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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칼날은 차갑게 1
조 애버크롬비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평점 :
복수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완벽한 복수, 복수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 조 애버크롬비 장편소설, <복수의 칼날은 차갑게1> (황금가지)
차가운 복수와 그 피로 물든 시대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복수‘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몬즈카로 ’몬자‘ 머카토, ‘카프릴의 도살자‘라 불리운 냉혹한 용병대장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믿었던 이들(오르소 공작, 공작의 아들, 간마크 등) 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고 산산조각이 난 채 죽음의 벼랑 끝에 버려졌다. 냉혹한 용병대장이라는 수식이 한몫 한 걸까 온몸이 부서졌지만 목숨은 끊기지 않았다. 잃을 게 없는 이의 복수가 가장 무섭다고 했던가, 모든 것을 잃고 파괴된 몬자는 이제 ’복수‘, 단 하나의 불꽃으로 살아난다.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 돈을 향한 맹목적인 탐욕, 그리고 씁쓸한 후회로 뒤덮인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피바람을 일으키는 복수극이 시작된다. 몬자의 복수의 칼날은 오롯이 복수의 불꽃을 일으킨 이들에게만 향할지, 계획한 대로 복수가 이루어질지, 복수의 끝에 몬자는 어떨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의 복수는 얼마나 차갑고 잔인할지 기대되는 ’다크 판타지 대가’ 조 애버크롬비의 인기작이 드디어 국내 첫 출간되었다. 이 책을 통해 다크 판타지 장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일 수 있으면 좋겠다. 판타지를 단일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복수의 칼날은 차갑게1>을 통해 ’다크 판타지’를 만날 수 있어서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나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몬자라는 여성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냉혹한 용병대장이라는 수식이 참 매력적이다. 그녀가 걸어온 삶을 전면적으로 보여준다. 몬자가 그동안 오르소 공작을 위해 뛴 전투나 거마쥔 승리는 내가 이뤄낸 것도 아닌데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벅차고 어깨가 들썩거릴 만큼 힘이 들어간다. 몬자의 칼날에서 자유로운 목숨은 없다는 것이 섬뜩하면서도 몬자의 존재를 굳건히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만도 아니다. 몬자는 오르소 공작을 위해 승리를 거머쥐고, 몬자의 삶이 파괴된 이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기쁜 소식을 들고 오르소에게 향했다. 그날은 어째서 몬자가 불길함을 느끼지 못한 건지, 늘 하던 승리이고 이어지는 과정이라서 방심한 건지 몬자는 온몸이 부서지고, 삶을 완전히 파괴한 배신을 경험한다. 바로 믿었던 이들의 배신이다. 그들은 동생 베나를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죽이고, 몬자를 무참히 짓밟고 찔러 짐짝 버리듯 창밖으로 버렸다.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아남은 몬자가 할 일은 단 하나다. 복수. 몬자는 동생을 잃음과 동시에 카프릴의 도살자라고 불리는 용병대장에 맞는 날렵한 몸이 완전히 부서졌다. 더이상 잃을 게 없는 그녀가 해야 하는 복수가 그녀가 당한 만큼 잔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불러오지만 동생을 잃고 배신 당한 그녀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몸이 망가진 그녀를 살리는 건 복수다. 그녀의 복수에 감정이 단 한 방울이라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동생이 죽는 것을 두눈으로 본 순간부터 몬자에게 이성으로 움직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배신한 그들을 속이고 완전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고,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경계와 의심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몬자의 복수를 베나는 바라는지, 지금 몬자를 보고 베나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확실한 건 몬자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베나가 죽임을 당하고 몬자가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 당하는 모습은 내 몸이 일그러진 것처럼 몸 곳곳에 통증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만큼 잔혹했다. 전투 장면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생생하고 강렬했으며, 잔혹하고 속도감 넘친다. 빠르게 이어지는 전투 장면에서는 숨을 참고, 전투 장면 이후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였다. 생생함과 속도감이 맞물리니까 두통이 일었다. 조 애버크롬비가 보여주는 ’차가운 복수와 피로 물든 시대‘의 무대는 잔혹하면서도 어두운 유머 곳곳에서 피어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망가진 몸으로 혼자 복수를 할 수 없던 몬자는 복수를 위해 사람을 모으기 시작한다. 모은 사람들도 하나같이 각자 사정이 있다. 사정보다는 세상에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마치 몬자의 삐걱거리는 몸처럼 그들은 세상에 속해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다가 끝내 소외되었다. 몬자는 복수를 위해 그들을 고용했고, 돈 혹은 다른 이유로 그 복수에 함께 하기로 한 이들의 기묘한 동행은 멀리서 보면 그럴 듯 해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런 비극도 없다. 이 복수의 끝에서 괜찮은 결말을 맞을 사람은 거의 없다. 인생 자체가 전투였던 이들은 몬자의 복수 끝에는 죽음 혹은 도망, 은신 등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응한 것 같다. 처음에는 돈이지만 복수의 칼날이 목표를 향해 겨눠지고, 목표를 냉혹하게 처리할 때마다 피로 물든 자신의 몸과 칼을 볼 때마다 원래 목표(돈)는 잊히고 어느새 복수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피로 물든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불러오는데 복수를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복수를 시작한 이들이 죽게 되니까. 복수에 발을 들인 이상 그 누구도 괜찮은 결말을 맞을 수 없다. 복수를 당할 뻔 했다는 걸 알고 가만히 살려둘 이가 누가 있겠는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봐 두려워서 끝까지 아군으로 뒀어야 할 몬자와 베나를 배신한 오르소와 그의 사람들처럼. 죽일 거면 제대로 죽여야 했다, 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그녀의 죽음을 너무 하찮게 여긴 오르소와 그의 사람들은 방심했다. 권력에 먼 눈을 가진 이들의 두려움이 아군을 배신했고, 그 배신으로 복수라는 불꽃을 피워낸 몬자가 겨눈 칼날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몬자를 완벽하게 죽였다고 생각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계획적으로 서서히, 노리는 칼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하는 것치고는 너무 느린 그들의 결말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면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모습 아니면 보잘 것 없이 허무하게 죽는 모습. 문득 든 생각이다, 배신은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것이라고. 몬자의 칼날은 정확히 배신한 이들의 심장을 겨누고 있고, 그 칼날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카도티의 별장(시파니, 안개와 속삭임의 도시)에서 오르소 공작의 아들들인 아리오 왕자와 포스카 왕자를 죽일 계획이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어서 경계와 신중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들을 죽이고 나면 오르소 공작은 몬자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면 그 사이에 몬자의 복수를 오르소에게 전달한 이가 생길 수도 있다. 처참히 배신 당한 몬자가 온몸에 피를 두른 채 오르소 자신의 꿈에 나오지 않았을 때 한 번이라도 의심해야 했다. 자신이 그녀의 목숨을 하찮게 여긴 것이 아들들을 죽이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후회보다 앞선 건 분노겠지만. 몬자의 시체를 찾아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고 완벽하게 처리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고 고통 속에서 후회하고 원망하다가 볼 품 없는 결말을 맺을 것이다. 그에게 어울리는 끝일까? 몬자는 그에게 어떤 결말을 선물해줄까? 그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복수라고 볼 수 있을까? 베나의 죽음, 자신과 베나를 배신한 것에 대한 복수가 그들의 죽음으로 된 걸까? 도대체 진정한 복수는 무엇일까? 피는 피로 되갚는 것이 복수인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베나를 위해 복수한다고 하지만, 베나는 이미 죽었고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베나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을 아니다. 결국 시버스가 말한 것처럼 이 복수는 ‘몬자 자신‘을 위한 것이다. 물론 베나를 위한 것도 있지만 일부이다.
복수의 칼날은 뜨겁기 마련인데 어째서 차가운 건지 생각했다. 처음에는 뜨거웠다. 하지만 복수의 칼날이 배신자를 하나씩 베고, 남은 배신자들에게 다가갈수록 칼에 묻은 피는 식어서 굳고, 칼날은 카프릴의 도살자라고 불리는 냉혹한 몬자만큼 차가워졌다. 감정적으로 시작한 복수가 점점 이성을 찾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피는 보지 않고 목표만 겨냥한다. 그래도 불필요한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복수와 전쟁은 언제나 그렇다. 괜찮은 엔딩을 맞을 이들이 몇 이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몬자의 칼날은 망설이는 법이 없고, 실수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 복수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몬자를 보니 베나가 자꾸 생각난다. 베나가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서. 베나가 있었다면 차가운 피로 물든 복수도 없겠지만.
복수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데 전혀 뭔가 채워지거나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복수를 계획한 몬자부터 그녀의 복수를 위해 모인 이들이 모두 절망이 가득하다. 몬자는 복수의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잃어버린 것,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인해 빈 자신이 채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의 진심을, 그녀의 생각을 전혀 모르겠다. 복수를 하려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복수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가 불안하고 공허해보일 뿐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복수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복수의 끝에서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워지거나 가려지지 않는 피가 묻어 있을 거고, 잔인한 피 비린내가 아주 진득히 베어 있을 것이다. 복수의 끝이 몬자의 허탈함 뿐일까봐 겁난다. 냉정하고 겁 없는 그녀가 모든 걸 잃은 순간 한 번 무너졌고, 복수 이후에 무너진다면 쉽게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다. 복수는 그렇다. 복수는 성공과 실패,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복수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복수가 복수를 낳고, 복수를 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힘든 과정에서 얻는 건 완벽한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허무함과 충격, 그리고 자신이 잃는다는 게 많다는 것뿐이다. 그녀 복수의 끝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허무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할 것 같다. 그녀가 복수를 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녀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피로 물든 삶이. 안타까운 그녀의 삶에서 그녀를 지킨 것이 칼과 배신, 분노, 복수라는 사실은 한동안 몬자를 떠올리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복수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고, 그녀를 죽음에서 끌어올린 힘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몬자가 복수 끝에는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나의 말도 안 되는 바람일까. 아마 머카토 몬자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끝을 잘 알고 있어서 나의 바람을 속으로 품는 것조차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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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황금가지’에서 받았습니다:)
📚 황금가지 : 도서를 받은지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서평을 남겼습니다. 기한을 지키지 못 한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장편소설인데,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영화로 나와도 많은 사랑을 받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수’가 사람을 무섭고 잔인하게 만들 수 있음을 봤습니다. 몬자가 겪은 배신, 망가진 몸, 그리고 배신에 맞는 복수를 하기 위한 위험한 이들과의 동행. 모든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계속 복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복수에 대한 저만의 정의조차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복수를 하게 될 일이 생긴다면(그러지 않아야겠지만), 몬자의 복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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