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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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과거와 비교해서 확실히 풍요로운 시대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패스트푸드를 먹고, 실내 온도를 알맞게 조절할 수 있고, 자유롭게 사랑하고, 굳이 일하지 않아도 돈이 굴러 들어오고, 성형수술을 받아 젊음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는 굶주려 고통 받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서구 유럽에서 살인율은 중세보다 평균 40배 낮아졌고, 합당한 여권이 있으면 감동적인 사회 안전망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자본주의가 풍요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 시간의 무자비한 증가, 낮은 임금과 값 싼 노동력 등 각종 부작용을 함께 들여온 것도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위협하게 되면 안 그래도 차이가 큰 모래시계 같은 경제 구조에서 중산층이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울 지 모른다.


최근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서 마트에서 캐셔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기계를 앉혔다. 기계들은 정확히 물건의 바코드를 인식했고, 계산은 정확했다. 종업원 없이 무인 자판기가 주문을 받는 식당도 많이 늘었다. 생산을 통해 임금을 받고, 그걸 소비하던 인간이 생산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소비가 줄어드니 잉여 생산물이 남고, 기업은 문을 닫을 것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인간을 최대로 고용하던 제조업은 이제 기계를 더 선호한다. IT기업의 대표격인 인스타그램은 고작 15명의 직원으로 전세계 사람들의 휴대폰을 점령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제적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노동자들은 퇴근 후에도 메신저로 업무를 강요 받는다.


자,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무엇을 상상해야 하는가?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는 슬로건이 오랫동안 우리의 뇌를 잠식해 왔다. 앞으로 대부분의 이들이 일하지 못할 상태에서 그렇다면 그들은, 아니 우리는 굶어 죽어야 할까? 이제는 이 슬로건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펑펑 놀고 먹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일을 생명처럼 받드는 대신 일에 감추어져 있던 삶의 여유, 삶의 가치, "여가"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이제 기본소득은 더이상 거부할 수 없는 논제가 되었다. 


이미 스위스에선 작년에 온 국민에게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을 두고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비록 재원 마련 방법 등 여러 문제 때문에 부결되긴 했지만 핀란드와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하기로 하면서 이 기본소득이란 것에 전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스위스 국민투표는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다. 


누군가는 기본소득을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뒤엎으려는 수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현금 흐름이 없는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고 살기 위해선, 반드시 이 기본소득으로 소비를 일으켜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기본소득은  "공산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capitalist road to communism)"이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나라 미국에서, 보수주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기본소득 젇책을 실행할 방법을 모색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철저히 반대처럼 보이던 이 두 이론의 끝이 결국 같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걱정한다. 기본소득이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들지 않을까?2009년 5월 런던에서 노숙자 13명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사회가 보장하던 무료 급식소나 푸드 스팸프 등 연간 40만 파운드의 지원을 끊는 대신, 그들에게 3000파운드를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룻밤만에 그 돈을 도박과 술로 탕진해버렸을까?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을 시작하고 1년 반이 지나자 노숙자 13명 중 7명에게 잠자리가 생기고,누군가는 수업에 등록해 요리를 배우고, 재활 과정을 겪고, 가족을 찾아가고,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 외에도 많은 실험에서 기본소득이 사람들을 더 부지런하고, 활기차게 만든다는 것이 밝혀졌다. 출애굽기 16장을 깊이 들여다보라. 노예 신분에서 탈출해 오랜 여행길에 오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에서 만나를 받아먹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태해지지 않았고 만나 덕택에 계속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었다.


인간은 시간을 소비하고, 실험하고, 놀고, 창조하고, 탐색하는 활동에 탁월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인간은 노동만을 신성시하느라 그 가치를 망각하고 살았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의 작가이자 별명이 "미스터 기본소득"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기본소득과 함께 근로시간의 단축을 주장한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직원 한 명을 고용해 초과 근무를 시키는 편이 파트 타임 직원 두 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이익이다. 


따라서 개인이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면 직위를 잃을 수 있고, 경력을 구축할 기회를 놓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일자리를 빼앗기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인들은 서로 감시한다. 누가 가장 늦게 퇴근할까? 누가 근무시간을 계산하고 있을까? 이러한 악순환을 깨려면 회사 단위나 더욱 바람직하게는 국가 단위의 집단적 행동이 필요하다. 더 적은 근무시간과 기본소득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 사람들을 일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만들 것이다.


브레흐만은 기본소득 외에도, 국경을 개방해 자유로운 이민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배불러서 죽는 나라의 국민들과 배고파서 죽는 나라의 국민들 간 차이를 줄이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또 돈을 물처럼 쓰는 사람과 그 옆에 살고 있는, 천 원에도 벌벌 떠는 이웃의 차이를 줄이는 선한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직업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직업 시장이 의자놀이 같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생산성 있는 여성과 노인, 이민자는 남성과 젊은 성인, 열심히 일하는 시민의 일자리를 가로채지 않고, 실제로 더욱 많은 고용기회를 창출한다. 노동 인구가 늘어날수록 소비가 늘어나고 수요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직업 시장을 의자놀이에 비교한다면, 사람들이 계속 더욱 많은 의자를 가지고 새로 등장할 것이다.

이것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걱정을, 이 책에서는 합리적인 근거로 반박하고 있다.


브레흐만은 인간이 직면한 위협적인 미래를 유토피아로 바꾸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세계 최고의 사회 이론가 지그문트 바우만과 하버드 대학교 존스톤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거 등 유명 석학들이 그의 생각을 지지한다. 그만큼 브레흐만의 주장은 고려할 가치가 있으며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책 곳곳에 있는 그만의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는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케인스는 말했다. "새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옛 아이디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 이제 우리는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상상을 해야만 한다. 브레흐만은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꿈꾸라고 외치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이어야 하고,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이 점을 기억하라.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동성 결혼을 요구했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미치광이라는 낙인이 찍혔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역사가 증명할 때까지는 그랬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기본소득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내가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헨리 포드의 손자가 노조 지도자 월터 후서에게 새 자동화 공장을 견학시키며 "월터, 이 로봇에게 어떻게 조합비를 받아낼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루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이렇게 받아쳤다. "헨리, 이 로봇에게 어떻게 자동차를 사게 할 건가요?"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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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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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을 당했던 민족들에게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어떤 '공감대'가 있는 것일까.


작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히트 쳤던 영화 중 하나는 '겟아웃'이었다. 백인 여자친구를 둔 흑인 남자친구가 그녀의 집에 인사를 가면서 각종 기묘하고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많은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린 것은 2016년, 여전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요소를 영화에서 각종 은유로 보여주고 있단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말했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었을지도 몰랐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쉬쉬하고 있던, 겉으로 드러내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리기 때문에 그저 내색하지 않고 있었던, '인종차별'을 영화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흑인 여성 과학자를 다룬 '히든피겨스'와 '문라이트'도 화제를 모았다.




나는 조금 의문이 생겼다.


다민족 국가, 흑인이 대통령이 되고,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서 존중하고 살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미국에서, 이런 영화가 히트를 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통령이 흑인인데 여전히 인종차별이 있고,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여성이었는데도 여성차별이 ... (우리나라는 좀 특수한 상황이지만 ㅠㅠ)



그 땐 잘 몰랐는데, 이 책을 보고나서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의미를 안다기보단, 흑인들이 느끼는, 인디언들이 느끼는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라멘이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지만, 한일이 맞붙는 상황이 되거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만행이 드러나면 당장이라도 그들의 머리채를 쥐어 뜯을 것처럼 분개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흑인들도, 그런 박해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백인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한다. 지금까지 미국은 여러 인종이 하하 호호 웃으면서 사는 그런 나라인줄 알았는데 ㅠㅠㅠ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 생각이 많이 났다. 주인공 코라 때문일지 모른다.

코라가 빈번하게 백인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도망가다 잡히고, 잡힐 것을 두려워해서 도망가지도 못하고, 행복한 꿈을 꾸다가 무산되고 막 이런 비참한 과정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 전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한 명'도 읽었는데, 그 가슴 아픈 장면들이 코라가 당하는 일들과 많이 겹쳐서 더 슬프고 더 공감이 많이 갔다.




시공간을 초월해 내게까지 전해지는 어떤 아픔.


아직도 그 차별과, 그 아픈 역사가 살아 있단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또 요즘에는 성차별, 노인 차별, 청소년 차별, 등등 각종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고 있어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가.

콜슨 화이트 헤드라는 이 작가가, 자신의 조상이 차별받았던 이야기를 아주 적나라하게 쓰는 동안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영어로는 black이나.. 뭐 깜둥이ㅠㅠ 이런 단어들을 썼을 텐데, 스스로 가슴에 못 박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사실 읽으면서, 아니 이렇게 차별적인 용어를 막 쓴단 말이야? 작가 이 사람 무서운 사람이네? 하고 작가 사진을 보았다가, 정작 흑인이라서 깜짝깜짝 놀랐던 적이 여러번이다. 알고 있었는데, 너무 적나라해서 놀랐다. 나도 그런데 작가는 어땠을까....


자신의 조상을 '깜둥이'란 단어로 지칭할 때, 이 작가가 느꼈을 그 마음이란 건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고난과 가시밭길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너무나 의미 있고 멋진 소설을 썼다는 게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소설을 쓴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이 한 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눈물 흘릴 수 있게 했다는 게... 이 책을 통해 배운 게 많은 한 명의 독자로서 참 감사하다. 아마 세계 곳곳의 독자들도 같은 마음이겠지.


무엇을 읽을까 고민한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인종차별 뿐 아니라, 성차별에 관한 문제, 박해 받았던 역사 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구라도 꼭, 읽어보길.




이 소설은 영화 《문라이트》로 오스카상을 받은 배리 젠킨스의 각본·감독으로 드라마화 될 예정이다.


어떻게 이 흥미진진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지 정말 기대 된다.

미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원작 소설로 미리 읽어봐도 굿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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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 문학상 제정 작가 10인 작품선 대한민국 스토리DNA 15
김동인 외 지음 / 새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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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알쓸신잡' 보셨나요?유시민 작가님, 김영하 작가님,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가수 유희열, 정재승 과학자까지! 유명한 지식인들이 모여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이야기들을 마구마구 수다 떠는 예능이었죠! 저도 참 즐겨보던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데 종영을 해서 너무 아쉬워요 ㅠㅠ 워낙 인기가 많았던 방송이라 거기에 소개된 책들도 덩달아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서점에 가면 알쓸신잡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

 



순천으로 여행을 떠났던 2회에서 소개된 책은 김승옥 작가님의 '무진기행'이었습니다! 김승옥 작가님 고향이 순천인 거 다들 알고 계셨나요? 순천만 근처에는 실제로 김승옥 작가님과 '오세암'으로 유명한 정채봉 작가님의 문학관이 있답니다! 저도 가본 적이 있는데 아담하고 고즈넉하고 참 좋더라고요. 

   



김영하 작가님은 '무진기행'을 손으로 전부 써보기도 했을 만큼 이 소설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송을 보고 나니 저도 어릴 때 읽은 '무진기행'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같은 마음이셨는지 최근 '무진기행'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죠!



저는 한 달 전에 새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읽었어요. 아니, '무진기행'이 이렇게 두꺼웠나? 깜짝 놀랐는데 문학상 제정 작가 10인의 작품이 전부 담겨 있던 거더라고요! (민망^^;) 무진기행만 읽으려고 했는데 김동인, 김유정 등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의 작품까지 함께 있어서 더 든든하고 좋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입시를 위해 읽었던 소설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려니 마음이 새로웠습니다. 그 땐 너무 어리기도 했고 성적이 급해서 무슨 말인지도 잘 몰랐어요. 재미도 없었고요. 그런데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힘든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사실 조금 울 뻔했어요. 참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모든 이야기들이. 그 때는 모르고 지금은 아는 것들이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그러시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 김승옥 작가님의 '무진기행'만 이야기하려고 해요. 여러분들도 저마다 마음에 남는 소설들을 다른 분들과 함께 이야기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약회사 회장의 딸과 결혼해 곧 상무 승진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아내로부터, 승진이 확정될 동안 잠시 고향인 무진에 휴식차 다녀오라는 제안을 받고 무진으로 떠납니다. 지루하고 조용한 그 곳에서 그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일탈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그는 과연 가정과 승진과 그 모든 책임을 버리고 그 일탈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다.'는 띠지가 인상 깊습니다. 사회는 녹록지 않은 곳입니다. 가면을 쓰게 되고, 의도치 않게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책임과 구속이 개인을 옭아맵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만의 무진, 그러니까 고향이든, 가정이든, 친구든 자신이 자신의 본 모습대로, 자신의 부끄러움과 수치 등을 드러낼 수 있는, 책임에서 자유로워져서 방종하게 되는, 그런 곳이 있을 겁니다. 그 곳은 그런 이유로 피난처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 불편한 이중적인 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온갖 몽상 속에 살던 조금은 부끄럽고 아무것도 몰랐던, 유아기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그 곳에 갇혀 살 순 없습니다. 그 곳에 갇혀 살고 싶다면, 안개에 둘러싸여 마치 세상에서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무진처럼 외따로이 지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선택해야 할 순간에, 자연스레 사회를 고르게 됩니다. 어쩌면 주인공의 일탈이 실패한 것도, 욕망을 누르고 사회적 책임을 선택한 것도,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일지 모릅니다. 무진은 영원히 살 수 없는, 공간이니까요. 여러분에게도 '무진'이 있나요?   



※밑줄 친 문장들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던 것이다. p115


내가 나이가 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새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었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다. p116


그 여자가 정말 무서워서 떠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바래다주기를 청했던 바로 그때부터 나는 그 여자가 내 생애 속에 끼어든 것을 느꼈다. 내 모든 친구들처럼. 이제는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때로는 내가 그들을 훼손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더욱 많이 그들이 나를 훼손시켰던 내 모든 친구들처럼. p129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p146


그럴 때의 무진은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일 뿐이지 거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靑年)이었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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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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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내가 좋아하는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신간을 내놓았다. 책을 펼쳐 든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 55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과 둘째, 제 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수상자인 황정은 작가 뿐 아니라 김 숨, 김언수, 편혜영 등 한국 문학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고작 커피 한 잔 값(그러니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으로 즐길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은행나무 출판사는 이전에도 '호텔 프린스'라는 소설집을 5000원에 출간한 적이 있다!)



은행나무 출판사, 아주 칭찬해

무엇보다 수상 후보에 오른 김 숨, 김언수(작가님 사랑합니다), 윤고은, 윤성희, 이기호(유머취향내취향), 편혜영('재와 빨강' 리스펙) 작가님들 모두 정말 작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신 분들이라서 이 분들 작품을 한데 모아 읽으려니, 마치 문학 뷔페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총 일곱 개의 단편들이 실린 이 소설집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이기호 작가님의 "최미진은 어디로"였다. 수상작인 황정은 작가님의 "웃는 남자"는 물론이고 어떤 작품이 더 좋았는지 꼽는 것은 정말 힘들고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니 내가 이기호 작가님의 "최미진은 어디로"를 꼽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순위를 매긴 것이 아니니!! 만일 이 책을 읽으신다면 제 생각은 집어치우고 부디 여유롭고 감미롭게 읽어주시길^^ 


줄거리 소개!

"최미진은 어디로"의 주인공 "나"는 중고나라에서 물건을 사려던 어느 날, 자신의 소설이 매물로 올라온 것을 보게 된다. 그 밑엔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이라는 모욕적인 코멘트까지 달려 있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이 맹랑한 판매자가 괘씸하단 생각을 하게 되고, 궁리 끝에 직접 이 판매자를 만나러 가게 된다. 그 판매자가 자신이 팔 소설의 저자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분명 꼴이 우스워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만나게 된 판매자는 소설가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팔기 위해 가져온 자신의 책에는 "최미진"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쓰여져 있다. 아, 혹시 그렇다면 당신은....? (스포 금지, 뒷이야기는 소설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작가고, 이름은 이기호다. 혹시 진짜 작가님이 이런 일을 겪으셨을까? 궁금했지만 알 수가 없어서 아쉽다 ㅠㅠ


어쨌든 이 소설이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주인공 '나'의 행동이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실수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모욕감을 주었던 판매자에게 똑같이 모욕을 되갚아 주기 위해서 KTX로 2시간이나 달려서 일산까지 도착하는 집요함을 보인다.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신도 모르면서 일단은 그 사람에게 낭패감을 선사하고 싶다는 그 순수한 악심(惡心)! 예상대로 판매자는 창피함을 느끼고, 이후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씨발, 아무것도 모르면서...내가 왜 책을 파는지...내가 당신이 쓴 글씨를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봤는지...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모르면서 그냥 그런 거잖아요...그런데 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꼭 그 말을 들으려고...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p243

주인공은 결국 원하는 사과를 받아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큰 낭패감과 자기 혐오감을 맛 본 사람은 판매자가 아니라 주인공 자신이었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이 때 느꼈을 주인공의 마음을 아주 잘, 아주 아프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연은 구구절절 말할 수 없지만, 나도 그 때 그 친구에게 내가 느꼈던 모욕을 되돌려주기 위해서 그래 너도 X돼 봐라, 라는 심정으로 대했던 적이 있다. 그러면 그 친구가 내게 사과할 줄 알았다. 그러면 내 마음이 풀릴 줄 알았다. 그러면 다시 우리 관계가 다시 회복될 줄 알았다. 


친구는 내게 사과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풀리지 못했고, 우리 관계는 그 날 이후 조금씩 조금씩 어긋나더니 완전히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때의 상처는 비수가 되어서 내 마음에 그대로 박혀 있다. 반성을 많이 했지만 되돌릴 수 없기에 여전히 아픈 기억이다.


그 때 나는 왜 그랬을까?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이런 모순적인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누군가와 크게 싸우고, 내가 이겼지만, 속이 답답하고 결국엔 왠지 모를 자기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그런 경험.


마치 끝을 생각하지 않고 도로 위를 무자비하게 질주하는 오토바이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중간에 브레이크를 밟았어야 하지만, 그러니 주인공은 중간에 역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왔어야 하지만, 그러니 나는 친구에게 너X돼봐라 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버려서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어리석게도.


참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아량이나 관용을 베풀었어야 할 때에도 때때로 우리는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줘 가면서까지 관계를 그르치고 만다.  


그런데 사실 그런 상황의 원인은 상대방에게 있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로서, 가장으로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때 그런 일을 겪고, 자신의 그 스트레스를 애꿎은 사람에게 풀어버린 것이다. 그처럼 나도 나에게 만족스럽지 못할 때, 괜한 화풀이 상대를 찾고 있었다. 


이 일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은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적의가 무섭다p243

나도 나의 적의가 무섭다.


.

.

.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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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굉장히 재밌는 작품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 듯 보이지만 어느새 뒤바뀌기도 하고, 실질적인 가해자는 사망하고 피해자가 살아남기도 하는 등 독자를 미로 속에 빠뜨려 버리기 때문이다. 


언론에 알려진 가해자는 '자전'이라는 카페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돈을 노리고 한 부부를 살해했다. 피해자는 70대의 사업가 남편과 50대의 전문직 부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해 보이는 살인 사건.


그러나 사실 피해자 중 한 사람인 남자 훙보가 순진한 여성 '자전'의 육체를 탐해 불륜을 저지르고, 자신의 아내까지 죽이려 한 음모에 자전을 끌어들인 것을 알게 되면 죽은 훙보가 오히려 자전보다 더 악한 사람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훙보가 아내를 속이고 사기 결혼을 했으며 아내의 돈을 불륜을 저지르는 데 사용했으며 아내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 죄질은 더욱 나빠진다. 


아내인 훙타이는 잘 나가는 전문직이었던 자신의 명성이 남편 훙보 때문에 망가질까 염려되어 그의 불륜 사실을 눈감아주었지만, 훙타이에게 살해 당할 뻔했던 비운의 여성이다. '자전' 역시 훙보 때문에 삶이 망가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연 이 사건에서 자전만이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한 남자 때문에 두 여성이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가해자는 죽은 훙보가 아닐까? 


이 소설이 재밌는 점 첫 번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설을 더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두 여성의 비극이 시작된 처음에는 바로 훙보라는 남성이 있다. 남성의 횡포와 오만함에 무너진 여성들이라는 설정에서 성 권력이 어떻게 비대칭적으로 형성되어 있는지를 곱씹어 보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재밌는 점은 가해자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이다. 소설은 자전이 왜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아니, 살인을 하기까지 그녀도 피해자의 입장에 있었음을 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며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전은 자신의 젊은 육체를 탐하는 훙보의 꾐에 넘어가 의도치 않게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고 아내의 돈을 노리고 그녀를 살해하기로 맘 먹은 훙보의 음모에까지 끌려가게 된다. 자전은 모든 사실을 그의 아내인 훙타이에게 고백하지만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날까 걱정되었던 훙타이는 오히려 자전의 남자친구에게 이 사실을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궁지에 몰린 자전은 훙보와 훙타이 모두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자전의 내막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부부를 살해한 그녀에겐 '사갈녀'라는 손가락질이 쏟아지고, 판사는 그녀에게 빨리 '속죄'하라며 윽박을 지를 뿐이다. 자전의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으로만 맴돌게 되고, 진실은 사실에 영영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아직도 어떻게 '속죄'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어떤 질문을 해도 한참 동안 생각한 뒤에 대답하는군요. 그러면 피고인의 대답이 진실이라고 판단하기 힘들어요. 어서 말하세요! 모두 피고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대답이었다. '인성을 저버린 잔인한 범죄', '용서받지 못할 반인륜적 악행'(...)검사는 호통조의 비난을 연달아 쏟아냈고 아무도 피고인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작가는 자전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자전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쓴 것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들이 자전과 위치가 바뀌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섰을 때 자신의 일말의 억울함조차 토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를 간접 체험해보도록 하고 그 때의 심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어둠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 지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것은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하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경계하고 권장한다. '살인 사건을 반면교사하여 인성의 회복을 꾀한다.'라고나 할까.


저는 이 소설을 통해 흑도 백도 아닌 회색 지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소위 '악인'들과 같은 환경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저 운이 조금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실제 살인 사건, 그것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이 소설을 쓰고,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그 모든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귀를 기울이고, 회색지대에서 서성이는 이들을 빛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그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저 운이 조금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이 묵직하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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