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없는 마음 - 양장
김지우 지음 / 푸른숲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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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마음을 만나는 그날까지! ☁️
: 김지우(구르님), 『의심 없는 마음』 (푸른숲)

이 책을 작년 6월에 받았는데 26년 4월의 마지막날 30일이 되어서야 펼쳤다.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책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기를 미뤘다. 바쁘다는 핑계였지만 대부분은 손이 책을 향하지 않았다. 오늘(4/30)은 무슨 일인지 <의심 없는 마음>을 향해 손이 갔다. 그렇게 이불 위에 뒤집어 누워 편한 자세를 잡고 <의심 없는 마음>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부터 서문, 그리고 차례를 시작으로 구르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구르님은 이 책을 소개하는 푸른숲 출판사 피드를 통해 알게 되었고, 알게 되자마자 인스타 팔로우를 하고 구르님이 올린 글이나 릴스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구르님의 일상을 응원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구르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 하다가 이 책을 통해 구르님에 대해 알아가는데 놀랍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무엇이 놀랍고 부끄럽냐고 묻는다면 수학문제의 답처럼 정확히 떨어지는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당장 내가 느낀 감정을 표현하면 놀라움과 부끄러움이다. 구르님의 행보가 대단하고, 부러웠다. 나는 뭐든 도전하고 즐기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일들을 혼자 상상하며 걱정하다가 최악의 결말을 제멋대로 지어버리고 포기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구르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달았다. 나는 인내심이 많고 끈기가 있고,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근성도 있다고 주변에 그런 말을 자주 들었던 터라 그런 줄 알았고, 살면서 내 힘으로 얻은 것들을 봐서도 내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틀렸다. 내 힘으로 얻었다고 생각한 것들은 사실 당연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었고, 내 힘으로 얻은 건 없었다. 나는 도전과 용기를 내는 일이 무서운 사람이라서 늘 안전하고 보수적인 것을 택했다. 그것이 안전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자주 따분함과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었고, 그것이 쌓이기만 하면 무기력함과 우울함으로 감정이 순식간에 번졌다. 그렇게 시들어가고 다시 기운을 내길 반복하다 보니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구르님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세계는 확장될 수가 없고, 안 그래도 작은 세계가 더 작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전이 우선이고 중요한 것은 알지만, 그것이 내 세계를 좁히기까지 한다면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구르님은 ‘별것 아니라는 마음으로 시도했던 경험들이 조금씩 모여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내 세계를 야금야금 넓히고 있었다.’고 했다. <의심 없는 마음>은 사소한 성공의 모음집이라고 했다. 도대체 ’의심 없는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알 수 있었다. 구르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의심 없는 마음을 찾아내고 말았다. 별것 아니라는 마음이 곧 의심 없는 마음이었다. 의심 없는 마음으로 구르님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만의 선택으로 가꾸고 꾸미고, 확장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바라던 삶이다. 나로 가득찬 삶 말이다. 한번뿐인 인생이고,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 인생인데 뭐가 두렵고 무서워서 주저하고 눈치보고,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그러다 보니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잃게 되는 상황까지 간 것인지 지금 생각해보니 헛웃음이 나오고 움츠러든 내가 안쓰럽고 답답하기까지 하다. 이런 나도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것마저 나는 힘들기 때문에 구르님처럼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자신으로 채우려면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릴 것 같다.
구르님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믿음, 용기와 도전이 들어갔는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의심 없는 마음>을 가득 채운 구르님의 수많은 문장을 통해 감히 짐작만 해볼 뿐이다. 아주 잠깐 짐작만 하는데도 마음이 여러 가지 감정으로 뒤섞여 힘들었다. 구르님이 감히 대견하기도 하고,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미안하기도 했다. 구르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세상 곳곳에 닿아 많은 이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그들을 세상 밖으로, 혹은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데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 같다. 내가 구르님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현재에 집중하고자 하고, 미래를 조금 더 가볍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것처럼, 별 거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시작이라는 걸음을 뗀 것처럼 말이다. 구르님한테 받은 위로와 힘,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내가 내 삶을 내 선택과 내 것으로 가득 채우는 과정을 즐기고 감사히 여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지루하고 귀찮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내게 주어진 단 하나뿐인 세상을 얼마나 하찮고 쓸모 없게 대했는지 깨달았다. 내 삶이 지루하고 따분하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도전보다 가만히 있는 것이 내가 안전하다며 나를 스스로 가두기를 택했고, 수월하게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을 용기나 상황을 들먹이며 쉽게 합리화하며 포기했고 나중에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후회를 반복하는 시간이 퇴적된 지금은 후회가 더이상 아무렇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구르님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지금 수십 개의 경보를 품은 채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일은 이제 없는 것 같은 상태. 이 상태에서 갇힌 것도 벗어나는 것도 나 자신 뿐인데, 가만히 있다. 벗어나야 하는 것을 알지만 벗어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듯 하다. 벗어나고자 할수록 늪에 빠지는 착각에 빠져 가만히 있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더더 가라앉는 중이다. 다들 제 길을 열심히 걷고 달리며 앞서는 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 걸음 중이라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틀렸다. 앞으로 가는 이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제자리 걸음이라고 생각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제자리에 있는 건 당연하고, 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길 줄 알아야 했다. 스스로를 꾸짖고 반성하고, 성찰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선물해준 구르님과 <의심 없는 마음>의 솔직해서 마음에 훅훅, 꽂히는 문장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졌다. 매일 너무 애쓰느라 정작 나를 잃는 삶을 살고 있는데, 너무 애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적당히 살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이 책을 만나게 되어 행복했다. 당분간은 구르님과 <의심 없는 마음>을 자주 마음과 머리에 떠올릴 듯 하다. 내가 의심 없는 나의 마음을 만나는 그날까지, 아무래도 오래 걸릴 듯 하다. 그래도 두렵지 않다. 언젠간 그날이 올 테니 말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푸른숲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 구르님! 잘 읽었습니다. 너무 늦게 이 책을 펼친 제게 잔소리하도 싶어질 만큼 좋은 책이었습니다🩵

˚₊· ☁️ ˚₊· 🍌 ˚₊· 🤍

#의심없는마음 #김지우 #굴러라구르님 #푸른숲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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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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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 가장 다정하고 눈부셨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 할 이야기였어.
: 프레드릭 배크만, 『나의 친구들』 🌊 (다산북스)

이 책을 만난 건 정말 나에게 특별하다. 모든 책을 만나는 일은 설레고 특별한 일이지만, 이 책에서 만난 특별함은 전과 다르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이 책을 지금 이 순간에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이 거대한 행운을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품 가득 안아도 되는 건지 두렵지만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을 만큼 욕심이 생겼다. 이 책을 나만 알고 싶다는 불가능한 욕심이, 이기적인 욕심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가 열 받을 정도로 부럽고, 대단했다. 그 작가가 쓴 언어로 읽으면, 한글로 옮겨 놓은 이 책을 읽는 것보다 더한 감동이, 아니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내 안에 무수히 수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어의 힘을 감히 헤아려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 건 처음이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그대로 다이빙 하듯(나는 다이빙을 하면 어떤 기분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고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물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튜브가 없으면 절대 물로 들어가지 않는다.) 화가와 요아르, 테드, 알리 그리고 피스케와 루이사가 들려주고 작가가 쓴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아무리 물이 깊어도, 숨이 차도 수면 위로 올라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육지보다 바닷속이 더 편하니까.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문장들이 내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다면 내 마음에 타투로 새기고 싶은 문장들이다. 이런 문장들을 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혼자 상상하건대 화가가 작가와 많이 닮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작가를 존경하지만, 이 작가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화가는 천재니까, 작가도 천재이지 않을까 그냥 내 마음대로 생각해봤다. 작가가 천재가 아니라면 이 작품은 말도 안 된다. 그러니 작가는 천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문장들이 참 아픈데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진짜로. 추운 겨울에 만난 벚꽃 같달까. 있을 수 없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게끔 만든 문장들이 이 책을 가득 채웠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할 이유는 넘쳐 흐른다. 이 책을 만난 독자들이라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화가와 요아르, 테드와 알리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들이다. 서로가 서로였기에 특별함은 우정이 짙어질수록 어마어마해졌다. 사실 그들이 특별했던 것이다. 그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건 어른의 몫인데 그들의 어른들은 아무도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인지 모르고 가장 눈부시게 찬란한 10대의 여름을 보냈다. 특별함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서로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언제나 함께했다. 서로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모든 장면에서 보였다. 그게 참 아프고 다정했다.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함께 했기에 그들 무리 중 한 명이 없던 순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함께 한 순간은 어디서 봐도 선명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사랑이라서. 그 누구도 사랑을 가르쳐준 적 없는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로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었다.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게 사랑인지도 모르면서. 그들이 주고받는 사랑은 놀랍다. 사랑을 갈구하지도 강요하지도, 만들어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사랑이 그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넘겨진 페이지가 쌓일수록 깨달았다. 그들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너무 서로를 위해서 아픈 사랑’을 책을 통해서 만날 줄 이야. 주변에서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사랑한 결과가 다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이 다쳤고, 자신의 행복과 웃음은 상대의 행복과 웃음으로부터 나왔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는 사랑은 지구상에서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흔히 꿈꾸는 진정한 사랑은 그들의 사랑이 아닐까. 수많은 관계를 맺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깨닫기 쉽지 않은 사랑을 우정이라는 가면을 쓴 사랑으로 배우는 그들의 모습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화가와 요아르, 테드와 알리가 깨우고 말았다. 어렵고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한 사랑이 사실은 매일 짜증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살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화가와 요아르, 테드와 알리의 사랑만큼 루이사와 피스켄의 사랑도 눈부시다. 그들의 사랑과 둘의 사랑이 참 많이 닮았다. 모양과 색은 다른데 결국 그들과 둘이 만날 거라는 확신이 느껴진다. 화가와 루이사가, 테드와 루이사가 만난 것처럼.

<나의 친구들>을 읽는 내내 마음에 수많은 감정이 들이닥쳤다. 어떤 감정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서 읽다가 힘들기도 했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루이사가 그들의 이야기 엔딩을 이미 알아버린 것처럼 나도 알았고, 그래서 엔딩을 듣지 않기 위해 자고 있는 테드의 곁에 화가가 전재산으로 산 ‘바다의 초상‘ 그림을 두고 조용히 떠난 것처럼 이 책을 덮고 책상 모서리 쪽으로 밀었다. 애초에 이 그림을 가질 수 없다고, 그 행운을 자신이 갖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떠난 루이사와 달리 나는 책으로 시선이 자꾸 갔다. 밀어둔 책을 가져와 다시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엔딩인지 알아도 해피엔드를 꿈꾸고, 기어코 내 눈으로 마음으로 엔딩을 봐야 직성이 풀려서 펼치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읽기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는 속도를 높여 수많은 감정을 겁 먹은 나를 향해 밀기 시작했다. 그 감정들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 하고 삼켜진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던 날로 돌아갔다. 모든 걸 처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고 쌓고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다. 줄거리를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내 머리와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모든 문장을 가능하다면 내 안에 새기고 또 새기고 싶다고 생각한 건 말이다. 넘겨야 할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느끼는 아쉬움과 슬픔은 이 책을 만난 독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독자들이 느끼는 아쉬움과 슬픔 마저 이 책의 한 부분이라서 감사하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화가와 요아르와 테드와 알리 그리고 루이사와 피스켄을 만나게 되어 행복했다. 이 행복을 내가 가져도 되는지 스스로 여러 번 물어볼 만큼 내 안을 가득 채웠고, 행복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행복을 꿈꾸게 되었다. 그들과 만남으로써 내가 얻은 것들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을 것이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그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내 안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을 느끼고,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내가 사는 하루하루를 특별하다고, 눈부시다고 말해준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이 한 모든 행동과 말, 그들이 보낸 모든 시간은 다정해서 아팠고, 아파서 눈부셨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냥 잊히지 않게 흰 종이를 검은 글씨로 가득 채워진 이들에게 고맙다. 여전히 검은 잉크가 마르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내 눈물과 웃음에 번진 글씨는 그들이 가장 행복하고 눈부셨던 여름날에 잔교 아래로 뛰어들어 튀긴 물방울이다. 그 안에는 그때의 소년들과 소녀가 살고 있다. 절대 잊히거나 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화살표를 그어 덧붙인 내 이야기도 영원히 살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이야기는 길거리에서 바람에 날리는 명함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 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고, 우리가 잘 지악하겠다.’라고 말해줬다. 서로 닮은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서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였다. 닮은 구석이 많아서 아프기도 했지만, 가장 다정하고 편안한 품이 내게 생긴 것이니 마냥 아파할 것도 아니다. 두 번 다시 만나지 못 할 이 이야기는 자주 내 머리와 마음을 유영하며, 나를 살리려고 힘 쓸 것이다. 그들의 노력에 나는 못 이기는 척 살아갈 것이고. 나도 그들에게 살라고, 내가 평생 기억하겠다고 약속하며 그들을 못 이기는 척 살아가도록 이제야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장을 덮어도 그들과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삶은 유한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무한할지도 모르니까.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났어도 남은 이들에 의해 계속 삶을 살게 되니까. 우리의 이야기는 서로가 없는 곳에서 언제나 쓰이고 읽히고, 전해질 것이다. 우리의 삶은 미친 듯이 찬란하니까 ✨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너무 행복했고, 아팠다. 20대 후반에 만난 ‘평생의 책‘이다. 이 책을 만났기에 앞으로 살면서 내가 부딪치는 하루하루들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이 책과 함께라면 어떤 날이든 잘 버텨낼 것 같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을 만난 모두가.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북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나의친구들 #프레드릭배크만 #다산북스 #우정 #사랑 #화가 #요아르 #테드 #알리 #루이사 #피스켄 #서로 #삶 #눈부시다 #아름답다 #상처 #가족 #친구 #미래 #그림 #바다의초상 #바다 #잔교 #너 #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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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김성은 지음, 양양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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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알아서 찾아오는 미래
: 김성은 글•양양 그림, 『대현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미래 시제로 이어지는 짧은 문장들이 이리도 다정할 일인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생각이 많아졌다. 도대체 지금을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오늘이 미래에 도움이 되기나 할지 등등. 대현 씨에게 일어날 일을 미래 시제로 표현한 의도는 잘 알겠다. 그리고 표현을 그렇게 한 덕분에 깨달은 것도 여럿 있다.
대현 씨가 열흘 뒤면 지영 씨와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남편, 아빠로 결혼 전까지 살아오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는 소방관을 직업으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불길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누군가의 삶을 구할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대현 씨가 결혼 전후로 차이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응원하고 사랑하고 지지해줄 가족이 생기는 것이다. 대현 씨가 그리는 미래에 이제 평생을 약속한 아내와 아이가 있는 것이다.

미래 시제가 반복되는 이 그림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과거에 발목을 붙잡힌 채 현재를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는 감히 계획하고 떠올려볼 엄두조차 내지 못 한다. 매일 어제를 흘려 보내지 못하고 곱씹으며 지금 이 순간을 어제에 베어 물리는 데 보내고, 현재에 집중하지 못 함으로써 갖는 외로움, 공허함 등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설렘을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 바라봐야 할 것을 알면서도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아직 오지도 않은 아주 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스트레스와 걱정, 불안, 짜증으로만 보내고 있다. 재미없고 안타까운 삶이다. 지나간 과거를 놓지 못하는 것과 오지 않은 미래를 끌고 와서 제멋대로 소설 여러 번 써버리는 것은 내가 과거와 미래를 대하는 태도이다. 이 태도가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몰라서 구석에 처박아두었지만, 이제는 공간도 자리가 없다며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터트리듯이 내가 놓지 못한 과거와 내가 억지로 끌고 온 망상에 불과한 미래를 게워낸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내 안은 진짜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안 보이는 척 하고 있다. 내가 언제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해서 존재해야 할 곳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이 과거가 되고, 미래로 향하는 걸음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주 잊는다. 가끔은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사는지, 숨만 붙어 있다고 하루하루 사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 의문은 꼬리가 아주 길어서 내가 어딜가든 쫓아와서 답을 하라고 강요하다. 그 답을 피하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답이 답이 아닌 것 같아서, 답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워서. 솔직히 이 의문에 수학문제 답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답은 없다. 나는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딱 맞는 답을 요구하고 있다. 나조차도 나에게 빈틈 대신 딱 맞는 퍼즐 조각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뭔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도 자꾸 뭔가 비워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채우고 있지만 밑빠진 독에서 물이 빠지는 것처럼 채운 것들이 빠진다.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빈 손인지도 모른다.
나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사소한 행동에서 의미를 집요하게 찾는 것이다. 한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면 내 주변에 있는 뭔가를 보거나 멍하니 시선을 고정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나를 보는 거지? 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혼자 바쁘게 만들어 낸다. 이런 식으로 25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다. 그래서 일상이 되었고, 일상이 된 만큼 피로가 엄청나게 누적된다.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행위는 즐겁고 특별한 일이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그렇지만 나는 의미의 긍정이 아닌 부정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그 경험을 만드는 것도 하는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개입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일까지 의미 찾는 것에 집착하는 나에게 하루에 있는 일이 전혀 사소하지 않다. 모든 일이 큰일이다. 매일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파악해야 하고, 내가 보낸 하루에 대한 의미를 집요하게 찾기 위해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자유를 스스로 철창이 빼곡한 감옥에 가뒀다. 감옥에서 밖을 바라보는 여유와 자유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을 잃고 있다. 본래의 모습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중간에 다시 제 발로 감옥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고.
대훈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는 말에 확신이 느껴져서 좋다. 처음에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계속 제목을 곱씹어 보니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대훈 씨의 태도가 지금을,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훈 씨는 소방관으로서 할 일을 하며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에 존재하는 대훈 씨는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금이 모여 미래를 이루는 것이니까.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자신의 하루를 묵묵히 살안가는 대훈 씨에게는 지금만 존재할 뿐, 미래는 때가 되면 알아서 대훈 씨한테 다가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미래에 닿을 수 없다. 현재 곧 과거이자 미래인 것이다. 미래를 아무리 계획하고, 미리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시간 낭비하는 일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대훈 씨가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대훈 씨의 앞날이 미래 시제로 반복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지금도 몇 시간 후에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상황을 상상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는 지금이 아닌 몇 시간 후라는 내가 만든 가상의 시공간에 가 있다. 그러니 지금 존재해야 하는 나의 시공간에 내가 부재하니 과거와 현재, 미래 어느 한 곳에서도 온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쉽지 않겠지만 지금은 지금,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해봐야겠다. 내가 나로 온전히 존재하며 나의 부재로 인한 공백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대훈 씨는 계속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지금을 살 것이다.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과거와 미래에 얽히지 않고 그냥 현재를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사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 집중하여 사는 것인데 과거와 미래에 대해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하니 내게 주어진 삶이 탁해지고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자주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느라 자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잃을 것이다. 그때마다 <대훈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를 떠올리며 지금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 미래가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좋겠다. 세상 곳곳에서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지금 이 순간’을 부지런히 살고 있을 모든 대훈 씨와 지영 씨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가끔은 과거와 미래에 닿아도 좋지만 오래 있기에는 현재가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나에게 하고 싶은 말!).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다고, 간절히 그러길 원한다고 내가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특별한 일인지 알았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니까, 살아내야만 하니까, 지금 이 순간을.’이라는 문장이 내 마음 한켠에 천천히, 꾹꾹 눌러 새겨지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용기가 내게도 있다고, 그냥 지금을 살라고 스스로 덤덤하게 말한다.

★ 이 책은 뭉끄 6기 4월 활동을 위해 문학동네에서 받았습니다:)


#대훈씨는지금미래에대해생각하지않는다 #김성은글 #양양그림 #문학동네 #뭉끄6기4월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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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마음 -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
이치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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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방법
: 이치훈 에세이, <명상하는 마음>(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진 않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ost <어른>은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들었던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어른>을 작사한 이치훈 작사가의 첫 에세이를 읽게 되다니 별 인연이 아니라고 해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명상하는 마음> 첵제목 아래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이라는 한 문장이 마음을 천천히 새겨졌다. 고요와 온전한 나, 빛나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에 이질적이고 상관 없이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3개의 챕터로 구성된 <명상하는 마음>. 1장은 <그림자를 사랑하는 연습>, 2장은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1장은 이치훈 작사가가 아닌 ‘사람 이치훈‘의 이야기였다. 가장 숨기고 싶고 본인조차 본인에게서 도망치고, 스스로를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위한 삶을 산 상처와 아픔에 절여진 사람 이치훈이었다. 즉. 사람 이치훈의 지난날 고백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아파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나 각자 도망치고 싶고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운 상처 등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살아가니까. 세상에 발표한 노래가 꽤 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있으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 작사가 이치훈은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면서도 나와 다르지 않게 똑같이 상처 받고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위로를 받는 나의 모습이 이기적이어서 스스로 역겨움을 느꼈다. <명상하는 마음>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작사가가 명상에 대해 뭘 알겠냐고, 그냥 유명세 입어 그럴싸한 문장 몇 개 얹어서 글 한 편 세상에 내놓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내가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다정함이 전혀 없는 부정적이고 차가운 시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깨달음 끝에는 부끄러움과 반성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명상에 관한 이야기는 명상이라는 주제로 흰 종이를 가득 채운 다른 도서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르치려기 보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명상에 관련한 책보다 더 신뢰가 가고 펼쳐보게 되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직접 경험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이다. 문장마다 이치훈 작사가의 섬세함과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 이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명상으로 이 책을 읽을 모두가 각자만의 고요에 닿길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덕분에 내 안에 고요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고요를 찾을 수 있겠다 생각한 건 처음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고요를 찾아서 내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내가 바라던 자유에 닿고 싶다.
2장은 본격적으로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을 찾는다. 고요에 가닿는 길은 정말 고단했다. 이 길 끝에 진짜 고요가 있을지 의심이 들고, 자꾸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다른 책에서 봤던 것처럼 이치훈 작사가도다 똑같이 말한다. 받아들이고, 이름을 붙이고, 멈춰보라고. 자신에게 미소 짓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하라고. 뻔한 말이지만 이치훈 작사가만의 특정한 톤이 똑같은 말에 진정성을 담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나는 받아들이는 것이 오래 걸리거나 불가능한 사람이다. 받아들인 것 같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냥 얼버무렸던 적이 여러 번이다. 받아들이고 나면 곱씹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받아들임과 잘 지내고 있지 못한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한두 번 효과를 봤다. 출근길에 일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걱정이 되었고,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불안이라고 속으로 이름을 붙이니 한결 나아졌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이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히 연습해야 나아진다는 것을 꾸준히 하지 않고서 계속 불안에만 떠는 나의 모습을 자각하면서 깨달았다. 
 주말에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되면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분명 주말에 일이 아니라 쉬었는데도 짜증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몸은 누워서 쉬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계속 다음주에 있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는 등 쉬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니 당연히 몸도 편하지 않을 수밖에.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다고 쉰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쉼은 몸이 먼저 멈추고, 몸 안에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마음이 자리 잡으면 안부를 묻는 것이다.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몸과 마음이 묻는 안부에 답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답을 해줄 것이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쉼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니까.
미소와 자세와 호흡은 한 세트다. 미소를 지어보라기에 나는 타인에게 그래야 하는 줄 알고 한숨부터 나왔다. 틀렸다. 나에게 지어 보이는 미소였다. 이 미소는 나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다. 나에게 미소 지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나를 위해 미소를 지어보여야 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어색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이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거칠고 모질었다. 남한테 했던 것의 절반이라도 나에게 했더라면 흔들림 속에서 단단히 버티는 힘을, 나는 잘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족하지 않게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짠하게 나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나에게 미소를 지어볼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반복하면 다정함과 친절함이 커지는 것을 느끼고 나를 제외한 것들에게도 여유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박하다보니 요즘 짜증이 늘고 한숨으로 얼굴이 그늘져가고 있던 것을 느끼던 참이다. 그런데 짜증과 한숨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내가 참는 것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참으면 내 속이 썩어갈 것이 뻔하지만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치훈 작사가 덕분에 방법을 찾았다. 미소와 더불어 호흡과 자세는 평소에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호흡을 조절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내 하루는 전과 다르게 밝아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미소도 덧붙여서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게 뭔하는 건가 싶고, 이걸로 변화가 생기기나 할지 의문이 들겠지만 그냥 해보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자세와 호흡, 미소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믿어봐도 좋을 것 같다. 믿고 싶다. 나의 가벼운 하루하루를 위해서.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삶은 우리에게 고통만 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고통을 가장한 깨달음을 매순간 주는 것 같다. 한때는 신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보고만 있는 거냐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했는데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며 원망하고 따지기도 했다(나의 원망이 신에게 가닿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신이 불행한 나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가 없을 거라고 적어도 믿고 싶으니까.). 영원히 볼 일 없을 신을 원망만 하고 있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신도 아무것도 몰라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도 특별한 게 없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고 깨닫고 경험한 모든 것이 명상법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사는 우리는 각자만의 명상법을 매일 만들고 찾는 중이다. 아마 지구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명상법은 각자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어떤 명상법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이라면 자신에게 정답이다. 답이 때로는 오답이 될 수 있겠지만, 오답이라고 하는 대신 나를 지켜주고 일으켜 세우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발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삶은 이미 삶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르쳐준 게 끝도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삶이 가르쳐준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죽기 직전까지 삶이 가르쳐준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것 중에 몇 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받아들였다면 그걸로 만족하면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내 이름을 건 이 지구별에서 단 하나뿐인 삶을 본인만의 것으로 가득 채우면 된다.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깨닫고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만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이야기, 제안한 것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 시간들 너무 애쓰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은 놓쳐버린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아주 잠깐 내 안에 머물다 바람타고 저멀리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명상하는 마음>은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흰 종이에 수놓은 검은 글씨의 솔직한 다정함. 진심으로 각자의 고요에 가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이치훈 작사가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그 마음을 그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함께 해준 웅진지식하우스에 고마움을 전한다.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만의 명상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한때 명상을 거창하고, 닿지 못할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명상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젠 명상은 세상에서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명상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하고, 어수선한 마음(안)이 차분해지면 감각에 집중하여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내가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배운 명상은 감각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보는 것이다. 명상을 자주 해야겠다, 나의 고요에 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마 오랜 수행이 필요할 듯 보인다. 오래 걸려도 좋다, 생각지 못 할 때 고요에 닿은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명상하는마음 #이치훈에세이 #웅진지식하우스 #나의아저씨ost #명상 #어른 #내마음 #자세 #호흡 #미소 #있는그대로 #멈추기 #받아들임 #마음챙김 #서평 #책로그 #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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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마음 -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
이치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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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방법
: 이치훈 에세이, <명상하는 마음>(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진 않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ost <어른>은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들었던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어른>을 작사한 이치훈 작사가의 첫 에세이를 읽게 되다니 별 인연이 아니라고 해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명상하는 마음> 첵제목 아래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이라는 한 문장이 마음을 천천히 새겨졌다. 고요와 온전한 나, 빛나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에 이질적이고 상관 없이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3개의 챕터로 구성된 <명상하는 마음>. 1장은 <그림자를 사랑하는 연습>, 2장은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1장은 이치훈 작사가가 아닌 ‘사람 이치훈‘의 이야기였다. 가장 숨기고 싶고 본인조차 본인에게서 도망치고, 스스로를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위한 삶을 산 상처와 아픔에 절여진 사람 이치훈이었다. 즉. 사람 이치훈의 지난날 고백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아파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나 각자 도망치고 싶고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운 상처 등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살아가니까. 세상에 발표한 노래가 꽤 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있으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 작사가 이치훈은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면서도 나와 다르지 않게 똑같이 상처 받고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위로를 받는 나의 모습이 이기적이어서 스스로 역겨움을 느꼈다. <명상하는 마음>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작사가가 명상에 대해 뭘 알겠냐고, 그냥 유명세 입어 그럴싸한 문장 몇 개 얹어서 글 한 편 세상에 내놓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내가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다정함이 전혀 없는 부정적이고 차가운 시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깨달음 끝에는 부끄러움과 반성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명상에 관한 이야기는 명상이라는 주제로 흰 종이를 가득 채운 다른 도서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르치려기 보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명상에 관련한 책보다 더 신뢰가 가고 펼쳐보게 되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직접 경험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이다. 문장마다 이치훈 작사가의 섬세함과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 이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명상으로 이 책을 읽을 모두가 각자만의 고요에 닿길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덕분에 내 안에 고요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고요를 찾을 수 있겠다 생각한 건 처음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고요를 찾아서 내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내가 바라던 자유에 닿고 싶다.
2장은 본격적으로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을 찾는다. 고요에 가닿는 길은 정말 고단했다. 이 길 끝에 진짜 고요가 있을지 의심이 들고, 자꾸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다른 책에서 봤던 것처럼 이치훈 작사가도다 똑같이 말한다. 받아들이고, 이름을 붙이고, 멈춰보라고. 자신에게 미소 짓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하라고. 뻔한 말이지만 이치훈 작사가만의 특정한 톤이 똑같은 말에 진정성을 담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나는 받아들이는 것이 오래 걸리거나 불가능한 사람이다. 받아들인 것 같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냥 얼버무렸던 적이 여러 번이다. 받아들이고 나면 곱씹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받아들임과 잘 지내고 있지 못한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한두 번 효과를 봤다. 출근길에 일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걱정이 되었고,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불안이라고 속으로 이름을 붙이니 한결 나아졌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이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히 연습해야 나아진다는 것을 꾸준히 하지 않고서 계속 불안에만 떠는 나의 모습을 자각하면서 깨달았다. 
 주말에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되면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분명 주말에 일이 아니라 쉬었는데도 짜증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몸은 누워서 쉬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계속 다음주에 있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는 등 쉬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니 당연히 몸도 편하지 않을 수밖에.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다고 쉰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쉼은 몸이 먼저 멈추고, 몸 안에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마음이 자리 잡으면 안부를 묻는 것이다.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몸과 마음이 묻는 안부에 답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답을 해줄 것이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쉼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니까.
미소와 자세와 호흡은 한 세트다. 미소를 지어보라기에 나는 타인에게 그래야 하는 줄 알고 한숨부터 나왔다. 틀렸다. 나에게 지어 보이는 미소였다. 이 미소는 나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다. 나에게 미소 지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나를 위해 미소를 지어보여야 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어색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이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거칠고 모질었다. 남한테 했던 것의 절반이라도 나에게 했더라면 흔들림 속에서 단단히 버티는 힘을, 나는 잘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족하지 않게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짠하게 나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나에게 미소를 지어볼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반복하면 다정함과 친절함이 커지는 것을 느끼고 나를 제외한 것들에게도 여유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박하다보니 요즘 짜증이 늘고 한숨으로 얼굴이 그늘져가고 있던 것을 느끼던 참이다. 그런데 짜증과 한숨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내가 참는 것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참으면 내 속이 썩어갈 것이 뻔하지만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치훈 작사가 덕분에 방법을 찾았다. 미소와 더불어 호흡과 자세는 평소에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호흡을 조절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내 하루는 전과 다르게 밝아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미소도 덧붙여서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게 뭔하는 건가 싶고, 이걸로 변화가 생기기나 할지 의문이 들겠지만 그냥 해보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자세와 호흡, 미소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믿어봐도 좋을 것 같다. 믿고 싶다. 나의 가벼운 하루하루를 위해서.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삶은 우리에게 고통만 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고통을 가장한 깨달음을 매순간 주는 것 같다. 한때는 신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보고만 있는 거냐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했는데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며 원망하고 따지기도 했다(나의 원망이 신에게 가닿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신이 불행한 나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가 없을 거라고 적어도 믿고 싶으니까.). 영원히 볼 일 없을 신을 원망만 하고 있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신도 아무것도 몰라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도 특별한 게 없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고 깨닫고 경험한 모든 것이 명상법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사는 우리는 각자만의 명상법을 매일 만들고 찾는 중이다. 아마 지구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명상법은 각자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어떤 명상법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이라면 자신에게 정답이다. 답이 때로는 오답이 될 수 있겠지만, 오답이라고 하는 대신 나를 지켜주고 일으켜 세우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발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삶은 이미 삶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르쳐준 게 끝도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삶이 가르쳐준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죽기 직전까지 삶이 가르쳐준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것 중에 몇 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받아들였다면 그걸로 만족하면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내 이름을 건 이 지구별에서 단 하나뿐인 삶을 본인만의 것으로 가득 채우면 된다.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깨닫고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만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이야기, 제안한 것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 시간들 너무 애쓰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은 놓쳐버린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아주 잠깐 내 안에 머물다 바람타고 저멀리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명상하는 마음>은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흰 종이에 수놓은 검은 글씨의 솔직한 다정함. 진심으로 각자의 고요에 가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이치훈 작사가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그 마음을 그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함께 해준 웅진지식하우스에 고마움을 전한다.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만의 명상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한때 명상을 거창하고, 닿지 못할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명상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젠 명상은 세상에서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명상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하고, 어수선한 마음(안)이 차분해지면 감각에 집중하여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내가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배운 명상은 감각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보는 것이다. 명상을 자주 해야겠다, 나의 고요에 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마 오랜 수행이 필요할 듯 보인다. 오래 걸려도 좋다, 생각지 못 할 때 고요에 닿은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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