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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평점 :
21세기는 과거와 비교해서 확실히 풍요로운 시대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패스트푸드를 먹고, 실내 온도를 알맞게 조절할 수 있고, 자유롭게 사랑하고, 굳이 일하지 않아도 돈이 굴러 들어오고, 성형수술을 받아 젊음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는 굶주려 고통 받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서구 유럽에서 살인율은 중세보다 평균 40배 낮아졌고, 합당한 여권이 있으면 감동적인 사회 안전망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자본주의가 풍요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 시간의 무자비한 증가, 낮은 임금과 값 싼 노동력 등 각종 부작용을 함께 들여온 것도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위협하게 되면 안 그래도 차이가 큰 모래시계 같은 경제 구조에서 중산층이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울 지 모른다.
최근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서 마트에서 캐셔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기계를 앉혔다. 기계들은 정확히 물건의 바코드를 인식했고, 계산은 정확했다. 종업원 없이 무인 자판기가 주문을 받는 식당도 많이 늘었다. 생산을 통해 임금을 받고, 그걸 소비하던 인간이 생산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소비가 줄어드니 잉여 생산물이 남고, 기업은 문을 닫을 것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인간을 최대로 고용하던 제조업은 이제 기계를 더 선호한다. IT기업의 대표격인 인스타그램은 고작 15명의 직원으로 전세계 사람들의 휴대폰을 점령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제적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노동자들은 퇴근 후에도 메신저로 업무를 강요 받는다.
자,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무엇을 상상해야 하는가?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는 슬로건이 오랫동안 우리의 뇌를 잠식해 왔다. 앞으로 대부분의 이들이 일하지 못할 상태에서 그렇다면 그들은, 아니 우리는 굶어 죽어야 할까? 이제는 이 슬로건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펑펑 놀고 먹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일을 생명처럼 받드는 대신 일에 감추어져 있던 삶의 여유, 삶의 가치, "여가"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이제 기본소득은 더이상 거부할 수 없는 논제가 되었다.
이미 스위스에선 작년에 온 국민에게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을 두고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비록 재원 마련 방법 등 여러 문제 때문에 부결되긴 했지만 핀란드와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하기로 하면서 이 기본소득이란 것에 전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스위스 국민투표는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다.
누군가는 기본소득을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뒤엎으려는 수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현금 흐름이 없는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고 살기 위해선, 반드시 이 기본소득으로 소비를 일으켜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기본소득은 "공산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capitalist road to communism)"이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나라 미국에서, 보수주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기본소득 젇책을 실행할 방법을 모색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철저히 반대처럼 보이던 이 두 이론의 끝이 결국 같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걱정한다. 기본소득이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들지 않을까?2009년 5월 런던에서 노숙자 13명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사회가 보장하던 무료 급식소나 푸드 스팸프 등 연간 40만 파운드의 지원을 끊는 대신, 그들에게 3000파운드를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룻밤만에 그 돈을 도박과 술로 탕진해버렸을까?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을 시작하고 1년 반이 지나자 노숙자 13명 중 7명에게 잠자리가 생기고,누군가는 수업에 등록해 요리를 배우고, 재활 과정을 겪고, 가족을 찾아가고,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 외에도 많은 실험에서 기본소득이 사람들을 더 부지런하고, 활기차게 만든다는 것이 밝혀졌다. 출애굽기 16장을 깊이 들여다보라. 노예 신분에서 탈출해 오랜 여행길에 오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에서 만나를 받아먹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태해지지 않았고 만나 덕택에 계속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었다.
인간은 시간을 소비하고, 실험하고, 놀고, 창조하고, 탐색하는 활동에 탁월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인간은 노동만을 신성시하느라 그 가치를 망각하고 살았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의 작가이자 별명이 "미스터 기본소득"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기본소득과 함께 근로시간의 단축을 주장한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직원 한 명을 고용해 초과 근무를 시키는 편이 파트 타임 직원 두 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이익이다.
따라서 개인이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면 직위를 잃을 수 있고, 경력을 구축할 기회를 놓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일자리를 빼앗기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인들은 서로 감시한다. 누가 가장 늦게 퇴근할까? 누가 근무시간을 계산하고 있을까? 이러한 악순환을 깨려면 회사 단위나 더욱 바람직하게는 국가 단위의 집단적 행동이 필요하다. 더 적은 근무시간과 기본소득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 사람들을 일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만들 것이다.
브레흐만은 기본소득 외에도, 국경을 개방해 자유로운 이민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배불러서 죽는 나라의 국민들과 배고파서 죽는 나라의 국민들 간 차이를 줄이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또 돈을 물처럼 쓰는 사람과 그 옆에 살고 있는, 천 원에도 벌벌 떠는 이웃의 차이를 줄이는 선한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직업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직업 시장이 의자놀이 같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생산성 있는 여성과 노인, 이민자는 남성과 젊은 성인, 열심히 일하는 시민의 일자리를 가로채지 않고, 실제로 더욱 많은 고용기회를 창출한다. 노동 인구가 늘어날수록 소비가 늘어나고 수요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직업 시장을 의자놀이에 비교한다면, 사람들이 계속 더욱 많은 의자를 가지고 새로 등장할 것이다.
이것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걱정을, 이 책에서는 합리적인 근거로 반박하고 있다.
브레흐만은 인간이 직면한 위협적인 미래를 유토피아로 바꾸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세계 최고의 사회 이론가 지그문트 바우만과 하버드 대학교 존스톤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거 등 유명 석학들이 그의 생각을 지지한다. 그만큼 브레흐만의 주장은 고려할 가치가 있으며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책 곳곳에 있는 그만의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는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케인스는 말했다. "새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옛 아이디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 이제 우리는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상상을 해야만 한다. 브레흐만은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꿈꾸라고 외치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이어야 하고,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이 점을 기억하라.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동성 결혼을 요구했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미치광이라는 낙인이 찍혔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역사가 증명할 때까지는 그랬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기본소득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내가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헨리 포드의 손자가 노조 지도자 월터 후서에게 새 자동화 공장을 견학시키며 "월터, 이 로봇에게 어떻게 조합비를 받아낼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루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이렇게 받아쳤다. "헨리, 이 로봇에게 어떻게 자동차를 사게 할 건가요?"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