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굉장히 재밌는 작품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 듯 보이지만 어느새 뒤바뀌기도 하고, 실질적인 가해자는 사망하고 피해자가 살아남기도 하는 등 독자를 미로 속에 빠뜨려 버리기 때문이다. 


언론에 알려진 가해자는 '자전'이라는 카페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돈을 노리고 한 부부를 살해했다. 피해자는 70대의 사업가 남편과 50대의 전문직 부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해 보이는 살인 사건.


그러나 사실 피해자 중 한 사람인 남자 훙보가 순진한 여성 '자전'의 육체를 탐해 불륜을 저지르고, 자신의 아내까지 죽이려 한 음모에 자전을 끌어들인 것을 알게 되면 죽은 훙보가 오히려 자전보다 더 악한 사람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훙보가 아내를 속이고 사기 결혼을 했으며 아내의 돈을 불륜을 저지르는 데 사용했으며 아내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 죄질은 더욱 나빠진다. 


아내인 훙타이는 잘 나가는 전문직이었던 자신의 명성이 남편 훙보 때문에 망가질까 염려되어 그의 불륜 사실을 눈감아주었지만, 훙타이에게 살해 당할 뻔했던 비운의 여성이다. '자전' 역시 훙보 때문에 삶이 망가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연 이 사건에서 자전만이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한 남자 때문에 두 여성이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가해자는 죽은 훙보가 아닐까? 


이 소설이 재밌는 점 첫 번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설을 더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두 여성의 비극이 시작된 처음에는 바로 훙보라는 남성이 있다. 남성의 횡포와 오만함에 무너진 여성들이라는 설정에서 성 권력이 어떻게 비대칭적으로 형성되어 있는지를 곱씹어 보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재밌는 점은 가해자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이다. 소설은 자전이 왜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아니, 살인을 하기까지 그녀도 피해자의 입장에 있었음을 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며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전은 자신의 젊은 육체를 탐하는 훙보의 꾐에 넘어가 의도치 않게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고 아내의 돈을 노리고 그녀를 살해하기로 맘 먹은 훙보의 음모에까지 끌려가게 된다. 자전은 모든 사실을 그의 아내인 훙타이에게 고백하지만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날까 걱정되었던 훙타이는 오히려 자전의 남자친구에게 이 사실을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궁지에 몰린 자전은 훙보와 훙타이 모두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자전의 내막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부부를 살해한 그녀에겐 '사갈녀'라는 손가락질이 쏟아지고, 판사는 그녀에게 빨리 '속죄'하라며 윽박을 지를 뿐이다. 자전의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으로만 맴돌게 되고, 진실은 사실에 영영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아직도 어떻게 '속죄'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어떤 질문을 해도 한참 동안 생각한 뒤에 대답하는군요. 그러면 피고인의 대답이 진실이라고 판단하기 힘들어요. 어서 말하세요! 모두 피고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대답이었다. '인성을 저버린 잔인한 범죄', '용서받지 못할 반인륜적 악행'(...)검사는 호통조의 비난을 연달아 쏟아냈고 아무도 피고인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작가는 자전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자전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쓴 것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들이 자전과 위치가 바뀌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섰을 때 자신의 일말의 억울함조차 토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를 간접 체험해보도록 하고 그 때의 심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어둠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 지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것은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하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경계하고 권장한다. '살인 사건을 반면교사하여 인성의 회복을 꾀한다.'라고나 할까.


저는 이 소설을 통해 흑도 백도 아닌 회색 지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소위 '악인'들과 같은 환경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저 운이 조금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실제 살인 사건, 그것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이 소설을 쓰고,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그 모든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귀를 기울이고, 회색지대에서 서성이는 이들을 빛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그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저 운이 조금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이 묵직하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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