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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ㅣ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평점 :
최근 서점에 가면 예전에 나왔던 책이 다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 한 권이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다. 출간된 당시도 도발적인 제목과 내용 덕에 문제작으로 떠올랐던 책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나 지난 지금 차별과 배제, 승자독식의 구조를 내면화 한 이십 대를 분석한 이 책이 다시금 조명 되는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여전히 이십 대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괴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엔 2013년 있었던 KTX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시위가 있다.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던 강의에서 저자는 뜻밖에도 20대 대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한 그들을 "도둑놈 심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 20대들이 그들의 처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저자의 생각이 무참히 깨진 것이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스펙을 보유했으나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고 마는 이십 대가, 정유라의 "부모도 능력이다" 발언에 분노하며 촛불을 든 이십 대가, 어째서 비정규직, 소수자, 장애인, 등 의 같은 약자들에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혹은 왜 사회 구조에서 촉발된 모든 부당함을 자신의 탓,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수많은 아이러니에 답을 찾기 위해 여러 대학의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마침내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자기계발"이다. "잠재 되어 있는 자신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움"이란 사전적 정의와 달리 오늘날 이십 대의 자기계발은 오직 "취업"만을 뜻하는 것으로, "사회 탓 하지 말고 너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계발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이십 대들은 자연스럽게 "나만 노력하면 된다"는 식의 결론을 내면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지방대에 들어간 것도 공부 안 한 자기 잘못이고 비정규직이 된 것도 애초에 정규직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은 개인의 잘못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십 대가 그토록 경멸하는 기성세대의 "노오력" 담론을 고스란히 재연하는 이십 대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저자는 이십 대들이 갖는 이런 사고방식의 이유를 "(그들)자신이 현재 놓인 위치에서만 보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심리학 용어 중에 "터널효과"라는 것이 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논할 때 사용되는 용어로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의 밥과 빚에 쫓기기 때문에 터널처럼 좁은 시야에 갇혀 장기적인 계획을 짜지 못하고 계속 가난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만난 이십 대들은 모두 나름의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학자금이 천 만원 넘게 쌓였다든지, 유학을 위해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든지, 새벽같이 일어나 토익학원을 간다든지. 이렇게 자신이 처한 궁핍한 처지를 하루하루 헤쳐나가는 것만도 버거운 청년들에게도 이 터널효과가 그대로 적용된다. 연대하고 사회구조의 문제를 공론화했을 때 일으킬 수 있는 균열 대신 이십 대는 자신만의 좁은 터널에 갇힌 채 오직 '내 탓이오'를 연발하고 있기에 결국 약자는 계속 약자로, 문제는 계속 문제로 남은 채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십 대를 무작정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 그런 사회구조를 대물림하고 자기계발의 논리를 주입 시킨 건 결국 지금의 기성세대가 아니겠는가. 노오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의 가르침대로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순진하게 스펙을 쌓아가고 있는 이십 대들이,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 당하지 않기 위해 도리어 타인을 배척하고 차별하는 데 안간힘을 쓰는 이십 대들의 노오력 아닌 노력은 속이 쓰릴 만큼 안타깝지 않은가. 이십 대의 어두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책은 그래서 어떠한 힐링담론보다도 절절하게 읽힌다. 문제의 진짜 원인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이십 대가 스스로 균열을 낼 수 있도록 이 책이 앞장 서서 이끌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이 쓰일 당시는 후보였으나 이제는 대통령이 된 문재인의 슬로건을 통해 이들의 암울한 현재를 균열내고자 한다. 기회는 균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결과는 정의로운가. 그리하여 괴물이 된 내가 이상한 건지, 괴물이 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든 이 사회가 이상한 건지 의심하고 질문하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린 다음 해에 또다시 괴물이 된 이십 대를 호출하는 이 책을 다시 봐야 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더 이상 필요가 없을 때, 이십 대가 비로소 인간으로서 살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