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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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잡아들면 고양이가 무언가 뒤에서 나를 빼꼼히 바라보고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 한들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녀석과 눈이 마주치니 그러한 생각이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그나저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갓 서른 살이 된 우편배달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뇌종양 4기 진단을 받고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다.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행복했든, 불행했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죽음이라는 끝. ‘나’는 슬프지만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런 그에게 악마나 나타나 “이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앤다. 그 대신 당신은 하루치 생명을 얻는 겁니다.”라며 거래를 제시하고 인간 특유의 이기심을 자극한다. 결국 그는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전화와 영화, 시계를 차례대로 없애는 대신 하루치의 생명을 보상받는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시한선을 코앞에 두고 자기가 없앤 사물들을 통해 그동안 얻고 잃은 것을 되돌아보며 그 과정에서 자기가 놓친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린다. 고양이는 그의 추억 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고 그와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유일하게 그가 곁을 지켜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악마나 세상에서 고양이를 없애자고 제안한다. 잔인하지만 자신의 목숨과 고양이를 저울질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뭔가를 가로채 생명을 연장하는 걸 행복으로 여기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수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생전에 아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대로 아버지에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띄운다.

사물의 소멸과 하루치 생명을 바꾸며 그동안 잊고 있던 존재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책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라는 글귀가 머릿속에 맴돈다. 어쩌면 가장 진화한 생명체인 인간이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쓰지 못하고 스스로 만든 규칙에 얽매여 우선순위가 뒤바뀐 채 산다. 당시에는 많은 것을 얻은 듯 만족감을 느끼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특히 죽음을 앞두었을 때) 잃어버린 것들(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주인공에게 악마가 나타나 제안했을 때 주인공과 같이 마음속으로 어떤 걸 없앨까 고민했던 나를 보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내용 속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운 것 같다.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34 - 머지않아 죽는다는 운명을 나 나름으로 받아들였던 건 분명하다. 그런데도 막상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거래라도 매달리게 되었다. 죽을 때는 발버둥치지 않고, 침착하고 편안하게. 나는 그러고 싶었고,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죽음이 코앞에 닥치자, 지푸라기에라도(악마에게라도) 매달리고 싶어 하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성이 내 안에서 드러났다.

102 - "삶은 아름답고 근사한 거야. 해파리한테도 사는 의미가 있어."



그렇다. 해파리조차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도, 음악에도, 커피에도, 그 어떤 것에도 존재하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것’이 무수히 모여서 사람 형태를 본떠 만들어진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봐온 수많은 영화와 그 영화와 연결된 추억들이 단적으로 표현된 모습이 바로 나 자체인 셈이다.

136 - 내가 살아온 삼십 년간, 과연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해왔을까? 정말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말을 해왔을까?



정말로 소중한 것을 뒤로 미루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눈앞의 것을 우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이다.



눈앞의 것에 쫓기면 쫓길수록 정말로 소중한 것을 할 시간은 사라져간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 소중한 시간이 사라져가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에서 잠깐만 멈춰서보면, 어떤 전화가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한지 금방 알았을 텐데.



그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본질적이지 않은 무수한 일에만 쫓겨온 결과, 인생 마지막 시점에 ‘이건 아니었는데’라며 한탄하는 것이다.

198 - 그래도 당신은 마지막 순간에 소중한 사람이나 둘도 없이 귀한 것들을 깨달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알았어요. 자기가 사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새삼 다시 바라보는 세상은 설령 따분한 일상이었더라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만으로도 내가 찾아온 의미는 있었을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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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생각하며 살 것인가 판미동 영성 클래식 시리즈
제임스 앨런 지음, 장순용 옮김 / 판미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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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생각의 힘으로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행복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의 ‘시크릿’이 큰 인기를 끌었었다. 내가 마음가짐이나 생각의 중요성을 인지한 때가 그때였고 이후로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이 ‘생각의 힘’을 최초로 발견하고 전파하였다니 더군다나 ‘시크릿’에 영감을 주었다니 자연히 관심이 생겼다.

책의 첫 장에 있는 글귀이다. 처음부터 생각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다.

저자 제임스 앨런은 우리 마음속의 악은 우리의 무지로 인해 선택된 것이나 배울 준비를 한 채 의욕적으로 악이 주는 교훈을 배운다면 악은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지혜로 이끈다고 말한다. 여기서 ‘악’의 개념은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것들뿐만 아니라 불행, 질병, 사악함, 재해 등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외부세계 일체는 우리의 의식 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바로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이었다. 생각의 힘을 키우고 그것을 통제하게 되면 이에 따라 외적인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지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습관이 되도록 매일매일 익혀야 한다고 하는데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시크릿과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을 읽었는데도 내 인생이 크게 변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나의 인생은 당시에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기 급급한 삶이었다. 학생 신분일 때는 시험과 과제에 쫓기고, 회사에서는 업무와 마감일에 쫓기고, 평상시에는 좀 쉬어도 되겠지 라며 게으르고 나태하게 보내며 인생살이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시련이 닥치면 내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온탕을 오가며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내가 상처받았다고 여기는 기억은 끝내 지우지 않고 계속 복기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면이 있었다. 이것은 저자에 따르면 내가 나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악의 구렁텅이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항상 행복한 생각 안에 머무르기로 했다. 이 책을 통해서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 할지 알게 되었고 많은 용기를 얻었다. 지금부터 나는 마음을 바로잡고 인생을 바로잡아 스스로를 풍요로운 행복으로 이끌겠다.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32쪽 -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나는 악의 어둠 속을 통과해야 하는 걸까?"

그것은 당신이 무지로 인해 악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의 어둠을 통과함으로써 당신은 선과 악 모두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빛을 더욱더 절실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이 무지의 직접적인 산물은 이상 악의 교훈을 충분히 배우면 무지는 사라진다. 그리고 지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39쪽 -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당신의 세계이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이 당신 자신의 내적 체험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외부에 있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으니, 외부 세계는 일체가 당신의 의식 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부에 있으니, 외부에 있는 일체가 그것에 따라 반영되고 채색되기 때문이다.


120쪽 - 변화무쌍한 기분의 노예로 계속 살아가는 한 당신은 인생의 여정을 타인이나 외적인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은 마음을 쉬는 습관을 매일매일 익혀야 한다. 이 휴식은 상식적으로는 `침묵으로 들어가기`라 부른다.

추진력과 생각들에 충분히 숙달했을 때 당신은 자신의 내부에서 새롭고 고요한 파워가 자라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는 차분하면서도 굳건한 감정이 지속해서 당신과 함께할 것이며, 당신의 잠재적인 파워들이 스스로 능력을 펼치기 시작할 것이다. 이전에는 당신의 노력이 미약하고 무력했지만, 지금은 성공을 명령하는 고요한 확신을 갖고 일할 수 있다.



144쪽 - 자신의 생각을 질서 있게 하라. 그리하면 당신의 인생도 질서 있게 될 것이다. 격정이나 편견의 거친 파도 위에다 평정의 기름을 부으라. 그리하면 불행의 비바람도 (설사 그 비바람이 아무리 심하게 불지라도) 즉시 고요해지면서 당신 영혼의 범선을 난파시킬 수 없을 것이며,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그 범선도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아울러 그 배를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으로 조종한다면, 그 배의 항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걸핏하면 덤벼드는 온갖 재난도 그 배를 피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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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세트 - 전2권 - 개정판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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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드라마 속의 의사들은 환자를 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고단해 보이지만 그들이 입는 가운 때문인지, 입에서 좔좔 흘러나오는 전문용어 때문인지, 남들보다 공부를 배로 해야 하는 전문직종이라 그런지 멋있고 경외스럽다.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직업을 바꿀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직업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경외과 의사여서 막연히 동경하는 직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의사로서의 의무, 생과 사를 좌지우지하는 혹은 죽음 앞에서 무력한 입장에서 하는 고뇌를 엿보며 내 상상 속 진로 찾기 놀이 중 의사라는 직업은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책 1권에는 '타인'에 대한, 2권에는 저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 스스로 실제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적었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 생생하게 희로애락이 전달되어 졌다. 저자는 책 속의 내용을 그저 호기심과 가십거리로 보는데 그칠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던 것 같다. 황망한 죽음 앞에서 나조차 좌절감을 느꼈고 특히 어린아이의 죽음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글 속에 등장하는 분들이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많은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우리네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나니 좋은 것만 보려고 외면했던 나의 이기심이 부끄러웠다. 병원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떠나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인식과 사회적인 문제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의사는 단순히 의술을 행하는 자라고 생각했는데 생명을 다루는 일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에 의해 한 사람이 생명이 좌지우지 된다면 모든 순간마다 죽음을 상대로 얼마나 치열하게 싸울까. 의사라는 소명감과 생명에 대한 철학, 윤리의식이 없다면 고된 시간을 쉽사리 견디기 힘들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왜 우리가 동행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혹은 나의 가족 더 나아가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서로의 마음이 더욱 더 따뜻해지도록 손을 마주잡아야 한다. 안동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저자가 스스로 '시골의사'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은 아마 자신도 의사라는 계급장을 떼고 이웃과 함께 길을 걷고 싶어서가 아닐까. (분명 내가 모르는 좋은 성품을 가진 의사가 많겠지만) 그처럼 환자를 인간으로 귀하게 여기는 의사가 있기에 오늘도 희망을 느낀다.

 

-대개 외과 의사들은 사람의 몸에서 금방 쏟아진 뜨뜻한 느낌의 피가 수술복을 적시고 속옷까지 스며들어 살아 있는 생명의 느낌이 전달되면 차분해진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란 이렇게도 가혹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 같은 병에 감염될지도 모르면서 지금은 자신이 멀쩡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박해하고, 내가 오늘 두 다리로 멀쩡히 걷는다고 해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얕잡아보는 것이 우리들이 아니던가. 인생은 내일 아침에 숨을 쉰다는 보장이 없는 것임에도, 우리는 너나 없이 진시황의 불로초라도 손에 넣은 듯 자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환자는 아프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의사는 환자가 아파 찾아오면 누구든지 치료할 의무가 있다. 세상의 어느나라든 국가로부터 의사면허를 교부받은 의사는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똑같은 마음으로 의술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이다. 때문에 의료에서 자본주의 원리를 운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사는 이 사회가 바로 서려면 아플 때 그 고통을 치료받거나 함께 나누는 데에 있어 평등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데에 차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죽음의 사연들은 제각각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얽힌 사연과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모두 내 것으로 보듬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 죽음이 나와 관련되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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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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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말짱한데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장 도미니크 보비는 이것을 잠수복을 입은 나비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뇌일혈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비되었지만 의식은 멀쩡한 '로크드 인 신드롬'에 걸린 남자이다.

몸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해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너무나도 멀쩡한 의식은 나비처럼 추억 속을 살풋살풋 날아다닌다. 그는 나비가 되어 어디든 간다. 엘르지의 국제판 담당자들이 모임을 갖고 있는 홍콩으로도 가고,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린 아이가 되어 외할아버지를 찾아가기도 한다. 추억과 상상에 의식을 내어주고 있다가 진열장 유리에 비친 입은 비뚤어지고, 코는 울퉁불퉁하고,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곤두섰고, 한쪽 눈은 꿰매져 있고, 나머지 눈은 카인의 눈처럼 커다랗게 열려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정도이다.

그를 보며 소통의 중요함을 느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없자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답답함,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안타까웠다. 그는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나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고문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아주 나쁜 번호를 뽑았을 뿐이라며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장장 15개월간 20만 번 이상 눈꺼풀을 깜빡거려 이 책을 쓴다.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 좌절감, 외로움, 고독함을 눈 깜빡임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나는 그의 행위에서 희망을 느꼈다. 책을 읽고 나서 ‘로크드인신드롬’이라는 병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으나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같은 병명의 환자가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기억이야말로 감각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다. 먹고 남은 음식만을 가지고도 새롭게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는 기억을 더듬어 오래오래 음미하는 기술이 있다.

-나는 점점 멀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항해중인 선원이 자신이 방금 떠나 온 해안선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예전의 삶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 버린다.

-모자라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만 제외하고. 나는 거기에 없고 다른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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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한입 더 - 철학자 편
데이비드 에드먼즈 & 나이절 워버턴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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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이름을 들어본 철학자는 몇 명이나 될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지금껏 철학서나 철학과 관련된 어떠한 책조차 읽어본 적이 없어서 생각나는 이름이라고는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를 외친 소크라테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정도로 철학에 까막눈인 내가, 철학적 물음에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던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었을까? 대답은 “YES”이다.

이 책은 철학이라는 학문을 소재로 2007년 6월부터 시작된 철학자들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되고, 각 장은 철학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워버턴과 대담자가 그의 중요한 사상과 꼭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을 대화 나눈 내용이 담겨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철학이 과학, 종교, 정치, 예술 등 우리 주변의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계속 재해석되어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들을 보니 생각하고 물음을 던지는 이성 활동이 이토록 매력적인 것을 왜 그동안 몰랐던 것인지 억울했다. 우리 사회는 철학을 주춧돌 삼아 이루어졌고 이 모든 것은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이 노력을 멈추면 안 되고 이것이 우리가 철학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치인들이 정치철학과 관련하여 많이 사유하고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실현하여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줘야 할 것 같다.

많은 철학자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관심 갖고 보았던 철학자는 장 자크 루소였다. 친구가 엄마들이 꼭 읽어야 하는 교육론이라고 강추해서 ‘에밀’이라는 책을 사놓고 책꽂이에 처박아 두고 있었는데 바로 그 책을 쓴 사람이었다. 현재 내가 바라보는 나의 위치가 불안해서인지 그의 견해가 많이 와 닿았다.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에 이르는 심리학의 계보가 루소로부터 비롯되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철학을 한입씩 맛보는 입문자의 입장에서 좋았던 점은 워버턴이 중간 중간 입문자의 눈높이에 맞게 질문하고 정리해주어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킨 것이다. 단어나 문장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 어렵다는 느낌이 없어서 덕분에 철학가들의 사상 하나하나를 너무 즐겁게 읽어낼 수 있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에 딱 맞는 유쾌한 철학 입문 강좌였다.

 

 

▶열린책들 독자 서평단 3기◀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13_ 제가 보기에, 철학을 난해하고 엄밀한 학문으로 취급하는 철학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중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것은 크나큰 손실입니다.

89 _ 마키아벨리는 자기 시대의 군주들에게, <운명의 풍향>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법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미덕을 발휘해야 할 때가 있고 무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123 _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통제하는 능력을 얻음으로써 능동적 존재가 되어야 해요. 더 능동적인 존재가 될수록 자신의 관념이 사물의 작용에 휘둘리는 일이 줄어드니까요. 달리 말하자면, 덜 예속되고 더 자유로워지는 거죠. 자신과 세상을 더 제대로 이해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능동적으로 다루는 능력을 기를 수 있어요.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의 원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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