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회주의서적을 접하는 데 있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찌할 수 없는 인식의 차이가 내재해 있었다. 김범우는 지주의 아들로서 소작농들의 헐벗고 굶주리는 비참한 생활에 대하여 자책과 죄의식을 느끼고, 인간다운 삶을영위할 수 있는 이상적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면 필연적으로 봉건 계급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의 기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염상진에게는 그런 자책과 죄의식의 과정은 아예 생략되었고, 이상세계의빠른 실현을 위해 지주계급이나 경제적 지배세력을 타도할 수 있는무산자들의 힘의 조직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김범우가 인간생존의양심을 밝히는 불씨를 얻었다고 한다면, 염상진은 인간생존의 방법을뒤바꾸는 무기를 얻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염상진이 그들 책을 통해서 받은 충격은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었고, 새로운 빛의 출현이었고, 새로운 길의 열림이었다. 가난으로 기죽어 식어 있는 피를 뜨겁게 끓게 했고, 비천으로주눅들어 움츠러든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가난도 비천도 함께면해보자고 사범학교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어줍잖고 가소로운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마르크스의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볼셰비을 실천함에 있어서 그까짓 소학교 선생자리는 헌 짚신써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