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증전문 삼신병원 푸른숲 어린이 문학 49
이재문 지음, 모루토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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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소년 시기는 어땠지?’

: 이재문, 환상통증전문 삼산병원(푸른숲주니어)

 


4명의 아이들 에피소드를 통해 청소년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성장통과 내면의 상처를 판타지적으로 형상화한 환상통증이라니. 네 아이의 에피소드를 읽고 공감했고, 청소년을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위로 받았다. 굳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잘하고 있어.‘와 같은 말을 해주지 않아도 그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일이나 감정 등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 말보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는 더더욱.


이재문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데 다른 독자들 리뷰를 읽어보니 이 작품 말고도 전에 작품에서부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듯 보인다. <환상통증전문 삼산병원>만 읽고도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쓰고 싶은 청소년 소설를 만났다!‘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재문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고 찾아 읽을 것 같다. 나랑 비슷한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 비슷한 마음을 형상화할 수 있도록 찾는 건 내 몫이다, 푸른숲주니어에서 계기를 만들어줬으니까! 청소년 시기, 소설 덕분에 덜 외로웠고 자연스럽게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게 됐고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쓰겠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대학 졸업 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글쓰기와 멀어지고 꿈을 사치라고 여기며 흐릿해졌는데 뭔가 펜을 들고 싶다는 느낌이 아주 조금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나의 청소년기는 어땠지?’ 준희였고 다윤이었고 태민이었고, 유림이었다. 네 아이가 모두 있었다. 그중 두드러진 건 태민과 유림이었다. 매일 내 안에는 태민과 유림이 오고 가고, 준희와 다윤이가 종종 찾아오면서 하루라도 나 자신으로 존재했던 때가 없었다. 그래서 늘 피곤했고 불편했고, 마음에 정리가 되지 않은 감정들이나 상황들이 뒤섞여 쌓인 채 어른이 된 지금도 비우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비워야 할지 모르고, 비우고 나면 내가 아예 사라질 것 같아서 겁이 난다. 다시 채워야 하는 게 가장 두렵다, 지금 나를 채우고 있는 게 나를 힘들고 두렵게 하는 걸 알면서도 이미 내 것으로 있었던 시간이 길어졌고 굳어져서 떼어내거나 처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학창 시절을 졸업했다고 해서 준희와 다윤이, 태민이와 유림이가 없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한다. 학창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른의 삶이라는 걸 알아차릴 때마다 현타가 세게 오고,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지곤 한다. 그때 환상통증전문 삼신 병원이 있었다면, 길거리에서 간호사 백이와 만났더라면 그렇게 삼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결국 제 의지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문제를 꿰뚫어보고 마음을 알아보고, 부담스럽지 않게 해결 방법의 힌트를 주며 응원해주는 삼신 선생님의 존재는 더더욱. 학창시절 때 삼신 선생님과 같은 어른을 난나지 못해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는 가끔 고개를 들어 어른이 된 나를 보고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자신을 벗어나기에는 내가 불안정하고 약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듯이. 뒤늦게야 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삼신 선생님이 그때의 나에게 사과를 하고 도움을 주는 느낌이라서 읽는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준희는 싫은 소리를 못하고 늘 엄마가 계획대로 움직이기 위해 애쓰며 뭐든지 완벽하려고 한다. 다윤이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이 서툴다. 태민이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자신을 답답해 하며 다른 이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유림이는 뭐든 완벽해야 하며, 타인에게도 그 완벽함을 강요하고 예민해서 뭐든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네 아이의 특징을 보면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그냥 그 시기에 겪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네 아이의 일상, 더 넓게는 삶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다행히 네 아이는 본인이 가장 혼란스러울 때 삼신 선생님을 만났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 네 아이와 삼신 병원의 만남은 현실에도 이루어져야 할 만남이라고 계속 생각한다. 삼신 선생님의 부드럽지만 정확한 진료와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세상 곳곳에 아주 많으니까.


준희와 다윤이, 태민이와 유림이의 문제는 성장과 경험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문제는 긍정이다. 문제가 계속 문제로만 남는다면 그건 긍정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네 아이 모두 경험하면서-준희는 개구리 인간이 되고 다윤이는 날카로운 덧니로 고통을 경험하고, 태민이는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유림이는 친구와 다툼 중에 생긴 본인 눈에만 보이는 친구 상처에 걱정하면서- ‘변화를 경험하고 성장했다. 아이들이 경험 안에서 겪어야 할 불안이나 다툼, 복합적인 감정들은 훗날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이 어른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말이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네 아이들이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것들을 마주하면서 본인들 스스로 느낄 것이다. 전과 달라진 자신을, 마음이 단단해진 자신을, 비로소 가벼워진 자신을.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뱉어야 하고 인정해야 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근데 쉽지 않다. 뱉은 말은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칼이 되어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그렇다고 쌓기만 하면 마음이 건조해져 피부가 가려워지고 개구리가 될지도 모른다. 인정하면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타인에게 인정하는 것인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타인을 배려하는 거라서 힘든 일이다. 수학의 정석을 담은 바이블처럼 교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 등을 주제로 하여 낸 책이 많아도 그것을 따라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처럼 시간 낭비인 경우가 많다. 그저 직접 경험하고, 배우고 깨닫는 수밖에.


<환상통증전문 삼신 병원>을 방문한 아이들이라면 건강하게 앓고 있는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키워진 병, 몸집을 부푼 병을 건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할 수 있다. 치료하는 건 선생님의 개입은 2%이고, 환자 본인의 개입이 98%이다. 아이들 모두 삼신 선생님과 백이 간호사님 덕분에 건강하고 한결 가벼운 일상을 전과 다른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믿고 가보는 것이다, 의심하면서도 가보는 것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고 가벼워지고 싶다는 마음과 의지가 있다면 <환상통증전문 삼신병원>로 망설임 없이 오면 된다!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 갈 생각조차 못한다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사건이 생길 것이다.


문득 삼신이 내 주변에서 나를 돌보고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크게 다치거나 힘들지 않고, 잘 살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늘에 그냥 뚝- 떨어진 건 아니니 말이다. 삼신이 고심 끝에 지금의 부모 첫 딸로 점지했고, 내가 잘 크고 있는지 성장하는 내내 지켜봤고, 어른이 된 지금도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며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다. 변신의 귀재 백이처럼 사물이든 사람이든 바람에 힘없이 나부끼는 가을 낙엽 등으로 변해서 말이다. 지금도 내 주변에 있을 삼신에게 고맙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작품을 잘 쓰는 작가님은 작가의 말마저 명쾌하게 잘 쓰는구나.’ 생각했다. 이 작품에 대한 애정, 아이들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앞으로도 작가님이 백이처럼 다양한 목소리로 독자들을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 이번 만남으로 작가님의 작품 소식을 기다리는 독자가 한 명 더 늘었다는 걸 작가님한테 전해졌으면 좋겠다. 외국 신화만큼 우리나라 신화도 재밌을 것 같다고 처음 생각했다. 우리나라 신화를 찾아 읽어봐야겠다. 삼신에 대해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달까? 작가님이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를 정말 애정한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 루이스 작가님의 그 시리즈를 어릴 때부터 돌려서 보고, 어른이 된 지금도 방금 본 것처럼 내용이 술술~ 머릿속에 재생된다. 어릴 때 본 작품이 어른이 된 지금도 생각나는 건 그 작품이 정말 좋거나 오랜 시간이 기억될 만큼 특별했다는 거다. 그런 작품이 내게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재문 작가님 작품 또한 나를 포함하여 많은 독자에게 그러길 바란다.


환상통증은 작가님이 만든 설정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환상통과 다르지만, 그 고통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마음 편하지 않는 하루를 보낸 아이들, 환상통증이 심해진 아이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든 닿길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이 보내고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움을 알고, 점점 나아질지도 모르니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환상통증을 앓지 않는 건 아니다. 어릴 땐 어른아이로, 어른이 되었을 땐 아이어른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환상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각자 자신에게 맞는 삼신 병원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나의 삼신 병원은 혼자 책 읽는 시간이다). 각자만의 삼신 병원에서 환상통증의 원인과 증상을 제대로 자세히 알고, 제때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환상통증은 누구나 앓을 수 있고, 치료를 받는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며 언제든 다시 치료가 필요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치료의 시작일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삼신과 두루미 백이의 캐릭터를 떠올리니 마음이 편안하다. 평범한 인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특별한 존재였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특별하고,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삼신이 점지한 우리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 삼신이 우리를 위해 쏟은 사랑을 위해서라도.

 

이재문 작가님을 알게 되어 반갑고,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청소년 소설이라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푸른숲주니어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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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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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마주앉아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 삶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에이모 토울스, 테이블 포 투(현대문학)(*프리뷰북 서평단 선정)

 


짧은 소설이지만 뭔가 장편소설을 읽은 느낌이었다. 스토리가 특별하거나 몰입력을 올리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새 이 책에 빠져 있다. 시작은 따분하게 느껴졌지만, 뒤로 갈수록 나도 모르게 몰입하여 빠르게 읽었다.


카네기홀에서 불법으로 녹음기를 틀어 콘서트 연주를 한 노인과의 실랑이를 다룬 이야기라고 한 문장으로 이 소설을 소개할 수 있다. 간단한 소개지만, 곱씹을수록 느껴지는 아쉬움과 찝찝함은 무엇일까?


토미(토머스 하크니스)라는 캐릭터 때문에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왜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콘서트 연주를 몰래 녹음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일단 앞뒤 상황 재지 않고 저지르고 보는 토미의 행동에 눈살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토미는 자신의 생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생활에 대한 예를 들면 하루를 정해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듣는 것과 같은 행위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투자 은행가라는 직업을 가진 그와 잘 어울리는 모습 같다. 토미의 행동으로 불편함을 느낀 건 나뿐만 아니다. 카네기홀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그에 따른 예의 등이 있겠지만, 그 공간에 대한 분위기와 예의와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건 토미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몰래 녹음하고 있는 노인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의 태도는 흔히 말하는 우아함과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어설프게 흉내내며 자신의 서툰 모습은 아예 보지도 못하는 안쓰러운 인물이랄까. 장소나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예외인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서 파인 씨는 토미와의 소란을 겪고, 코넬의 말대로 카네기홀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 그를 찾는 토미의 모습은 정말 숨이 막혔다. 찾는 이유가 사과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말이다. 파인 씨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집요하게 구상하고 지도까지 만들어 제 발로 많은 도어맨을 만나 결국 파인 씨를 찾아냈다. 앞뒤 재지 않고 들이받는 것이 익숙한 것처럼 보이는 토미는 파인 씨가 혼자 산다는 도어맨의 말을 듣고, 약국을 다녀오는 파인 씨를 몰아세운다. 파인 씨를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그런 토미를 침착하게 대한다. 파인 씨는 토미 때문에 당황스러운 일을 겪으면서도 한 번도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토미는 파인 씨로부터 아내가 죽은 후로부터 혼자 산다는 답을 듣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 그의 삶을 마주한다, 아주 얕고 일부인 그의 삶을. 그의 삶을 통해 토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토미는 아무래도 움직이는 제 삶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토미는 파인 씨에게 사과를 여러 번 하고, 파인 씨는 토미의 사과를 받지 않는다. 사과하지 말라고 한다. 파인 씨는 오히려 토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내가 병을 앓고 나서 카네기홀에 두 번 다시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파인 씨에게 그의 아내 바바라는 간호사처럼 있지 말고 연주회에 가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말을 따라 연주회를 갔고, 연주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그에게 연주가 어땠는지 물었지만, 그는 연주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녹음해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듣기 시작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녹음을 그만했어야 했는데, 그는 멈추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소란이 있었던 날, 녹음해서 정성들여 라벨을 붙이고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한 테이프도 모두 내다 버렸다고 했다. 연주 녹음은 그에게 아마 아내를 위한 일로 시작한 것이지만 어쩌다 삶 이상이 되었다. 음악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에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한 그의 아내 바바라는 삶을 사랑했고, 파인 씨는 뒤늦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제 삶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은 신을 용서하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오래 살고 있는 자신을 용서하게 된 것이다. 어느 새 음악은 그의 삶이 된 것이다. 그에게 음악이 들릴 때, 그가 느낀 벅참은 얼마나 저릿하고 찌릿했을까.


토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파인 씨, 파인 씨의 딸이 토미에게 했던 말, 파인 씨의 딸 바람대로 토미가 마음이 불편했던 장면 모두 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부분이라서 머릿속에 반복재생된다. 파인 씨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라서, 부딪치고 깎이고 닳아진 거라서 더 와닿았다. 그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보냈어야 할 시간들을 그에 대해 정보로만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듣는 것뿐. 누군가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 일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를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교통사고와 같은 충격이다. 파인 씨의 이야기를 듣고 토미는 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깨달은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토미가 살면서 두고두고 녹음기와 파인 씨, 파인 씨의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날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들이받고 그로 인해 누군가의 삶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짐작도 못하고 그대로 몰려오는 파도를 맞아야 하는 일은 아프고, 외로운 일이다. 카네기홀에서 시작된 작은 소란이 거대한 폭풍을 가져오다니, 어쩌다 마주앉은 테이블에서 직면한 현실. 그리고 시작된 삶. 토미의 삶은 이제 시작되었다.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던 삶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 삶을 만나는 날, 파인 씨의 녹음 행위에 대한 강한 수치심이 아닌 그 너머의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모스크바의 신사라고 불리는 작가라는데, 단편소설 밀조업자(테이블 포 투) 읽으니까 알 것도 같다. 에이모 토울스 작가님 작품을 처음 읽는데, ‘파인 씨가 꼭 작가님 같다고 생각했다.

 

이 프리뷰북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현대문학에서 받았습니다:)

 

#테이블포투 #밀조업자 #에이모토울스 #현대문학 #프리뷰북 #서평단 ##테이블 #대화 #현실 #직면 #책로그 #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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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에게 가는 길 위픽
전삼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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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애도 중, 가장 좋았다. 좋았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 전삼혜, 나름에게 가는 길(위픽시리즈/위즈덤하우스)

 


어째서 이 글을 이제야 만난 걸까. 두고두고 꺼내볼 글을 만나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조금 더 일찍 만나면 어땠을까,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지.’와 같은 생각들이 충돌한다. 충돌 후, 부서진 생각들이 머리와 마음을 헤집는다.


나름이 무엇이기에 없애야 하는 걸까. 계속 생각했다. 그대로 두어도 언젠가 사라질 것인데도 말이다. ‘나름에 대해 설명을 하긴 했으나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나름을 애초에 이해하려는 게 틀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름은 이해될 수 없는 무언가로 그냥 나름인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호흡을 다듬고 <작가의 말>을 읽기 전에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우주의 쓰레기 청소부와 애도에서 출발된 나름에게 가는 길은 내가 만난 애도를 다룬 작품 중 가장 좋았다(애도를 다룬 방식을 평범하면서도 색다르게 느꼈다. 우주라는 공간이 더 이상 미지의 세계거나 특별하지 않음이 한몫 한 것이다). 좋았다는 표현말고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애도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많은 방식 중, 전삼혜 작가가 들려주는 애도의 이야기는 내가 바라던 애도 방식과 비슷했다. 애도 목적은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는 점에서 나와 다르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애도 목적, 그러나 슬퍼하는 방식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은 없듯이 정말 많다. 어떤 방식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처음으로 나의 애도방식을 떠올렸다. 솔직히 애도 방식을 떠올리는 게 낯설고, 처음이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한 죽음의 경험은 키우던 강아지들의 죽음이다. 내 일상을 공유하고, 나와 추억이 많았기에 그들이 숨을 거뒀을 때 눈물이 흐르고 후회를 하긴 했으나 며칠뿐이었다. 금방 일상으로 돌아와 내 마음대로-내 마음이 편하고자-강아지별에 가서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애도는 짧고 굵은 것 같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잘 모르겠다. 애도 할 일을 만나고 싶지 않다.


여기서 가 하는 일들이 매력적이면서도 따분하게 느껴진다. 없애는 일을 하는 것이 외롭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외로움마저 치우는 게 가 해야 할 일이라서 생각했다. 없애면서 는 처리하는 존재로 남는 것 같달까. ‘는 본인의 생활에 만족도, 불만족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보인다. ’의 동생 아영이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아영이의 이야기는 애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애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의 부모가 하는 애도 방식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멈추길 바랐다. ‘가 아영이에게 매달리는 부모를 보고, 더 이상 자신의 부모 역할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말하는데 그때의 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했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을 그리워하고,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부모라지만 아영의 부모가 택한 방식은 죽은 아영이를 힘들게 하고, ‘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그 힘듦을 끝내러 가 결국 찾으러 없애러 가니까. 아빠는 차라리 없애주길 바라서 에게 좌표를 남긴 걸까.


그리움이 짙으면 삶이 무너지는 게 한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의 삶이 흔들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 동생이 그립다. 부모와 의 애도 방식이 다르다. ‘는 현실적이다. 부모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이 의미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좌표를 입력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있으면 싶다가도 없으면 싶고. 두 마음이 충돌하는 는 찾고 없애기 위해 가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이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함으로써 알려줘야 하니까. 솔직히 의미 없다고, 그저 쓰레기만 더 만드는 것이라고. 어차피 내가 다 찾아서 없앤다고, 내가 없애지 않아도 사라진다고. 마음을 비우라고.

는 동생을 어떻게 애도했을까. 애도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나는 이번 한 달여간에 시간이 애도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동생을 제대로 떠나보내고, 부모님한테 아영이는 이미 떠나고 없음을 알려줄 기회이고 부모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딸의 죽음을 이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가 해야 할 일은 애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떠난 사람은 잘 모르지만, 남은 사람은 아주 무겁고 시간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아직도 밝혀질 게 많은 바다가 아니라 닿을 수 있는 우주와 같다. 비워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시기를 놓치면 비워야 할 것들과 갖고 있어야 할 것이 뒤섞여 마음은 혼란을 경험한다. 특히, 애도의 경우는 더 심할 것이다. 건강한 애도를 하는 것이 우리가 살면서 적지 않게 해야 할 일이다. 애도하는 방식이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거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마주한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애도를 찾아가는 거랄까. 애도는 각자 방식이 존재한다. 틀리거나 맞다고 할 수 없기에 애도는 조심스럽고 특별하다.


작가님은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고 잊었던 사실을 잊는 것을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 글 자체가 위로면서 동시에 애도가 아닐까. ‘잊어야 한다와 잊지 말아야 한다를 타인이 재단하기는 어렵다, 작가님 말대로. 근데 이 글을 읽고 나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었을 때 제대로 애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만으로도 위로되었다. 잊지 않기 위해 애쓰거나 잊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잊으려고 했으나 대부분 실패였다. 광활한 우주를 떠다니는 쓰레기 꼴이었다. ‘가 필요하다. 나의 우주 쓰레기 청소를 부탁하고 싶다. 미련이나 그리움은 계속 생겨난다. 그래서 계속 비워야 한다. 미련이나 그리움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청소라고 불러야겠다. 청소된 나의 우주라면 정말 잊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내 삶이 계속 굴러가려면 마음 다잡고 대청소가 필요할 듯 보인다.


가방에 챙겨 외로울 때마다 뭔가 놓치거나 잊은 것 같을 때, ‘도망은 때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을 때 꺼내 읽어야겠다. 서툴게 굴러가는 삶이라는 바퀴에 이것저것 다 달라붙어 무겁지만 그럼에도 굴러가는 이유가 있겠지?

 

위픽시리즈 중, 처음으로 읽은 시리즈인데 너무 좋다. 위픽시리즈 한 권씩 모으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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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미셸 플레식스 지음, 이세진 옮김, 케네스 그레이엄 원작 / 길벗어린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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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읽고 또 읽는 아동문학의 고전인 이유를 알겠다!

미셸 플레식스 각색, 그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길벗어린이)(그래픽 노블)

 


평화롭고 아름다운 야생의 숲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마음을 달랠 생각이었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아름다운 야생의 숲은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바로 허세 가득, 사고뭉치 두꺼비 때문이다!


어느 봄날 두더지와 물쥐는 배를 타고 소풍을 나간다. 둘의 평화로운 시간을 얼마 가지 못한다. 돈 많고 허세 많은 두꺼비 때문이다. 두꺼비 때문에 동물 친구들은 악몽 같은 대소동을 겪게 된다. 두더지와 물쥐가 나오는 장면은 일상의 잔잔함,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보는 내내 배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잔잔한 호수 위에서 사방을 둘러싼 자연을 마음껏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두꺼비가 등장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다. 두꺼비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두꺼비가 진짜 종이를 뚫고 나와 내 앞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두꺼비의 정신 사나움과 허세에 이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많이 지친 느낌을 받았다. 그래픽 노블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부분이기도 했다.


야생의 숲에 사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두더지를 닮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두꺼비를 닮은 사람도 있었다. 야생이라는 나와 거리가 있는 거대한 또 다른 세상이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고, 안부를 묻고 걱정하고 때로는 친구가 나쁜 길로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냉정하게 대하는 등 인간 세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두더지와 물쥐를 비롯하여 동물 친구들은 두꺼비 때문에 매일 시끄럽게 보낸다.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지 두꺼비는 제멋대로 군다. 두꺼비 캐릭터를 보면서 어른인데도 여전히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아니 아이보다 더 아이처럼 구는 몇몇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두꺼비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달라진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들도 내가 권한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며, 읽지도 않을 것이다. 읽더라도 두꺼비가 자기와 똑같은지도 모르고, 두꺼비를 보고 웃으며 욕할지도 모른다. 두꺼비가 무전취식을 하고 다른 이의 차를 훔쳐 모는 등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재판을 받고 형량을 받는다. 두꺼비는 자신의 형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니까. 감옥에서도 허세는 멈추지 않고, 결국 탈옥까지 한다. 두꺼비가 저지르는 만행은 용서받기 어렵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본인이 다 차버렸으니까. 두꺼비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잘못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궁금했다. 자신 때문에 친구들이 피해를 보고, 자신을 위해 친구들이 걱정하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도.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언제까지 낭비하면서 살 건지 묻고 싶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제멋대로 구는 두꺼비를 친구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는 친구들을 보자니 우정을 넘어 두꺼비를 향한 연민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연민이 없다면 두꺼비는 오래전에 혼자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두꺼비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여전히 치르지 않았다. 그러니 잘못을 하루라도 빨리 알고-지금 알아도 너무 늦었지만-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 두꺼비는 많은 돈과 허세 대신 냉정하고 올바른 길을 알려준 존재가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인내심까지 겸비한 그런. 두더지와 물쥐, 그 외 친구들이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당연하게 여기진 않을까 걱정이다. 두꺼비가 진짜 삶을 삶답게 사는 그날은 야생의 숲이 평안에 이르게 될 것이다. 기약할 수 없는 날이기도 하고.


그래픽 노블이 글씨로만 채워진 소설보다 읽기 힘들 줄 몰랐다. 그림이 스토리를 이해하고 기억에 남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읽는데,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평소 그림이 아닌 글로만 된 책이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래픽 노블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배웠다. 아동문학의 고전이나 다른 장르가 가능하다면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래픽 노블만이 갖고 있는 매력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동문학의 고전답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물쥐나 두더지, 오소리 등이 하는 대사가 내 마음에 꽂히기도 했지만, 두꺼비의 모습만으로 자연스럽게 깨달음의 과정이 일어난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사만큼 상황이나 분위기, 극의 흐름을 통해 읽는 독자가 뭔가를 느끼고 깨닫게 하는 건 작가가 부릴 수 있는 마법이며, 동시에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다. 이 책을 통해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힘든 내가 은연중에 뭔가를 꼬집거나 상대에게 뼈 있는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야생의 숲의 하루하루, 계절의 흐름에 따른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풍자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강한 풍자의 성격이 그림과 에피소드와 잘 버무려져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로 새 옷을 잘 입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길벗어린이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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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 - 분노의 늪에서 나를 건지는 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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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 건 나였다.”

: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분노의 늪에서 나를 건지는 법)(웅진지식하우스)


 

400쪽이 넘는 심리 관련 책을 읽고도 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 자발적으로 구매해서 읽은 책이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였다. 심리 관련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지만, 마음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거대한 바위에 균열이 생긴 것 같긴 하다. 이 책을 통해 답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는 완벽한 질문도 완벽한 답도 없는데, 그중 가장 답하기 어려운 마음이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했다. 어리석지만 용기 있고, 어리석기 때문에 가능했던 정면 부딪치기라고 생각한다. 답은 찾지 못했다. 애초에 답은 없었거나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알고 있는데도 모른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나도 이해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 건 나였다.‘


욕망과 분노, 미혹이 인간의 대표적인 번뇌 세 가지라고 했다. 번뇌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으니 당연히 마음이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대상에 대한 마음이라고 했다(불도). 계속 곱씹게 되는 불도의 마음 정의였다. 대상에 대한 반응을 끊임없이 하는 마음이라서 하루라도 편한 적 없고, 피로하지 않은 적이 없다. 반응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부터 이미 반응하고 있는 마음을 보면 답답하고 뜨거운 불길 안에서 몸부림치는 고통을 경험한다. 이 고통에 들어간 것도, 벗어나는 것도 나 자신이다. 어쩌다 번뇌라는 굴레에 발을 들여 벗어나지도 못하고 매일 고통에서 몸부림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벗어날 거라는 희망은 매일 갖는다. 희망이 잔인한 이유는 그럼에도라며 계속 꿈꾸기 때문이다. 솔직히 오늘이 이런데 내일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이 어제보다 나은 하루였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번뇌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사는 일은 피곤하고, 불쾌하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머릿속에 갇힌 마음을 달래고 거칠게 몰아세우는 등 내 방식대로 제멋대로 구는 마음을 지금까지 끌고 왔다. 마음이 머릿속에 갇힌 이상, 내 마음인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었다. 내 마음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배운 건 내가 지금, ’머릿속에 갇힌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충격적이고, 나를 향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느끼는 게 맞다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며 외면했다. 사실을 마주보고 받아들이는 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다치는 일이 어렵지 않게 일어나니까. 그럼에도 언젠가는 마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아는데 계속 도망치거나 숨었다. 도망과 숨바꼭질이 가슴 떨리는 일이면서도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도대체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일까.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받아들인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들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겉보기에는 같은 의미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후자의 받아들임은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강요 당한 것 뿐이다.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아주 많지만, 대부분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나는 나를 위하고 생각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거였다. 이 책에서 이해하기 쉽게 드는 예시를 보면서 속으로 많이 뜨끔했다. 특히, ‘마음 편집부’(1편집부~4편집부) 시스템에서 말이다. 마음의 편집 시스템은 일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마음 편집 과정에서 빨리 알아차리고 멈추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미 작업이 들어간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맞는지도. 어쨌든 잘못된 것이라면 멈추고 바로 잡는 게 맞지만 변덕이는 마음 편집 시스템은 오랫동안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저 수학 공식처럼 외우며 문제에 공식을 적용하여 풀듯 시스템 체계를 달달 외우고, 서툴게 작업 중지를 외칠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한 것은 자각사실 감각이다. 우리는 감정 앞에서 이성을 쉽게 놓는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본인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내가 동료의 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는 번뇌다. 분노 에너지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속으로 동료를 욕하거나 다른 동료와 험담을 나누게 되는 등 분노 에너지가 계속 부풀어 오르는 경험을 어렵지 않게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마음 편집 시스템은 빠르게 일을 시작하고, 마음은 머릿속에 갇히면서 부정적 에너지로 상상 이야기를 빠르게 써내려간다. 우리는 이미 분노를 느낀 순간부터 많은 것을 잃고, 분노가 자신에게 독이 될 거라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분노라는 감정에 충실하여 표현하기 바쁘다. 분노를 표출한다고 해서 분노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분노 에너지를 유발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때 분노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멈춰야 한다. 그리고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노트북 위에 놓인 손가락의 감각, 책상과 닿은 팔의 감각, 바닥에 닿아 있는 발의 감각 등등. 사실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노 에너지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 편집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머릿속에 갇혀 있던 마음은 사실 감각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된다. 특히, 상상 이야기를 만들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나 시간 등 여러 측면에서 봐도 자신에게 효과적이다.


며칠 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그때 내가 불안하구나.‘라며 스스로 현재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나니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받아들이고 나서 왜 불안한지 생각하고, 불안할 이유가 없다고 내가 정리하고 나니 바깥의 풍경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이렇게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무수히 많은 번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간단해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간단해서 확실하게 도움이 되었다. 빨리 알아차리고 멈추고, 감각을 느끼는 것은 처음부터 쉽게 되지 않는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는 요즘 이리저리 미친 듯이 날뛰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내 마음이 지옥인 이유는 였다. 나 자신이라는 이유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이 책에서 얻은 것들을 일상에 녹여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또다시 머릿속에 마음이 완전히 박혀 제멋대로 한 상상 속에서 지옥의 몸부림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그때, 부처의 말이 내 머릿속에 세게 꽂혔으면 좋겠다. 부처의 말이 나를 어리석고 불필요한 시공간에서 꺼내줄지도 모르니까. 부처의 말이, 이 책에서 얻은 깨달음이 매일 선명하게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주석처럼 따라다녔으면 좋겠지만 흐릿해질 걸 알고 있다. 흐릿해져도 좋다, 다만 내가 지옥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고 더 깊게 들어가려고 할 때만큼은 마음 편집 시스템의 열일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나를 구해줬으면 한다.


이 책이 분노의 늪에서, 욕망의 늪에서, 미혹의 늪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이들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다면 빠르게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며 마음이 평안에 이르는 날이 오기까지 부지런히 마음을 돌봐야겠다. 이 돌봄을 통해 내가 단단한 사람이 되고, 마음이 건강해서 타인까지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더 바랄 게 없다. 할 일이 많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번뇌의 늪에서 나를 꺼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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