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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핑 뉴스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향...
누군가는 모진 타향 살이의 쓴맛을 보고 따스한 위로를 받고 싶어
되돌아가는 곳. 누군가에게는 돌아가 안기고 싶지만 누리고 있는것을 포기하지 못해 그리워 만 하는 곳.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빙산과 얼음, 눈보라, 사방이 바위뿐인 폭풍우의 섬 뉴펀들랜드는, 모진 시련과 풍파를 겪은 쿼일이 새롭게 희망을 가지고 출발 할 수 있을것 같은 마지막 기회의 땅이었다.
기괴하리 만치 구부러진 큰턱, 피부는 두드러기로 뒤덮인 지저분한
외모, 배는 요란하게 꾸르륵 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엄청난 대식가,
커다란 덩치의 쿼일은 비틀 비틀 이십 고개를 넘어 삽십 대에 접어들자 삶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법을 터득했으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말을 똑똑히 하는 것도 실패, 바른 자세로 앉는것도 실패,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실패, 태도도 실패, 야망도 능력도 실패, 사실상 모든것이 실패 였다. 그것은 아버지 자신의 실패 였기에 언제나구박과 경멸의대상 이었다.
퀴일은 고통이란 모름지기 속으로 조용히 삭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상대를 자극 할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죽이고 밝게 행동하려고 애썼다. 사람의 시험, 고통이 클수록 견디는힘도 커지는 것, 지금 이고통을 넘으면 언젠가는 행복이 오리라,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그를 옥죄어
왔다. 회사에서는 해고를 당하고, 부모님은 두 분다 암에 걸려 동반 자살을하셨다. 언제나 다른 남자를 찾아 다니던 아내는 내연남과 밀월을 떠나다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의 생명과도 같은 두 딸을 아내는 돈을 받고 팔아 버렸다. 쿼일에게는 아무것도 남이 있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고모가 나타나 딸들과 함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가자고제안을 한다.
지극히 단조로운 한 남자의 굴곡진 인생사, 쿼일가의 역사와 숨겨진진실. 어떤 큰 반전도 가슴을 조이는 큰 사건도 없다. 외지고 황량한낙후된마을에서 일어나는 군상들의 삶의 이야기. 그런데도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흡입력이 대단하다. 그 흑입력 때문에 다음 장을 넘길 때마다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고 마음은 설레어 진다.
문장의 아름다운 시적인 표현들은 이 책에 빠져들게 하는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이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에 선 부싯돌을 그을 때 풍기는 초록빛 향기가 났다. 도랑엔 머위가 자라고. 정원엔 툴립이 바람에 흔들리며 요란하게 토닥거렸다. 사선으로 내리긋는 빗줄기, 시곗 바늘은 투명한 저녁을 향해 돌진했고, 하늘은 새하얀 손이 카드를 양손에 나눠 쥐고 끝을 튀기며 섞고 있는 듯 일렁거렸다."
부모님이 자살한 날을 이토록 나른 하면서도 푸근하게 표현한 부분은 카뮈의 '이방인'의 첫 문장을 연상케 한다. 외모와 다르게 감성적이고시적인 쿼일의 은유적 표현은 이야기 곳곳에 나타난다 .
쿼일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어투 또한 시적으로 표현을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에게 기자라는 직업은 천직인 듯 하다.
"고모의 목소리엔 질주하는 차의 창문 틈새에서 나는 소리처럼
'쉬익'하는 배음소리가 난다."
"늙은 항무관은 어깨를 웅크리고 이빨 틈새로 말을 뱉어냈다.
그의 시커먼 입속에서 과거가 샘물 솟듯 흘러 나왔다.
쿼일은 악취가 나는 검은 날갯 죽지에 감싸인 기분이었다."
"슬픔어린 어조. 그는 마치 봉투 속에 존재하는 듯했다.
이따금 봉투가 열리고 납작해진 그가 테이블 위로 미끄러져 떨졌다"
"흰 거품들을 물고 기어오르는 만의 파도가 마치 큰 상처 속에서
우글거리는 구더기 떼처럼 보였다."
쿼일은 뉴펀들랜드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회복 했고, 자신의 인생을
찾았으며, 아픈 사랑의 상처를 치유했다. 뉴펀들랜든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핥아 치유해주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이들은 뉴펀들랜드를 못견뎌하고 떠나버린다.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거친 폭풍우에 맞서 잠잠히 살아내고 있다. 두 아들을 바다에 잃은 잭, 거센 바다에 남편을 빼앗긴 웨이비, 한번도 결혼을 해보지 못하고 늙어버린 버니, 자신의 피속에 들끓는 바다의 부름을 거부하고 사는 데이비, 어릴적 씻지못할 상처를 입은 고모, 그들은 모두 뉴펀들랜드의 거센 폭풍우에서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 그들은, 쿼일은 인생이,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있으며,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저 멀리의 풍경이 그에게 너무도 중요하게 다가왔다. 바다와 거대한바위를 배경으로 한 작은 형체들, 복잡하게 뒤엉킨 삶이 허울을 벗자그는 인생의 구조를 볼 수 있었다. 생이란 바위와 바다, 그리고 그것들을 배경으로 잠시 스쳐가는 작고 하찮은 인간과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예리한 시선이 과거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철새 떼 같았던과거 세대들과 작은 돛이 점점 흩뿌려진 만과 다시 활기를 되찾은 마을과 생선 비늘로 반짝이는 그물이 드리운 심연의 바다를 보았다.꿰일 일가가 세월로 악을 씻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 이제 고모는 땅에 묻힐 것이고 쿼일과 웨이비는 늙어 꼬부라지고
딸들은 먼 도시로 떠나가리라. 헤리는 머리가 반백이 되어서도
나무개와 색실에 환희를 느끼며 지붕 밑 다락방이나 계단 아래
방에서 잠을 잘 것이다. 쿼일은 순수에 대한 감각을 되찾고 떨리는균형 속에서 세상사를 이해했다. 세상 모든 일이 전조라는 껍질에 싸여있는 듯 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기에 거센 폭풍우도 맞아내며, 앞으로 앞으로 노를 저어 나아가는 것이리라. 읽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책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