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 실험 아이슬란드를 구하라
욘 그나르 지음, 김영옥 옮김 / 새로운발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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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로운 정치 실험, 아이슬란드를 구하라! -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시장이 된 코미디언의 유쾌, 상쾌, 통쾌 정치 성장기! " 이 책을 이토록 잘 설명할 수 있다니, 정말 완벽한 카피가 아닌가!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듯 2008년 아이슬란드는 IMF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정치인들은 냄새가 날 정도로 부패했고, 금융은 아무도 손 보지 않았으며 국민들은 심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가난한 어업국가의 기적으로도 불렸던 '아이슬란드'는 더이상 회생불가의 국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때,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타났다! 바로 "욘 그나르!"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시장이자 코미디언인 그 남자가 말이다!

그래, 표지에 나와 있듯이 붉은 머리에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한 저 사람. 이런 사람이 아이슬란드를 구할 구세주라고? 말도 안돼! 다들 미쳤군? 그래, 미쳤다. 이 사람은 정치가 아니라 국민에게 미친 사람이었다. 실의에 빠진 아이슬란드 국민들을 웃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코미디언으로서의 재능을 정치에 흠뻑 접목시킨 사람이 아닌가.

p.145

그의 아내 요가가 남편이 시장에 당선된 뒤 받은 인터뷰에서 대답한 내용이다. 답답하고 암울하기만 한 정치를 맞은 것은 아이슬란드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도 그러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웃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삶을 소중히 여기는 정치인이라니, 정말 신선하고 반갑다. 이 인터뷰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욘 그나르가 시장이 된 뒤 적어도 4년 동안은 실컷 웃을 수 있게 되었다니, 정말 멋진 말이다. 나도 정치 때문에 웃고 싶다. 정치 때문에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은 우리 국민들에겐 참으로 웃픈 이야기 아닌가.

당신은 밝은 빛 안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빛을 누릴 자격이 있어요!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을 보고 한동안 골똘히 이 문장만 쳐다보았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타국의 사람이 이럴진대 아마 인터뷰를 한 기자는 이런 아내를 둔 욘 그나르에게 흠뻑 반하지 않았을까?(물론 시민으로써!)

이 책은 특별하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얇은 분량에 담긴 묵직한 돌직구들이 읽는 사람의 심장을 파바박 강타한다! 하하, 웃음 짓게 하면서도 때론 눈물이 나게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글은 어찌나 잘 쓰는지 명문장이 많아서 몇 번이나 밑줄을 그어야 했고, 말은 또 어찌나 잘하는지 그의 정치 철학에 대한민국 국민인 나도 빠져버렸다.

누구든 마음만 있으면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정치"를 전혀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냥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 우리는 너무 정치를 대단하고 어렵게만 여긴 게 아닐까? 그래서 그것을 "평범"한 우리를 대신해 다른 사람에게 덜컥 맡겨버린 것이 아닐까?

우리는 민주주의를 방치했고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으며 어떤 면에서는 우리 스스로를 기만했다.

그 댓가로 우리는 지난 해 혹독한 겨울을 치뤄야만 했다. 우리가 국정농단과 탄핵이라는 사상초유의 위기(면서 기회)를 맞게 된 것은 일단 부패한 정치인들의 잘못이 크지만 정치만 정치가 일부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민의 과오도 일부 있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욘 그나르의 위 같은 말은 정말 뼈저리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열 흘도 채 안 남은 대통령 선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가? 욘 그나르에게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사람!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한 사람! 자신이 부족한 부분은 과감히 그 분야 전문가에게 맡길 줄 아는 사람! 인맥으로, 학연, 지연, 혈연으로 그 자리를 내주지 않는 사람! 모든 이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 이것이 바로 정치인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 정치는 대단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를 대신할 어떤 사람이 하는 것, 그게 정치니까 말이다.

불변의 진리!
민주주의의 운명은 국민의 참여와 관심에 달려 있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높은 참여율이 나오길 ...

내 이웃이 게이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전혀 상관 없다. 이웃이 전통인형을 수집한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듯이.

정말 멋진 비유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토론 때 문 후보와 홍 후보, 그리고 심 후보가 "동성애"에 대해 문답한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누군가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세상 둥글게 둥글게 살다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는 나로서는 이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의 새로운 대한민국은 "누가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말해야 지지를 받는" 그런 세상은 안되어야지 않겠는가.

욘 그나르 시장

코미디언이지만 정치에 입문해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당당히 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가 결코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 누구든,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정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정신! 특권과 지배로 점철된 그런 것이 정치인이 아니라 어떤 때에는 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웃음을 줄 수 있는 광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생각! 

지난 겨울, 우리는 자발적인 참여로 "정치"를 바꿨다. 작은 촛불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그런 대한민국이다. 우리가 그 대한민국 국민이다! 

힘이 되고, 응원이 되는 책, "새로운 정치 실험 아이슬란드를 구하라!"

먼 타국의 나라에서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욘 그나르! 그리고 이 책을 한국에 출판해준 "새로운 발견"에도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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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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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으로 유명한 덴마크 작가 페터 회의 신작 "수잔 이펙트"를 읽었다. 아직 접해보지 않은 나라가 많겠지만 특히 덴마크는 정말 생경한데 그런 낯선 나라 작가의 문체란, 이야기란 어떤 것일까 호기심을 느끼며 읽었다. 차가운 북유럽 태생이어서일까, 그녀 특유의 것일까 모르겠지만 소설 전체에서 먼지가 바스락거리는  것 같은 건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건조함 속에서 빛나는 매끄러운 부드러움 때문에 정말 독특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왜 사람들이 페터 회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공 수잔과 그의 남편 라반,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정말 특이하다. 혈연 관계로 맺어져 있지만 우리나라 같은 뜨거운 정이 끓고 있기 보다는 차라리 차가운 개인주의자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느낌? 어쩌면 작가는 그렇게 은밀하게 애정을 나누고 있는 개인주의자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이후의 결말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때문에 결말이 더 진하게 다가왔다.


주인공 수잔은 천재 물리학자다. 거기에다 자신의 눈을 쳐다보는 누구나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른바 "수잔 이펙트". 세상에, 정말 멋진 능력이 아닌가. 수잔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녀에게 자신의 속내를 속수무책으로 털어놓는 걸 보면서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몰라 곤란을 겪었던 일이 떠올라 그 능력이 너무나 부러웠다. 어쨌든 그런 매력적인 능력을 가진 수잔은 일명 "미래 위원회"라는 조직의 마지막 보고서를 빼내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그 때까지 인도에서의 일로 곤경에 처해 있던 수잔과 수잔의 가족은 그 보고서로 자신들의 삶을 되찾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 보고서가 단순히 문서 한 장의 무게가 아니란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베일에 싸여진 덴마크의 비밀 조직, "미래 위원회". 그리고 진실에 다가갈수록 속속 의문의 죽음을 맞는 미래 위원회 조직원들, 그들이 감추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죽여서라도 그들의 입을 닫아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커지는 스케일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떨 때는 아! 하고 놀라운 감탄사를 내뱉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약간의 두려운 감정이 섞인 비명이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다면, 누구나 나와 같은 느낌을 갖게 되지 않을까.  


결말까지 정말 좋았던 소설. 


 물리학이라는 문학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를 끌고 와서 이토록 멋진 소설로 승화할 수 있다니, 페터 회의 능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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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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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집 '버라이어티'에 수록된 '세븐틴'입니다.

가정주부인 유미코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친구와 외박을 하겠다는 딸을 

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입니다. 

무작정 화를 냈다가 딸과의 사이가 나빠지지나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아직 열 일곱 밖에 되지 않은 딸이 너무 이른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반짝이던 청춘이 있었습니다. 

첫사랑, 첫키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순간들...  

  그 눈부셨던 날들이 다 지나가고, 열 일곱이었던 소녀는 

어느새 중년의 가정주부가 되었습니다. 무사히, 무사히 말입니다.

 

그래서 유미코는 딸을 믿어주기로 합니다. 

청춘의 시절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니까요.

    

사랑에 빠진 딸의 비밀을 지켜주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눈을 찡긋해보이는 귀여운 딸의 모습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지는 단편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이런 가슴 따뜻한 이야기 외에도 아버지의 삶의 무게, 

블랙 코미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 등의 여러 단편들이 담겼습니다. 

특별히 작가와의 대담도 실려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남쪽으로 튀어', '무코다 이발소'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을 남기며 

명실상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


그의 독특하고 특별한 상상력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소설집 '버라이어티'를 

당신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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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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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파도처럼 밀려 드는 감동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 아라이 나오토는 코다(CODA), 즉 농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입니다. 자신이 넘어져서 소리를 치며 울어도 '들어줄' 가족이 없는 침묵의 세상.


어리광 부려도 모자른 어린 나이부터 가족과 세상의 '통역사'가 되야 했던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상처'와 '외로움'에서 벗어 나지 못합니다. 


마음의 빗장을 꼭꼭 닫은 채, '청인'도 '농인'도 아닌 어른으로 성장해 버린 주인공. 

그런 그에게 소녀는 묻습니다. 


"아저씨는 우리 편? 아니면 적?"


17년이 지난 후, 주인공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외면했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마주하고,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인 저 역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 그가 세상에서 소외된 '농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면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무너뜨려가는 모습은, '농인'을 비롯한 

수많은 소수자들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 경계는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가, 하는 것을 말입니다.     


주인공은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요?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적입니까, 한 편입니까?

다른 대답은 없을까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 

'데프 보이스'



봄처럼 따뜻한 이 소설을, 

당신에게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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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 제7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7
우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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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대학생인 나는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받기 위해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딸이지만 살가운 대화를 하기가 어색한 부녀(父女) 사이에 '돈' 소리가 오가면 가슴이 시멘트로 덮힌 듯 막막해진다. 목구멍에서 뭉클하게 비어져 나오는 내 '미안해요'하는 말에, 아빠는 수화기 너머에서 손사래를 치며 '아니다'하고 얼른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마치 맡겨둔 돈을 찾는 사채업자처럼 느껴져 괴롭다. 


합법적으로 돈을 뜯는 딸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납부하기 위해 아빠는 수십 년의 세월을 지금까지 일터에서 보냈다. 농사는 한순간도 쉴 수 없는 중노동이라 아빠는 비 오는 날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나는 가끔, 우비를 쓰고 비닐 하우스를 고치는 아빠를 바라보며, 당신의 노동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취직하면? 결혼해서 애를 낳게 되면? 노인 연금을 받는 나이가 될 때? 나는 두 주먹으로 비닐하우스를 고정하는 끈을 잡아당기는 아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당신에게도 언젠가 꿀 같은 '휴식'이 오길, 숨죽여 기도했다. 


그러니까 나는, 실직하고 집에서 백수 신세가 된 진서의 아버지가 부러워야 했다. 아내가 돈을 벌고, 자신은 사랑하는 딸과 하릴없이 떡볶이나 먹다가 저녁에는 드라마를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그의 일상은 '휴식'이 아닌가. 허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삶을 이루던 조각이 한순간 부서져 버린 남자를 보고 있는 것은 괴롭고, 두려운 일이었다. 내가 바랐던 것은 아버지의 '휴식'이지, '상실'이 아니었다. 


그래서 진서의 아버지가 잡동사니가 가득 든 뽑기 상자에 매달려 영혼이라도 팔 듯 몰두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뒤에 있는 거대한 슬픔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무작정 닥쳐버린 그 낯설고 지루한 시간들을 견뎌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그를 그냥 꽉, 안아주고 싶었다. 


나의 당신처럼, 진서의 아버지가 사는 세상도 부당하고 가혹한 곳이었다. 하늘 아래, 진짜 선물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정직한 뽑기 기계가 없는 것처럼, 그네들은 '돈'으로 점철되어진 사기의 세상에서 때론 어깨가 부서질 듯 숄더 어택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한 번이라도 그 기계를 이겨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진서 아버지의 노력을 보면서 아, 나의 아버지도 그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탁, 막혔다. 그리고 마침내 싸구려 라디오며, 피규어를 잔뜩 뽑아내면서 기뻐하는 진서 아버지가 실은, 울고 있었음을, 나는 내 아버지의 무뚝뚝한 얼굴을 떠올리며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내 아버지는 지금, '아픈 것'이 아닐까. 진서의 어머니가 뽑기에 열중하는 남편을 보며 말했듯, 묵묵히 밭을 갈고, 뱃일을 나가는 아버지의 그 쉼없는 '몰두'는 당신의 맘 속 어딘가가 병들었다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젊은 시절, 푸르른 꿈을 쉽게 상상할 수 없던 나는,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항구에 매어 놓은 그 '꿈'이 어떤 것이었을지, 가늠해 보았다. 자식들은 무거운 추처럼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그가 '꿈'을 향해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아버지가 묵묵히 삶의 무게를 견뎌오는 동안, 나는 무얼했나.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 진서처럼 아버지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까. 진서의 어머니처럼, 외로운 가장의 등을 꼭, 안아줄 수 있을까. 소설을 덮은 뒤, 나는 이 대구 어딘가에 진서네 가족이 진짜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따뜻한 모습을 떠올리며,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나는 잘 있어요, 아빠. 아빠, 밥 먹었어요? 아빠, 아프지 마세요.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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