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구원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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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확신이 없을 때

기독교인들 조차도 구원에 대해 물으면 명확하게 답하는 이가 드물다.
구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 사하시고 죽음에서 구하여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일차원적인.단편적인 개념으로만 알고 있다.
구원이 무엇이며, 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구원은 어떻게 받는 것인지(믿기만 하면 받는다는 건 지극히 단편적인 것이다-온전한 믿음이 없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왜?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세세하고 명확한 관점으로 설명해 준다.
저자는 복음과,구원에 대해 애매하게 이해하고 포괄적으로, 실존과 연결하여 이해하지 못한데 대한 잘못을 지적해 준다.

구원론에 대해 불확실하거나 그릇된 이해에서 오는 믿음이 성숙한 신앙인이 되지 못하게 하며, 구원에 대한 올바른 자기 이해가 있어야 확신이 생기며,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교회밖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하고 구원을 얻도록 할수가 있다.

성경은 악과 고난에 짓눌려 있는 인생을 '죽은 자'라고 한다. 죽음의 '병균'에 의해 점령당하여 가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도 성경은 인생이 죽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죽음 과 그 증상들이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 이다

구원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구원의 첫 열매는 받고(아직)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자로서 여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초림) 말미암아 구원은 첫 열매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구원의 과거를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에 동참하며 그의 됨됨에 동참하여 예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화로 구원의 현재의 때이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재림) 이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는 구원의 미래 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산다는 '긴장' 속에서 살아야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세상에서 악과 고난 가운데 살고 있으나,
세상의 시민으로 살지 않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윤리이다,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은혜로 받은 자로서 사는 것,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이 합당히 행해야 할 윤리인 것이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사탄을 주라 고백하지 않으며, 이 세상의 길과 가치를 버리고 예수님이 주이신 것과 그분의 뜻대로 살 것을 고백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 이것이 곧 회개요, 구원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관계, 하나님께 스스로를 여는 관계를 갖고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공급 받아 하나님의 무한한 힘으로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곧 의인 됨 이다.
자기의 제한된 자원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자원에 힘입어 사는것.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에 동참하는 것 이것이 구원의 실재라 한다.

그러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셔 직접 보여주신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나만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주신 사명을 우리도 감당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한 우리가 오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이 악한 세상에서 이 세상의 정신과 그 가치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 할 수 있다.
고난을 통해 옛사람이 점점 닳아져 가며, 반대로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여 생겨난 새로운 삶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주님이 가신 그 길 나도 따라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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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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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치고 힘들어 희망과 용기가 필요할 때

와일드(셰릴 스트레이드)

삶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위기나, 시련,방황의 때가 오기마련이다.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묵묵히 살아나가는 이가 있고, 외면하고 슬쩍 피해 다른 길로 피하는 이도 있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인생의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돌파해 나간 삶의 실체를 보여준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형식의 이야기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엄마의 죽음과 그로인해 뿔뿔이 흩어진 가족, 남편과의 이혼, 어릴적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뜨리며 방황하던 때에 우연히 퍼시픽 크러스트 트레일 (4,285km) 의 강한 끌림에 빠져 자신을 찾고자,9개의 산맥을 넘고,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를 지나며, 사막과 황무지, 눈덮인 산을 걸으며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길을 걷고, 절대 고독과 육체적 고통, 외로움과 싸우며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하나하나 찾으며, 자신의 존재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가장 스펙타클하며,매혹적이고, 진솔한 3개월간의 인생 고백이다.
읽는 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풀수가 없으며, 함께 사막을 걸으며, 곰을 피하고, 방울뱀을 피해서, 눈 덮인 산을 넘어, 발톱이 빠지고 배고픔과 외로움을 함께 느끼게하는
몰입감 최고의 필력을 갖추고 있다.

이 여정의 끝에 셰릴은 이렇게 고백을 한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 외에는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없었다. 내가 정말로 해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그게 정말로 해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제는 더 이상 텅 빈 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저 수면 아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셰릴은 PCT를 계획하면서 이 여정을하는 동안
자신이 큰 깨달음을 얻을것을 기대하고,
이 여정을 끝내고 나면 자신의 잘못 산 인생이 깨끗이 씻겨나가고 새로운 삶을, 바뀐 삶을 살수 있을거라 기대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PCT를 무사히 마친 셰릴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자신이 해냈다는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삶이 깨끗이 지워지기를 원하지도, 뭔가 새로운 삶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삶 만큼이나 소중함을 알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지금 그 모습 그대로를 끌어안았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획하고 도전하면서 그 후에는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거라는 기대를 한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무언가로 확 바뀌지는 않는다. 그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살아내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삶이였고 무언가 자신의 내면이 바뀌었음을 안다.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멀리 돌아가든, 지름길로 질러 가든
각자의 길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 방법은 누가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찾을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인생에 한 번 쯤은 길을 떠날 필요가 있는듯 하다.
각자의 폭스바겐 비틀 or 몬스터를 등에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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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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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올바른 이해를 알고싶을 때*

복음이란 무엇인가(김세윤)

그리스도인 으로서 복음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그 의미와 뜻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나 또한)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역을 하고 있다.
김세윤 교수는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명쾌하고도 쉽게 복음을 설명해주고, 복음의 오류를 바로 잡아 준다.

그는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복음을 단순히 내세에서 우리 영혼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 정도, 또는 현세의 물질적 축복을 약속하는 것 정도로만 이해한다고 비판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은 해방의 복음 으로써, 복음이 올바로 선포되는 곳에는 항상 노예와 여성이 해방되었고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인권이 증진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복음의 올바른 이해와 선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복음은 예수가 전한 복음(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있으며,
예수가 전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통치에 임하라고 선포하는 것으로써, 우리를 하나님나라 속으로 들어오라는 부름 또는 초대이며,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관념적인 곳이 아니며, 죽은 다음 내세에 영혼이 가는 곳만은 아니라고 한다.
예수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가 지금 벌써 이 땅에 와서 그 구원의 힘을 첫 열매의 형식으로 나마 발휘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예수의 이땅에 오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죄를 회개하며(사단의 나라에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오는"하나님의 통치를 받을때, 그리하여 사랑의 이중계명(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을
실천할때, "첫 열매"의 형태로나마 "오는"(실현된) 것이다. 이땅에 하나님 나라의 샬롬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영생의 나라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여 그 사랑을 내 이웃에게 실천함으로 이 땅에 평화(인종차별, 성차별, 부의 공평성이 실현 됨), 하나님의 샬롬이 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라는 것이다. 그후에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때 죽은 신자들이 부활하여 그의 구원의 완성에 참여하게 될것이며,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죽음의 상태는 "잠들어" 대기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를 통한 "약속"과 그의 죽음을 통한 그 약속의 "성취",
그리고 그의 부활을 통한 그 성취의 확인 으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 졌다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의 "첫 열매"를 맺도록 사명을 받았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될 권리를 주셨다. 그와동시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의무도 부여하셨다. 그래야만 이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1차적인 "첫열매"를 맺을 수 있기때문이다.
나 혼자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고 잘 살았다.
내세에 하나님 나라에 가는것이 진정한 복음이 아니라, 내 이웃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는 1차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게 복음의 참 뜻인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계속 불의를 행하고(나의 사업장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것,나만 잘먹고 잘 사는것) 죄를 짓는다는 것은(거짓을 행하고, 속이는 것)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속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자녀된 이 땅에서의 삶인 것이다.

하나님이여 나는 연약하오니 나에게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시어 "의"를 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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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 Novel Engine POP
나나츠키 타카후미 지음, 주원일 옮김, Renian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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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인 아들이 읽고 싶다고 주문해 달라고 부탁하며, 엄마도 꼭 읽어보라고 권한 책 (만화와 소설 두 버전 모두 있씀)

내용을 읽어보니 내가 예전에 젊었을 때 읽었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가 생각 난다.

아주 지극히 일본적인 십대 로맨틱 소설, 순수하고 포근하고, 잔잔한 십대의 사랑이야기~~
십대들에겐 설레고 두근두근 거리는 첫사랑을 상상하게 하며, 중년에겐 다시 풋풋하고 따스한 사랑이 생각 나게하는 Romance 책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과 비슷한 컨셉의 신비한 두 세계를
오가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
청춘의 사랑 얘기는 어느 세대나 다 통하는것 같다.
나는 아들에게 내가 읽었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를 추천해 주었다.
세대간의 소통을 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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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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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엇인지 궁금 할 때**

인생 이란 무엇인가?
산다는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린 종종 고민하고, 고민한다.
이런 고민에 대해서 위화는'인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서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라고.

삶에는 옳고 그름이 없듯이, 그 누구의 삶도 헛되거나, 귀하고 천한 삶은 없는 것이라고, 그냥 모두다 살아가는 것 뿐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동경한다.
위대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 혹은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을 동경하고 잘 살았다고,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주 지극히 보통적이고 평범한 삶에 대해서는 뭔가 잘못 산것 같다고,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나이 들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때, 무얼하고 살았는지 몰라하며,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게 없다고 늙음을 한탄하고 자신의 삶을 헛 살았다고 괴로워한다.

'인생'은 푸구이라는 한 노인의 고단한 삶을 통해 살아간다는게 무엇인지를 진솔하게 토로한다.
여기에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중국의 근현대사를 신랄하게 보여주며, 한 가정의 흥망성쇠 속에서 가족간의 사랑과, 부부간의 사랑, 남매간의 사랑,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사랑, 인간 푸구이와 소 푸구이간의 사랑, 우정을 볼 수있다.

푸구이의 인생은 젊었을때는 지주의 아들로 방탕하며 살았고, 자신의 방탕함으로 몰락한 가정을 일으키고자 소작농으로 전락한 삶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이란 열심히 묵묵히 살아 간다고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지는 않는다.
그의 인생은 몹시도 고달프다 못해 차라리 삶을 포기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힘겹고, 애처롭고,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도 푸구이는 자신의 삶을 평범하게 잘 살았노라 말한다.

-내 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았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 이었던 거라네.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볼품없었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주변 사람들을 보게나, 룽얼과 춘성, 그들은 한바탕 위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제 명에 못 죽었지 않은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게 좋은거야.
아옹다옹 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게 될 뿐이라고 -
- 본문 중-

위화는 해학의 작가다,
허삼관 매혈기 에서도 인생의 풍파를 해학적으로 풀어 내더니 '인생'에서도 나를 허허롭게 웃게 만든다. 위화 특유의 유머, 웃기면서도 결코 맘놓고 웃을수 없게 하고, 슬픈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어머니의 병 때문에 의사를 부르러 가던 중 중국민족해방 운동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막바지에 이른때 군인으로 끌려가서 생사를 넘어 이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고, 돌아온 집에는 벙어리가 되어버린 딸과 아내와 아들 만이 맞아 준다.
수혈을 해주다가 자신의 피를 다 뽑힌채 억울하게 죽은 어린 아들을 손수 묻어주고,
아들을 낳다 죽은 딸을 자신의 손으로 묻으며, 평생을 자신을 만나 고생한 아내를 손수 묻고, 사위와 어리디 어린 손주까지 자신의 손으로 묻어 주었는데, 자신의 삶이 평범 했다고 하니,
너무 운명론자가 아닌가? 하며 괜시리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어쩌면 푸구이가 부인과 읊조리던 말이 이해가 되는것 같기도 하다.
"그게 다 운명인 거지".
모든걸 다 운명으로 받아들인 푸구이~~
푸구이로서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받아들이거나, 삶을 포기 하거나, 푸구이는 '운명'이라고 치부하며,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다.
내일의 더 나은 삶을 기대하거나, 위해서가 아닌, 주어진 오늘을, 매일매일을 살아내기로 선택한 것이다.

위화는 푸구이를 통해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말한다.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삶, 그렇다고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거나, 인생에게 비겁하게 무릎을 꿇거나 등을 보이지 않겠다는,
나는 꿋꿋이 그대로 직진을 할것이며 내 삶을 살아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푸구이는 운명론자가 아니다.
그냥 자신의 노력으로는 어쩔수 없었기에
그 모든 삶을 받아들인 것이다.
모두다 죽고 소 푸구이와 함께 남은 삶을 어깨에 나란히 걸머지고 살아가는 푸구이가 인생의 완승자 인 것이다.

푸구이는 라오취안 같이 인생을 얕잡아 보다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고, 춘성처럼 열정적으로 위세를 떨치다 인생에 굴복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에게 다가온 삶을 모두다 받아들이고
흡수해 버린 것이다.

푸구이의 삶의 이야기를 들은 화자
(젊은 민화수집가)는 이렇게 말한다.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 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 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 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었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 이었다.
그런 노인을 시골에서 만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생활이 그들의 기억을 흩뜨려 뜨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대게 지난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듯, 마치 길에서 주워들은 것처럼 드문드문 기억할 뿐이다.
한두 마디로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해 버렸다. -
-본문 중-

-이생각 저생각 하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를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나도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네.
내가 죽을 차례가 되면 편한 마음으로 죽으면 그만인 거야.~~ - 본문 중 -

나는 내 삶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내가 젊은날을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늙어가는지를 꿰뚫어 볼수 있을까?
그 답은 내가 내 인생을 얼마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았느냐에 달려있는것 같다.
인생아 오거라~~
내가 너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니 나랑 벗 삼아 어깨동무하고 걸어가자 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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