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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세트 - 전2권 - 개정판 ㅣ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메디컬 드라마 속의 의사들은 환자를 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고단해 보이지만 그들이 입는 가운 때문인지, 입에서
좔좔 흘러나오는 전문용어 때문인지, 남들보다 공부를 배로 해야 하는 전문직종이라 그런지 멋있고 경외스럽다.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직업을 바꿀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직업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경외과 의사여서 막연히 동경하는 직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의사로서의 의무, 생과 사를 좌지우지하는 혹은 죽음 앞에서 무력한 입장에서 하는 고뇌를 엿보며 내 상상 속 진로 찾기 놀이 중 의사라는
직업은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책 1권에는 '타인'에 대한, 2권에는 저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 스스로 실제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적었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 생생하게 희로애락이 전달되어 졌다. 저자는 책 속의 내용을 그저
호기심과 가십거리로 보는데 그칠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던 것 같다. 황망한 죽음 앞에서 나조차 좌절감을 느꼈고 특히 어린아이의 죽음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글 속에 등장하는 분들이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많은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우리네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나니 좋은 것만 보려고 외면했던 나의 이기심이 부끄러웠다. 병원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떠나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인식과 사회적인 문제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의사는 단순히 의술을 행하는 자라고 생각했는데 생명을 다루는 일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에 의해 한 사람이 생명이 좌지우지 된다면 모든 순간마다 죽음을 상대로 얼마나 치열하게 싸울까. 의사라는 소명감과 생명에
대한 철학, 윤리의식이 없다면 고된 시간을 쉽사리 견디기 힘들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왜 우리가 동행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혹은 나의 가족 더 나아가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서로의 마음이 더욱 더 따뜻해지도록 손을
마주잡아야 한다. 안동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저자가 스스로 '시골의사'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은 아마 자신도 의사라는 계급장을 떼고 이웃과 함께
길을 걷고 싶어서가 아닐까. (분명 내가 모르는 좋은 성품을 가진 의사가 많겠지만) 그처럼 환자를 인간으로 귀하게 여기는 의사가 있기에 오늘도
희망을 느낀다.
-대개 외과 의사들은 사람의 몸에서 금방 쏟아진 뜨뜻한 느낌의 피가 수술복을 적시고 속옷까지 스며들어 살아 있는 생명의 느낌이 전달되면 차분해진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란 이렇게도 가혹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 같은 병에 감염될지도 모르면서 지금은 자신이 멀쩡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박해하고, 내가 오늘 두 다리로 멀쩡히 걷는다고 해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얕잡아보는 것이 우리들이 아니던가. 인생은 내일 아침에 숨을 쉰다는 보장이 없는 것임에도, 우리는 너나 없이 진시황의 불로초라도 손에 넣은 듯 자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환자는 아프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의사는 환자가 아파 찾아오면 누구든지 치료할 의무가 있다. 세상의 어느나라든 국가로부터 의사면허를 교부받은 의사는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똑같은 마음으로 의술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이다. 때문에 의료에서 자본주의 원리를 운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사는 이 사회가 바로 서려면 아플 때 그 고통을 치료받거나 함께 나누는 데에 있어 평등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데에 차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죽음의 사연들은 제각각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얽힌 사연과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모두 내 것으로 보듬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 죽음이 나와 관련되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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