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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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마주앉아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 삶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에이모 토울스, 테이블 포 투(현대문학)(*프리뷰북 서평단 선정)

 


짧은 소설이지만 뭔가 장편소설을 읽은 느낌이었다. 스토리가 특별하거나 몰입력을 올리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새 이 책에 빠져 있다. 시작은 따분하게 느껴졌지만, 뒤로 갈수록 나도 모르게 몰입하여 빠르게 읽었다.


카네기홀에서 불법으로 녹음기를 틀어 콘서트 연주를 한 노인과의 실랑이를 다룬 이야기라고 한 문장으로 이 소설을 소개할 수 있다. 간단한 소개지만, 곱씹을수록 느껴지는 아쉬움과 찝찝함은 무엇일까?


토미(토머스 하크니스)라는 캐릭터 때문에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왜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콘서트 연주를 몰래 녹음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일단 앞뒤 상황 재지 않고 저지르고 보는 토미의 행동에 눈살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토미는 자신의 생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생활에 대한 예를 들면 하루를 정해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듣는 것과 같은 행위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투자 은행가라는 직업을 가진 그와 잘 어울리는 모습 같다. 토미의 행동으로 불편함을 느낀 건 나뿐만 아니다. 카네기홀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그에 따른 예의 등이 있겠지만, 그 공간에 대한 분위기와 예의와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건 토미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몰래 녹음하고 있는 노인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의 태도는 흔히 말하는 우아함과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어설프게 흉내내며 자신의 서툰 모습은 아예 보지도 못하는 안쓰러운 인물이랄까. 장소나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예외인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서 파인 씨는 토미와의 소란을 겪고, 코넬의 말대로 카네기홀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 그를 찾는 토미의 모습은 정말 숨이 막혔다. 찾는 이유가 사과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말이다. 파인 씨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집요하게 구상하고 지도까지 만들어 제 발로 많은 도어맨을 만나 결국 파인 씨를 찾아냈다. 앞뒤 재지 않고 들이받는 것이 익숙한 것처럼 보이는 토미는 파인 씨가 혼자 산다는 도어맨의 말을 듣고, 약국을 다녀오는 파인 씨를 몰아세운다. 파인 씨를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그런 토미를 침착하게 대한다. 파인 씨는 토미 때문에 당황스러운 일을 겪으면서도 한 번도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토미는 파인 씨로부터 아내가 죽은 후로부터 혼자 산다는 답을 듣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 그의 삶을 마주한다, 아주 얕고 일부인 그의 삶을. 그의 삶을 통해 토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토미는 아무래도 움직이는 제 삶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토미는 파인 씨에게 사과를 여러 번 하고, 파인 씨는 토미의 사과를 받지 않는다. 사과하지 말라고 한다. 파인 씨는 오히려 토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내가 병을 앓고 나서 카네기홀에 두 번 다시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파인 씨에게 그의 아내 바바라는 간호사처럼 있지 말고 연주회에 가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말을 따라 연주회를 갔고, 연주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그에게 연주가 어땠는지 물었지만, 그는 연주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녹음해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듣기 시작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녹음을 그만했어야 했는데, 그는 멈추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소란이 있었던 날, 녹음해서 정성들여 라벨을 붙이고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한 테이프도 모두 내다 버렸다고 했다. 연주 녹음은 그에게 아마 아내를 위한 일로 시작한 것이지만 어쩌다 삶 이상이 되었다. 음악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에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한 그의 아내 바바라는 삶을 사랑했고, 파인 씨는 뒤늦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제 삶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은 신을 용서하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오래 살고 있는 자신을 용서하게 된 것이다. 어느 새 음악은 그의 삶이 된 것이다. 그에게 음악이 들릴 때, 그가 느낀 벅참은 얼마나 저릿하고 찌릿했을까.


토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파인 씨, 파인 씨의 딸이 토미에게 했던 말, 파인 씨의 딸 바람대로 토미가 마음이 불편했던 장면 모두 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부분이라서 머릿속에 반복재생된다. 파인 씨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라서, 부딪치고 깎이고 닳아진 거라서 더 와닿았다. 그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보냈어야 할 시간들을 그에 대해 정보로만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듣는 것뿐. 누군가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 일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를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교통사고와 같은 충격이다. 파인 씨의 이야기를 듣고 토미는 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깨달은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토미가 살면서 두고두고 녹음기와 파인 씨, 파인 씨의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날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들이받고 그로 인해 누군가의 삶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짐작도 못하고 그대로 몰려오는 파도를 맞아야 하는 일은 아프고, 외로운 일이다. 카네기홀에서 시작된 작은 소란이 거대한 폭풍을 가져오다니, 어쩌다 마주앉은 테이블에서 직면한 현실. 그리고 시작된 삶. 토미의 삶은 이제 시작되었다.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던 삶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 삶을 만나는 날, 파인 씨의 녹음 행위에 대한 강한 수치심이 아닌 그 너머의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모스크바의 신사라고 불리는 작가라는데, 단편소설 밀조업자(테이블 포 투) 읽으니까 알 것도 같다. 에이모 토울스 작가님 작품을 처음 읽는데, ‘파인 씨가 꼭 작가님 같다고 생각했다.

 

이 프리뷰북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현대문학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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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에게 가는 길 위픽
전삼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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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애도 중, 가장 좋았다. 좋았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 전삼혜, 나름에게 가는 길(위픽시리즈/위즈덤하우스)

 


어째서 이 글을 이제야 만난 걸까. 두고두고 꺼내볼 글을 만나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조금 더 일찍 만나면 어땠을까,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지.’와 같은 생각들이 충돌한다. 충돌 후, 부서진 생각들이 머리와 마음을 헤집는다.


나름이 무엇이기에 없애야 하는 걸까. 계속 생각했다. 그대로 두어도 언젠가 사라질 것인데도 말이다. ‘나름에 대해 설명을 하긴 했으나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나름을 애초에 이해하려는 게 틀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름은 이해될 수 없는 무언가로 그냥 나름인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호흡을 다듬고 <작가의 말>을 읽기 전에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우주의 쓰레기 청소부와 애도에서 출발된 나름에게 가는 길은 내가 만난 애도를 다룬 작품 중 가장 좋았다(애도를 다룬 방식을 평범하면서도 색다르게 느꼈다. 우주라는 공간이 더 이상 미지의 세계거나 특별하지 않음이 한몫 한 것이다). 좋았다는 표현말고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애도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많은 방식 중, 전삼혜 작가가 들려주는 애도의 이야기는 내가 바라던 애도 방식과 비슷했다. 애도 목적은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는 점에서 나와 다르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애도 목적, 그러나 슬퍼하는 방식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은 없듯이 정말 많다. 어떤 방식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처음으로 나의 애도방식을 떠올렸다. 솔직히 애도 방식을 떠올리는 게 낯설고, 처음이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한 죽음의 경험은 키우던 강아지들의 죽음이다. 내 일상을 공유하고, 나와 추억이 많았기에 그들이 숨을 거뒀을 때 눈물이 흐르고 후회를 하긴 했으나 며칠뿐이었다. 금방 일상으로 돌아와 내 마음대로-내 마음이 편하고자-강아지별에 가서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애도는 짧고 굵은 것 같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잘 모르겠다. 애도 할 일을 만나고 싶지 않다.


여기서 가 하는 일들이 매력적이면서도 따분하게 느껴진다. 없애는 일을 하는 것이 외롭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외로움마저 치우는 게 가 해야 할 일이라서 생각했다. 없애면서 는 처리하는 존재로 남는 것 같달까. ‘는 본인의 생활에 만족도, 불만족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보인다. ’의 동생 아영이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아영이의 이야기는 애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애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의 부모가 하는 애도 방식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멈추길 바랐다. ‘가 아영이에게 매달리는 부모를 보고, 더 이상 자신의 부모 역할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말하는데 그때의 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했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을 그리워하고,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부모라지만 아영의 부모가 택한 방식은 죽은 아영이를 힘들게 하고, ‘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그 힘듦을 끝내러 가 결국 찾으러 없애러 가니까. 아빠는 차라리 없애주길 바라서 에게 좌표를 남긴 걸까.


그리움이 짙으면 삶이 무너지는 게 한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의 삶이 흔들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 동생이 그립다. 부모와 의 애도 방식이 다르다. ‘는 현실적이다. 부모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이 의미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좌표를 입력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있으면 싶다가도 없으면 싶고. 두 마음이 충돌하는 는 찾고 없애기 위해 가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이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함으로써 알려줘야 하니까. 솔직히 의미 없다고, 그저 쓰레기만 더 만드는 것이라고. 어차피 내가 다 찾아서 없앤다고, 내가 없애지 않아도 사라진다고. 마음을 비우라고.

는 동생을 어떻게 애도했을까. 애도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나는 이번 한 달여간에 시간이 애도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동생을 제대로 떠나보내고, 부모님한테 아영이는 이미 떠나고 없음을 알려줄 기회이고 부모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딸의 죽음을 이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가 해야 할 일은 애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떠난 사람은 잘 모르지만, 남은 사람은 아주 무겁고 시간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아직도 밝혀질 게 많은 바다가 아니라 닿을 수 있는 우주와 같다. 비워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시기를 놓치면 비워야 할 것들과 갖고 있어야 할 것이 뒤섞여 마음은 혼란을 경험한다. 특히, 애도의 경우는 더 심할 것이다. 건강한 애도를 하는 것이 우리가 살면서 적지 않게 해야 할 일이다. 애도하는 방식이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거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마주한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애도를 찾아가는 거랄까. 애도는 각자 방식이 존재한다. 틀리거나 맞다고 할 수 없기에 애도는 조심스럽고 특별하다.


작가님은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고 잊었던 사실을 잊는 것을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 글 자체가 위로면서 동시에 애도가 아닐까. ‘잊어야 한다와 잊지 말아야 한다를 타인이 재단하기는 어렵다, 작가님 말대로. 근데 이 글을 읽고 나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었을 때 제대로 애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만으로도 위로되었다. 잊지 않기 위해 애쓰거나 잊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잊으려고 했으나 대부분 실패였다. 광활한 우주를 떠다니는 쓰레기 꼴이었다. ‘가 필요하다. 나의 우주 쓰레기 청소를 부탁하고 싶다. 미련이나 그리움은 계속 생겨난다. 그래서 계속 비워야 한다. 미련이나 그리움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청소라고 불러야겠다. 청소된 나의 우주라면 정말 잊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내 삶이 계속 굴러가려면 마음 다잡고 대청소가 필요할 듯 보인다.


가방에 챙겨 외로울 때마다 뭔가 놓치거나 잊은 것 같을 때, ‘도망은 때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을 때 꺼내 읽어야겠다. 서툴게 굴러가는 삶이라는 바퀴에 이것저것 다 달라붙어 무겁지만 그럼에도 굴러가는 이유가 있겠지?

 

위픽시리즈 중, 처음으로 읽은 시리즈인데 너무 좋다. 위픽시리즈 한 권씩 모으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나름에게가는길 #전삼혜 #위픽시리즈 #도망은때로나쁜일이아니라는것을 #위즈덤하우스 #우주쓰레기청소부 #애도 #잊다 #의미 #없애다 #처리하다 #사라지다 #우주 #그리움 #기억 #현실 #책로그 #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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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미셸 플레식스 지음, 이세진 옮김, 케네스 그레이엄 원작 / 길벗어린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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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읽고 또 읽는 아동문학의 고전인 이유를 알겠다!

미셸 플레식스 각색, 그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길벗어린이)(그래픽 노블)

 


평화롭고 아름다운 야생의 숲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마음을 달랠 생각이었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아름다운 야생의 숲은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바로 허세 가득, 사고뭉치 두꺼비 때문이다!


어느 봄날 두더지와 물쥐는 배를 타고 소풍을 나간다. 둘의 평화로운 시간을 얼마 가지 못한다. 돈 많고 허세 많은 두꺼비 때문이다. 두꺼비 때문에 동물 친구들은 악몽 같은 대소동을 겪게 된다. 두더지와 물쥐가 나오는 장면은 일상의 잔잔함,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보는 내내 배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잔잔한 호수 위에서 사방을 둘러싼 자연을 마음껏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두꺼비가 등장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다. 두꺼비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두꺼비가 진짜 종이를 뚫고 나와 내 앞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두꺼비의 정신 사나움과 허세에 이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많이 지친 느낌을 받았다. 그래픽 노블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부분이기도 했다.


야생의 숲에 사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두더지를 닮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두꺼비를 닮은 사람도 있었다. 야생이라는 나와 거리가 있는 거대한 또 다른 세상이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고, 안부를 묻고 걱정하고 때로는 친구가 나쁜 길로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냉정하게 대하는 등 인간 세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두더지와 물쥐를 비롯하여 동물 친구들은 두꺼비 때문에 매일 시끄럽게 보낸다.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지 두꺼비는 제멋대로 군다. 두꺼비 캐릭터를 보면서 어른인데도 여전히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아니 아이보다 더 아이처럼 구는 몇몇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두꺼비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달라진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들도 내가 권한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며, 읽지도 않을 것이다. 읽더라도 두꺼비가 자기와 똑같은지도 모르고, 두꺼비를 보고 웃으며 욕할지도 모른다. 두꺼비가 무전취식을 하고 다른 이의 차를 훔쳐 모는 등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재판을 받고 형량을 받는다. 두꺼비는 자신의 형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니까. 감옥에서도 허세는 멈추지 않고, 결국 탈옥까지 한다. 두꺼비가 저지르는 만행은 용서받기 어렵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본인이 다 차버렸으니까. 두꺼비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잘못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궁금했다. 자신 때문에 친구들이 피해를 보고, 자신을 위해 친구들이 걱정하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도.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언제까지 낭비하면서 살 건지 묻고 싶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제멋대로 구는 두꺼비를 친구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는 친구들을 보자니 우정을 넘어 두꺼비를 향한 연민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연민이 없다면 두꺼비는 오래전에 혼자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두꺼비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여전히 치르지 않았다. 그러니 잘못을 하루라도 빨리 알고-지금 알아도 너무 늦었지만-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 두꺼비는 많은 돈과 허세 대신 냉정하고 올바른 길을 알려준 존재가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인내심까지 겸비한 그런. 두더지와 물쥐, 그 외 친구들이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당연하게 여기진 않을까 걱정이다. 두꺼비가 진짜 삶을 삶답게 사는 그날은 야생의 숲이 평안에 이르게 될 것이다. 기약할 수 없는 날이기도 하고.


그래픽 노블이 글씨로만 채워진 소설보다 읽기 힘들 줄 몰랐다. 그림이 스토리를 이해하고 기억에 남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읽는데,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평소 그림이 아닌 글로만 된 책이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래픽 노블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배웠다. 아동문학의 고전이나 다른 장르가 가능하다면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래픽 노블만이 갖고 있는 매력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동문학의 고전답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물쥐나 두더지, 오소리 등이 하는 대사가 내 마음에 꽂히기도 했지만, 두꺼비의 모습만으로 자연스럽게 깨달음의 과정이 일어난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사만큼 상황이나 분위기, 극의 흐름을 통해 읽는 독자가 뭔가를 느끼고 깨닫게 하는 건 작가가 부릴 수 있는 마법이며, 동시에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다. 이 책을 통해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힘든 내가 은연중에 뭔가를 꼬집거나 상대에게 뼈 있는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야생의 숲의 하루하루, 계절의 흐름에 따른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풍자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강한 풍자의 성격이 그림과 에피소드와 잘 버무려져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로 새 옷을 잘 입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길벗어린이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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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 - 분노의 늪에서 나를 건지는 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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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 건 나였다.”

: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분노의 늪에서 나를 건지는 법)(웅진지식하우스)


 

400쪽이 넘는 심리 관련 책을 읽고도 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 자발적으로 구매해서 읽은 책이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였다. 심리 관련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지만, 마음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거대한 바위에 균열이 생긴 것 같긴 하다. 이 책을 통해 답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는 완벽한 질문도 완벽한 답도 없는데, 그중 가장 답하기 어려운 마음이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했다. 어리석지만 용기 있고, 어리석기 때문에 가능했던 정면 부딪치기라고 생각한다. 답은 찾지 못했다. 애초에 답은 없었거나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알고 있는데도 모른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나도 이해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 건 나였다.‘


욕망과 분노, 미혹이 인간의 대표적인 번뇌 세 가지라고 했다. 번뇌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으니 당연히 마음이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대상에 대한 마음이라고 했다(불도). 계속 곱씹게 되는 불도의 마음 정의였다. 대상에 대한 반응을 끊임없이 하는 마음이라서 하루라도 편한 적 없고, 피로하지 않은 적이 없다. 반응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부터 이미 반응하고 있는 마음을 보면 답답하고 뜨거운 불길 안에서 몸부림치는 고통을 경험한다. 이 고통에 들어간 것도, 벗어나는 것도 나 자신이다. 어쩌다 번뇌라는 굴레에 발을 들여 벗어나지도 못하고 매일 고통에서 몸부림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벗어날 거라는 희망은 매일 갖는다. 희망이 잔인한 이유는 그럼에도라며 계속 꿈꾸기 때문이다. 솔직히 오늘이 이런데 내일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이 어제보다 나은 하루였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번뇌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사는 일은 피곤하고, 불쾌하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머릿속에 갇힌 마음을 달래고 거칠게 몰아세우는 등 내 방식대로 제멋대로 구는 마음을 지금까지 끌고 왔다. 마음이 머릿속에 갇힌 이상, 내 마음인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었다. 내 마음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배운 건 내가 지금, ’머릿속에 갇힌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충격적이고, 나를 향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느끼는 게 맞다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며 외면했다. 사실을 마주보고 받아들이는 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다치는 일이 어렵지 않게 일어나니까. 그럼에도 언젠가는 마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아는데 계속 도망치거나 숨었다. 도망과 숨바꼭질이 가슴 떨리는 일이면서도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도대체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일까.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받아들인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들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겉보기에는 같은 의미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후자의 받아들임은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강요 당한 것 뿐이다.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아주 많지만, 대부분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나는 나를 위하고 생각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거였다. 이 책에서 이해하기 쉽게 드는 예시를 보면서 속으로 많이 뜨끔했다. 특히, ‘마음 편집부’(1편집부~4편집부) 시스템에서 말이다. 마음의 편집 시스템은 일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마음 편집 과정에서 빨리 알아차리고 멈추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미 작업이 들어간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맞는지도. 어쨌든 잘못된 것이라면 멈추고 바로 잡는 게 맞지만 변덕이는 마음 편집 시스템은 오랫동안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저 수학 공식처럼 외우며 문제에 공식을 적용하여 풀듯 시스템 체계를 달달 외우고, 서툴게 작업 중지를 외칠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한 것은 자각사실 감각이다. 우리는 감정 앞에서 이성을 쉽게 놓는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본인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내가 동료의 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는 번뇌다. 분노 에너지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속으로 동료를 욕하거나 다른 동료와 험담을 나누게 되는 등 분노 에너지가 계속 부풀어 오르는 경험을 어렵지 않게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마음 편집 시스템은 빠르게 일을 시작하고, 마음은 머릿속에 갇히면서 부정적 에너지로 상상 이야기를 빠르게 써내려간다. 우리는 이미 분노를 느낀 순간부터 많은 것을 잃고, 분노가 자신에게 독이 될 거라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분노라는 감정에 충실하여 표현하기 바쁘다. 분노를 표출한다고 해서 분노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분노 에너지를 유발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때 분노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멈춰야 한다. 그리고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노트북 위에 놓인 손가락의 감각, 책상과 닿은 팔의 감각, 바닥에 닿아 있는 발의 감각 등등. 사실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노 에너지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 편집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머릿속에 갇혀 있던 마음은 사실 감각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된다. 특히, 상상 이야기를 만들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나 시간 등 여러 측면에서 봐도 자신에게 효과적이다.


며칠 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그때 내가 불안하구나.‘라며 스스로 현재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나니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받아들이고 나서 왜 불안한지 생각하고, 불안할 이유가 없다고 내가 정리하고 나니 바깥의 풍경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이렇게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무수히 많은 번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간단해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간단해서 확실하게 도움이 되었다. 빨리 알아차리고 멈추고, 감각을 느끼는 것은 처음부터 쉽게 되지 않는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는 요즘 이리저리 미친 듯이 날뛰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내 마음이 지옥인 이유는 였다. 나 자신이라는 이유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이 책에서 얻은 것들을 일상에 녹여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또다시 머릿속에 마음이 완전히 박혀 제멋대로 한 상상 속에서 지옥의 몸부림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그때, 부처의 말이 내 머릿속에 세게 꽂혔으면 좋겠다. 부처의 말이 나를 어리석고 불필요한 시공간에서 꺼내줄지도 모르니까. 부처의 말이, 이 책에서 얻은 깨달음이 매일 선명하게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주석처럼 따라다녔으면 좋겠지만 흐릿해질 걸 알고 있다. 흐릿해져도 좋다, 다만 내가 지옥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고 더 깊게 들어가려고 할 때만큼은 마음 편집 시스템의 열일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나를 구해줬으면 한다.


이 책이 분노의 늪에서, 욕망의 늪에서, 미혹의 늪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이들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다면 빠르게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며 마음이 평안에 이르는 날이 오기까지 부지런히 마음을 돌봐야겠다. 이 돌봄을 통해 내가 단단한 사람이 되고, 마음이 건강해서 타인까지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더 바랄 게 없다. 할 일이 많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번뇌의 늪에서 나를 꺼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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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지 않은 새
김강산 지음 / dodo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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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그림, 작가의 말까지 완벽한 그림책이었다.

: 김강산 글/그림, 날고 싶지 않은 새(도도그림책)


 

파랑새와 플라밍고의 사랑 이야기라, 낭만적이고 따뜻하다. 고정순 작가님의 <추천의 말>을 보고 나서 이 그림책을 읽기도 전에 빠졌다. 읽을 만하면 뭐 만족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정순 작가님의 추천이 아니라도 <날고 싶지 않은 새>가 내 마음에 깊게 자리 잡을 거라는 걸 파랑새가 뱉는 첫 문장에서 깨달았다. “날고 싶지 않아.”.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진 세상을 파랑새가 왜 날고 싶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다. 새라고 하면 날아야 하는데, 어째서 날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짧은 글을 꼼꼼히 읽었다. 하지만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은 이유는 책은 다 읽고도 알 수 없었다. <작가의 말>을 읽고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작가님이 그랬다, 날고 싶지 않아 하는 파랑새에게 서사를 만들어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작가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파랑새에게 슬픔을 위한 서사는 필요 없었다. 다시 말해,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은 이유를 파랑새 본인만 알겠지만, 굳이 서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음을 느끼는 시기일 뿐이다.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다고 할 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요즘 모든 게 귀찮고 무기력한데 일은 해야 하니 기본적인 것만 하면서 겨우 일상을 끌고 가는 중이다. 내가 왜 그러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내가 조용하고 연락이 뜸하면 엄마는 무서울 정도로 곧바로 알아차리고, 연락한다. 그리고 답해줄 수 없는, 어쩌면 답이 없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한다. “왜 그러냐, 무슨 일 있냐.”. 그냥 이런 시기구나, 라고 받아주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모르고, 무슨 일 없다는 답변은 오래전부터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엄마 연락을 피하거나 괜찮은 척 목소리 톤을 올려 잘 지내는 것처럼 연기를 하지만 의미 없다. 엄마는 완벽한 해결이 불가능한 내가 겪는 시기에 해결을 바라고, 계속 나를 들들 볶는다. 엄마가 그럴수록 나는 점점 문제가 되고, 수많은 서사를 가진 비극적인 인물이 된다. 엄마가 왜 그러는지는 알지만 엄마의 과한 관심과 내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나를 문제로 바라볼 뿐,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매번 이런 식이라서 상처를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익숙함으로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위한다는 피만큼 진한 이유로 나에게 더 상처를 주고 있다. 엄마를 닮았다며, 당신은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안다고 이해한다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오래전부터 믿지 않았다. 10개월을 품어 나를 낳고 키웠지만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다. 나를 다 안다고 말하는 엄마는 나를 제일 모른다. 엄마한테 어른스러워보이지만 사실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어른이 되고 나니 엄마가 어른인 척하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플라밍고를 구원자의 의미로 두려고 하지 않았다는 작가님 말과 달리, 개인적으로 플라밍고를 구원자로 느꼈다. 플라밍고의 사랑이 파랑새를 날도록 했으니 구원자가 아닌가. 날고 싶지 않은 파랑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 수 있도록 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구원이고, 구원이 사랑이다. 사랑을 말하는 표현은 많은데, 그중 구원이 가장 사랑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구원은 뭔가 거창해보이니 사랑을 자주 쓰는 것이다. 플라밍고는 파랑새의 날개짓에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받은 사랑은 반드시 또다른 사랑으로 세상 곳곳에 닿기 마련이니까.


플라밍고의 발에 묶인 쇠사슬이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자꾸 아프다. 파랑새를 처음 만났을 때 플라밍고의 슬픈 눈도. 플라밍고는 파랑새보다 먼저 세상을 경험했기에 파랑새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파랑새를 돌봤을 것이다. 변하는 계절을 함께 느끼며, 파랑새가 자신을 괴롭히는 무언가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렸다. 왜 날고 싶지 않냐고 묻지 않고, 함께 있어주기만 했다. 내가 힘들 때, 엄마가 나한테 해줬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엄마의 방식도 분명 사랑인데, 플라밍고의 방식이 내겐 더 사랑처럼 다가왔다. 플라밍고도 누군가에게 자신이 파랑새에게 주는 사랑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은 받지 못했지만 받고 싶은 사랑을 파랑새에게 준 것일까? 전자든 후자든 상관없다. 플라밍고는 사랑을 알고, 자신이 아는 사랑을 아낌 없이 파랑새에게 줬으니까. 힘차게 날아간 파랑새는 분명 플라밍고에게 받은 사랑을 사랑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플라밍고가 그랬던 것처럼 아낌 없이 줄 것이다. 사랑은 기억되고 전해지는 거니까. 그리고, 또다시 날고 싶지 않은 때가 와도 플라밍고의 사랑으로 다시 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누군가를 살게 하고 돌보는 힘이 된다. 사랑을 나누려는 존재로 만든다. 사랑을 계속 키운다.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플라밍고와 파랑새의 사랑 이야기는 두고두고 세상 곳곳에 전해지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지 못한 만남에서 주고받는 사랑 이야기라니, 낭만적이다. 생각지 못한 만남이라고 했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을 계속 곱씹는다. 그렇다. 우리는 개개인의 짊어진 슬픔에 놀라곤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려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이고. 플라밍고의 사랑만큼 <작가의 말> 또한 위로가 된다. 슬픔 자체만으로도 이해받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왜 슬픈지 묻지 말고 그냥 곁에 있어주는 존재를 만난다면 슬픔에 잠식 당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미워하고 공격하는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이 여전히 살만 곳이라는 말이 들릴 때면 비웃었다. “세상은 여전히 살만 한 곳이야.”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속내를 숨기고 연기하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상처를 입히고 입는 소리가 들리는 데 말이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시선을 끌기에 자극적이어서 그렇지, 곳곳에 사랑의 소리가 들린다. 상처와 사랑은 양극에 둘 필요도 없다. 사랑 안에서 상처가, 상처 안에서 사랑이 피어나는 것이니까. 사랑과 상처는 애초에 같은 단어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상처로 읽히고, 상처가 사랑으로 불리는 곳이 세상이니까. 확실한 건 세상에는 사랑을 나누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가. 사랑을 아는 이들, 사랑을 나누려는 이들이 있는 한 세상은 여전히 살만 곳이며, 세상 곳곳에 숨어 들어 어지럽히는 어둠을 말끔히 몰아낼 것이다.

사랑을 알려준 플라밍고에게 고맙다. 그 사랑으로 저멀리 날아간 파랑새에게도 고맙다. 파랑새가 날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 아닌 사랑으로 알려준 플라밍고는 진정한 사랑, ‘자신만의 사랑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상 곳곳에 있는 수많은 사랑이 온전히 사랑이 필요한 곳에 닿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수많은 플라밍고와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은 새>를 만나서 사랑을 품기를 또한 바란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도도그림책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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