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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고다마 지음, 신현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표지가 참 취향 저격입니다요♥
예쁜 건 두 번!! 띠지를 들고 있으면 관심 폭발★
책 내용이 참 좋다.. 특별히 슬픈 내용도 없는데 가슴이 먹먹하고 마지막엔 홀가분한 가벼움까지 느끼게 해준다.. 추천추천!!
'단숨에 읽었다', '흡입력이 굉장하다' 같은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실제로 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더라도 내가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의심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내가 의심하고 있단 사실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한순간에 나를 사로잡아 글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이 책을 읽다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고 말았는데, 하마터면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칠 뻔했던 것이다.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는 작가 고다마의 자전적 에세이다. 제목처럼 그녀는 남편의 성기를 몸 안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통'의 부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자신의 잘못으로 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은 그녀를 집과 학교, 일상에서 자꾸 움츠러들게 한다.
여자로 태어나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나는, 가장 마지막 상품검사에서 '불량'상자로 던져진 듯한 기분이었다. p43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성인 잡지들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놀랍게도 전부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쓰인 그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 모든 여자는 상대 남자의 성기가 들어간다는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수확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 몰래 유흥업소에 가 성욕을 푼다는 비밀을 알았을 때 그녀가 느낀 것은 "그가 밉다거나 더럽다는 감정이 아니었다."
'비겁해'라고 생각했다. 그저 '비겁해'라는 생각뿐이었다. 나를 남겨두고 혼자만 '들어가는'세계로 가버리다니 비겁해. p80
그녀는 자신만 '들어가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비록 그녀는 남편의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 외에 삶에서 최선을 다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사랑, 가족, 관계, 일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았다. 남편의 성기처럼, 그녀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던히 애쓰지만 번번이 세상 밖으로 튕겨나오고 만다. 벼랑 위에 매달린 그녀를 붙잡아준 건 남편도, 가족도 아닌 바로 '글쓰기'였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미칠 것 같을 때, 그녀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엉엉 우는 대신 누구라도 들어주길 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녀는 누구에게서든 좋으니 '넌 아무 문제 없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글쓰기. 자신의 존재가 불량품이 아님을 증명 받고 싶어서 쓰게 된 글쓰기는 이제 방향을 틀어 자신 스스로가 제 내면을 그대로 응시할 수 있도록 만든다. 남편의 성기는 들어가지 않고, 다른 부부처럼 성관계를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정한 것이다. 비록 일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자신의 옛 제자들의 행복을 빌면서, 남편의 학생들을 도우면서 살아가는 삶이 편하다. 체념처럼 보일 지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녀처럼 세상에 부대 끼고 살면서 상처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불량품이 아니듯, 삶을 사는 게 고단한 누군가도 불량품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삶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존중 받아 마땅하다, 그녀가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20여 년, 자그마치 20여 년이 걸렸다. 그 세월 동안 그녀가 혼자 감내하고 몸부림치던 모습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뻐근하게 느껴질 만큼 아프다. 그래서 그녀가 여느 부부처럼 당연히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학자금 보험을 권유하는 여자에게, 이 20여 년의 이야기를 바친다고 말하면서 책을 끝 맺었을 때는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고다마의 글은 '정상'이란 이름으로 함부로 돌진해 드는 세상과 그렇게 살도록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처럼 세상의 경계에서 서성거리고, 흔들리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 쓰느라 자신의 마음에 상처 내지 말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니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그런 해방감을 맛보길 바란다. 오랜만에 참 투명하고 맑은 에세이를 읽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분명 근사한 일이겠죠. 경험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니 아마 틀림없을 거예요.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거듭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을, 그렇게 살기로 한 결의를, 그건 틀렸다고 가볍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성장 배경이나 살아온 환경 등 다양한 인생의 조각들이 모여 그 사람의 현재가 있으니까요. 이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살아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