국인의 문화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보자, '유토피아를 꿈군다.' " 작가의 외침 이다.
외면적으론 유교를 비판하지만 내면은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있다. 난 민족주의자 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혈통적으로 하나를 말 하는 것 아님)라는 민족주의와 전체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러나 국수적 민족주의, 한국적 쇼비니즘은 아니다. 내 민족이 자랑스럽고, 민족을 강조하는 우리의 근성이 좋다. 이 민족의 근성이 없었다면, 그 수많은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며, 일제강점기를, 6.25를, IMF를 금융위기를, 코로나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만의 특유 근성이 나는 좋다.
"민족주의, 우리 사회 저층에 깔려 있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정서가 오늘 이 사회에 공헌한 것은 무엇인가? 척화비의 주인공 대원군이 승리했는가? 사대부들이 일제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았는가? 해방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는가? 남북을 이어노았는가? 전쟁을 막았는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는가? 투명하고 건강한 경제구조를 만들어놓았는가? 무엇 하나 바꾸어본 일도 없고 올바른 예측 한번 변변히 해보지 못한 우리들이 여전히 우리 민족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가? 귀 막고, 입 막고, 눈을 가린 채 '우리끼리 만세'를 부르면서 미래 사회를 운운해도 되는 일까? 정말 우리들은 도도하게 변하며 흐르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땅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은 한통속이 되어, 민족주의 속에 마련된 기득권과 권위의 달콤한 꿀을 나누어먹고 있다." -p57-
저자는 본문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다양한 사회 현상을 유교라는 하나의 잣대로 매도하는 우를 저지르는 멍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말 한다. 멍청이는 아닐지라도 한쪽으로 너무 쏠린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우리 사회의 저변에 유교 문화의 특성이 두텁게 깔려 있음은 부인하지 않지만, 유교를 타파하기 위해 민족주의까지 부정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듯하다. 작가의 주장처럼 "우리 사회에 더러운 부유물처럼 떠있는 목소리와 주장과 구호와 이념들 밑에 도사리고 있는 유교적 권위, 그리고 그것 앞에 엎드리는 타협, 그래서 만들어지는 불평과 불투명함들. 그 본질들을 해체하고 찢어내고 씻어내야 마땅하다.
"유교 문화의 내부에는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유교 문화가 내거는 가치 척도는 '도덕 사회'를 이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상적 도덕 사회. '인'의 세계로 표현되는 이 사회는 절대적 인격체 '성인'에 기반하고 있다. 억지와 희망이 만든 착각의 세계였다."
"주로 정치적 사고에 익숙한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도 살펴보고 또 다른 삶의 지평으로 넓혀갈 수 있다는 면에 대해 대단히 무지하다. 이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정신적, 문화적 독재를 획책하고 있는 지배자들(정치,경제,교육,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친)의 교묘한 통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교 문화 속에서의 '힘'은 단순한 이분법적인 관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늘과 땅, 남과 여, 왕과 백성, 부모와 자식들은 이 '힘'을 주고받는 이분법 체계 속의 대표적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 존재들 속에서 '힘'은 상하 수직의 루트를 따라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문제는 '힘'의 사용이 상식과 법, 그리고 수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시스템 속에서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프로그램, 즉 유교 문화가 만든 권력 구조 속에서 발생했음에도, 다시 한 번 도덕으로 돌아가는 다시 유교 문화 속으로 스스로 기어드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데 있다"
20대 때와 지금 다시 읽었을 때 그 느낌이 다른 이유는, 아직 유교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1990년대 보다는 훨씬 많이 유교를 지워냈다는 것이다. 책에서 작가가 주장해왔던 것들이 많이 이루어졌고,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들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면 그 때 이 책이 쓰여진 덕분인가? (정말이지 끝까지 생각이 왔다 갔다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 예로 언어의 변화와 효의 근본적인 의미가 바뀌었으며, 노인복지가 시스템화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한번 굳어진 어휘에 대해서는 검증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언어란 변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 따라서 시대에 맞는 언어를 늘 새로운 마음으로 골라 사용해야 하는 법. 언어란 사회 공동의 가치를 담는 그릇, 따라서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선택한다는 뜻은 바로 사회 고동의 가치를 담을 그릇을 다시 씻고 다시 만들어간다는 유연한 태도를 의미한다."
지금 21세기 아이들과 미디어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언어가 새롭게 정의되고 만들어 졌는지 작가도 아실 것이다. 유교의 악습 또한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했지만 계속적으로 지워 나가고 있다. 아니 지워져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세대는 유학을, 유교를 모른다. 그리고 일반 시민의 의견이나 여론을 대변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은 90년대 시점에서 읽으면 좋을 듯하다. 다소 진부하고, 올드하다는 얘기다.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는 책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