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고다마 지음, 신현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표지가 참 취향 저격입니다요♥


예쁜 건 두 번!! 띠지를 들고 있으면 관심 폭발★


책 내용이 참 좋다.. 특별히 슬픈 내용도 없는데 가슴이 먹먹하고 마지막엔 홀가분한 가벼움까지 느끼게 해준다.. 추천추천!!


'단숨에 읽었다', '흡입력이 굉장하다' 같은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실제로 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더라도 내가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의심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내가 의심하고 있단 사실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한순간에 나를 사로잡아 글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이 책을 읽다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고 말았는데, 하마터면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칠 뻔했던 것이다.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는 작가 고다마의 자전적 에세이다. 제목처럼 그녀는 남편의 성기를 몸 안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통'의 부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자신의 잘못으로 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은 그녀를 집과 학교, 일상에서 자꾸 움츠러들게 한다. 


여자로 태어나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나는, 가장 마지막 상품검사에서 '불량'상자로 던져진 듯한 기분이었다. p43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성인 잡지들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놀랍게도 전부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쓰인 그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 모든 여자는 상대 남자의 성기가 들어간다는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수확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 몰래 유흥업소에 가 성욕을 푼다는 비밀을 알았을 때 그녀가 느낀 것은 "그가 밉다거나 더럽다는 감정이 아니었다." 


'비겁해'라고 생각했다. 그저 '비겁해'라는 생각뿐이었다. 나를 남겨두고 혼자만 '들어가는'세계로 가버리다니 비겁해. p80


그녀는 자신만 '들어가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비록 그녀는 남편의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 외에 삶에서 최선을 다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사랑, 가족, 관계, 일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았다. 남편의 성기처럼, 그녀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던히 애쓰지만 번번이 세상 밖으로 튕겨나오고 만다. 벼랑 위에 매달린 그녀를 붙잡아준 건 남편도, 가족도 아닌 바로 '글쓰기'였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미칠 것 같을 때, 그녀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엉엉 우는 대신 누구라도 들어주길 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녀는 누구에게서든 좋으니 '넌 아무 문제 없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글쓰기. 자신의 존재가 불량품이 아님을 증명 받고 싶어서 쓰게 된 글쓰기는 이제 방향을 틀어 자신 스스로가 제 내면을 그대로 응시할 수 있도록 만든다. 남편의 성기는 들어가지 않고, 다른 부부처럼 성관계를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정한 것이다. 비록 일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자신의 옛 제자들의 행복을 빌면서, 남편의 학생들을 도우면서 살아가는 삶이 편하다. 체념처럼 보일 지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녀처럼 세상에 부대 끼고 살면서 상처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불량품이 아니듯, 삶을 사는 게 고단한 누군가도 불량품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삶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존중 받아 마땅하다, 그녀가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20여 년, 자그마치 20여 년이 걸렸다. 그 세월 동안 그녀가 혼자 감내하고 몸부림치던 모습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뻐근하게 느껴질 만큼 아프다. 그래서 그녀가 여느 부부처럼 당연히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학자금 보험을 권유하는 여자에게, 이 20여 년의 이야기를 바친다고 말하면서 책을 끝 맺었을 때는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고다마의 글은 '정상'이란 이름으로 함부로 돌진해 드는 세상과 그렇게 살도록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처럼 세상의 경계에서 서성거리고, 흔들리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 쓰느라 자신의 마음에 상처 내지 말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니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그런 해방감을 맛보길 바란다. 오랜만에 참 투명하고 맑은 에세이를 읽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분명 근사한 일이겠죠. 경험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니 아마 틀림없을 거예요.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거듭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을, 그렇게 살기로 한 결의를, 그건 틀렸다고 가볍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성장 배경이나 살아온 환경 등 다양한 인생의 조각들이 모여 그 사람의 현재가 있으니까요. 이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살아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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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김정현 지음 / 책세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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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폭스라는 아프리카 산양이 있다. 그들은 수천 마리 씩 떼를 지어 살면서 풀이 있는 곳을 찾아 다니는데 앞의 무리가 풀을 다 먹으면 뒤에 있는 놈들이 먹을 게 없어서 앞의 놈의 엉덩이를 뿔로 민다. 앞으로 좀 가라는 것이다. 그러다 또 앞의 무리가 풀을 다 먹으면 뒤에 있는 놈들이 다시 민다. 이게 거듭 반복되다 보면 뒤에 놈들은 자꾸 밀고 앞 놈들은 자꾸 밀리다 못해 벼랑 끝까지 다다른다. 위험을 깨닫고 그만 멈추면 좋으련만, 앞이나 뒤나 모두 어리석은 탓에 결국 벼랑 아래로 집단 추락하고 마는, 아주 가련한 동물이다.


그러나 마냥 어리석다 혀를 찰 수 없다. 스프링폭스가 꼭 우리 현대인의 모습 같아 그렇다. 현대인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집단을 이룬 것 같아 보여도 공동의 목표나 이해 없이 파편처럼 흩어진 지 오래임을 알 수 있다. 공동의 목표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국가나 전체를 위해 소를 희생하지 않는단 전제 하에 오히려 다행일 지 모른다. 이기주의가 아닌, 합리적 개인주의를 나는 환영한다. 허나 스프링폭스처럼 제 눈 앞에 있는 것만 열망하고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방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멈춰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제 욕심 탓에 뒤돌아 보지 않는 것도 그릇되다. 


자신만의 삶의 철학 없이 살다 보면 잔잔한 물결에라도 쉽게 휩쓸리고 마는 법이다. 꼭 철학이란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의식이 없으면 파도 위의 해초처럼 둥둥 떠다닐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은 철학을 잃은 지 오래다. 이 사회 전체가 철학을 잃은 지 오래 되었다. 저자는 스마트폰과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에 연결 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지금을 '소진 시대'라고 명명한다. 현실에서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소셜에 더욱 몰입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신의 에너지와 마음을 '충전이 필요한 배터리'처럼 소진하고 만다는 것이다. 


저자는 니체, 프로이트, 제러미 리프킨 등 다양한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며 "물질적 부유함에서 행복을 찾으며 불행해 하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대 사회는 물질 만능 사회다.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식상할 만큼 돈이란 곧 삶의 모든 것을 장악한 지배자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 생각엔 부의 양극화가 극에 다다르고 계층 이동 사다리도 복구가 불가능할 만큼 산산이 부서져 버린 사회가 되어버렸다면, 그래서 가난이 평준화 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아, 슬프다.)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러한 '행복'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고독'을 제시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의 누구에게 속하는가?" 같은 실존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살아가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라! 진리는 인간 내면에 있다!"고 설파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정작 현대인은 끝없이 뱃속으로 음식을 밀어 넣는 먹방, 타인은 안중에도 없단 듯이 노래에 심취하는 가요 프로그램, 온갖 자극적인 소재와 혐오를 끌어안고 오락으로 소비하는 인터넷 방송 등에 몰입 한다. 혼자의 시간을 갖는 법을, 사색 하는 법을 배워본 적도 권유 받은 적도 없는 탓이다. 물론 개인을 길러내는 사회의 문제가 가장 크다.


그렇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철학을 가르치지 않은 사회를 탓할 수 만은 없다. 특히 기초 학문을 무시하기 일쑤인 나라에서 자란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철학을 배우고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정현의 <<소진 시대의 철학>>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을 제시해 준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철학 잃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분석했으면 읽기가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지만 세계가 한 마을, 아니 내 손바닥에 있는 지구촌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크고 넓은 시야를 갖도록 돕는다는 것으로도 '충실히 제 할 일을 한 책'이란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를 비롯해 수많은 철학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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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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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에 가면 예전에 나왔던 책이 다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 한 권이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다. 출간된 당시도 도발적인 제목과 내용 덕에 문제작으로 떠올랐던 책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나 지난 지금 차별과 배제, 승자독식의 구조를 내면화 한 이십 대를 분석한 이 책이 다시금 조명 되는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여전히 이십 대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괴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엔 2013년 있었던 KTX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시위가 있다.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던 강의에서 저자는 뜻밖에도 20대 대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한 그들을 "도둑놈 심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 20대들이 그들의 처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저자의 생각이 무참히 깨진 것이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스펙을 보유했으나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고 마는 이십 대가, 정유라의 "부모도 능력이다" 발언에 분노하며 촛불을 든 이십 대가, 어째서 비정규직, 소수자, 장애인, 등 의 같은 약자들에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혹은 왜 사회 구조에서 촉발된 모든 부당함을 자신의 탓,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수많은 아이러니에 답을 찾기 위해 여러 대학의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마침내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자기계발"이다. "잠재 되어 있는 자신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움"이란 사전적 정의와 달리 오늘날 이십 대의 자기계발은 오직 "취업"만을 뜻하는 것으로, "사회 탓 하지 말고 너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계발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이십 대들은 자연스럽게 "나만 노력하면 된다"는 식의 결론을 내면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지방대에 들어간 것도 공부 안 한 자기 잘못이고 비정규직이 된 것도 애초에 정규직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은 개인의 잘못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십 대가 그토록 경멸하는 기성세대의 "노오력" 담론을 고스란히 재연하는 이십 대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저자는 이십 대들이 갖는 이런 사고방식의 이유를 "(그들)자신이 현재 놓인 위치에서만 보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심리학 용어 중에 "터널효과"라는 것이 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논할 때 사용되는 용어로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의 밥과 빚에 쫓기기 때문에 터널처럼 좁은 시야에 갇혀 장기적인 계획을 짜지 못하고 계속 가난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만난 이십 대들은 모두 나름의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학자금이 천 만원 넘게 쌓였다든지, 유학을 위해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든지, 새벽같이 일어나 토익학원을 간다든지. 이렇게 자신이 처한 궁핍한 처지를 하루하루 헤쳐나가는 것만도 버거운 청년들에게도 이 터널효과가 그대로 적용된다. 연대하고 사회구조의 문제를 공론화했을 때 일으킬 수 있는 균열 대신 이십 대는 자신만의 좁은 터널에 갇힌 채 오직 '내 탓이오'를 연발하고 있기에 결국 약자는 계속 약자로, 문제는 계속 문제로 남은 채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십 대를 무작정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 그런 사회구조를 대물림하고 자기계발의 논리를 주입 시킨 건 결국 지금의 기성세대가 아니겠는가. 노오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의 가르침대로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순진하게 스펙을 쌓아가고 있는 이십 대들이,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 당하지 않기 위해 도리어 타인을 배척하고 차별하는 데 안간힘을 쓰는 이십 대들의 노오력 아닌 노력은 속이 쓰릴 만큼 안타깝지 않은가. 이십 대의 어두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책은 그래서 어떠한 힐링담론보다도 절절하게 읽힌다. 문제의 진짜 원인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이십 대가 스스로 균열을 낼 수 있도록 이 책이 앞장 서서 이끌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이 쓰일 당시는 후보였으나 이제는 대통령이 된 문재인의 슬로건을 통해 이들의 암울한 현재를 균열내고자 한다. 기회는 균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결과는 정의로운가. 그리하여 괴물이 된 내가 이상한 건지, 괴물이 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든 이 사회가 이상한 건지 의심하고 질문하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린 다음 해에 또다시 괴물이 된 이십 대를 호출하는 이 책을 다시 봐야 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더 이상 필요가 없을 때, 이십 대가 비로소 인간으로서 살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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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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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별 ★★★★★(5점 만점)

솔직히 이 작가님 책 한 권은 꼭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

이 작가님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름 ;;; 뭔가 큰 일 하실 분 같음;;; 

안 읽더라도 일단 갖고 있는 게 신상에 이로울 듯^^;;

그리고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읽다가 심장에 무리 올 지도 모름 너무 충격 먹어서 

반전이 진짜 완전 대박이고 ;;; 새롭고 신선하고 장난 아님

별 5점 만점에 5점 줬다.

호불호 갈린다고 하지만 나는 일단 호호호호호호호호호 ★



작가 김동식이 낸 첫번째 소설 '회색 인간'을 읽었다. 그는 글을 한 번도 배워보지 않았다. 고작 네이버 지식인에서 배운 글쓰기 방법이 그의 가이드였고 오늘의 유머 게시판 독자들이 그의 교정교열 편집자였다. 사는 동안 책도 거의 읽지 못했다. 지금까지 주물공장 노동자로 일하느라 책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지루한 단순 노동을 견디면서 오직 머릿속으로만 이야기를 상상했다. 아마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가 상상한 이야기가 말 그대로 '폭발'한다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제도권 교육이나 틀에 박힌 문단의 문법에 물들지 않고 그야말로 순수하게 자신의 뜻대로 펼쳐낸 이야기들은, 그래서 거칠고 투박하지만 매번 놀라움과 반전, 신선함의 환희를 안겨다 준다. 독자가 한 발짝 걸어갈 때, 김동식은 두 발짝, 세 발짝 앞서간다. 그것도 늘 예상치도 못한 길로.


작가가 되는 데 따로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특히 한국 문학은 '등단' 없인 데뷔도, 출간도 힘든 것을 감안할 때 이 작가의 등장은 아마 한국문학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바짝 긴장감을 안겨 줄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들에겐 등단 없이도, 정식코스(문창과 or 국문과 - 습작생 - 등단) 없이도 책을 출간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준 것이고, 혹은 이야기의 힘만 있다면 충분히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또한 독자에겐 지금껏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작가와 그 글을 맞아야 한다는 기분 좋은 도전이다. 그런 면에서는 과장되게 말하자면 '혁명'이 아닐지? 


그의 글은 묘사도, 캐릭터 설정도 거칠고 부족하지만 이야기의 메세지 만큼은 혀를 내두를 만큼 확실하고, 통찰력이 살아있다. 거기엔 인간사의 추악하고 거짓된 위선을 낱낱이 폭로하는 섬뜩함이 포진 되어 있다. 묘사가 부족함에도 이미지가 생생해서 마치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분량은 짧지만 주제가 묵직하고 분위기가 냉소적이어서 한 편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입이 쩍 벌어진다. 아니, 이런 글이 있었다고? 이렇게도 쓸 수 있다고? 이런 작가가 있다고? 매번 놀라움의 연속일 것이다.


이 놀라운 글이 어쩌면 그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만 소비되었을 지 모른다니. 정말 눈 밝은 편집자를 만나 작가도 독자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글을 쓰는 수준이라면 어깨에 힘 깨나 들어갔을 법도 한데 그는 독자의 지적에 겸손하고 한 번 틀린 맞춤법은 다신 틀리지 않을 정도로 성실한 작가다. 그 인성에 다시금 놀라고,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착한 편집자가 착한 작가를 만났구나.


이 작가의 등장이 어쩌면 한국문학계를 뒤흔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김동식이 일으킨 이 작은 균열이 부디 한국문학계 지각변동을 일으키기를. 그래서 너도 나도, 이 지금까지 없던 작가 김동식처럼 지금까지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를. 나는 지금 한 명의 독자로서 변화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이 작가의 1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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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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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는 책과 작가를 혼동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면 작가의 흔적이랄까 고민이랄까 어떻게든 작가의 성향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어른 손바닥 크기만한 아담한 사이즈의 책을 단숨에 읽어내렸다. 그간 좀체 보지 못했던 구성과 문장이 독특해서 잠시 멈췄다가도 다시 읽게 하는 힘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숨가쁘게 치달아가면서 든 생각 중에 작가에 대한 것이 있었다. 날카롭고 냉담하게 세상을 꿰뚫을 줄 아는 사람, 속에 차디찬 조소가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러면서도 재기발랄할 것 같은 사람. 



그리 생각한 이유는 첫째, 소설의 구성 때문이었고 둘째, 인물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연극의 문법을 차용한다.



(관객을 위한 의자나 배우를 위한 무대 없이 오직 빛의 밝기로만 경계를 만드는 원형 극장 안에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다. 어두웠던 한 곳에 빛이 들어오자 웅성웅성 대던 목소리들이 사그라진다.)p.6



그리고 동시에 이전의 소설에서 익히 보아왔던 문장식 묘사가 뒤를 잇고 주인공이 등장한다. 갑작스런 연극 지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익숙한 소설 형식이 나오자 독자는 곧바로 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이름은 있겠으나 편의상 M으로 불리는 주인공은 마흔 아홉 번째, 아니 마흔 여덟 번째 면접을 보기 위해 회사로 간다. 면접에서 이루어지는 인물의 대화는 (   )지문과 대사로 처리 된다. 책을 읽는 사람은 독자인 동시에 관객의 입장이 되어 M의 행적을 뒤쫓게 된다. 그런데 읽는 이가 따라가는 M의 면접은 좀처럼 순조롭지가 않다.



회사 관계자도 아닌 사람이 대뜸 다가와 M을 대신 면접하는 바람에 M의 진짜 면접 기회가 날아가버리거나 또다른 면접에선 앉을 자리가 부족해 구직자인 M이 대신 의자를 찾으러 나가기도 했다. 생애 첫 면접이었던 대입 면접에선 마치 합격할 것처럼 띄워주더니 실제론 불합격을 받는 억울한 일을 겪었고, 이제 보는 마흔 여덟 번째 과자 회사 면접에선 방금 한 말도 손바닥 뒤집듯 바꿔서 대답하는 얼토당토 않은 상황에 빠진다. 하지만 그런 건상관 없다. 오늘 보는 이 면접은 M이 반드시 합격해야 하는 취직 자리가 아니던가. 



그러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입사 지원서를 낼 수 있는 세상은 M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몇십 년 전에 이미 끝나 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과자 회사가 사원 모집 공고를 낸 이상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의무가 된 세상이다. p24



M은 대학 입시 면접에서 믿을 수 없게 떨어진 것처럼, 이번 과자 회사 면접을 믿을 수 없는 이유로 합격한다. 지금껏 읽는 이가 따라간 M의 발자취에서 납득이 가거나 신뢰가 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세상은 요지경이란 걸, 그래서 사는 재미는커녕 혼란만 가득하단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M은 진실을 말할 수 없다. 



이게 면접이기 때문이다.



삶은 거대한 기업이고 인간은 발에 채이는 수많은 구직자들 중 한 명일 뿐, 죄 짓지 않고 사는 것은 자연인만 가능한데 그것은 바로 이 기업에서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도태, 그러니까 불합격 말이다. 그래서 M은 죄를 지어도 기업에 합격하는 쪽을 선택한다. 드디어 거짓으로 점철 된 면접을 끝내고 M은 고대하던 기업의 신입사원이 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또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신입사원 연수(뚜둥)!

이 마지막 관문만 통과하면 된다. M은 연수원 제 방에 누워 옛날에 새를 봤던 일을 생각한다.



왜 다 큰 어른들 여럿이 창틀 뒤에 숨어 낄낄대며 새를 구경하는 걸까. 왜 새가 투명한 창에 몸을 부딪힐 때마다 오오, 하고 연민과 환호가 섞인 탄성을 내지르는 걸까. 좁은 베란다에 갇혀서 허둥지둥하는 작은 생물을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방향을 틀기만 하면 뒤쪽 베란다로도 충분히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작은 머리가 우습나. 새의 전부인 날개가 꼼짝없이 무용지물이 된 모습이. p51



연수원에 제 발로 들어가 누워 있는 M은, 실은 그래서 더 큰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 베란다에 갇히고 만 새처럼 보인다. 아니, 아니다. 책의 첫 장에서 보았듯 M은 거대한 연극 무대 위의 연기자일 뿐이다. 다만, 그 사실을 M도 우리도 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연수원에서 M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조원들은 모두 집 짓기 봉사를 해야 한다. 모두가 이 일을 수해로 부서진 집을 재건축 해주는 일로 알고 있지만 실은 회사가 나중에 이 땅을 구입하기 위해 미리 봉사라는 연막작전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즉 언젠가 다시 부숴야만 하는 집을 M과 조원들이 짓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은 요지경, 아니 믿을 수 없게 부조리한 요지경이다.



이 사실을 편의상 '친구'라고 부르는 이에게 전해 들은 M은 자꾸만 이 진실이 신경 쓰인다. 벽돌을 나르다가도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노인들의 표정이 눈에 밟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M은 이 봉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신입사원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M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벽돌을 나르고 죽을 힘을 다해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낙타의 바늘구멍에 모가지라도 들이밀겠다는 M의 의지는 처음에 순한 양처럼 생각했더 '꼬마'를 비웃고, 같은 조원인 '떠버리'를 경계하고 '친구'를 배신하는 지경으로까지 치닫는다.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봉사에 매달리는 M은 그러나 무슨 일에선지 거듭해서 X를 받고, 이 무한경쟁과 자꾸만 들려오는 기묘한 새소리, 모른 척 할 수 없는 진실에 결국 M은...(책에서 확인하시라!)



돌연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관객에게 다가와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답을 구하는 M의 모습은, 순식간에 관객과 연기자의 경계를 흐트려놓는다. 관객은 또다른 연기자로 무대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내가 하기 싫은 것도 살기 위해 해야 하고, 거짓인 것도 진실이라 포장하고 살아야 한다. 계속 자신을 팔아 넘기는 세일즈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인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고,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경계 밖을 나가는 걸 허락받지 않은 새의 삶이다. 이름과 진심 대신 익명과 가면을 뒤집어 쓰고 살아가는 것이다. 남의 삶이 아니라 그게 바로 내 삶이다. 이제 M이 사라진 연극 무대 위엔 한동안 웅성웅성 거리는 혼란함만 남다가, 다시 곧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새로운 면접자가 연기를 하러 들어설 테니 말이다.



통렬한 풍자와 섬뜩한 묘사가 돋보이는 박지리의 소설 <3차 면접에서 돌발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부조리를 전혀 식상하거나 익숙하지 않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주 낯설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정말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렇게 섬뜩한 소설을 써내는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하여 기사를 찾아봤더니 뜻하지 않은 부고소식에 잠시 머리가 멍했다. 그의 글을 편집한 편집자는 작가의 부고가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낮게 평가하는 이유도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다만, 내가 그의 글을, 그러니까 미루고 미뤄서 아주 나중에야 봤을 지 모를 그의 글을 당장 내일이라도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찾아봐야 겠다 결심한 까닭은 그의 부고가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요소가 되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다시는 그의 글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조급함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박지리 작가의 글을 알게 되어 정말 기쁘다. 일단 이 책이 나의 손에 있다는 것도 정말 기쁘다. 빨리 그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다! 특히 <다윈 영의 악의 기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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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2018-01-11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사계절출판사입니다. 3차 면접 서평 잘 보았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온라인서점 이벤트로 박지리 작가 작품전을 하는데요, 독자들의 서평으로 꾸리려고 합니다.
˝날카롭고 냉담하게 세상을 꿰뚫을 줄 아는 사람, 속에 차디찬 조소가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러면서도 재기발랄할 것 같은 사람.˝ -editor B

이 부분과

˝통렬한 풍자와 섬뜩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부조리를 전혀 식상하거나 익숙하지 않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주 낯설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정말 돋보이는 수작이다.˝-꿈녀

이 부분을 출처를 이렇게 밝히고 인용해도 될지요?
그리고 에디터 비로 브런치에 올리신 글을 저희 페북 등에 공유해도 될지요?
허락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읽고 싶은 박지리 작가의 책 제목과 주소와 연락처를 literature@sakyeju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챙겨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